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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서인(泰西人) 이라는 가톨릭 고유의 차용 번역 용어의 기원과 출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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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4 ㅣ No.1723

 

1. 들어가면서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태서(泰西)"에 대한 설명인데,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List_dic.jsp

(발췌 시작)

태서(泰西)

 

「명사」

‘서양’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이상, 발췌 끝)

 

위의 설명에 의하면 은 "서양"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서양"이라는 용어의 설명에 의하면, "서양"은 "유럽과 남북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질문 1: "泰西人(태서인)" 은 어떤 자들를 말하는지요?

 

질문 2: "泰西學(태서학)" 등에서 또한 사용되고 있는, "泰西"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의 의미, 기원과 출처 등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2. 사료 분석 I


2-1. 우선적으로, "서양인(西洋人)"들 중에서만 오로지 "구라파인(歐羅巴)"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구라파인(歐羅巴)"들 중에서만 오로지 "태서인(泰西人)"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2-2. 다음은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서학(西學)"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1565

(발췌 시작)

한편 조선왕국에서는 서학(西學)을 '서태지학'(西泰之學)이나 '태서인지학'(泰西人之學)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장문의 척사논문(斥邪論文)을 써 유명한 정조 초의 학자 신후담(愼後聃, 1702-1762)은 '서태지학'의 해가 홍수나 맹수보다도 큰 것이라고 경고하였고, 북학파(北學派)의 홍대용(洪大用, 1731-1783)'태서인지학'이라는 말을 쓰는 한편 "강희(康熙) 이래로 서양인으로 중국에 오는 자가 많고 … 4천주당을 북경에 세우니 이로 인하여 서학(西學)이 비로소 성해지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이상, 발췌 끝)

 

따라서, 조선의 일부 유학자들이, 제3자의 입장에서, 중국 본토에 서학(西學)을 전달해준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을 두고서 "泰西人(태서인)"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홍대용(洪大用, 1731-1783)은, 본인인 중국 북경을 직접 다녀왔고 그리고 중국에 있는 중국인 유학자 벗들과 편지도 주고 받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이분이 '태서인지학'(泰西人之學)에서 말하는 '泰西人'은, 중국인들이 그 당시에 이미 사용 중인 용어를 본인도 사용한 경우라는 생각입니다. 

 

2-3. 다른 한편으로, 중국인들에 의하여, 단순히 "구라파인"이 아니라"泰西人(태서인)"으로서 인식되도록 하고자 자신들의 한문본 저술들에서 구체적으로 표기하였던 최초의 "구라파인"들은,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을 포함하여, 바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셨습니다. 다음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직접 확인한 바입니다: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예수회 소속 혹은 아우구스티도회 소속의 신부님들께서 자신들의 한문본 저서들의 바로 시작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에 사용하셨던 용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서(大西):

25언 [1599년, 마태오 리치, 주: "대서리마두 술"이라는 언급이 본문 직전에 주어져 있음].

 

서태(西泰):

기인10편 [1608년, 마태오 리치, 자: 서태(西泰)]

 

서해(西海):

직방외기 [1623, 쥬리오 아레니, 주: "서해 애유략 ..., 동해 양정균 ..."이라는 언급이 본문 시작 직전에 주어져 있음].


태서(泰西):

만물진원 [1628, 쥬리오 아레니, 주: "태서야소회사 애유략 술"이라는 언급이 본문 직전에 주어져 있음].

구탁일초 [1630-1640, 쥬리오 아레니와 루도미나 외 두 분의 선교사 신부님들, 주: 구탁일초소인에 "태서제선생지 항해이 동야."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태서제선생"은 당시의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을 말한다는 생각임].

천주야소성적 [?, 쥬리오 아레니, 주: "태서회사 애유략 역"이라는 언급이 본문 직전에 주어져 있는데, 당시에, "야소회(즉, 예수회)"가 또한 "태서회"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음]. 

석객문 [1694, , 주: "태서성오사정회사 육명언 찬(泰西聖奧思定會士陸銘恩撰)"이라는 언급이 목록 직전에 주어져 있음].

성경광익 [1740, 모이리악 드 메야, 주: "태서야소회사 풍병정(馮秉正) ..."라는 언급이 변언(弁言) 말미에 주어져 있음]

 

게시자 주:

(1) "야소회"를 또한 "태서회"로 불렀음은 다음의 검색 결과에서도 확인됨:

 

"泰西會士" "萬國全圖" <----- 클릭하여 필히 확인하라

 

(2)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태서(泰西)극서(極西)는 동일한 바, "Far West"를 나타내는 표현들임:

https://en.wikipedia.org/wiki/Far_West_(Taixi)

(이상, 게시자 주 끝) 

 

극서(極西):

서학범 [1623년, 쥬리오 아레니, 주: "극서제국 총명 구라파자." 라는 설명이 본문의 첫 문장임].

천주강생언행기략 [1635, 쥬리오 아레니, 주: "극서야소회사 애유략 술"이라는 언급이 본문 직전에 주어져 있음].

천주강생인의 [1635, 쥬리오 아레니, "극서야소회사 애유략 ..."라는 언급이 본문 직전에 주어져 있음].

주교요지 [1668, 부그리오, "극서야소회사 이류사 저"라는 언급이 본문 직전에 주어져 있음.

미살경전 [1670년, 부그리오, "극서야소회사 이류사 역"이라는 언급이 목록 직전에 주어져 있음.


원서(遠西):

천주성교실록 [1584년, 미카엘 루지에리, 주: "원서라명견 찬"이라는 언급이 목록 직전에 주어져 있음].

원서기기도설 [1627, 요한 테렌츠 및 왕징, 주: "원서기기도설 녹최"라는 언급이 맨 처음에 주어져 있음].

서방답문 [1637년, 쥬리오 애유락, 주: "원서야소회사 애유략 술"이라는 언급이 목록 직전에 주어져 있음].

천주강생출상경해 [1637년, 쥬리오 애유략, 주: "원서야소회사 애유략 경직"이라는 언급이 해인 말미에 주어져 있음].  

 

2-4. 다른 한편으로, 1807년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개신교 목회자들은 자신들을 두고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처럼, 스스로 "태서인"이라고 결코 부르지 않았고, 그리고 그렇게 부를 수 없었을 것인데, 그 이유는 바로 위의 제2-3항에서 고찰한 바를 그들이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3. 사료 분석 II 및 이 글의 결론들


3-1. (이 글의 결론 1) 따라서, 바로 위의 제2항에서 함께 고찰하였듯이, "태서인(泰西人)"들이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시간적 연대순에 있어 특정된 기간 동안에 중국에 와서 거주하면서, 구라파(Europe)의 학문/과학(sciences), 즉, 서학(西學, Western Science), 즉, 구라파의 천학/천주학 문헌들(여기에는 성경 및 교리서들이 포함됨) 및 자연과학 지식을 담은 문헌들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당시[즉, 1854년부터 (중국 예수회가 해산되었던) 1775년 경까지] 중국인들에게 전달해 주었던 구라파(歐羅巴) 출신의 야소회(耶穌會) 회원들(주: 여기에는 천주교 신부님들과 수사님들만 오로지 포함됨)"

을 말합니다. 

 

3-2. 다른 한편으로, 1849년에 초간된 서계여(徐繼畬, 1795-1873년)의  "영환지략", 권1, 범례에서는,

 

3-2-1. "영환지략", 권1, 첫 번째 범례에서, "지도는 '태서인' 원본을 따른다"고 명기하였습니다.

 

3-2-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영환지략", 권1, 범례에서, 구체적으로 "태서인"들이 누군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하였습니다:

 

출처: http://ctext.org/library.pl?if=gb&file=25049&page=16

(우리말 졸번역 시작)

리마두(1552-1610년, 마태오 리치 신부님), 애유략(1582-1649년,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 남회인(1623-1688년, 南懷仁, 페르비스트 신부님)이 속하는 "태서인"들은 모두 경사(즉, 북경)에 오랫동한 거주하였고,(*1) 통상적으로 한문을 습득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저술한 책들은 문리가 자못 명순하게 되어[즉,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가면 오히려 잘 보지 못하게 되어], 따라서 속이고 기만하는 이야기(설)를 낳음이 또한 이미 적지 않으며, 최근의/가까이에 있는 "태서인"들은 한문에 깊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저서들은 많이 상스럽고 속되어 글이 아니어서,(*2) 그 때문에 그들이 각 나라를 서술함 및 사건의 자취를 줄임이 확실하고 명확함이 가히 웅거하고, 또한 상대방을 아는 글이 굴러서 순박하지 못함이 그와 같다.

 

-----

(*1) 번역자 주: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께서 북경에 오랫동안 거주하였다는 언급은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2) 번역자 주: 이 언급은, 예를 들어, 중국의 예수회가 1775년 경에 해산되고 나서, 중국에 머물면서, 이전의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처럼 문어체 한문 문장으로 서술을 하지 않고, 백화체(즉, 일상의 대화체) 중국어로 성경 번역을 하여, 소위 말하는, 고신성경을 남긴 안토니오 드 푸아로 신부님(1735-1813년)의 경우를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

(이상, 우리말 졸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12월 15일]

3-2-3. 다음의 주소에 있는 "영환지략", 권1, 범례들에서, 구체적으로 "태서인회"라는 표현이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 단체는, 위의 제2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야소회"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ctext.org/library.pl?if=gb&file=25049&page=16

[이상, 2016년 12월 15일자 내용 추가 끝] 

 

3-3. 그리고 다음은, 1843년에 초간된 위원(魏源, 1794-1857년)의 "해국도지"1875년 중각 판, 권 26, 제10쪽에 주어진 각주를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1: https://zh.wikisource.org/wiki/%E6%B5%B7%E5%9C%8B%E5%9C%96%E5%BF%97/%E5%8D%B7026

출처 2: http://ctext.org/library.pl?if=gb&file=25503&page=61

출처 3: http://ctext.org/wiki.pl?if=gb&chapter=226

(출처 1로부터 발췌 시작)

泰西人相傳天神降於西奈山,石上現文字,摩西拜受,垂為十誡,以教民蓋托於神道,以起人之崇信耳。後來耶穌教即本於此。西奈山,在今亞剌伯西北境。

 

(졸번역)

태서인들이 대대로 전하기를, 천신[즉, 천사]가 서내산[즉, 시나이 산]에 내려와, 돌 위에 문자를 나타내었고, [이 돌판을] 모세가 절하며 받아, 물려주며 10계로 삼았으며, 이로써 믿는 백성이 신성한 길에 있어 숭상하고 분간하였고, 이로써 사람의 숭배하는 믿음을 일어나게 하였다고, 전해왔다. 뒤에 오는 야소교[주: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를 말함]는, 바로 이것에 근본을 두고 있다. 서내산[즉, 시나이 산]은, 지금 아속백 서북 가장자리에 있다.

(이상, 졸 번역 끝)

 

(이 글의 결론 2) 바로 이 발췌된 문장들의 전후 문맥 안에서 우리는, 아무리 늦더라도 위원에 의하여 "해국도지"가 저술된 1843년 까지는 "태서인"들이라고 불리었던(called) 구라파인들 중에, 당시에 예수회 신부님들보다 더 늦게 중국에 와서, 즉, 1807년에 처음으로/최초로 중국 본토에 와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던 개신교 측 선교사들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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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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