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성당 게시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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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blasius] 쪽지 캡슐

2000-01-15 ㅣ No.263

나무

    --- 도종환

 

퍼붓는 빗발을 끝까지 다 맞고 난 나무들은 아름답다

밤새 제 눈물로 제 몸을 씻고

해 뜨는 쪽으로 조용히 고개를 드는 사람처럼

슬픔 속에 고요하다

바람과 눈보라를 안고 서 있는 나무들은 아름답다

고통으로 제 살에 다가오는 것들을 아름답게 바꿀 줄 아는 지혜를 지녔다

잔가지만큼 넓게 넓게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아름답다

허욕과 먼지 많은 세상을

견결히 지키고 서 있더 더욱 빛난다

무성한 이파리와 어여쁜 꽃을 가졌던 겨울 나무는 아름답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도

결코 가난하지 않은 자세를 그는 안다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은 아름답다

오랜 세월 인간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지 못해 더욱 아름답다

 

 

매서운 겨울 바람을 피하지 맞고 있는 겨울나무를 보며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의연히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며 온실속에서만 자란듯한 나의 삶이, 지금의 안주가

부끄럽다

눈 덮인 겨울산, 설악산이든 지리산이든 오대산이든, 태백산이든 그 겨울산을 나무들과 함께 마냥 걷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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