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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정하균 이야기-노원갑(공릉·월계동)예비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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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정하균 이야기-노원갑(공릉·월계동)예비후보자]
1985년 2월 1일, 당시 대한민국의 마이카 시대를 열었던 포니자동차!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운전하며 출근하던 길이었습니다. 아직 매서운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늦은 겨울날, 뒤에서 달려오던 차와 추돌사고가 발생하였고 저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당시 사고를 낸 운전수는 의식을 잃은 저를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하였습니다. 당시 포니 차에는 목 받침대가 없었던 이유로 사고 당시 저는 목뼈가 손상된 상태였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부상자 이송과정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였던 터라 운전수는 척추가 부러진 저를 택시에 앉혀서 이송하게 되었고 부러진 척추 뼈에 의해 척수 신경이 손상, 결국 중증 장애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구제조업, 부동산 중개업, 노래방까지... 장애인으로서 가능한 모든 일을 해본 것 같습니다. 단지 몸이 불편할 뿐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남들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은 저에게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셨지만 제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주셨나 봅니다.
협회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매일 전동휠체어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커녕 리프트조차 없는 수많은 지하철역사에서 지나가는 시민들과 공익요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계단을 올라 다녔습니다. 늦은 밤 귀가할 때면 약간의 취기가 있는 시민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도와주겠다고 하다가 휠체어를 부축한 손을 놓아서 앞으로 고꾸라져 이마가 깨지고 휠체어도 못쓰게 된 웃지 못 할 경험도 있습니다. 전동차와 플랫폼 사이의 간격이 넓어 휠체어 바퀴가 끼어 고생한 일 등 참 아찔한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금도 제 핸드폰에는 제가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 역의 전화번호와 역무원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힘겨운 활동을 하면서도 제가 쉬지 않고 오늘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제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다문화가족,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 등과 같이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분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대변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좌우명인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되새기며, 부단한 노력을 이어온 끝에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하게 됐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면서 삼은 의정활동의 목표는 ‘소외받는 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너무도 거창한 목표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 국민들의 어려운 점이 무엇이고, 아픈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정치인이 되고 싶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8대 국회의원 중에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토론회를 많이 개최한 의원으로 손꼽히고 있고, 희귀난치질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안들을 다수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공동선 의정활동상, 자랑스러운 한국장애인상, 제18대 국회 대한민국 헌정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고, 본회의 참여 우수 국회의원,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 Best5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국회를 비롯한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 적어도 저를 맞이하는 그곳들은 기존에 없었던, 중증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들은 중증장애인의 삶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될 것이고, 중증장애인을 어떻게 맞이하며 대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저렇게 중증인 사람도 열심히 살아가는데...’하며 자기 삶을 반추해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국회의원 정하균은, 국민 여러분께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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