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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猶太) 라는 한자 번역 용어의 어원과 출처에 대하여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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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0 ㅣ No.1724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24.htm 에 접속하면, 아래의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질문 1: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 3,15에서 "유태국"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서 "猶太(유태)"라는 음역된(transliterated) 번역 용어는 개신교 측 성경 용어인지요???

 

질문 2: "猶太(유태)"라는 음역된(transliterated) 번역 용어의 기원과 출처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1. 들어가면서

 

(i) "猶太(유태)"라는 음역 용어를, 중국인 지리학자인 위원이, 1842년에 초간을 위한 저술이 완료된, 1843년 1월 초판 당시 50권 중의 제16권, "西印度之如德亞國沿革(서인도지 여덕아국연혁)"["천주교고 상"에서 개신교 측 신약 성경의 이름인 "救世主耶穌新遺詔書" 및 "1830 여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문맥 안]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고 동일한 한자 표현으로 간주되는 "(유대)"라는 음역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1848년 두 번째 판에서 60권으로 늘어나고, 그리고 1852년 세 번째 판에서 100권으로 늘어난, 1848년에 초간된 "영환지략"이 발췌 인용되고 있는, 세 번째 판 "해국도지" 권27, "西印度之如德亞國沿革(서인도지 여덕아국연혁)" ["천주교고 상"에서 개신교 측 신약 성경의 이름인 "救世主耶穌新遺詔書" 및 "1830 여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문맥 안]에서 "猶太(유태)"라는 음역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ii)  중국인 지리학자인 서계여가, 1844년에 친필 저술 작업이 완료되고 1848년에 초간된 자신의 저술인 "영환지략" 범례(주: 아래의 제4-5항 필히 참조) 및 권3"에서, 그 옛 시절에 지칭하였던(名) 나라들의 이름들 중의 하나인, "猶(유태)"라는 음역 용어를 하나의 전해 내려옴으로 삼아(別為一傳)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러나 (iii) 중국어로 번역된 개신교 측의 성경들 중에서, 특히 아무런 출처/근거의 제시 없이, "猶太(유태)"라는 음역 용어가 처음 사용되는 시점은 1839년에 이르러야 [주: 여기를 클릭하여 1839년 판 "救世主耶穌新遺詔書", 마태오 복음서 제1장을 참조하라] 하기 때문에, 그러나, 또한위원이 자신의 저술인 초판 "해국도지", 권 16, "천주교고 상" 본문에서 1839년"救世主耶穌新遺詔書"에서 사용되고 있는 음역 인명들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에, (iv) 특히, 서계여가 자신의 저술인 "영환지략" 초판보다 불과 몇 년 전에 출판된, 아무런 출처/근거의 제시 없이 "猶太(유태)"라는 음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1839년"救世主耶穌新遺詔書"오로지 읽고서, 자신의 저술인 "영환지략" 초판의 범례에서, 그 옛 시절에 지칭하였던(名) 나라들의 이름들 중의 하나인, "猶(유태)"라는 음역 용어를 "하나의 전해 내려옴으로 삼는다(別為一傳)"는 언급(주: 아래의 제4-5항 필히 참조)을 하였던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1839년"救世主耶穌新遺詔書"의 저자인 서이(즉, 서쪽 오랑캐)1844년에 저술이 완료된 "영환지략"의 저자인 서계여 둘 다에게 입수되어 각자의 저술 작업 시에 들여다본/근거가 된[특히 고대 중국의 역사 및 유다인들의 고대 역사가 상호 비교 서술된], 동일한 한문 문헌(들)이 이미 존재하였을 것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猶太"라는 음역 용어가, 개신교측 선교사에 의하여 1839년 경에 들어와 비로소 처음으로 창안된 개신교 고유의 음역 용어가 아니고, 이보다 약 2백 50 여년 이전인 1584년 경에 중국 본토 내에 선교사로서 이미 진출하셨던 "대서양인", 즉, "태서인", 즉, "야소회사(즉,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 중의 한 분에 의하여 최초로/처음으로 창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됨은, 다음의 제2항과 제4항에 안내된 문헌들의 서술들이 입증하고 있으니, 이들 문헌들에 서술된 바를 연대순으로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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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6년 12월 21일]

(*) 게시자 주:

(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 지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4-1857_위원/1842_해국도지/권15_1-32.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4-1857_위원/1842_해국도지/권15_33-37_천주교고_상.htm [주: 본분에서, "서이(西夷, 서쪽 오랑캐)"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신약 성경의 이름 "救世主耶穌新遺詔書""천주교교 상" 본문 중에서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신약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는 음역 용어인 "(유대)"라는 표현이 바로 이 초판 해국도지, 권 16, "천주교교 상" 본문 중에서 한 번 사용되고 있음. 그러나 아래의 제2-2-3항에 발췌된 1852년 세 번째 판 "해국도지"에서, 초판본 "해국도지" "천주교교 상" 본문 중에서 언급되었던 두 개의 음역 용어 표현 "(유대)"들 중의 두 번째 표현에서 "" 글자(즉, ""에서 "" 글자)가, ""(즉, ""에서 "" 글자)로 교체되었는데, 바로 이 교체가 세 번째 판 "해국도지"에서 발췌 인용되고 있는 "서계여""영환지략"에서 이미 하나의 전통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 음역 표기 전통(주: 아래의 제4-5항 필히 참조)"해국도지"의 저자인 위원이 1848년 이후 어느 시점부터 또한 처음으로 따르기 시작하였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하고 있다는 생각임.]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4-1857_위원/1842_해국도지/권15_37-39_천주교고_중.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4-1857_위원/1842_해국도지/권15_39-46_천주교고_하.htm

 

(2) 또한 "해국도지" 초판 본에서 비록 1839년 판 개신교 측 신약 성경의 이름인 "救世主耶穌新遺詔書" 을 거명하면서 이 성경을 "해국도지"의 저자인 위원이 보았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그러나 이 성경 본문에서 사용 중인 대부분의 음역 이름들을 "해국도지"의 저자인 위원이 따르지 않고 있음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2016년 12월 21일자 내용 추가 끝]

 

2. 유관 사료들의 분석


2-0. "태서인"이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졸글은 다음에 있으니 우선적으로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23.htm <----- 필독 권고

 

2-1. (이 글의 결론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보할 수 있는 개신교 측의 자료들로부터, 1839년에 개신교측 신약 성경이 출판되기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서 출판된 개신교측의 한문본 성경 본문들에서, "유태(猶太)"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대신에,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1636년에 초간된 저서인 "성경직해"에서처럼 "여대(如大)"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0&chap=2&sec=1
 

 

다른 한편으로, 서계여가 자신의 저술인 "영환지략"보다 불과 몇 년 전에 출판된, 아무런 출처/근거의 제시 없이 "猶太(유태)"라는 음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1839년"救世主耶穌新遺詔書"오로지 읽고서, 자신의 저술인 "영환지략" 초판의 범례에서, 그 옛 시절에 지칭하였던(名) 나라들의 이름들 중의 하나인, "猶(유태)"라는 음역 용어를 "하나의 전해 내려옴으로 삼는다(別為一傳)"는 언급(주: 아래의 제4-5항 필히 참조)을 하였던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1839년"救世主耶穌新遺詔書"의 저자인 서이(즉, 서쪽 오랑캐)"영환지략"의 저자인 서계여 둘 다에게 입수되어 각자의 저술 작업 시에 들여다본/근거가 된 [특히 고대 중국의 역사 및 유다인들의 고대 역사가 상호 비교 서술된], 동일한 한문 문헌(들)이 이미 존재하였을 것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猶太"라는 음역 용어가, 개신교측 선교사에 의하여 창안된 개신교 고유의 음역 용어가 아니고, "대서양인", 즉, "태서인", 즉, "야소회사(즉, 예수회 소속 신부님)"가 최초로/처음으로 창안하셨을 것으로 추정됨은, 다음의 제2항과 제4항에 안내된 문헌들의 서술들이 입증하고 있으니, 이들 문헌들에 서술된 바를 연대순으로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2-2.

2-2-1.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1842년에 초간을 위한 저술이 완료된, 1843년 1월 초판 당시 50권이었으나, 1848년 두 번째 판에서 60권으로 늘어나고, 그리고 1852년 세 번째 판에서 100권으로 늘어난, 세 번째 판 "위원"의 "해국도지" 권26, "西印度之如德亞國沿革(서인도지 여덕아국연혁)"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2016년 12월 22일자 내용 추가]

게시자 주 2-2-1: 특히 아래에 발췌된 바는, 다음의 출처 1에 있는 자료와 출처 2에 있는 자료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1843년 1월 초판된 50권짜리 "해국도지" 권16, "西印度之如德亞國沿革(서인도지 여덕아국연혁)"에 포함되지 않았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4-1857_위원/1842_해국도지/권15_1-32.htm

[이상, 2016년 12월 22일자 내용 추가 끝]

 

출처 2: https://zh.wikisource.org/wiki/%E6%B5%B7%E5%9C%8B%E5%9C%96%E5%BF%97/%E5%8D%B7026 
(발췌 시작)

《職方外紀》曰:百爾西亞西北諸國,皆為度爾格所並。內有國曰亞剌比亞,中有大山名西奈山,古時天主垂訓下民,召一聖人美瑟於山,賜以十誡,著於石板,左板三誡,右板七誡。今所傳十誡是也。其西北有死海,海旁城邑,古極富厚。因恣男色之罪,天主降之重罰,命天神下界,止導一聖德士名落得者,全家出疆,遂降火盡焚其國。至今小石,遇火即然,臭不可近。產果形如橘柚,破之則臭煙而已(按上文回教亦托言西奈山十誡,則不知誰為葛龔之未去也)

 

《瀛環志略》曰泰西人記巴庇倫城高三十五丈,厚八丈七尺,上設塔二百五十,城門一百,以銅為之。周回一百八十里。南懷仁所記宇內七大宏工,有巴必鸞城(即巴庇倫之轉音),即此城也。當其初建,糜膏血而供版築,自以為子孫萬世之業,然居魯士兵來,曾不血刃而克之。金城千仞,果足恃乎。巴庇倫再叛,大流士惡其城垣之高,拆毀其半,至今猶存遺址。在土耳其東方,美索不達迷亞境內,又英官李太郭雲,西裏亞文字(西裏亞文字,即巴庇倫所造文字),與諸國不同,與清文極相似,但橫寫順讀耳。


  泰西人猶太古事雲,猶太古名迦南,有夏帝芒之世,西土有至人曰亞伯拉罕,生於兩河之間(阿付臘底斯河,底格裏士河),遷於迦南。其苗裔稱以色列族,傳數世至耶哥伯,有十二子,最少者曰約色弗,聰慧過人,諸兄忌之賣於麥西為人奴(麥西,一名挨及多,一作厄日多,或作以至比多,又作伊齊不托,在亞非利加之東北境,詳阿非利加圖說)。麥西王立以為相,以色列之族群往歸之。初至時七十人,年久繁衍,至六萬人。麥西王忌其強宗,欲除之時,迦南以色列族有至人曰摩西,生而神異,學識過人,報仇殺人,逃於荒野。四十年,夢神人使赴麥西救本宗。至則麥西王方張網羅,欲收以色列族坑之。摩西密告宗人,約期同發,至海港,潮退變陸,渡畢而潮大至。麥西軍追者皆溺死。摩西率眾至迦南之耶路撒冷,遂王其地。示十誡以訓民,教以事神天,敬父母,勿殺,勿奸,勿盜,勿妄證,勿貪他人之財。七日禮拜,省過諐,是為西土立教之始(泰西人相傳天神降於西奈山,石上現文字,摩西拜受,垂為十誡,以教民蓋托於神道,以起人之崇信耳。後來耶穌教即本於此。西奈山,在今亞剌伯西北境)。摩西卒,約書亞繼之。分以色列族為十宗,裂地封為小部,統於耶路撒冷。數傳至周穆王時,始稱猶太國,又數傳至周襄王時,王耶何雅舍嗣位,始貳於巴庇倫。先是巴庇倫為亞細亞大國,猶太夙備西藩,巴庇倫侈汰,遇諸侯無禮。猶太王怒,絕朝貢。周簡王元年,巴庇倫以大兵攻之,城破王自殺。遷其民於巴庇倫,猶太遂亡。周景王八年,波斯滅巴庇倫,釋猶太民歸國。以色列族復立故國,傳三百餘年。西漢時,降羅馬為屬國。後復叛,為羅馬所滅。屠耶路撒冷都城。羅馬衰,亞剌伯回部據之。猶太為耶穌生長之地,歐羅巴人時往拜其墓,既為回部所據,禁不得通,諸國皆怒,合兵攻回部。從軍者縫十字於衣,血戰二百餘年,卒奪回猶太地,重立為國,戍以兵。未幾,戍兵思故土,各散歸。尋為土耳其所據,其部民散之四方。西土各國多有之,以數百萬計。而總稱為猶太族,與別族不相混雲。猶太人文字,西國各種書籍,多猶太人所譯解。故其國紀載獨詳,歐羅巴文士遊學者,不於希臘,即於猶太,蓋泰西之鄒魯也。猶太女人,姿姣好而性靈慧,與別部迥異。娶婦得猶太女,則以為威施在室也(猶太自唐以後,中國稱為拂菻,即撒冷之轉音。初轉為拂懍,再轉為拂菻。《唐書》直以拂菻為大秦,蓋拂菻在羅馬東部中,最著名,遂誤為大秦別名。猶之西域稱浩罕為安集延也。宋明史因之,則沿《唐書》之誤耳)

 

案:羅馬即大秦東土之猶太敘理諸部,今為東土耳其。其中土曰買諾,附近有數島。曰居伯羅,曰羅得,曰治阿,曰米地鄰。其東土有阿臘山、黎巴嫩山、阿付臘底斯河(一作阿偏得,又名八阿)、底格裏斯河(一作地額河),有大澤曰死海,湖曰加利利,其地為泰西諸國創建之祖,其民居海岸海島者,曰額力西種,希臘是也,為上等。其半阿丹種,戈達曼種,及馬羅奈底士種,特魯西種,黑爾西種,皆回民。自其國中衰,守土之酋,僅羈縻勿絕而已,擁地自擅,如唐之藩鎮焉。

 

《萬國全圖集》又曰:猶太國,今土爾其國之藩屬也。昔分三部:曰猶太,曰撒馬利亞,曰加利利。古時其地蕃昌,物產如埠,名揚四海。本居麥西國,上帝率之,進始祖所先住之地,但必四十年間,遊於亞剌伯曠野。又奉上天所啟,始識上帝之聖旨。漢建始年間,有羅馬國征服天下,猶太人亦歸其權。且上帝之子耶穌,於漢平帝元始元年,於猶太國生,住世三十三年。布聖教於民,並贖人之罪,代受酷刑而死,復活升天,操萬世宇宙之權,教散於四方,而信士以其地為重,往往詣耶穌墓而伏拜。今為回回國主所轄。

 

猶太之都曰路撒冷,昔甚廣大,居民數十萬,在旬山上建立上帝之殿,屆期禮拜。因猶太人不崇上帝之子,自作罪孽,激羅馬國之怒,遣大將引兵,四面圍合,攻破城池,猶太人自此亡國,四散各邦為旅。此時其城大半壞敗,居民貧乏。

 

加利利拿撒勒邑,係救世主所養生之處。居民不承其道,雖見其靈跡,卻不改悔加省。

 

此地之海口,曰亞吉,曰伯律,曰牙法,但其口無障風之山,選貨又不盛。

 

猶太國,北敘理亞國,南方里巴嫩山。出香柏,阿倫得河通流其地,地破裏海口,居民二萬五千。海濱有兩大城,一曰土羅西頁城,其富商如國君,倉廩實,府庫充。一曰大馬士革城,山川秀麗,田場開爽,衢市修飾,花卉芬芳。昔掃羅望此邑而行,欲執耶穌之門生,忽天發光聞聲,即此地也。

 

敘理亞之東方,近野哈馬大城,古跡遍地,昔大有權勢之王所居。其都會曰亞勒坡,居民三十萬。道光二年,地震,屋倒城壞,野有餓殍。道光十六年,麥西總帥與上王結釁,侵取其國。於二十年英軍扶助,還其原主。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10월 1일] 

2-2-2. 1842년에 초간을 위한 저술이 완료된, 1843년 1월 초판 당시 50권이었으나, 1848년 두 번째 판에서 60권으로 늘어나고, 그리고 1852년 세 번째 판에서 100권으로 늘어난, 세 번째 판 "위원"의 "해국도지" 권4, 권4에 포함된 지도들 중의 지명들에 대한 확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4-1857_위원/해국도지_권3-권4.htm  

 

"해국도지"


권3, 제11쪽 뒷면 지도 상에, 로마 제국을 말하는 "대진국"이 표기되어 있음.


권3,  제12쪽 뒷면 지도 상에 "대진국"이 표기되어 있음.


권3, 제13쪽 뒷면 지도 상에 "불림국"이, "대진"을 언급하는 각주와 함께, 표기되어 있음. "대진"을 언급하는 각주들이 더 있음.


권3, 제17쪽 뒷면 지도 상에 "즉 고불림국"이 표기되어 있음.


권3, 제19쪽 지도 상에 "유태"가 표기되어 있음.


권3, 제23쪽 지도 상에 "유태국", "서내산"이 표기되어 있음.


권3, 제35쪽 지도 상에 "서내산"이 표기되어 있음.


권3, 제35쪽 뒷면 지도 상에 "고 파비론국", "고 서리국", "서리부", "고 유태국 즉 불림국", "가리리호" 등이 표기되어 있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파"라는 지명을 가진 장소들이 여럿 표기되어 있음.


권3, 제37쪽 지도 상에 "유태국", "야로살랭도", "사해", "약이단하"라는 지명들이 기재되어 있음. 

 

권4, 제1쪽 뒷면 지도 상에 "유태국"이 표기되어 있음.


권4, 제2쪽 뒷면 지도 상에 "유태국지"가 표기되어 있음. 나일강 하구 근처에 "지읍", "립위읍" 등의, "미" 글자로 시작하는 지역 이름들이 있음

 

게시자 주 2-2-2: (이 글의 결론 2)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파"라는 지명을 가진 장소들과 이집트 나일간 하구 근처의 "미..."라는 지명을 가진 지역들을 연결하는 대단히 오래된 무역로인, 소위 말하는, "임금의 큰길(King's highway, 민수기 20장, 21장)"을 두고서 이벽 성조께서 "성교요지"에서 "파미도로"라고 언급하셨다는 생각임.

 

2-2-3. 그리고 다음은, 1842년에 초간을 위한 저술이 완료된, 1843년 1월 초판 당시 50권이었으나, 1848년 두 번째 판에서 60권으로 늘어나고, 그리고 1852년 세 번째 판에서 100권으로 늘어난, 세 번째 판 "위원"의 "해국도지" 권27, "천주교고 상"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s://zh.wikisource.org/wiki/%E6%B5%B7%E5%9C%8B%E5%9C%96%E5%BF%97/%E5%8D%B7027

(발췌 시작)

天主教考上(魏源)

 

《天學初函》諸書未之見也,所見者西夷述救世主耶穌《新遺詔書》,用漢文譯刊,凡十餘卷。曰:《馬泰傳福音書第一》;《馬可傳福音書第二》;《路加傳福音書第三》;《約翰傳福音書第四》,皆述耶穌降生行教靈跡始末也。《聖徒言行傳第五》,述耶穌死後諸大弟子傳教事跡也;《聖徒保羅寄人書》十篇;《聖徒約翰寄人書》三篇,又《聖徒耶哥伯書》;《彼得羅士書》,皆其門人闡揚師教,猶中土人論學之書也。又《聖人約翰天啟之傳》,則言天地劫毀,天主重造人物之事,計自開辟至今將六千年,自耶穌降生千有八百三十餘年。稱耶穌為基督,其先世自亞伯喇罕至大辟十四代,自大辟至流巴庇倫十四代,自流巴庇倫至基督亦十四代。其四十二代,其母曰馬裏亞,童女有身,征兆奇異,言是上帝之子降生,代天行化。及長,能使病者愈,死者生,聾者聰,瘖者語,盲者視,跛者行,能履海濤,能服邪鬼,能榮槁木,能以七餅分給四千人之食,能通各國語言。遣其十二門人行化各郡國,言上帝為神父,耶穌為神子,敬其子即敬天。年三十有二,為異教所嫉毀之,國王禽而釘之十字架,死後三日復活,母子重逢生於天上,坐於上帝之右。其現身酷死,所以代眾生之罪,故惟敬耶穌可以免罪獲福,免地獄,生天上。萬曆中,馮馬諾著《天問略》曰,天有十二重,最高之十二重為天主上帝諸神聖處,永靜不動,廣大無比,即天堂也;其內第十一重,為宗動天;其第十、第九重,為東西歲差天,南北歲差天,其動極微,僅可推算而甚微妙。又其內各重,為日月諸星本動之天,皆自西而東,宗動天自東而西,故先論九重,未及十二也。《福音書》曰,元始有道,道即上帝,萬物以道而造,其造生者,人類之光也。光輝耀於暗,而居暗者不識,有上帝所遣之人,名約翰,來為其光所證,令眾得信,真光照世,即耶穌也。其身非由私欲而生,乃上帝之子也。

 

耶穌之教,始於阿細亞州,而西行於歐羅巴,近則並行於墨利加。其西洋人發揮彼教之書曰:大西各國惟知崇拜一上帝,此外無所祈禱,此教何所始?曰:有一《舊遺聖書》,乃上帝指示摩西聖人所錄,而摩西子孫傳於後世也。其一言上帝之出沒,其二言萬民之本分,其三言後世之永福永禍。夫上帝先乎天地萬物,不可得知其所由來,惟無所不知,無所不能,無所不在,至正至大,至智至誠,則人人可信。故風雷雲雨,日月星辰,草木花卉,飛禽走獸,鱗介昆蟲,凡天地所覆載,莫非上帝創造,故名之曰天父,曰救世,曰聖神,其實一上帝而已,此當知者一。人生於世,莫不稟受於天。既稟受於天,則此身心皆上帝所生。上帝即人之親矣,惟子者可不愛敬其大父母乎?次則生我之父母,亦當報罔極之恩,推及同氣與天下同類之人,此當知者二。且人莫不有靈魂,常不息不滅,故信上帝而為善,則死後其靈永享天福,違上帝而為惡,則死後其靈永受苦罰,此當知者三。上帝無形無聲,恐人不知,故留書以救世。其聖書始於夏,終於漢。前者已閱三千年,後者已閱二千年餘矣。其書半是亞細亞之西希伯來人所錄,半是歐羅巴之東希臘人所錄。

 

又有《神理論》曰,天地內有神,為極大全能,造化萬物,管理萬物。人不能自生,物不能自造,日星何以循環,山川何以凝載,草木何以榮落,飛走潛介何以視聽鳴動,曰靈曰魂,曰心曰性,皆神之所為也。是神獨一無二,最始無前。倘有對待,有後起,即非神天之神也。莫大於天地,然天地有形可見,神天無形;天地有終始,神天無終始;天地乃受造之物,所造之者神也。天地乃運動之機器,所以運之者神也。天地尚不可稱神,而世人常敬數神千百神,如日月雲雷,山海社稷,則以其尊大顯赫而神之。古人有文武出眾,功德在人者則神之,不知天上地下,止有一神所管,更無二神可抗。故專言神,恐鄰於祇鬼;專言天,恐泥於形氣,惟合言神天,乃足該至大至靈之宗,即儒書所謂造化,所謂上帝,非世俗玉皇大帝之謂者也。謂神曰靈亦可,但有人靈,有仙靈,有天靈。人靈與身體相結,不脫於物,亦神所造,非神也。仙靈乃神之使者,無粗重之身,而有細妙之身,亦神所造,非神也。惟天靈,即神天,全無身體無方所,無在無不在,故《易》曰陰陽不測之謂神,妙萬物之謂神,不疾而速,不行而至之謂神。

(이상, 발췌 끝)

[이상, 2016년 10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2-3.

2-3-1. 1844년에 자필 원고의 초본이 완성되었고 그리고 참고한 문헌들에는 중국 문헌 기록 26종, 외국인 선교사 간행물 10종, 외국인 구술 등이 있다고 알려진,(*) 1848년에 초간된 "영환지략"에서 "유태" 라는 단어가 본문과 각주들에서 몇 번 말해지고 있는,

http://ctext.org/library.pl?if=gb&file=25055&page=69 ("태서인기 파사고사"라는 언급이 있음) 부터
http://ctext.org/library.pl?if=gb&file=25055&page=76 까지

 

이들 주소들을 클릭하여  필독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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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것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교과서 역사 용어 해설" 제공의 "영환지략"에 대한 서술에 주어져 있는 설명이다: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203&levelId=tg_004_0650&ganada=&pageUnit=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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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6년 10월 1일]

2-3-2. 1844년에 자필 원고의 초본이 완성되었고 그리고 참고한 문헌들에는 중국 문헌 기록 26종, 외국인 선교사 간행물 10종, 외국인 구술 등이 있다고 알려진, 1848년에 초간된 "영환지략" 본문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환지략" - 도광 28년(1848년) 초판

 

출처 4 권3_cn: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5-1873_서계여/영환지략_권3_cn.htm

출처 4 권5-권6_cn: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5-1873_서계여/영환지략_권5-권6_cn.htm 

출처 4 권8-권10_cn: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5-1873_서계여/영환지략_권8-권10_cn.htm

 

권3_cn, 제25쪽 오른쪽 면에 "여덕아", "불림", "대진국"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25쪽 왼쪽 면에 있는 각주에서, "태서인"유태국". 기 도성 왈 "야로살"이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영환지략" 본문 전체에 걸쳐, 바로 여기서 "유태국"이라는 언급이 처음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임. 이 각주에 바로 이어서 "소위 여덕아야"라는 언급이 있고, 그리고 이 언급에 대한 각주에서 "여덕아지 북..."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28쪽에 "인도이서회부4국도" 지도 상에 "고 불림국", "서내산"이 표기되어 있음.

 

권3_cn, 제31쪽 뒷면에 ("안 ..."에서) "명초 정화 등 사 서양", "태서인 구지도"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32쪽에 ("파사"에 대한 서술 중에서) "하(夏)지초 춘추(春秋)시", "구라파지 희랍", "유태"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34쪽에 "서역견문록"이 언급되고 있음. 약간 긴 각주에서 "태서인 기 ... 대서인 미기(紀) 기국명" 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35쪽에 "즉 유태지 살마리아", "태서인기 파사 고사 운"이라는 언급이 있음.

 

게시자 주: 아래의 권3_jp, 제31쪽에 대응하는, 권3_cn, 제36쪽 pdf 두 페이지들이 missing 임.

 

권3_cn, 제37쪽에 있는 각주에서 "대진 즉 ... "이라는 언급이 있음. 그런 다음에, "안 상고시 ..."로 시작하는 새 단락에서 "불림" 이라는 언급이 있고, 이 언급에 대한 각주에 "즉 유태"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37쪽 뒷면에 시나이 산에 천사가 10계를 내려와 주었다는 언급, "7일 안식첨례", "야소",  "천주교", "대진사", "경교유행중국비", "대진사 승 경정 술" 등의 언급이 있음.

 

권3_cn, 제38쪽에 "불림" 이라는 언급이 있고, 이 언급에 대한 각주에서 "즉 유태"라는 언급이 있음. "3 1 묘신", "진주 ..." 등의 언급이 있음.

 

권3_cn, 제38쪽 뒷면에 "천주교", "십자가지 상" "경교", "태서인 소기재(記載)" 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39쪽 뒷면에 "야소교"라는 언급이 있고, 각주에서 "즉이 야소강생 년위 원년 고 칭 1천8백기십년"이라는 언급이 있음. 각주에서 "유태 매 ..."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40쪽 뒷면에 "안 ..."에서 "회교", "천방", "천당", "대서양", "야소" 등의 언급이 있음.

 

권3_cn, 제41쪽에 (여전히 "안 ..."에서) "기예배 여 천주교 동"이라는 언급이 있음. "고 태서인 소 각 지도 급 소 제서..."라는 언급이 있음. 각주에서 "유태제지 재 대진국지 동경"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41쪽 뒷면에 "증 이 태서인지도"라는 언급이 있음.

 

권3_cn, 제44쪽에 "고 태서인지도..." 라는 언급이 있음. "대진"이라는 언급이 있고 이 언급에 대한 각주에서 "즉 의대리지 라마"라는 언급이 있으며, "기 국도 재 의대리지 라마"라는 언급이 있음. "유태"라는 언급이 있고 이 언급에 대한 각주에서 "즉 당서지 불림국"이라는 언급 등이 있음.

 

권3_cn, 제44쪽 뒷면에 "지중해 홍해"라는 언급이 있음.

 

주: 권3_cn, 제46쪽 앞면이 권3의 마지막 페이지임.

 

권6_cn, 제1쪽에 있는 지도 상에 "고 유태불림국", "가리리 지", "사해", "야로살"이 표기되어 있음. 

 

권8_cn, 제3쪽에 있는 아프리카 지도 상에 "사해", "유태 계", "서내산"이 표기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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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환지략" - 도광 29년(己酉, 1849년) 중각 판

 

출처 4 권3_jp: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5-1873_서계여/영환지략_권3_jp.htm

출처 4 권6_jp: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5-1873_서계여/영환지략_권6_jp.htm 

출처 4 권8_jp: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95-1873_서계여/영환지략_권8_jp.htm

 

권 3_jp, 제21쪽 뒷면에, "극서지여덕아", "여덕아", "불림", "고 라마지 동경", "대진국" 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3_jp, 제22쪽에 "대진"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3_jp, 제22쪽 뒷면에 있는 각주에서, "태서인"유태국". 기 도성 왈 "야로살"이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영환지략" 본문 전체에 걸쳐, 바로 여기서 "유태국"이라는 언급이 처음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임. 이 각주에 바로 이어서 "소위 여덕아야"라는 언급이 있고, 그리고 이 언급에 대한 각주에서 "여덕아지 북..."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3_jp, 제23쪽에 "인도이서회부4국도" 지도 상에 "고 불림 국", "서내산"이 표기되어 있음.

 

권3_jp, 제25쪽 뒷면에 "서양인 지도"라는 언급이 있음.

 

권3_jp, 제26쪽에 "태서인 역칭 파사 ..."라는 언급이 있음.

 

권3_jp, 제27쪽에, 권3_cn 제 쪽에 있는 서술이 언급되고 있음.

 

권3_jp, 제26쪽 뒷면에 ("안 ..."에서) "명초 정화 등 사 서양", "태서인 구지도"라는 언급이 있음.

 

권3_jp, 제27쪽에, (제26쪽 뒷면에서 시작한 "파사"에 대한 서술 중에서), "하(夏)지초 춘추(春秋)시", "구라파지 희랍", "유태" 등이 언급되고 있음.

 

주: 권3_jp, 제27쪽에, 위의 권3_cn 제32쪽에 있는 서술이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29쪽에 "서역견문록"이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29쪽 뒷면에 있는 약간 긴 각주에서 "태서인 기 ... 대서인 미기(紀) 기국명", "태서즉칭위파사"라는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30쪽에, "즉 유태지 살마리아", "태서인기 파사 고사 운"이라는 언급이 있음.

 

게시자 주: 바로 아래의 권3_jp, 제31쪽에 대응하는, 위의 권3_cn, 제36쪽 두 페이지들이 거기에 missing 임.


권 3_jp, 제31쪽에, "유태"라는 언급이 본문 중에서, 두 번 나옴.


권 3_jp, 제31쪽 뒷면에, "바빌론 제국"의 유다 왕국 침공에 대한 언급과 함께 "유태", "유태인", "유태족", "주 경왕 8년", "유태민 귀국"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32쪽에 "주 경왕연간야"이라는 언급이 있고, "희랍"이 다섯 번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32쪽 뒷면에 있는 각주에서 "대진"이 언급되고 있음. "불림"이 언급되고 있고 이 단어에 대한 각주에서 "즉 유태"라는 언급이 있음. "서내산", "십계", "칠일안식예배"가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33쪽에 "파사사 위 대진사", "경교유행중국비", "대진사승 경정 술"이 언급되고 있고, "불림"이 언급된 후에 이에 대한 각주에서 "즉 유태 ..."이 언급되고 있음. "대진국지 동경"이 언급되면서 이에 대한 각주에서 "대진 즉 의대리지 라마국"이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33쪽 뒷면에 "대진사야"라는 언급이 있고 이에 대한 각주에서 "불림"이 언급되고 있음. "대진", "대진", "경교 1 비", "경교 즉 화교",  "삼일묘신", "대진", "대진"이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34쪽에 "대진국", "대진", "구라파 소전지 교서", "경교자", "대진지 교", "서태인 소기재", "대진"이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35쪽에 있는 각주에서 "유태 매..."는 언급이 있음. 각주에서 "홍해 지중해"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36쪽에 "대서양", "십계"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36쪽 뒷면에 "고 태서인 소각 지도 급 저서"라는 언급이 있음. 각주에서 "유태제지 재 대진국지 동경", "태서인 지도"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37쪽에 "대진", "대진", "대진국 동경", "대진"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38쪽에 "태서인 지도", "대진"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39쪽에 "대진"이 두 번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39쪽 뒷면에 "고 태서인 지도", "대진"이라는 언급이 있음. 각주에서 "서리아 유태 즉 당서지 불림국"이라는 언급이 있음. "대진", "대진동경"이라는 언급이 있음. "희랍", "대진도성", "대진지", "대진인"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40쪽에 "대진", "대진", "지중해 홍해"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40쪽 뒷면에  "지중해" "대진도성", "대진"이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41쪽에, "대진"이라는 언급이 세 번 있음.

 

권 3_jp, 제42쪽 뒷면에 "태서인 소각 지도"라는 언급이 있음. 각주에서 "태서인 칭 ..."라는 언급이 있음.


권 3_jp, 제43쪽에,"태서인 기재"라는 언급이 각주에 있음.

 

권 3_jp, 제47쪽에 "도광 19년"이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47쪽 뒷면에 도광 20년(1840년)에 오동이라는 자가 번역하여 영국인이 신문지를 발행하였다는 언급이 있음. 각주에 "월보" [즉, 오문 월보]임을 밝히고 있음. "희랍"이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48쪽에 "도광 19년"이 언급되고 있음.

 

권 3_jp, 제49쪽 뒷면에 "태서 칭"이라는 언급이 두 번 있음.

 

권 3_jp, 제50쪽에 "태서 칭", "태서인 칭", "고지 서양인 지도"라는 언급이 있음. 

 

권6_jp, 제1쪽에 있는 지도 상에 "고 유태 즉 불림국", "가리리 지", "사해", "야로살"이 표기되어 있음.


권8_jp, 제3쪽에 있는 아프리카 지도 상에 "사해", "유태 계", "서내산"이 표기되어 있음.

 

게시자 주 2-3-2:
(1) "영환지략"의 저자가, 바빌론 제국의 유다 왕국 침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유태"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지 않는, 푸아로 신부님의 고신성경 중의 구약 성경 본문 혹은 개신교 선교사 목회자인 로버트 모리슨1823년 판 구약 성경 본문을 이 저자가 분명히 읽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환지략"의 본문 중에서 "태서인", "태서인 지도" 등을 언급하면서, "여대" 대신에, "유태"를 본문과 각주들에서 사용 중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2) (이 글의 결론 3) "영환지략"의 저자가 자신의 저서인 "영환지략" 본문 중에서, "태서인 지도""서양인 지도"를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음, 즉, 동일시/동일화 하지 않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따라서, "태서인""서양인"을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음, 즉 동일시/동일화 하지 않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2016년 10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10월 11일]

2-4. 다음은 1750년 경부터 1800년까지 중국의 "오문(주: 즉, 마카오)"의 역사서인 "오문기략"의 특정 부분들에 대한 분석의 결과입니다:

 

출처: 澳門記略 上巻
http://archive.library.pref.okinawa.jp/?type=book&articleId=61434

 

상권 제1쪽에 "서양 의대리아 이(夷)인"이라는 언급이 있음.


상권 제26쪽에 "이마두"(주: 즉, 마태오 리치 신부님) 자칭 대서양인 거 오문 20년"이라는 언급이 있음. "서양인"이라는 언급이 있음. "불랑기(佛郞機)"(주: 네이버 제공의 한자 사전에 의하면, 대포의 한 종류라고 함. 그런데 당시에 이 대포를 중국에 전해준 포르투칼을 말할 수도 있음)

 

상권 제36쪽 본문에 "이마두", "천주교"라는 언급이 있음.


상권 제36쪽 뒷면 본문에 "태서 성인"이라는 언급이 있음. 각주 중에 "서사"라는 언급이 있음.


상권 제37쪽 각주에 "서사"라는 언급이 여러 번 있음.


상권 제37쪽 뒷면에 "천주당"이라는 언급이 두 번 있음.


상권 제42쪽 뒷면에 "대진제국"이라는 언급이 있음.


상권 제45쪽 뒷면에 "서양 의대리아 교화왕(주: 즉, 교황)"이라는 언급이 있음.


상권 제46쪽에 "재경 서양인"이라는 언급이 있음. 

 

출처: 澳門記略 下巻
http://archive.library.pref.okinawa.jp/?type=book&articleId=61435

 

하권 제9쪽에 "천주교"라는 언급이 있음.


하권 제15쪽에 "의대리아" "이마두"(주: 즉, 마태오 리치 신부님)에 대한 언급이 있음. 마태오 리치 신부님께서 "만국전도"를 만들었다는 잘못된 언급이 있음.

 

게시자 주: (이 글의 결론 4)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하백원이 바로 이 부분을 읽었거나 혹은 이 부분을 읽은 유학자의 글을 읽었기 때문에,  하백원이 1821년 경에 필사하였다고 알려진 세계 지도(*)"태서회사이마두만국전도(泰西會士利瑪竇萬國全圖)"라는 잘못된 설명이 주어졌을 수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함. 그런데 여기서 "태서회사(泰西會士)"란 곧 "야소회사(耶穌會士, 즉, 야소회 소속의 서사)"를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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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 세계지도는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 새 창을 열면 볼 수 있다:
https://www.nl.go.kr/korcis/search/mcmw.php?mode=list&flag=wo&bib_key=296769936&title_info=%E6%B3%B0%E8%A5%BF%E6%9C%83%E5%A3%AB%EF%A7%9D%E7%91%AA%E7%AB%87%E8%90%AC%E5%9C%8B%E5%85%A8%E5%9C%96&author_info=%E6%B2%B3%E7%99%BE%E6%BA%90%28%E6%9C%9D%E9%AE%AE%29+%E8%9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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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 제24쪽에 "마리아", "천주야소"라는 언급이 있음.


하권 제25쪽 뒷면에 "십자목가", 등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등에 대한 서술이 있음.


하권 제45쪽 뒷면에 "이마두"(주: 즉,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있음.


하권 제46쪽에 "대서양인" "龎廸我" (주: 즉, 판토하 신부님), "서광계", "이지조" 등에 대한 언급이 있음.


하권 제46쪽 뒷면에 "廸我" (주: 즉, 판토하 신부님), "서광계", "이지조", "서양인" "龍華民(주: 즉, 니콜라스 롱고바르디 신부님)", "鄧玉函" (주: 즉, Johann Schreck 신부님)의 죽음, "서양인" "湯若望" (주: 즉, 아담 샬 신부님), "羅雅谷" (주: 즉, Giacomo Rho 신부님), "서광계"의 죽음 등에 대한 언급이 있음.  

 

게시자 주: 중국 본토에 개신교 측의 선교사(즉, 로버트 모리슨)이 처음으로 들어간 시기가 1807년이었기 때문에, "오문기략" 하권에서 말해지고 있는 "서양인"들 중에는 개신교 측의 선교사들이 결코 포함될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하권 제53쪽에 있는 각주에서 "천주교당"이라는 언급이 두 번 있음.

 

(이 글의 결론 5) 따라서 중국 본토에 들어가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 활동을 하셨던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을 말하는, "오문기략" 하권 본문 중의 이들 "서양인"들이, 1807년과 그 이후부터 처음으로 구라파 혹은 미국으로부터 중국에 입국하게 되는 개신교 측의 선교사들(즉, 구라파인들 및 서양인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영환지략"의 저자 "위원""해국도지"의 저자 "서계여"에 둘 다에 의하여, 이들 두 지리서들에서 "태서인"들이라고 불리고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함.


하권 제49쪽 뒷면에 "서양인"  "서양인", "서양인"이라는 언급이 있음.


하권 제50쪽에 "서양인"이라는 언급이 있음.


하권 제51쪽 뒷면에 "서학범"에 소개된 유럽의 교육제도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음.


하권 제52쪽에 "천주교", "서사", "여덕아국", "오경십계"이라는 언급이 있음.


하권 제52쪼 뒷면에서 "천당지옥"이라는 언급이 있음.


하권 제53쪽에 있는 각주에서 "천주교당", "천주교당"이라는 언급이 있음.

[이상, 2016년 10월 11일자 내용 추가 끝]

 

2-5.

2-5-1. 중국 명나라 말기인 1625년 경에 그 저술이 시작되어 청나라 초기에  장정옥(張廷玉, 1672-1755년) 등의 저자들에 의하여 저술이 완료되어 1735년에 간행되었다고 알려진,(*1) "명사(明史)"(즉, 중국 명나라 역사서), 권326, 외국 7, "불림(拂菻)"에 대한 서술 전문은 다음과 같다.(*2) 특히 이 역사서에, "여달(如達)""유태(猶太)" 등의 번역 용어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에 주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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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다음의 자료에 주어진 설명을 참조하라: 
https://namu.wiki/w/%EB%AA%85%EC%82%AC(%EC%97%AD%EC%82%AC%EC%B1%85)
 

(*2)
게시자 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대단히 방대한 이 문헌 중의 "불림"에 대한 설명 쪽으로, 약30분을 투입하여, 따라서 거의 즉시, 손쉽게 접근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2-1) 다음의 주소에 있는 "명사(明史)" 목록권4, 외국의 마지막 부분에 "불림"열전제214에 있다고 안내되어 있음: 
http://ch.catholic.or.kr/pundang/4/cb/명사_권0_서문_편찬자들&목록권1-목록권4.pdf
 


(*2-2)
다음의 주소에 있는 "명사" 목록에서, 열전제214 외국7가 표시된 권326을 클릭한 후에 본문들 들여다 보면, 바로 아래에 발췌된 바가 있다: 
https://zh.wikisource.org/zh-hant/明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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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http://ctext.org/wiki.pl?if=en&chapter=156432  

출처 2: https://zh.wikisource.org/wiki/%E6%98%8E%E5%8F%B2/%E5%8D%B7326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拂菻

 

拂菻(即東羅馬帝國,又稱“拜占庭帝國”),即漢大秦,桓帝時始通中國。晉及魏皆曰大秦,嘗入貢。唐曰拂菻,宋仍之,亦數入貢。而《宋史》謂歷代未嘗朝貢,疑其非大秦也。

 

元末,其國人捏古倫入市中國,元亡不能歸。太祖聞之,以洪武四年八月召見,命齎詔書還諭其王曰:「自有宋失馭,天絕其祀。元興沙漠,入主中國百有餘年,天厭其昏淫,亦用隕絕其命。中原擾亂十有八年,當群雄初起時,朕為淮右布衣,起義救民。荷天之靈,授以文武諸臣,東渡江左,練兵養士,十有四年。西平漢王陳友諒,東縛吳王張士誠,南平閩、粵,戡定巴、蜀,北定幽、燕,奠安方夏,復我中國之舊疆。朕為臣民推戴即皇帝位,定有天下之號曰大明,建元洪武,於今四年矣。凡四夷諸邦皆遣官告諭,惟爾拂菻隔越西海,未及報知。今遣爾國之民捏古倫齎詔往諭。朕雖未及古先哲王,俾萬方懷德,然不可不使天下知朕平定四海之意,故茲詔告。」已而覆命使臣普剌等齎敕書、彩幣招諭,其國乃遣使入貢。後不復至。

 

萬曆時,大西洋人至京師,言天主耶穌生於如德亞Judea,今巴勒斯坦地區中部的朱迪亞(猶地亞),即古大秦國也。(*3) 其國自開辟以來六千年,史書所載,世代相嬗,及萬事萬物原始,無不詳悉。謂為天主肇生人類之邦,言頗誕謾不可信。其物產、珍寶之盛,具見前史。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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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시자 주: (이 글의 결론 6) 여기에 주어진 설명은 또한 "대서양인""태서인"동일한 집단을 말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서인"정의(definition)위의 제2-1항에 주어져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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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6년 10월 3일]

2-5-2. (이 글의 결론 7) 따라서, "여달(如達)"의 경우에, 이 음역 번역 용어는, 1649년 이전에 출판된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의 저서인 "야소언행기략"에서, 처음으로 "여덕아(如德亞)"를 대체한 음역 번역 용어이고, 또한 1704년 경장 바쎄 신부님(1662-1707년)에 의하여 저술된 신약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나, 그러나 "명사"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1735년 경에 이를 때까지 중국인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여 그리하여 그 결과 "명사(明史)"가 초간된 1735년 경 당시의 중국인을 사이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입니다.

 

2-5-3. (이 글의 결론 8) 그리고 "유태(猶太)"의 경우에 다음의 두 가지 경우들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이 음역 번역 용어는,

 

(i) 1735년 경까지 아직 창안되지 못하였음을 의미하거나, 

 

혹은

 

(ii) 1735년 경에 이르기 전에 이미 창안되었으나 그러나 "명사(明史)"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명사(明史)"가 초간된 1735년 경에 이를 때까지 중국인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여 그리하여 그 결과 그 당시의 중국인을 사이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2016년 10월 3일자 내용 추가 끝] 

 

3. 이 글의 결론들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10월 1일]

3-1. (이 글의 결론 9) 이상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유태(猶太)"라는 번역 용어가, 개신교 성경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가 결코 아니고,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세속의 한문본 역사서들와 지리서들에 근거할 경우에, "명사(明史)"가 출판된 1735년 경 이후에 누군가에 의하여 중국 본토 내에서 최초로/처음으로 창안되어, 중국 본토의 위원(1842년에 초간된 "해국도지"의 저자)과 서계여(1844년에 자필 원고의 초본 집필이 완료되었고 1848년에 초간된 "영환지략"의 저자) 등의 중국인 지리학자/저술가들에게 전달되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2016년 10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3-2. (이 글의 결론 10) 이상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유태(猶太)"라는 번역 용어가, 개신교 성경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가 결코 아니고,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세속의 한문본 역사서들과 지리서들에 근거할 경우에, "태서인" 즉, 중국에 선교사로서 파견되었던 천주교 수도회인 "야소회(즉, 예수회)" 소속의 한 저자에 의하여, "명사(明史)"가 출판된 1735년 경 이후에 그리고 아무리 늦더라도 "태서인"들의 단체인 중국 예수회가 해산된 해인 1775년 경 이전에, 최초로/처음으로 창안되어, 중국 본토의 중국인 학자/저술가들에게 전달되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3. (이 글의 결론 11) 그런데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세속의 한문본 역사서들과 지리서들에 근거할 경우에"명사(明史)"가 출판된 1735년 경 이후에 그리고 아무리 늦더라도 "태서인"들의 단체인 중국 예수회가 해산된 해인 1775년 경 이전에, "유태(猶太)"라는 번역 용어를 최초로/처음으로 창안하셨을 것으로 추정되는(presumed) "태서인", 즉,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은,


(가) 지금까지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바와
(나) "청나라 궁중의 서양 선교사들"(저자: 서양자 수녀) 제375쪽-제380쪽에 주어진 설명을 참고할 때에,

 

(i) 3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북경 소재 청나라 번역관에서 청나라 황실을 위하여 일하셨고, 
(i) 중국 상고사에 정통하셨으며,
(iii) 서양 서적들을 중국어로 번역하셨고, 
(iv) 중국 경전을 서문(西文)으로 번역하셨으며, 
(v) 지리학 방면에도 일을 많이 하셨고, 그리고

(vi) 중국 춘추 이전 영웅시대의 역사인, 4서5경들 중의 하나인,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서경(書經)"고대 그리스(희랍) 역사(*)와 비교 연구하셨던,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를 위하여 중국에 파견되셨던, 예수회 소속의 안토니오 고빌 신부님(Antoine Gaubil, 1680-1759년)이심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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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여기서 말하는 고대 그리스(희랍) 역사에서, 인도의 서쪽 국경 지역에까지 도달하였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기원전 356-323년)의 정복지에 포함되었던, 요즈음의 이스라엘 지역이 언급되면서, "유다인"들이 언급되었을 것이다. 

 

(2) 그리고 다음의 자료에 의하면, 이 시기보다 시기적으로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6-539년) 이후에 그리스인들과 그리스 바깥의 유다인들 사이에 접촉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고대 그리스(희랍) 역사에서, 바빌론 제국의 네부카드네르 임금에 의한, 남쪽 유다 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및 "유다인"들의 유배 등도 언급되었을 것이다:
http://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vjw/Greec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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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관 사료들의 분석 II


4-1. 1951년 사애키 교수:

일찌기 당나라 당태종 시절에 중국에 와서 선교/전교/복음화 활동을 하였던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의 문헌들과 유적들에 대한 세계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고고학자 사애키 교수는 자신의 1951년 판 저술 "The Nestorian Documents and Relics in China"의 본문 제239쪽에서, "Jew"를 나타내는 총 11개의 한자 번역 용어들(8개는 음역 용어들 그리고 3개는 의역 용어들)을 바로 아래의 글 중에 구체적으로 나열한 후에,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71-1965_사애키/유태_in_1951_238-239.jpg

(발췌 시작)

 

[...] Now, the words "shu-hu" (No, 1) or "cho-ho (No.3) or "chu-hui" (No. 2) all stand for the Chinese sound for "Dju-hud," and appeared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Yuan Dynasty compiled in 1372 A.D., coverring 1280-1367 A.D., whilst "yu-t'ai (No. 6) and "Ju-te-ya" (No. 8) and others are found in the Chinese wirtings of the Mying Dynasty (1369-1661 A.D.) and afterwards, alghough "ching-chen" (No. 9), "Tao-chin" (No. 10) and T'iao-chin" (No. 11) are all the translated names for "Jew" of old. [...]

 

[...] 그런데, 단어들 "shu-hu" (No, 1) 혹은 "cho-ho (No.3) 혹은 "chu-hui" (No. 2) 모두는 "Dju-hud"라는 중국어 소리를 나타내며, 그리고 처음으로, 기원후 1280-1367년을 포함하는, 기원후 1370년에 수집된 원나라의 역사 안에서 나타난 반면에, "yu-t'ai (No. 6, 즉, 猶太) 및 "Ju-te-ya" (No. 8, 즉, 如德亞) 그리고 다른 단어들은, 비록 "ching-chen" (No. 9), "Tao-chin" (No. 10)와 T'iao-chin" (No. 11)이 모두 옛날의 "Jew"를 나타내는 번역된 이름들이기는 하나, 명나라(기원후 1369-1661)의 중국어 저술들에서 그리고 그후에 발견됩니다.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4-1: (1) 중국 당나라 시대 이후에 중국 본토에서 발견되는 여러 경교비문들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인 일본의 고고학자인 사애키 교수의 이러한 기술은, 비록 그가  이들 두 개의 번역 용어들의 출처들을, 당시의 저술 관행 등에 따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으나, 학문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2) 따라서,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성교요지" 본문 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猶太"라는 용어가, 예를 들어, "1839년 경에 처음으로 출판된 중국의 개신교회용 한문본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개신교회의 용어이다" 혹은 이와 등가인 주장을 하는 대단히 최근의 국내의 일부 사람들의 주장은,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지 않는, 국내의 연구자들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의하여 결코 수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상, 게시자 주 4-1 끝)

 

4-2. 1944년 Rudolf Lowenthal의 논문(제목: The Nomenclature of Jews in China):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the-nomenclature-of-jews-in-china-2.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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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이 논문의 제115쪽에는, 기원후 135년 경의 유다인들의 로마 제국에 대한 반란이 제압된 이후 로마 제국에 의하여 처음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진, 그리고 비옥한 초생달(Fertile Crescent) 지역에 포함되는, 소위 말하는, "팔레스니타(Palestine)" 지역이 그 당시에(즉, ""이라는 음역 이름이 사용될 당시에) "Pa-le-ssu-t'an 勒斯坦(륵사탄)"으로 불리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특히 이벽 성조"성교요지", 제4장 본문 중에서 말해지고 있는 "미도로"에서 "파" 낱글자가 바로 이 지역을 강력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는 생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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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쪽:

(발췌 시작)

     The Jews called themselve Is - ssu-lo-ye-h  一賜樂業 (Israel) in the three inscriptions of 1489, 1512, and 1663. They were not familiar with the term Y u-t'ai  猶太, by which they are generally known today, as we learn from Father Ricci's repor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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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atteo Ricci, S .J.: Opere Storiche, ed. P. Pietro Tacchi-Venturvi,. II, Lettere. Macerata,1931,p .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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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은, 1489년, 1512년, 그리고 1663년의 세 개의 비문들에서, 자신들을  Is - ssu-lo-ye-h  一賜樂業 (Israel) 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보고서 6) 로부터 알듯이, 그들은, 바로 이 이름에 의하여 그들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Yu-t'ai  猶太라는 용어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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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atteo Ricci, S .J.: Opere Storiche, ed. P. Pietro Tacchi-Venturvi,. II, Lettere. Macerata,1931,p . -291.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9월 1일]

(*) 번역자 주: (1) 다음에 발췌된 바는, 이 논문의 저자에 의하여 영어로 번역된, 바로 위의 각주 6) 중의 해당 부분인데, 마태오 리치 신부가 자신의 서신 중에서 말하는 "the designation of Jew"(유다인이라는 호칭/이름)가, 이 논문의 저자가 말하는, Yu-t'ai  猶太를 말하는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바로 아래의 출처에 접속한 후에, Appendix VI, (p. 291) 이하 부분, 즉, 제397쪽의 두 번째 단락을 읽도록 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The_Early_Jews_in_China_A_Supplimentary_Bibliography_by_Rudolf_LownThal_a42.pdf

(발췌 시작)

This man did not know the designation of Jew, but called himself only Israelite.

 

바로 이 사람은 유다인이라는 호칭/이름(the designation of Jew)을 알지 못하였으며, 그러나 자기 자신을 다만 이스라엘인(Israelit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 그리고 다음은, 바로 위의 제(1)항에서 언급되고 있는, 1605년 7월 26일자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이탈리아어 서신 중의 대응하는 문장을 발췌한 것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52-1610_마태오_리치/giudeo_and_israelita_in_1605-07-26일자_이탈리아어_서신.jpg

원출처: "ebreo" "Matteo Ricci" "26 luglio 1605" "israelita" "Ai Tian" [주: 구글 검색 결과]

(발췌 시작)

sebbene egli non si nominava né sapeva il nome di giudeo, ma solo di israelita.

 

[영어 졸번역]

although he did not name himself or know the name of Jew, but only of Israelite.

 

비록 그는 자기 자신의 [유다] 이름을 말하지도 못하였고 그리고 유다인(giudeo, 즉, Judah)이라는 이름을 알지도 못하였으나, 그러나 이스라엘인(Israelita)이라는 이름만을 오로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2019년 9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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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제114쪽-115쪽: 

(발췌 시작)

     (18) YU-T'AI 猶太.

 

     The most general term of Jews is Yu-t'ai. It was presumably introduced by the early Jesuit missionaries, most likely by Father Matteo Ricci. He used in his work T'ien-chu silh-i (De Deo vera ratio) of which the first edition appeared in 1595, although Pfister mentions an earlier version entitled T'ien-hsiieh shih-i. Ricci stated in his letter of July 26th, 1605, to the Jesuit General 83) that the Jews were not familiar with this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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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Ricci, op. cit., v. II, Lettere, p.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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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YU-T'AI 猶太.

 

유다인들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용어는 Yu-t'ai [즉, 猶太(유태)] 입니다. 이 용어는 아마도 초기의 야소회 선교사들에 의하여, 거의 십중팔구(most likely) 마태오 리치(1552-1610년)에 의하여, 도입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것의 첫 번째 판(edition)이 1595년에 나타났던 자신의 저술인 "천주실의(天主實義, De Deo vera ratio)"에서, 비록 Pfister가 "천학실의(天學實義)"라는 제목이 붙여진 한 개의 더 이른 본(version)을 말하기는 하나, [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1) 리치는 야소회 장상 83) 에게 보낸 1605년 7월 26일자 자신의 서신에서 유다인들이 바로 이 이름과 친숙하지 않다고 서술하였습니다(state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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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Ricci, op. cit., v. II, Lettere, p. 291.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9월 1일]

(*1) 번역자 주: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총 10편이 아니라 총 8편으로 구성된, (i) 1603년판 "천주실의"와 (ii) 1629년에 초판된 "천학초함"에 실려있는 "천주실의"에는, 유다인을 가리키는 "猶太"라는 음역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지적이 사실인지는 1603년 이전에 필사된 혹은 출판된 "천주실의" 의 여러 버젼(versions)들을 정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1603년판 "천주실의", 이지조의 서문 중에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발췌 시작)

原本師說,演為《天主實義》十篇,用以訓善坊惡。

 

[영어 졸번역]

The teacher of the original copy(原本) said that he developed and had(演為) ten articles(十篇) of 《天主實義》 in order to(用以) teach good and prevent evil.

 

[우리말 졸번역]

원본(原本)의 선생님[즉, 마태오 리치 신부님]께서  "선을 가르치고 악을 방지하기 위하여(用以) "천주실의" 10편(《天主實義》十篇)을 펴서 가졌다(演為)"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그런데, 마태오 "리치 원전"의 저자인 델리아 신부님1603년 이전에 필사된 혹은 출판된 "천주실의" 의 여러 버젼(versions)들을 이 "원전"의 각주들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들 문헌들이 로마 소재 예수회 고문서고 등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번역자 주: 위의 각주 6) 바로 아래에 있는 (*) 번역자 주를 꼭 읽도록 하라.

[이상, 2019년 9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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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her renderins must be considerd merely as variant contemporary transcriptions:

 

     (19) YU-T'AI 猶泰.

     (20) YU-T'E 攸特.

 

     Ju-te-ya (no. 21) is the equivalent for Judea, Syira, and Palestine. The authorship for this term must be likewise acribed to Ricci who used it in his famous world map 84) which was first dressed in 1584. 85) This name has beedn generally accepted and kept in constant use until today, together with Yu-t'ae-kuo (cf. no. 18). The Mohammedans have a different name for Judea, namely, Yu-na-ni (no. 22). 86)

 

     (21) JU-TE-Ya 如德亞.

     (22) YU-NA-NI 有那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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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坤與萬國全圖.

85) Pfister, op. cit., p. 39, no. 17.

86) Mason,o p. cit. (cf. footn.7 9), 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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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과 같은 다른 옮김(renderings)들은 가지가지의 당시의 음성 표기(transcriptions)들이었음이 틀림 없습니다:

 

     (19) YU-T'AI 猶泰.

     (20) YU-T'E 攸特.

 

     Ju-te-ya (no. 21)[즉, 如德亞(여덕아)]는 유데아(Judea) 지역, 시리아(Syira) 지역, 그리고 팔레스타인(Palestine) 지역을 나타내는 동의어(the equivalent) 입니다. 이 용어의 저작권자는 마찬가지로 [마태오] 리치에게 돌려지게 되는 것이 틀림 없으며, 그는 이 용어를 자신의 유명한 세계 지도 84)에서 사용하였는데, 이 지도는 1584년에 처음으로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dressed). 85) 바로 이 이름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며 그리고, Yu-t'ae-kuo (cf. no. 18)[즉, 猶太國(유태국)]과 함께,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는 사용 안에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모하메트인들은 유데아(Judea) 지역을 나타내는 한 개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즉, Yu-na-ni (no. 22) 입니다. 86)

 

     (21) JU-TE-Ya 如德亞.

     (22) YU-NA-NI 有那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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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坤與萬國全圖.

85) Pfister, op. cit., p. 39, no. 17.

86) Mason,o p. cit. (cf. footn.7 9), p.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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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4-2: 만약에(If) 중국 당나라 시대 및 그 이후의 시기에 중국 본토로 이주한 유다인들과 마호메트교인들의 구약 성경 용어들과 이들의 이름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바로 위의 제4-2항에 안내된, Rudolf Lowenthal 교수의 1944년도 논문의 내용을 국내 교회사 연구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가정법), 이벽 성조(1754-1785년) "성교요지" 본문 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猶太"라는 용어가, 예를 들어, 아무런 실증적인 증거(positive evidences)들의 제시 없이, "1839년 경에 처음으로 출판된 중국의 개신교회용 한문본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개신교회의 용어이다" 혹은 이와 등가인 주장 자체를 함부로 제기하는 언론 플레이를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며, 따라서 그러한 주장은,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지 않는, 국내의 연구자들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의하여 결코 수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상, 게시자 주 4-4 끝)

 

4-3. 1937 사애키 교수:

사애키 교수는 바로 위에 발췌된 설명을, 즉, 위의 1951년 사애키 교수: 아래에 있는 설명을, 1937년의 자신의 초판 저술 "The Nestorian Documents and Relics in China"의 본문 제239쪽에서도 본문의 일부로서 정확하게 그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71-1965_사애키/유태_in_1937_238-239.jpg

 

[내용 추가 일자: 2017년 11월 9일] 

게시자 주 4-3: (확인 날자: 2016년 11월 2일) 그러나 필자가 또한 추가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바로 위에 발췌된 사진과 설명문은, 사애키 교수에 의하여 1916년에 출판된 책 "The Nestorian Monument in China"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끝)

 

4-4. 1942년 Pasquale M. d'Elia 신부님:

다음은, 마태오 리치 원전 전문가이며 한문에 능통한 Pasquale M. d'Elia 신부님(1890-1963년)에 의하여 1942년에 출판된 책 "Fonti Ricciane"(리치 원전)의 서론 에서 발췌한 바인데, 635년에 중국에 전파된 ‘景敎’(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하여 서술하는, 781년에 새겨졌고, 1625년에 서안(西安)에서 발견된, 景敎碑文에서 ‘於大猷’라는 표현이 말미에 있는 한문 문장의 이탈리아어 번역문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9월 30일]

게시자 주:  특히 각주들에서 사애키(Saeki) 교수가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델리아(d'Elia) 신부님께서는 위에서 언급된 사애키 교수1937년의 초판 저술 "The Nestorian Documents and Relics in China"을 이미 들여다보셨으며, 그리고 바로 이 "Fonti Ricciane"의 서론에서, 중국 당나라 시대에 음역 용어 "猶大" 가 이미 사용된 증거(evidence)가 바로 이 경교비문에 있다고 말하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필자가 이것을 처음으로 인지한 시점은 2018년 11월 2일 직전이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90-1963_델리아/1942_경교비문_해석_in_Fonti_Ricciane_by_Pasquale_M.pdf  

[이상, 2019년 9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발췌 시작)

 

(유관 부분)
Egli eseguì l'Antica Legge annunziata dai 24 Santi [dell'Antico Testamento] e stabilì il suo regno in Giudea 大猶,2) fondando la nuova religione che è diretta senza parola dal Puro Soffio 淨風, uno della Trina-Unit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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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raduco nella supposizione che vi sia staio uno spostamento di 猶大 in 大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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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그리고 다음은, 위의 이탈리아어 문장의 영어 번역문 및 우리말 번역문입니다:

 

(졸번역 시작)

He performed the ancient law annunciated by 24 Saints [of the Old Testament] and established his kingdom in Judah 大猶,2) founding the new religion that is directly without Word from the Pure Breath 淨風, one of the Tr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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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 translate in the supposition that there is a shift of 猶大 in 大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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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24명의 성인들에 의하여 고지(告知)된 [구약의] 옛 법을 실천하셨으며 그리고 당신의 나라[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를 유다(Judah, 大猶)2)(#)에서 제정하시여, 그리하여 그 결과, 성삼위의 한 분이신 정풍(淨風, Pure Spirit)으로부터 아무런 말씀 없이 바로 직접인, 새 가르침/경신(religion)을 창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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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는 大猶 [표기]에 猶大 [단어]의 한 도치(倒置)가 있다는 가정(假定) 안에서 번역합니다.

 

(#) 번역자 주: 애초에 우리말로의 번역자[필자]가 유데아(Judea)로 번역하였던 것을, ""의 중국어 발음에 따라 더 정확하게, 유다(Judah)로 바로잡은 날짜는 2022년 3월 22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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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景敎碑文에서 ‘於大猷’라는 표현이 말미에 있는 한문 문장과, 위의 번역문들을 참고하면서 마련된, 이 문장의 졸번역문 2개 입니다:

 

(발췌 시작)

廿四聖有說之舊法。理家國(*)大猷設三一淨風無言之新教

 

(졸번역 1)
그분께서는, 24명의 성인들에 의하여 고지(告知)된(有說) 구법[旧法, 구약]을 원만(圓滿)하게 하는(圓), 당신의 나라[家國,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유다[땅](猶, Judah)에서(於)(#) 조탁(彫琢)하시면서(理), 성삼위의 한 분이신 정풍[淨風, 성신]으로부터의 무언(無言)의 새 가르침(新敎)을 베푸셨습니다(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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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애초에 우리말로의 번역자[필자]가 유데아(Judea)로 번역하였던 것을,  ""의 중국어 발음에 따라 더 청확하게, 유다(Judah)로 바로잡은 날짜는 2022년 3월 22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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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번역 2)

그분께서는, 24명의 성인들에 의하여 고지(告知)된(有說) 구법[旧法, 구약]을 원만(圓滿)하게 하는(圓), 당신의 나라[家國,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대도(大道, 나라를 다스리는 예법[주: 한한대사전])(大猶)에 따라(於) 조탁(彫琢)하시면서(理), 성삼위의 한 분이신 정풍[淨風, 성신]으로부터의 무언(無言)의 새 가르침(新敎)을 베푸셨습니다(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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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의 확인에 의하여 家國이 한 개의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출처: http://sou-yun.com/QR.aspx?ct=%e9%ba%bb&c=%e5%ae%b6&qtype=2

(발췌 시작)

《漢語大詞典》:家国(家國)  拼音:jiā guó

 

家与国(졸번역: 잡과 나라를 말한다)。亦指国家(졸번역: 또한 국가를 말한다)。逸周书·皇门》:“是人斯乃谗贼媢嫉,以不利于厥家国。” 汉 董仲舒 《春秋繁露·竹林》:“自是后, 顷公 恐惧,不听声乐,不饮酒食肉,内爱百姓,问疾吊丧,外敬诸侯,从会与盟,卒终其身,家国安寧。”《魏书·司马昱传》:“ 超 父 愔 为 会稽 太守, 超 假还东, 昱 谓之曰:‘致意尊公,家国之事,遂至於此。’”《资治通鉴·唐肃宗至德二载》:“十一月, 广平王 俶 、 郭子仪 来自 东京 ,上劳 子仪 曰:‘吾之家国,由卿再造。’” 明 张居正 《答上师相徐存斋书》:“老师以家国之事託之於不肖也,天下亦莫不闻。” 清 李渔 《奈何天·助边》:“家国虽殊道自均,须知主僕即君臣。” 清 秋瑾 《满江红·感怀》词:“自由香,常思爇;家国恨,何由雪?” 陈毅 《送董老出席旧金山会议》诗:“百年家国恨, 禹 城日倾頽。”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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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위에서, 졸번역 1은, 우리말로의 번역과정에서 大猶의 도치(倒置)라고 보고 이를 바로잡은 후에, 우리말 번역을 한 것이고, 졸번역 2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번역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당신의 나라"는,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 당신 자신,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을 말하기 때문에, 졸번역 2에서처럼, 만약에 전치사인 어조사 를, 그 용처가 문장의 시작부분이 아니고 마지막 부분임에도 불구하고"...에서"아니라"...에 따라"(according to ...)로 이해하여, "大猷"를 "대도(大道, 나라를 다스리는 예법[주: 한한대사전])(大猶)에 따라(於)"로 번역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나라(즉, 하늘 나라)를 지상에 처음으로 제정하심[즉, 개시(開始)하심]에 있어, 당신 자신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인 어떤 원리(principles)들을 추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잘못된 의미(false meaning)를 또한 전달하게 되므로,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으로오류(error)의 번역(erro translation)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우리말로의 번역과정에서, 삽입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해당 문장이 비문 중에 새겨지기 이전의 시점에, 이미 중국에 처음 도착한지 거의 145년 정도 지나, 중동 지역에 널리 퍼진 이슬람교 때문에 중국에 자리잡은 경교(네스토리우스파)의 어머니 교회인 시리아 교회와의 오래된 단절 중에 마련된 것이 분명한 이 비문의 작성자가, 작성과정에서 ""라는 표현이 있는 전해오는 유관 문장을 읽고서, ""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나, 그러나 한 개의 한자 단어인 "大猷"의 의미, "대도(大道, 나라를 다스리는 예법[주: 한한대사전])"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해오는 유관 문장을 이 비문의 문장 중에 옮겨담으면서, ""라는 원(original) 어구(語句)를 "大猷"라는 표현으로 임의적으로 교체하였을 가능성이 충분하게 발생하였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지적한 바는, 마태오 리치 원전 전문가이며 한문에 능통한 Pasquale M. d'Elia 신부님께서 유관 문장의 이탈리아어 번역 작업을 수행하기 이전의 단계인, 경교비문의 본문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단계에서, 이미 인지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되며,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2) Pasquale M. d'Elia 신부님의 이탈리아어 번역문과 모순적이지 않은 졸번역 1이, 모순적인 졸번역 2보다, 경교비문에 제시된, 도치(倒置)를 통한 글자 교체 이전의, "애초의 원 한문 문장"의 내용을 더 충실하게 전달하는, 번역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2017년 11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게시자 주 4-4: 만약에(If)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퍄견된 예수회 소속의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활동 내역 전반에 대한 연구자로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예수회 소속의 Pasquale M. d'Elia 신부님(1890-1963년)마태오 "리치 원전"에 바로 이러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 것을 국내 교회사 연구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가정법), 이벽 성조(1754-1785년) "성교요지" 본문 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猶太"라는 용어가, 예를 들어, 아무런 실증적인 증거(positive evidences)들의 제시 없이, "1839년 경에 처음으로 출판된 중국의 개신교회용 한문본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개신교회의 용어이다" 혹은 이와 등가인 주장 자체를 함부로 제기하는 언론 플레이를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며, 따라서 그러한 주장은,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지 않는, 국내의 연구자들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의하여 결코 수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상, 게시자 주 4-4 끝)

 

4-5. "영환지략" 초판(1848년)에 제시된 범례: 

출처: https://zh.wikisource.org/wiki/%E7%80%9B%E5%AF%B0%E5%BF%97%E7%95%A5/%E5%87%A1%E4%BE%8B

(발췌 시작)

一此書以圖為綱領,圖從泰西人原本鈎摹,其原圖河道脈絡細如毛髮,山嶺城邑,大小畢備,既不能盡譯其名,而漢字筆畫繁多,亦非分寸之地所能注寫,故河道僅畫其最著者,山嶺僅畫其大勢,城邑僅標其國都,其餘一概從略。


 一外國地名人名,少者一字,多者至八九字,絶無文義可循,數名連寫,閲者無由讀斷。今將地名人名,悉行鈎出,間加圈點,以醒眉目。明知非著書之體,姑取其便于披閲耳。


 一南洋諸島國,葦杭閩粵,五印度近連兩藏,漢以後,明以前,皆弱小番部,朝貢時通,今則胥變為歐羅巴諸國埔頭,此古今一大變局。故于此兩地,言之較詳。至諸島國自兩漢時,即通中國,歷代史籍,不無紀載,然地名國號,展轉淆訛,方向遠近,亦言人人殊,莫可究詰,轉不如近時閩粵人遊南洋者所紀錄為可據。此書於南洋諸島國,皆依據近人雜書,而略附其沿革于後。時尚書屋。五印度現為英吉利屬部,皆依據泰西人書。其歷代沿革,過于煩瑣,且半涉釋典,僅于篇中略敘數語,以歸簡淨。


 一西域諸部迄南之波斯天方諸國,泰西人有分圖,其蔥嶺之西,裏海之東,波斯愛烏罕之北,俄羅斯之南,泰西人為一圖,總名為達爾給斯丹斯丹一作士丹,西域言國主也《元史》訛為算端又作算灘乃古時康居大夏大宛大月氐奄蔡諸國。(*) 歷代變更沿革,亂如棼絲,近世士大夫從軍西域者,亦多所撰述。今止就見于官書者,約略言之,不敢涉考據之藩籬,其亦聊以藏拙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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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여기서 말하는 "태서인회"는, 16세기 말 경에 중국 본토 내에서 선교활동을 해 오면서 다수의 한문본 문헌들을 남겼던, 천주교 "야소회"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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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日本越南暹羅緬甸諸國,歷代史籍言之甚詳,今止就其現在國勢士俗立傳,而略附其沿革于後。至歐羅巴阿非利加亞墨利加諸國,從前不見史籍,今皆溯其立國之始,以至今日。其古時名 國 如 巴庇倫 波斯 希臘 猶太 羅馬 厄日多 非尼西亞 之類 別為一傳,附於今本國之後,庶幾界畫分明,不涉牽混。

 

(바로 위의 마지막 문장 졸번역 시작)

[...] 파비륜, 파사, 희랍, 유태, 라마, 엑일다, 비니서아의 종류와 같은 그 옛 시절에 지칭하였던(名) 나라들은, 모두 하나의 전해 내려옴으로 삼아 구분하여(別為一傳), 해당 나라의 뒤에 여러 기회에 경계를 그어 나누면서 분명하게 부착하였으니, 이끌어 섞어 건너지 않도록 하라.

(이상, 졸번역 끝)


 一泰西諸國疆域、形勢、沿革、物產、時事、皆取之泰西人雜書,有刻本有鈔本,並月報新聞紙之類,約數十種,其文理大半俚俗不通,而事實則多有可據。諸說閒有不同,擇其近是者從之,亦有晤泰西人時得之口述者,湊合而敷衍成文,期于成片段而已。取材既雜,不復注其出於某書也。


 一泰西人如利瑪竇艾儒略南懷仁之屬,皆久居京師,通習漢文,故其所著之書,文理頗為明順,然誇誕詭譎之說,亦已不少。近泰西人無深于漢文者,故其書多俚俗不文,而其敘各國興衰事蹟,則確鑿可據。乃知彼之文,轉不如此之樸也。

 

(바로 위의 문장의 우리말 졸번역 시작)

리마두(1552-1610년, 마태오 리치 신부님), 애유략(1582-1649년,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 남회인(1623-1688년, 南懷仁, 페르비스트 신부님)이 속하는 "태서인"들은 모두 경사(즉, 북경)에 오랫동한 거주하였고,(*1) 통상적으로 한문을 습득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저술한 책들은 문리가 자못 명순하게 되어[즉,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가면 오히려 잘 보지 못하게 되어], 따라서 속이고 기만하는 이야기(설)를 낳음이 또한 이미 적지 않으며, 최근의/가까이에 있는 "태서인"들은 한문에 깊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저서들은 많이 상스럽고 속되어 글이 아니어서,(*2) 그 때문에 그들이 각 나라를 서술함 및 사건의 자취를 줄임이 확실하고 명확함이 가히 웅거하고, 또한 상대방을 아는 글이 굴러서 순박하지 못함이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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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께서 북경에 오랫동안 거주하였다는 언급은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2) 번역자 주: 이 언급은, 예를 들어, 중국의 예수회가 1775년 경에 해산되고 나서, 중국에 머물면서, 이전의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처럼 문어체 한문 문장으로 서술을 하지 않고, 백화체(즉, 일상의 대화체) 중국어로 성경 번역을 하여, 소위 말하는, 고신성경을 남긴 안토니오 드 푸아로 신부님(1735-1813년)의 경우를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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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우리말 졸번역 끝)


 一外國地名最難辨識,十人譯之而十異,一人譯之而前後或異。蓋外國同音者無兩字,而中國則同音者或數十字。外國有兩字合音,三字合音,而中國無此種字。故以漢字書番語,其不能吻合者,本居十之七八,而泰西人學漢字者,皆居粵東,粵東土語本非漢文正音,展轉淆訛,遂至不可辨識。時尚書屋。一波斯也,而或譯為白西,轉而為包社,巴社訛而為高奢。余嘗令泰西人口述之,則曰百爾,設又令其筆書之,則曰比耳西。今將譯音異名注于各國之下,庶閲者易於辨認,然亦不能遍及也。


 一泰西人于漢字正音,不能細分,斯也士也,是也實也,西也蘇也,混為一音,而刺與拉無論矣。土也都也,度也杜也,多也突也,混為一音,而撒與薩無論矣。故所譯地名人名,言人人殊。


 一泰西各國,語音本不相同,此書地名有英吉利所譯者,有葡萄牙所譯者。英人所譯字數簡,而語音不全,葡人所譯,語音雖備,而一地名至八九字,詰屈不能合吻。如花旗之首國。英人譯之曰,緬,葡人譯之曰賣內。時尚書屋。今姑用以紀事。無由知其孰為是非也。


 一地名中,亞字在首者,皆讀為阿,在尾者多讀為訝,加字多讀為嘎,亦有讀為家者,內字皆讀平聲,音近尼,痾字讀如訶。


 一各國正名,如瑞國當作瑞典,訁國當作訁馬,西班牙當作以西把尼亞,葡萄牙當作波爾都噶亞,然一經更改,閲者猝不知為何國。故一切仍其舊稱。


 一外國地名人名,少者一字,多者至八九字,絶無文義可循,數名連寫,閲者無由讀斷。今將地名人名,悉行鈎出,間加圈點,以醒眉目。明知非著書之體,姑取其便于披閲耳。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에 대한 졸번역 끝)

 

게시자 주 4-5: 만약에(If) "영환지략" 초판(1848년)에 제시된 범례 중에 "[...] 파비륜, 파사, 희랍, 유태, 라마, 엑일다, 비니서아의 종류와 같은 그 옛 시절에 지칭하였던(名) 나라들은, 모두 하나의 전해 내려옴으로 삼아 구분하여(別為一傳)," 라는 표현이 기술되어 있는 것을 국내 교회사 연구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가정법), 이벽 성조(1754-1785년) "성교요지" 본문 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猶太"라는 용어가, 예를 들어, 아무런 실증적인 증거(positive evidences)들의 제시 없이, "1839년 경에 처음으로 출판된 중국의 개신교회용 한문본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개신교회의 용어이다" 혹은 이와 등가인 주장 자체를 함부로 제기하는 언론 플레이를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며, 따라서 그러한 주장은,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지 않는, 국내의 연구자들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의하여 결코 수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상, 게시자 주 4-4 끝)

 

참고 자료: "羅馬" "希臘" "厄日多" "巴庇倫" "波斯" "猶太"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1&chap=13&sec=1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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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310시간 (유관 자료들의 발굴, 분석 포함) (여기에는, 2015년 8월 초부터 석 달 이상의 기간에 걸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던, 핵심 문헌들의 조사, 확보된 자료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유관 자료들의 손쉬운 추출 및 활용을 위한 여러 단계들을 거친 기초 작업 등은 당연히 제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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