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5월 6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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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환 [franco2] 쪽지 캡슐

1999-05-07 ㅣ No.63

07:00 - 새벽 공기를 가르며 분쇄기가 굉음을 내 지르기 시작했다.

      성당 마당을 가로지르는 수도관을 묻기 위해 마당을 파기 시작했던 것이다.

      07:50에 계성 초등학교 학교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이고, 14:00에는 혼배미사가 있기에

      그 이전에 기초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걱정이다.

      1.07:30분 미사에 참례한 모든 분들이 소음으로 분심이 들까봐.

      2.05:00에 돌아가신 91세의 요셉 할아버지를 영안실로 모셔야 하는 일이.

      3.07:50에 도착할 계성 초등학교 학교버스가 제대로 들어와야 하기에.

      4.천막 농성 중인 지하철 노조원 24명, 민노총 지도부 4명, 공공연맹 지도부 6명,

        현대 중기 노조원 10여명, 푸른 학교 농성자 11명, 한총련 학생 20여명 등

        약 70여명들의 새벽 잠을 깨우게 된 것이 미안해서.

      5.08:00에 수업을 시작하는 계성 여중.고 학생들에게 미안해서.

      6.주변에서 일을 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시끄럽게 해서.

      7.14:00에 있을 혼배미사의 하객들에게 불편을 주게 되서.

      8.어려운 사정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하게된 상수도 공사 인부들에게 미안해서.

        괜히 성당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서성거려 본다. 어떻게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면서.

      그렇지만 미안해 하는 마음만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농성자들

      여러 명이 성당 마당을 왔다 갔다 한다. 분명 잠을 설쳤으니까.

08:00 - 지하철 노조원들이 천막 주위를 청소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걱정거리였던 옥외 화장실 입구에 잔득 쌓여진 쓰레기 더미를 비닐 봉투에 담아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날씨가 더워 어째까지 심한 악취가 나, 치워달라고

      말할까 했었는데, 스스로 치우기 시작한 것이 기뻤다. 수돗물까지 틀어 바닥을 닦아

      내고 있다. 시커먼 쓰레기 처리 물이 흥건하지만 열심히 비질을 한다. 다가가서 고맙다

      고 말하고는 돌아섰다.

10:30 - 인권 공대위 공동대표인 향린 교회 목사님의 전화를 기다리다 먼저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저녁에 연락을 주신다고 했었는데.... 공대위 사무실에는 계시지 않았다.

      교회로 전화를 하니 신방(신자의 가정방문)을 나가셨단다. 오후 4-5시경에나 오신단다.

      손 전화 번호를 가르쳐 준다. 손 전화로 할까 하다 멈췄다. 신방을 나서섰다면 분명

      어느 길가 이던지, 아니면 어느 신자집에서 기도나 혹은 대화를 나누고 계시리라는

      생각이 들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기다려 보자!

15:00 - 상수도 공사 인부들의 갖은 노력으로 소음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혼란없이 여러

      행사들과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모두에게 진정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16:00 - 향린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제안했던 방법 대로 따르자고 했더니

      모두가 어렵다고 했단다. 우리 교회보다 명동성당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말하신다.

      하는 수 없다. 다시 천막의 대표들을 만나 설득하는 수 밖에!

16:30 - 천막 농성 대표들을 만났다.

        좌측의 수도공사는 그런데로 진행되었다. 이제 좌측은 계단공사로 들어간다. 우측의

      전기공사도 시작해야 하는데 어떻게 결정들 했는가?

      1.푸른학교 대표 - 이곳에 있는 11명 모두가 수배자이기 때문에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명동성당이 성역이기 때문에 법 집행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계사도 마찬가지다. 모든 종교 시설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을 해도 믿지 못하는 눈치다.

      2.한총련 대표 - 처음 말할 때는 천막이 인권 공대위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철거할 수 없고 인권 공대위의 말을 따르겠다고 말했었다. 인권 공대위가 명동성당

      입장을 따르자고 하니까 목사님에게는 내 말을 듣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또 내가

      말하니까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왜? 이리저리 책임을 전가하며 아무의 말도 듣지

      않느냐고 물었다. 왜? 항상 그렇게 하느냐고 또 물었다. 이제 무슨 말을 할거냐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노동자 여러분

      힘내시라고, 우리가 함께 이곳에 남겠다고 외친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힘들다.

      그 북세통에도 대자보 걸이를 길게 만들어 천막앞에 길게 세우고 대자보를 잔득

      붙여 놓았다. 정말 노동자들을 생각해 주는 걸까? 정말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일까?

      3.현대중기 대표 - 성당의 입장은 이해한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공사의 현장을 보면

      가슴 아프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나? 1년여 동안 우리는 정말 절망적인 것만

      체험했다. 그러다 보니 그래서는 않돼지만, 실제로 이곳 명동성당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신부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성직자들에 대한 믿음도 없다. 조계사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랬다. 어려운 사정이 있으니 잠시 나가 달래서 나갔었다. 그후 다시

      그곳으로 들어 가려는데 정말 어려웠다. 싸우다 시피 한것이 벌써 3번이다. 그러니

      어떻게 믿겠는가? 이곳에 들어 오게 된 것은 혼란을 틈타서 들어왔다.

        그러나 이곳에 천막을 친 순간 모두는 안심을 했다. 이제 문제가 풀리리라는 희망이   

      모두에게 생겼다. 그런데 또 나가 달라니! 이곳을 나가게 되면 우리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을 전재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4.공공연맹 대표 - 지하철 노조도 공공연맹 소속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하철 노조와

      합쳐도 된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있게 해 달라.

        나도 현대중기의 입장은 이해 한다. 또한 그런 체험을 해 왔다니 가슴 아프다.

      어려운 이야기일지 모르나 한번 더 속는 셈 치고 믿어달라.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는가?

        믿고 싶지만....., 이렇게 하면 어떻겠는가? 좌측 수도공사와 계단공사를 마무리되면

      우리가 좌측으로 옮기고, 우측공사를 마무리하면 원 위치 시키면 돼지 않는가?

        지금의 상황으로는 어렵다. 지금의 천막 동 수를 보아라. 좌측은 어림도 없다.

        한총련 대표가 천막을 하나로 줄이겠단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도 모자란다. 또한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공사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 공사 기간이 두 배로 늘면 공사비도 두배가 된다. 그렇게 서로 어렵게

      지내기 보다 잠시 자리를 피해주면 다시 금방 원위치 되는데 왜 그리 믿지를 못하는가?

      한 번만 믿어 달라!

        저 인부들을 보라. 공사를 빨리 완결해 달라는 부탁 때문에 어린이 날도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일했다. 여러분들은 가족들이 찾아와 함께 지내지 않았는가? 또한

      인부들은 어버이 날도 쉬지 못한다. 최대한 빨리 공사를 마무리 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몇 년 동안 별러온 공사이다. 급기야 지난 겨울에는 수도물이 나오지 않아

      씻지도 못하고 밥해 먹을 물도 없었다. 천막은 그래도 계속 처져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 비었기에 큰 마음 먹고 시작한 공사다. 그런데 공사 첫날 계단 몇개를 부수고는

      그만이다. 언제 이곳에서 대규모 시위나 천막농성을 하겠다고 우리에게 미리 알려

      주기나 했나? 또한 지하철 노조를 제외하고는 단시일 안에 결말이 날 농성도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몇일 성당을 위해 배려할 수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10개월여 동안 천막농성을 하던 만도기계 노조원들이 당신들에게 천막을 넘기며

      자수한 것이다. 우리가 어려웠어도 그들보고 나가라는 말도 공사도 못했었다. 몇 일만

      성당을 위해 배려해 달라. 그리고 믿어봐라. 우리도 이곳에 들어 온 모든 사람들의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문제가 어디 그렇게 되는가? 또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질서 중 하나로 천막농성을 최대한 줄이고 꼭 필요한 인원들(수배령이

      덜어진)만 천막농성을 하고 나머지는 주간농성(출퇴근)으로 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바램은 몇 일만이라도 성당을

      위해 배려해 달라는 것이지 농성장을 완전히 떠나라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 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 오는 5월 8일(토) 오전까지 결정해서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23:00 - 인터폰이 왔다. 수도공사가 이제 마무리 되었단다. 마무리 되었다는 것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해야할 일이 끝났다는 것이다. 너무도 고맙다. 이렇게

      늦게까지 수고해 주다니..... 대포라도 한잔 같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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