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잠못이룬 지난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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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 [lsk55] 쪽지 캡슐

2002-01-14 ㅣ No.3329

 

잠못이룬 지난밤의 이야기(나의 반성문)

 

저는 빵점의 가장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한심한 지아비고, 또 애들의 못난 아비입니다.

아이들이 벌써 몇년째나 "담배를 끊어 달라고 요청"했고, 또 마누라가 기침을 그렇게 콜럭 거렸어도 저는 이를 무시하고, 약간의 양심은 있어서인지 창가라는 미명하에 집 배란다에서 엄청 담배를 피워댔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매일 아침 집 화장실을 전세내어 그곳을 훈연실로 만들어 놓는 뻔돌이입니다.

특히나 딸아이의 숱한 핀잔을 받으면서 약간의 벌금으로 때운 간큰 가장이었습니다.

최근 폐암을 앓고 있는 이주일씨의 일로 인하여 금연운동이 범국민적으로 불고있지만,

상기본인은 "사람의 수명은 하늘에서 이미 점지한 것인데..."라고 빡빡 우기고 있었습니다.

그예로 우리 마나님의 친정 할아버지께서 엄청 골초셨는데, 그분이 85세까지 정정하셨던 사례를 구실삼아, 입증의 예라고 억지 합리화 시키는 땡깡쟁이입니다.

그런데,

어제밤 저는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고 3의 졸업을 앞둔 아들녀석이 그동안 정말 중학교부터 내리 6년간이나 줄반장을 하면서 잘나갔는데...

담임선생님도 호언장담을 해서 무식한 우리 부부는 명문대학은 따논 당상으로 여겼었는데...

어떻든 무력한 아빠의 탓으로 아들녀석은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하여 결국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안타까운 심정인데, 아들녀석은 오죽했겠습니까?

저는 재수를 할 것을 권했고, 그녀석도 이 제안을 너무나 감사히 여겼고 기뻐했습니다.

우리 성당 최초 주일학교 개근으로 장학금도 탔던, 심성 착한 그놈은 차마 아빠와 엄마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될까 걱정이 되어서 말은 못하고 끙끙 알았을 것입니다.

곧 새학기가 되면 친구들은 대학을 들어가는데...

성당의 친구들을 비롯하여 재학시절의 동창들이 지금도 수도 없이 집으로 전화를 해 대고 있는데 녀석도 좀 피하고 싶었나 봅니다.

어떻든 이러한 입장인 그녀석을 해방시켜 주고 싶어서, 그동안 우리 부부는 많은 고민을 하다가 "적금을 깨어서" 어제 저녁 멀리 친척이 계신 외국으로 아들녀석을 보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와신상담"하는 자세로 어금니 깨물고 공부하라고...

인천공항에서 그녀석을 보내는 작별인사를 그렇게 했습니다.

떠나면서 그녀석은 "아빠! 나 꼭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께요. 그런데 부탁이 하나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발 담배좀 줄이거나 끊어 달라"는 청원이었습니다. "아빠는 성공한 아들, 자랑스러운 모습의 아들을 보고 싶으시면 제발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마"라고 얼떨결에 약속했지만, 배웅후에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저는 무려 다섯개피나 태웠습니다.

그리고 지난밤 잠못이루면서 피운 담배꽁초가 아침나절에 살펴보니 무려 15개피였습니다. 흑~ 흑~

나! 그녀석과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데...

 

어제 저녁 아들녀석이 출국하기전, 무려 3시간이나 대기시간이 남았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녀석과 대합실 4층 오락실에서 함께 게임도 했고,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부르는 미니노래방에서 서로 수곡씩이나 합창을 했습니다.

짜식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는 노래가 없드구먼유~

미니게임 농구대에서 "슛 게임"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내손으로 만든 농구골대를 제작하여 집뜰에 세워놓았던 그 탓인지,짜식은 백발백중의 슛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정말 흐뭇했습니다.

프로 농구선수 우지원이보다도 더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마~ 내 새끼니깐요)

아마도 이것은 7년만에 아들과 함께 놀아준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도 좋아하고 신나하는 모습을 보곤, 그간 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아빠의 노릇을 제대로 못한것이 갑짜기 부끄러졌습니다.

---  -----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많은 반성을 하며 그날 난 날밤을 새웠답니다.

아침나절쯤에는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가 오길 기다리면서...

역시! 나는 지금까지 좋은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나절 아들녀석이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수신하고 또 동이 터오를때 저는 다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돌아왔을 때, 이 아빠는 어쩌면 헬스까지 해서 더 튼튼한 몸으로 널 대할께"라고 중얼거렸던 것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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