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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복음화’와 교회의 평신도 단체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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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현 [sandel07] 쪽지 캡슐

2011-02-26 ㅣ No.648

 

 

 

 

‘새로운 복음화’와 교회의 평신도 단체활동

 

홍근표 바오로 서울대교구 사목국 부국장

                                                           

 

 

‘복음화’의 의미

복음화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 자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례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 실제 생활 안에서 그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게 하는 모든 일을 포함한다. 성경말씀에서도,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19-20)하시면서, 세례를 통한 ‘신자화’와 더불어 그들이 합당히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도록 하는 ‘생활화’가 포함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믿는 것’과 더불어 ‘따르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의미이다.
 
믿을 계명과 지킬 계명


사실, ‘믿는 것’과 ‘따르는 것’은 같은 것이다. 둘이 구별될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믿고 있다면 진실로 생활화되어 따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믿는 것’ 안에 ‘따르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을 보면 안타깝게도 ‘믿는 것’과 ‘따르는 것’이 다를 수 있음을 본다. 그래서 완전한 의미의 ‘복음화’ 역시도 ‘믿는 것’과 ‘따르는 것’을 함께 지적해야만 한다. 그래서 예전 표현대로 하면, 우리들에게 ‘믿을 계명’이 있고, 또 ‘지킬 계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을 계명’만을 강조하고, ‘지킬 계명’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음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염려되는 현실이다.
 
새로운 시대, 변화된 세상


그런데 그 ‘지킬 계명’ 역시 과거에는 단순한 농경문화 사회 속에서 생활양식이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간단명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현대의 복잡한 생활양식 속에서는 각자의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음 말씀대로 사는 것일까? 그 ‘지킬 계명’을 단순히 적용하기가 무척 난해해졌다. 그래서 흔히 ‘지킬 계명’은 지극히 교회 생활 안에서만, 즉 전례와 미사 참례와 성사생활로만 축소 적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의 생활과 교회 밖에서의 생활이 사실상 일치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그 양상이 변화되기에 이르고, 결국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활화하는 것이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의 양상으로 변화되기에 이른다. 더욱이 하느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문화와 세계관 속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교회의 ‘지킬 계명’은 매우 실제적인 가르침으로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생활화가 어렵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회의 가르침들


그 구체적인 교회의 응답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공의회 이후의 수많은 시노드들이다. 그리고 교회는 ‘공의회 문헌’을 통해, ‘교황문헌’을 통해, ‘주교님들의 가르침과 지침들’을 통해 그 구체적 생활의 가르침들을 제안하고 세상을 향해 역설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이 복잡한 현대사회와 다양한 문화 속에서 복음 말씀대로 사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세상이 변화되고 다양화하는 것과 발맞추어 교회도 그에 따라 꾸준히 기도하고 연구하면서 지속적으로 세상 변화에 따른 우리들의 복음적 삶의 구체적 생활화를 위해 많은 가르침들을 쏟아냈다.
 
‘새로운 복음화’의 의미


‘새로운 복음화’란 표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 연설(1983.3.9)에서 처음으로 표현하신 말씀이다. 동시에 ‘새로운 복음화’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표현’의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 이후 1988년 반포된 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는, “2천년대의 ‘새로운 복음화’의 때가 왔다”고 가르치고, 이어 1990년 ‘선교 대헌장’이라고도 평가되는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에서는, “현 시점이 바로 새로운 복음화에 투신할 적기”라고까지 강조하고, 이어 1994년 반포된 ?제삼천년기?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교회 안에서 개최되는 일련의 시노드들의 기본 주제가 바로 ‘새로운 복음화’였다고, 그 ‘새로운 복음화’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새로운 복음화’를 설명하는 데 ‘다시 제안한다(repropose)’는 단어로 해석했다(2010년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사도대축일 강론). 즉 ‘새로운 복음화’란 ‘복음’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복음화’를 새롭게 다시 충실히 해보자는 제안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제2차 공의회의 정신을 다시금 현실화하고 생활화하자는 제안인 것이다.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 Nuntiandi"
 
그런 의미에서 1975년 선포된 ?현대의 복음선교? 안에 그 ‘새로운 복음화’의 뜻이 담겨있다. 교회가 복음화한다는 말은,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거룩한 힘을 통하여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의 활동, 그들의 삶과 구체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고, 그것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더욱 넓은 지역이나 더욱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즉 인간의 문화들을 넓은 의미에서 복음화하는 것이다(18항-20항).
 
교회 평신도 단체 활동


서울대교구는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소공동체 운동’을 전개해 왔다. 또 ‘소공동체 운동’은 이미 전국적으로 퍼졌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소공동체 운동’을 ‘새로운 복음화’의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했다(94년 교구 사목교서). 그러나 많은 교회단체들의 첫 반응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다(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물론 ‘소공동체 운동’이 ‘새로운 복음화’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시대 현실에 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교회의 평신도 단체 활동이 공의회 문헌과 교회의 사회교리 등 수많은 교회 가르침들을 함께 공부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자칫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1988년 반포된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평신도 단체들은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라 인간의 전인적 존엄성에 봉사하도록 투신하는 효과적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 것처럼 교회의 모든 평신도 단체들이 이를 적극 수용하고 지표로 삼기를 희망한다.

 

레지오 마리애 월간지 2011년 2월호 5-8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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