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예수는 왜 죽으실 수밖에 없었는가? (요한10: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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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5-05 ㅣ No.261

2020. 5. 5. (공동번역)

 

예수는 왜  죽으실 수밖에 없었는가? 

(요한10:22~42)

22 때는 겨울이었다예루살렘에서는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23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하고 말하였다25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 준다. 26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 온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1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33 유다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하고 대들었다. 34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35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 불렀다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36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37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39 그 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 40 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 41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와서 서로 '요한은 기적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그가 이 사람에 관해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고 하면서 42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요한복음을 크게 나누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그 첫 번째 부분이 요한복음 10장까지이고 두 번째 부분이 11장부터 마지막장까지입니다그 첫 번째 부분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메시아이심이 여러 가지 이적들과 함께 제시가 되고 아울러 예수님이 속죄양으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이 되 는 부분이고그 두 번째 부분은 실제적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로 종결이 됩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대인들이 그 분을 배척하였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을 함으로 해서 그래서 너희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너희들 중에 너희들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는 것을 증명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아무리 생명을 제시하고 진리를 선포하셔도 사람들이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를 하기에까지 이르지요그래서 하느님은 두 번째 부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목숨을 끊어 너희들에게 생명을 주고야 말겠다.’는 당신의 의지를 십자가에서 실행하시는 것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의 앞 뒤 부분은 마치 구약과 신약 전체가 담고 있는 개괄적 내용을 조금 작은 그림으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구약이 말라기에서 누가 성전 문 좀 닫아다오로 끝나면서 인간 쪽에서의 무력함과 불가능함을 폭로하는 것으로 마치지요그리고 신약으로 넘어와서 하느님께서 직접 죄인들의 구원에 개입하시는예수님의 오심과 수난 당하심과 죽으심과 부활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것처럼 요한복음도 그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그렇게 오늘 본문의 내용은 요한복음 1부의 결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그러면 그 1부의 결론이 어떻게 맺어져야 합니까구원에 있어서의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야겠지요그 내용을 머릿속에 잘 간직하시고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본문 40절과 41절을 보세요.

40 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 41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와서 서로 '요한은 기적을 보여 주지 못했지만 그가 이 사람에 관해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고 하면서 42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요한복음 1부가 어떤 내용으로 결론지어지고 있습니까세례자요한의 이야기로 끝 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이 무엇으로 시작합니까빛이신 예수가 오셨는데 사람들이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으로 시작하지요? 심지어 자기 백성들도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합니다그래서 그 빛을 설명하는 자가 이 땅에 보내어졌는데 그의 이름이 세례자요한입니다요한복음은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그리고는 그 1부의 마지막인 10장에서 다시 그 빛을 설명하던 요한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요한의 이야기가 참 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러번 말씀 드린 것처럼 히브리 사람들의 문학 기법 중에 아주 잘 쓰이는 문학 기법이 수미 일치법 (inclusio)이라 했지요쉬운 말로 샌드위치 기법이라고도 합니다앞뒤에 같은 빵을 대고 속을 잘 집어넣음으로해서 그 전체 내용의 해석이 용이하게 하는 기법입니다그리고 카이즘 구조라는 것도 잘 쓰입니다그 카이즘 구조라는 것은 교차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BCD라는 순서로 글을 진행해 나가다가 E라는 부분에 고갱이를 넣어놓고 다시D'C'B'A'로 돌아가는 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장부터 10장까지의 내용을 잘 보시면 바로 그 수미일치법과 카이즘 구조가 사용되고 있음 을 알 수 있습니다요한은 빛이신 하느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아무도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시작을 하고(A) 1부 의 마지막 부분인 9장에서 소경을 등장시킵니다그리고 그 소경이 눈을 뜨게 되는 사건을 기록함으로 해서 1부의 서론에서 눈이 멀 어 빛을 보지 못했던 죄인들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A') 그런데 소경이 눈을 뜨게 되는 그 방법 은인간 측에서의 그 어떤 시도나 열심이 배제된 온전한 하느님의 은혜뿐입니다그래서 오늘 본문인 10장 마지막에서 인간들의 모 든 열심과 노력이 기각되고 어린양 예수의 죽음이 예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자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우리 주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다시 10장에 서 세상 죄를 지고 갈 그 어린양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세례자요한의 증거를 참이라는 말로 인정을 합니다.(41그렇게 요한복음 1장에서 10장까지는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갈 어린양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세상은 끊임없이 그 분에게 이 세상의 빵을 달라고 조르고 있었고 그 세상의 빵을 약속해 주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하는 것으로 1부를 끝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10:31,39) 31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39 그 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

 

 이렇게 자신을 향해 돌을 들어 치려하는 자들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그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그렇게 처절하고 불가능하며 무력한 죄인들의 실존에 대해 1부의 결론인 오늘 본문이 어떻게 묘사를 하고 있는 지 보세요

(요한10:22-23) 22 때는 겨울이었다예루살렘에서는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23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는데

 

보시다시피 이 요한복음 1부의 마지막은 수전절로 그 배경을 삼고 있습니다수전절(봉헌절.수장절)은 여러분이 아시는 유대인의 절기 중 하누카 를 말하는 것입니다그 수전절은 율법에서 요구된 절기가 아니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마카베오라는 사람 이 깨끗이 정화하여 하느님께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를 말하는 것입니다지금도 유대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12월의 여드레를 수전절(봉헌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전절은 하느님 앞에 내어놓은 인간들의 행위를 대표하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요한복음은 계속해서 인간 쪽에서의 열심이나 자격한 마디로 율법을 기각하고 오직 하느님의 은혜만을 강조해 왔습니다그런데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종교행 위나 자신들의 열심을 내어놓으며 그것을 구원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었습니다결국 예수님은 인간들이 내어놓은 수전절이라는 절기에 인간 쪽에서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에 확인도장을 찍으시는 것입니다이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을 잘 보시면 인간들이 하느님 앞에 봉헌한 성전을 자랑스럽게 기념하는 그 절기에 진짜 성전이신 예수님이 홀대를 당하고 있는 그 극명한 대조가 드러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 하셨습니다.

(요한2:19~21) 19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하고 대답하셨다. 20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21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성전은 하느님이 게시는 처소를 말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은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성전을 통하여 죄인들과 하느님의 거룩이 어떻게 만날 수 있고 함께 거할 수 있게 되는 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가시적이며 물질적인 성전이 담고 있는 모든 내용을 한 단어로 줄이면 바로 예수입니다성전의 구조성전에서 드려지는 제사제물제사장 그 모든 것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던 것들이었습니다그런데 죄인들은 그 눈에 보이는 성전에 눈이 멀어 진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들이 만들고 청소해 놓은 가시적 성전 봉헌을 기념하는 날에 진짜 성전이신 예수가 쓸쓸하고 외로이 홀로 서 계신 것입니다하느님은 눈에 보이는 그런 성전을 절대 원하시지 않으십니다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일 뿐 입니다그런데 참 성전이신 예수가 모형으로서의 성전이 봉헌되어진 그 날에 성전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형국입니다주객이 전도 된 것입니다.

23절을 보시면 그 축제의 절기인 수전절에 예수님이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셨다고 기록이 되어 있지요솔로몬 행각은 성전의 맨 끝 마당인 이방인의 뜰에 나있는 문을 말하는 것입니다성전의 뜰은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을 지나야 비로소 유대인 남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뜰이 나옵니다참 하느님이시며 참 성전이신 주님이 성전의 맨 끝으로 쫓겨나 계신 것입니다죄인들의 불가능함이 여실히 증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2절을 다시 보시면 요한이 수전절이라는 단어 옆에 굳이 겨울이라는 단어를 붙여놓은 것을 보실 것입니다그 겨울은 모형으로서의 성전에 광분하는 수전절에 진짜 성전이신 예수를 죽이려 하는 죄인들의 실상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아주 기가 막힌 단어인 것입니다.

(에레8:20) 20 '여름도 지나고 추수도 끝났건만 우리는 이제 살아 나갈 길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행위를 의지하여 이 세상의 것을 얻어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 여름과 추수할 때를 지나고 겨울에 남겨져 있습니다여름과 추수할 때는 구원 받을 때입니다. 그러나 겨울은 구원의 때가 지나버린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 것입니다성경은 그들을 구원을 얻지 못한 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자신들의 공로를 내놓으며 구원의 근거로 제시하는 자들에게다른 말로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은 하느님처럼 될 수 있는 자라는 아담 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죄인들을 살려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표적을 보여 줘도 안 되고 차근차근 설명해 줘도 안 되고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요그들을 죽여 버리고 새롭게 창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그런데 그들을 죽이면 안 되니까 예수님이 그들을 품에 안으시고 당신께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그래서 요한복음 1부의 결론인 10장 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반복적으로 예시되어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15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18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 (요한10:15,17~18)

 

이렇게 주님은 1부의 결론인 10장에서 계속 반복하여 당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인간 측에서는 구원에 관한한 그 어떤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그리고는 수전절이 등장하고 겨울이 등장하고 솔로몬의 행각이 그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수전절이라는 단어는 이곳에 딱 한 번 쓰였습니다그것은 요한이 다른 공관 복음서나 서간문에서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는 수전절이라는 절기를 통하여 교회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이 시간적 순서에의해 기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 아시지요?

그런데 그 수전절엥카이니아라는 단어는 동사로는 두어 번 쓰인 적이 있습니다둘 다 히브리서에 나오는데 먼저 히브리서 9장을 보겠습니다.

(히브9:18)18 그래서 사실은 먼젓번 계약도 피를 가지고 맺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맺다.세우다라고 번역이 된 엥케카이니스타이가 바로 봉헌하다낙성식을 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 수전절이라고 번역 이 된 엥카이니아의 동사형입니다그러니까 그 뜻은 첫 계약은 피로 봉헌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누가요예수 그리스도가요.

 

두 번째로 그 단어가 쓰인 곳은 히브리서10장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서 우리는 마음놓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새로운 살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그 휘장은 곧 그분의 육체입니다. (히브10:19~20)

20절의 열어 놓으신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역시 엥케카이니스타이입니다직역을 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인 휘장을 꿰뚫어 우리에게 살길을 봉헌해 주셨다입니다그러니까 엥케카이니스타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피 흘림과 관계있는 단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전 봉헌 절에 참 성전이신 당신 자신의 피로 드려지는참 성전 봉헌식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요자기를 죽이려 달려드는 원수들을 위해서요그게 바로 복음입니다오늘 본문이 어린양으로 죽으셔야 하는 제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36절과 40절을 보더라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36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40 예수께서는 다시 요한이 전에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거기에 머무르셨다.(요한10:36,40)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그 무리로부터 분리가 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6절의 거룩하게 하다’ ‘하기아조는 성별하다’ ‘구별하다라는 뜻이고 40절에도 주님이 요르단강 저편으로 유대인들과 잠시 분리가 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이러한 표현들은 요한복음 1장의 어린양이 드디어 제물로 바쳐지게 됨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유독 요한복음만이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묘사를 합니다그것은 요한이 예수님께서 구약의 성전 제물의 원형이라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일부러 택한 단어인 것입니다그 어린양이 죽기 전에 며칠간 무리로부터 분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그 모습이 어디에 나오지 요어린양은 유월절의 언어입니다.

 

구약에서 최초로 유월절에 대한 명령이 떨어지는 곳이 어디입니까출애굽기 12장입니다너희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에게 알려라이 달 십일에 사람마다 한 가문에 한 마리씩한 집에 한 마리씩 새끼 양을 마련해 놓아라. 4 만일 식구가 적어 새끼 양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생각하여 옆집에서 그만큼 사람을 불러다가 먹도록 하여라 흠이 없는 일년 된 수컷이면 양이든 염소든 상관없다. 6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십사일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여서 해질 무렵에 잡도록 하여라.(출애12:3-6)

 

그런데 그 양은 그 달 열흘에 취해져서 한동안 다른 양들과 분리가 되어 있어 야 합니다요한은 지금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유월절에 죽게 되는 유월절 어린양의 모습을 예수의 삶 속에서 그대로 뽑아내고 있는 것입니다그렇게 유월절 어린양으로 죄인들의 죄를 하시기 위해 죽으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잡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그랬더니 주님께서 당신을 잡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내 양들에게 생명을 주러 왔다고 하십니다그리고는 당신의 양들을 당신의 손에서그리고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을 천명하십니다그 말은 나는 애초에 너희들의 됨됨이나 자격 같은 것을 보고 너희들을 구원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셔서 하느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그 양들의 됨됨이나 성실함의 여부에 따라 중도에 탈락하거나 실패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그게 바로 요한복음 전체의 주제인 것입니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 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하고 대답하셨다(요한10:28-30)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또 예수님을 돌려 때려죽이려 했습니다.  

31 이 때에 유다인들은 다시 돌을 집어 예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좋은 일들을 많이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못마땅해서 돌을 들어 치려는 것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33 유다인들은 '당신이 좋은 일을 했는데 우리가 왜 돌을 들겠소당신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까 그러는 것이오당신은 한갓 사람이면서 하느님 행세를 하고 있지 않소?' 하고 대들었다34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율법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희를 신이라 불렀다하신 기록이 있지 않느냐? 35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 불렀다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36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거룩한 일을 맡겨 세상에 보내 주셨다너희는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37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니 나를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만은 믿어야 할 것이 아니냐그러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39 그 때에 유다인들이 다시금 예수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몸을 피하셨다.(요한10:31-39)

 

예수님은 자기를 돌로 치려는 자들을 향해 외치셨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권능을 힘입어 당신들에게 선한 일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왜 나를 죽이려 하는가?’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말하길 네가 여러가지 기적들을 일으키고 선한 일을 한 것은 인정한다그러나 너는 너 자신을 하느님이라 하였다너는 모독죄를 지은 것이고 율법은 모독죄를 지은 자를 돌로 쳐 죽이라 하였다그래서 우리가 너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주님은 시편 82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하느님의 율법을 가지고 재판을 하고 그 율법을 가르쳤던 유대 백성들의 실패와 당신의 하느님 되심을 확실하게 밝히십니다그 34절 이하의 말씀은 해석의 논란이 많은 구절입니다. 34절과 35절을 보시면 율법이 하느님 의 말씀을 받은 자들을 신이라 했다는 말이 나오지요게다가 주님은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하고 쐐기를 박으시면서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은 신이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럼우리가 신이라는 말인가요아니면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가는 순간 우리는 모두 신이 된다는 말입니까둘 다 아닙니다우리는 신적 존재로서 하느님이 누리시는 모든 것을 누리게 되지만 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그럼 이 구절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구절이 인용이된 시편 82편으로 가보지요

하느님께서 신들을 모으시고 그 가운데 서시어 재판하신다. 2 '언제까지 너희는 불공평한 재판을 하려는가언제까지 악인에게 편들려는가? 3 약한 자와 고아를 보살펴 주고 없는 이와 구차한 이들에게 권리 찾아 주며 가난한 자와 약자들을 풀어 주어라악인의 손에서 구해 주어라.' 5 그들은 분별력도 없고 깨닫지도 못하여 어둠 속을 헤매고만 있으니 세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6 '나의 선고를 들어라너희가 비록 신들이요 모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들이나 그러나 너희는 보통 인간처럼 죽겠고 여느 군주처럼 넘어지리라.' 8 하느님이여일어나시어 온 세상을 재판하소서만백성이 당신의 것이옵니다.(시편82:1~8)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에게 법을 집행하는 일에 있어서그의 대리인으로서 행하도록 위임하신 유대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대신해서 심판했고그들이 율법에 동의하여 내린 선고는 하느님의 선고가 되었고그들의 심판은 하느님의 심판이 되었으며그들에게 반역하는 자들은 하느님께 반역하는 자로 여겨졌습니다그래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법을 집행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을 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그들이 진짜 신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일을 위임받아하는 이들이라는 의미에서 이라 하였던 것입니다그런데 그들이 뇌물을 받고 불공평한 판단을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밥 먹듯 했다는 것입니다그 말은 하느님의 뜻을 위임받아 하느님의 뜻에 맞게 공의를 행할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시편 82편을 들어서 당신 자신만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위임받아 철저하고 완벽하게 행하신 참 신’ ‘하느님의아들이심을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그런데 아버지의 뜻이 뭡니까당신께서 택하신 당신의 자녀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구원하시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일은 가르치고훈계하고권고하고징계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완성되는 일입니다주님은 바로 그 일을 하러 오신 성자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율법과 행위를 내 놓으면서 주님의 하실 일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분을 죽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리석은 바리사이인들 같으니라구하고 그들을 욕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지요아닙니다그들이 바로 ’ 의 투영인 것입니다우리는 지금도 구원은 받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바리사이인들처럼 나의 행위와 나의 자격을 하느님 앞에 열심히 내 놓고 있지 않습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던져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여러분생명은 오직 주님께만 있는 것입니다나의 노력이나 나의 열심나의 자격 등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오직 주께만 있는 생명이 우리에게 거저 부어진 것을 구원이라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서 10장까지에서 우리 인간들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이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것이고 11장부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쏟아 부어지는 하느님의 은혜의 실행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손에 달려 있는 것이기에 여러분의 실수와 실패와 절망과 어리석음까지도 여러분의 구원을 방해하지 못합니다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선한 행위나 도덕적 윤리적 선한 삶으로도 여러분의 구원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요한복음 5장 39절을 보면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라는 말씀이 있지요?

그 말씀은 너희가 성경에서 요구하는 것을 다 지키면 영생을 얻는 줄 알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지만 성경은 너희들에게 어떠한 행위를 요구하는 책이 아니라 바로 나예수에 대해 증거 하는 것이니 나를 믿고 거저 주는 은혜 속으로 들어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잘 이해하셔야 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막 살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려고 애를 쓰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알라는 말씀인 것입니다왜 예수님이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율법을 모두 지켰다고 하는 부자 청년에게 그가 가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 에게 다 나누어 주고 따라 오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구원은 우리 측의 율법지킴이나 우리의 업적이나 재산의 정도나 직업의 귀천 등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기에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고 빈손으로 좇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자기 재산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착한 일을 많이 한 후에 좇아오라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사람들은 설마 아무 것도 안 했는데 구원을 주시겠는가?’하고 의심을 품습니다, 아무것도 안했을 때 주어지는 것이 영생입니다그리고 그 후로 아무것도 안 해도 결코 빼앗기지 않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도 양심이 있지내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그게 유다입니다우리 성도는 베드로처럼 금방 주님을 저주하며 부인하고도 뻔뻔스럽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하고 번죽 좋게 주님을 붙드는 자들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하신 하느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왕 노릇을 하심으로 우리의 실체를 직시하게 하시고 우리를 부인하게 하시며 우리 속에 살고 계신 예수를 드러내는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 는 막 살 수 없을 뿐입니다.

42 '또 나를 믿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43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버려라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5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발을 찍어 버려라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7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려라두 눈을 가지고지옥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애꾸눈이 되더라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누구나 다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그 소금을 짜게 하겠느냐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마르9:42-50)

 

성경이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아주 무시무시한 요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요눈이 범죄하게 하면 눈을 뽑아버리고 손발이 범죄하게 하거든 그 손발을 찍어 버리랍니다진짜 그렇게 하라는 것인가요아니면 그러한 정신으로 삶을 살라는 것인가요여기에서 찍어 버리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아포콥토는 자르다베어버리다라는 뜻의 단어입니다그 단어는 제사용어임과 동시에 계약의 언어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계약을 맺다계약을 세우다라고 할 때 ‘cut the covenant’ ‘계약을 자르다라는 표현을 씁니다창세기 15장의 쪼갠고기 사건과 17장의 할례계약을 생각하시면 아주 쉬울 것입니다그리고 제사 제물을 쪼갤 때도 그 단어를 씁니다그렇게 아포콥토는 제사에서 제물을 자를 때 쓰는 단어임과 동시에 계약의 언어이기도 한 단어입니다그런데 그 계약의 원형이 어떤 계약이라 했지요히브리서 9장 15절 이하에 보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하느님의 계약의 원형은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의 피의 계약이라 했지요뿐만 아니라 소금이라는 단어 또한 제사용어이면서 계약의 언어입니다.

 

13 너희가 드리는 곡식예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한다너희 곡식예물에 너희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때 치는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너희가 바치는 모든 예물에 소금을 쳐야 한다. (레위2:13)

 

24 네가 야훼 앞에 그것들을 바치면 사제들은 그 위에 소금을 뿌려 야훼께 번제로 바쳐야 한다. (에제43:24)

 

그러니까 마르코가 찍어버리라라고 번역이 된 아포콥토라는 단어와 소금을 두고 화목 하라는 등의 소금 이라는 단어를 이곳에 서 사용한 것은 참 제물이시며 온전한 제사의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하느님은 손발을 베어버리고 눈을 다 뽑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백성이 죄와 상관없는 자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으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베어 버리고 그에게 계약의 소금을 부 어 참 제물로 받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죄를 지을 때 손발을 베거나 눈을 뽑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그러나 그 때마다 우리 대신에 손발을 찍히시고 눈을 뽑히신 예수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그 때 비로소 우리에게서 작은 예수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그게 구원입니다그러한 하느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가 계속해 서 죄를 짓고 패역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불 성설입니다그래서 우리는 힘써 야훼를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분의 은혜를 더 욱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영생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살롬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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