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성당 게시판

그 분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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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승 [hwang350] 쪽지 캡슐

2000-06-07 ㅣ No.525

전화가 왔었다.어머니였다.지금 동대문운동장역이라고 잠깐 나올 수 있겠느냐고.나가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자 다짐했다.혹시라도 걱정하실 지 모를 어머니를 생각하며.

 

오늘 일을 하루 쉬고 피정을 다녀오시는 길이라고 하셨다.집에 가기 전에 잠깐들려 우리 아들 보고 가려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하숙비도 줄 겸 얼굴도 볼 겸.어머니의 어떤 말씀이 날 그렇게 우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처음의 다짐은 또 어디가고 약간은 초폐하고 굳은 모습이다.밥은 먹었니?얼굴이 많이 안 좋구나?학교는 잘 다니니?심지어는 세라피나와는 여전히 만나니?하시는 말씀까지도 모두 남들이 하는 그런 식의 인사치레가 아님을 난 안다.

 

그 분의 마음속에는 항상 내가 있다.그 분은 그 분 자신보다도 내가 더 소중하다.날 위해 돈을 버시고 고생을 하신다.고생이라 생각치는 않으시다.그저 날 볼 수 있고 날 위해 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신다.그러면서도 항상 안타까워하신다.예전에 잘 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유난히 가난했던 어린시절.재대로된 뒷바라지도 못해주시고 집을 나와 보고싶어도 볼 수 없었음이 그 분에게는 큰 고통이었음에 틀림없다.

자식이 어찌 그걸 다 알겠느냐만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때의 고통도 고통인데 자식을 볼 수 없음은 오죽하랴.

 

행여라도 내가 우울하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마치 억장이 무너지는 양 그렇게 마음 아파하신다.마치 자신때문에 그렇게 된것처럼.내가 기분이 안 좋은 일은 모두 다 어렸을 때 사랑이 부족해서라고 자책하신다.내가 아니라고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그다지 힘들지도 아프지도 않다고 말씀드려도.

 

이젠 조금 아파도 아니 아파도 얼굴 보기 전까진 아프다는 말씀 안드린다.

밥을 안 먹어도 전화해서 물어보시면 언제나처럼 먹었다고 말씀드리고 혹시라도 아니 또 걱정하실까봐.자신이 못해주는 걸 안타까워하실까봐

 

다시 뵈었을때 8년 만에 어머니를 다시 뵈었을때 내 어린 시절 머리속에 남아있던 그 분은 아니었다.훨씬 나이가 들어보였고 고생을 하셔서인지 더 그래보였다.난 몰랐다.어머니가 매일 날 그렇게 생각하시며 눈물 흘리셨다는 것을.난 잊었다.어머니를 날 낳아주신 나의 어머니를.

 

지금은 조금은 안다.곁에 두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마음 아파하시는 그분의 마음을.철륜을 끊을 수 없다고.누구보다도 자기 자식은 가장 소중하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봐야지 하고 말씀하시며 씩 웃는 그 분의 모습에서 이젠 조금은 그 마음을 알기에 가슴이 찡하고 아프다.

 

과외 가르치러 가야했기에 오래 뵙지 못하고 다시 헤어져야 했다.같은 하늘아래 있어 언제라도 찾아뵐 수 있지만 못내 아쉬운 듯 밥이라도 사먹이고 보내지 못해 아쉬워 하시는 그 분의 뒷모습이 맘 아프다 못해 아름다워 보인다.택시를 잡아 타시고 내게 손을 흔드신 후 이내 묵주를 손에 쥐고 날 위해 기도하실 그 분.난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다가도 그 분을 보며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아이들 볼 때처럼 친구들 볼 때처럼 어머니 보면서도 웃어보이고 기쁜 모습하고 싶고 많이 예기 하고 싶다.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못하는 나 자신이 밉다.

 

그 분의 뒷모습 보면서 주님께 기도드린다.날 위해 사시는 그 분을 위해.

어머니 죄송해요.그리고 사랑해요.어머니 위해 더 훌륭한 교승이 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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