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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안에 주님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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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2008-01-03 ㅣ No.16

지금 내 안에 주님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올해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는 김옥균(79) 주교를 인터뷰하러 22일 서울 혜화동 대신학교를 찾았을 때 그의 숙소가 있는 지혜관 앞뜰에는 따스한 봄볕이 완연했다. 지혜관 주변이 어쩌면 그리도 고요하고 평화로운지 절로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김 주교는 지혜관을 감도는 봄기운처럼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감사하다는 표현이 너무 상투적이고 밋밋할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그렇습니다. 사제품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참 빠르네요. 하느님이 앞에서 이끌어주시고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많은 은인들이 도와 주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 주교는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니까 기쁨과 즐거움이 더 큰 것 같다 면서 지금은 내 안에 주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남아 있을 뿐 이라고 지난 50년을 담담히 회고했다.

건강은 어떠하냐는 질문에 김 주교는 한마디로 양호 하다고 했다. 지방간이나 당뇨 등이 조금씩 있지만 염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 김 주교는 2001년 은퇴하면서 1주일에 하루는 이웃을 위해 그리고 또 하루는 자신만을 위해 온전히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주일에는 신내동에 있는 한 복지시설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하루를 보내며 수요일에는 보문동 가톨릭미술아카데미에서 하루 종일 붓을 잡는다. 소묘로 시작해서 지금은 유화를 그리는 단계인데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다보면 하루해가 짧다고 한다. 김 주교는 그것 말고도 견진성사나 종신서원 주례 여러 신부님들 강의나 미사 부탁 등으로 거의 매일 무슨 일이 생겨 현역에 있을 때 못지않게 분주하다 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김 주교는 지난 과거가 영사기 필름처럼 쭉 돌아가는데 특별히 이것이라고 꼬집어 기억할 만한 것은 없다 면서 다만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행사와 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 서울대교구 총대리 재임 기간 명동성당에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벌어졌던 집단 농성이 떠오른다 고 말했다.

200주년 행사나 성체대회는 실무를 맡은 사람들이 워낙 호흡을 잘 맞춰 일했기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명동성당을 시위장소로 이용하는 집단들을 볼 때 가슴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들을 미워하게 될까봐 일부러 피해다니기도 했죠.
 
김 주교는 한국 주교단 일원으로서 주교회의에서 열심히 일한 것과 서울대교구 재정 담당자로서 비록 구두쇠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안정적 재정 기반을 마련한 것을 보람으로 꼽았다. 또 항시 불만을 사기 마련인 인사 담당자로서 자세한 사정을 말하지 못해 생긴 오해 때문에 힘든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주교는 재단법인 평화방송 설립 이듬해인 1989년부터 12년간 이사장으로 평화방송·평화신문과 인연을 맺었다. 같이 한 세월만큼이나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처음과 비교해보면 한마디로 감개무량합니다. 처음 평화방송 라디오를 시작할 때 변변한 음반 하나 없어 제가 유학 시절 구입했던 음반을 기증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갖가지 어려움이 많았는데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김 주교는 평화방송·평화신문이 이제는 본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 재정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 아쉽다 는 우려와 함께 직원들이 힘을 한데 모아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뜻에 따라 기쁜 소식 밝은 세상 을 전하는 데 매진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선배로서 후배 사제들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주교는 사제생활을 하면서 처음 사제가 되려고 마음 먹었던 그 때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던 그 때를 절대로 잊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또 계획성 있는 생활과 겸손 기도를 주문했다. 그래서일까. 김 주교는 인터뷰 내내 깍듯한 존대말과 예우를 잃지 않았다.

사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겸손이라고 봅니다. 겸손하고 착한 사제는 신자들에게 인정받지만 겸손하지 않은 사제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또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지만 사제는 공인이므로 항상 신자들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김 주교는 신자들에게 타성에 젖거나 엉거주춤한 신앙인이 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신약성서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이 타성에 젖은 신앙인의 전형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 한마디로 하느님께 순종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만심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처럼 위험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앙인이라면 신앙인답게 결연한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성직자 묘지에 가면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사제들에게 곧 따라갈테니 좋은 자리 마련해 달라고 기도합니다.(웃음)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하느님 은총과 은인들 은혜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저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좀더 나누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김 주교는 지혜관 앞뜰에 나와 사진촬영을 하며 지혜관에서 젊은 신부들과 함께 사니까 나도 젊어지는 것 같아 더없이 좋다 고 즐거워했다. 김 주교는 기자 일행이 눈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김 주교 어깨 위로 떨어지는 봄볕이 더없이 따사로워 보였다.

※서울대교구는 4월8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되는 성유축성미사 후 김옥균 주교와 이석충 신부 금경축 행사를 갖는다.
 
◆ 약력
 
△1925년 12월 경기도 용인 출생
△54년 프랑스 릴가톨릭대 졸업 및 사제수품
△57년 릴가톨릭대 대학원(신학) 졸업 및 59년 동 대학 신문학과 졸업
△59년 서울대교구장 비서 겸 가톨릭출판사 사장
△62년 상서국장
△65년∼82년 종로·명수대·당산동·노량진·청파동·수유동본당 주임
△82년 사무처장
△83∼84년 관리국장 겸임
△84년∼2001년 총대리
△85년 3월 보좌주교 임명 및 4월 서품
△86∼99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1
△89년∼2001년 재단법인 평화방송 이사장
△2001년 12월 은퇴 
 
[평화신문, 제766호(2004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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