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08년 9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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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08-10-29 ㅣ No.78

 

Allocucio - September,  2008

베데 맥그레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성모님의 가르침

  성모님이 루르드에 발현하신지 150주년을 맞이하여 이번달에는 이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루르드는 성지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위대한 성당이고, 성지 순례의 장소입니다. 이곳은 레지오에게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욱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은 학교이며 교장선생님은 성모님이십니다. 물론 성모님을 만나고 영적교류를 하기 위해 꼭 루르드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도 멈추어 서서 성모님께로 향하기만 하면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성모님을 만날 수 있음으로 성모님과의 관계는 결코 장소나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고 우리를 결코 떠나시지 않으시며 성모님의 모성애는 항상 어디에서나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루르드를 특별한 장소로 만드셨습니다. 믿음이 더욱 강해지도록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장으로, 치유와  통공의 장소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구원 사업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만드셨습니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시어 표지와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오늘은 루르드에서 하신 베네딕토 교황성하를 따라서 표지에 관하여 중점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그 장면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으로 발현하셨을 때 벨라뎃다는 본능적으로 성호를 그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이 성호를 그으시자 벨라뎃다도 성호를 그을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모두 18번 발현중 처음에는 간단하지만 의미가 깊은 우리들 믿음의 표지인 묵주기도를 함께 바쳤습니다. 벨라뎃다는 성모님이 성호를 그으시는 모습을 절대 잊을 수가 없어서 점점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모든 일을 시작할 때면 성호를 긋고 시작합니다. 모든 레지오의 회합에서도 우리는 정성스럽게 성호를 긋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성호의 의미와 나타내는 가치를 묵상하면서 하여야 하겠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루르드에서 하신 강론중에서 인용을 하겠습니다. : ‘이것은 오늘 아침에 우리를 초대하여 아드님께 향하도록 성모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위대한 신비입니다. 사실, 벨라뎃다에게 처음 발현하셨을 때 성모님께서 성호를 그으셨다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단순히 성호를 긋는다는 의미를 넘어서 그것은 벨라뎃다가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믿음의 신비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호는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바로 우리 믿음을 상징하는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성호는 이 세상에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죽음과, 우리의 허약함과 죄보다 강하여 모두 이겨낸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 사랑의 힘은 우리를 위협하는 악을 물리치는 강력한 힘입니다. 성모님이 여기 루르드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이러한 보편성의 신비입니다. 성모님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선한 사람들을 모두 부르시어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러러 보면서 그곳에서 생명의 원천 즉 구원의 샘을 발견하도록 하십니다. 루르드에서 성모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가장 위대한 진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 삶의 가운데에 놓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성호는 바로 우리들의 구원의 표지인 것입니다. 이 간단한 표지가 무한한 가치를 지닌 그리스도의 성심이라는 큰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와 같이 레지오도 특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죄에서 치유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보아라” 라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말씀하셨습니다.(성 요한12세 에 관한 논문-2)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주시기 위해 온 세상의 죄를 모두 짊어지신 그 분을 찬양합니다. 교회는 자랑스럽게 우리를 불러 모아 영광의 십자가를 높이 들어서 우리 인간 즉 모든 남자와 여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분의 사랑을 온 세상이 충분히 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성모님은 우리를 부르시어 죽음을 가져온 나무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게 합니다. 이 나무위에서 예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위와  영광안에서 찬미받으며 높이 들어 올려지신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와서 그 분께 경배합시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위하여 생명까지도 내어 주시고, 믿음으로 우리를 가까이로 부르시는 그 분이 우리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미사때나, 고해 성사때, 묵주기도의 고통의 신비속에, 또는 십자가의 길의 매 기도처와 우리가 자주 성호를 그을 때에 우리 기도생활의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들의 선교 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도구로 쓰여야 합니다. 프랭크 더프 형제의 논문과 편지에서 나타난 얘기를 기억해 보겠습니다. : ‘오랫동안 우리 모임에 참석해 온 개신교 신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러티라는 형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 “형제님처럼 훌륭한 분이 우리들의 구원의 상징인 성호를 긋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특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그 다음 만났을 때, 그는 엄숙하게 성호를 그으면서 말하였습니다. : “요한 형제님이 핵심을 잘 얘기해 주었습니다. 저도 이제부터 성당을 나가겠습니다.” 결론 : 그는 새로운 믿음을 최고로 소중히 여기며 매일 성체를 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아무리 작은 경우라도 이를 통하여 사람들이 성당으로 오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러한 일들이 여러 다른 곳에서도 많이 일어 나도록 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십자가 곁에 서서 루르드의 십자가의 표지를 온 세상이 바라 보도록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들의 사도직 활동에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앞으로 어느날 그 사람들이 성호를 그을 수 있도록 인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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