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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시여 칭호 -요한 2,4; 19,26 822_새하와 [새창조] _recapitulation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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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 ㅣ No.1524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1:

요한복음 2장 카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손님의 자격으로 참석하시어

 포도주로 표징을 일으키실때 예수님은 왜 본인의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닌

 "여인이시여"라고 부르셨는지요???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1. 들어 가면서

1-1. 우선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요한 복음서 2장의 앞 부분은

(i) 만약에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8일이면, 1월 7일 복음 말씀(요한 2,1-11)으로 (예를 들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ii) 다해 연중 제2주일 복음 말씀(요한 2,1-11)으로 발췌되어, 미사 중에 봉독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1-2. "새 번역 성경"요한 복음서 2,4에서 우리말로 "여인이시여"로 번역되는 칭호(稱號, title)는, NAB 해당 절에서 "Woman" 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만약에 대문자 W를 사용한 것이 단순히 문장의 첫 단어이기 때문이었다면, 우리말 번역에서, "여자"의 존칭인 "여인"으로 번역하지 않았을 것임에 주목하십시오. 이와는 달리, "새 번역 성경"의 창세기 2,23에서 우리말로 "여자"로 번역되는 칭호는, NAB 해당 절에서 "woman"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특히 소문자 w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3. 따라서, 주신 질문 1은,

 

질문 2:

"요한 복음서 2,4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시지 않고, 또 "여자여"라고도 부르시지 않고, 왜 "여인이시여" 라고 부르셨는지요?"

 

라는 질문과 동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친모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대신에 "여인이시여" 라고 부르는 것은, 비록 "여인"이 존칭임에도 불구하고 납득할 수 없는데, 이러한 납득할 수 없음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더구나, NAB 본문에서 "woman"으로 번역되는 표현을 "새 번역 성경"의 본문에서 또한 "여인"으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1-4.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들을 클릭하면, "여인시이여" 라는 번역 표현이 "새 번역 성경"의 구약 본문 중에는 전혀 없음을 확인 할 수 있고, 그리고 신약 본문 중에는 요한 복음서 2,4요한 복음서 19,26, 이렇게 단 두 번만, 이 칭호가 특별히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info.catholic.or.kr/bible/view.asp?ctindex=old2&prindex=0&Keyword=여인이시여

http://info.catholic.or.kr/bible/view.asp?ctindex=new2&prindex=0&Keyword=여인이시여

 

2.

2-1. 다음은 NAB(New American Bible)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2,4에서의 "Woman"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질문 2에 대한 답변은 여기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XA.HTM

(발췌 시작)

[4] This verse may seek to show that Jesus did not work miracles to help his family and friends, as in the apocryphal gospels. Woman: a normal, polite form of address, but unattested in reference to one's mother. Cf also ⇒ John 19:26. [여인이시여: 한 개의 정상적인, 공손한 인사의 형식이나, 그러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으로는 입증되지 않는다. 또한 요한 19,26을 참조하라].  How does your concern affect me?: literally, "What is this to me and to you?" - a Hebrew expression of either hostility (⇒ Judges 11:12; ⇒ 2 Chron 35:21; ⇒ 1 Kings 17:18) or denial of common interest (⇒ Hosea 14:9; ⇒ 2 Kings 3:13). Cf ⇒ Mark 1:24; ⇒ 5:7 used by demons to Jesus. My hour has not yet come: the translation as a question ("Has not my hour now come?"), while preferable grammatically and supported by Greek Fathers, seems unlikely from a comparison with ⇒ John 7:6, ⇒ 30. The "hour" is that of Jesus' passion, death, resurrection, and ascension (⇒ John 13:1).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2-2. 다음은 "주석 성경" 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2,4에서의 "여인이시여"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질문 2에 대한 답변은 여기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발췌 시작)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다시 한 번 이 호칭으로 어머니를 부른다(19,23).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귀네로서, 본디 미혼이든 기혼이든 장성한 여인을 가리키므로 문맥에 따라 '여자, 여인, 아내, 부인' 등으로 옮긴다. 그리스 말을 쓰는 지역에서는 이 낱말이 일반적으로 외간 여자를 공손하고 점잖게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된다. 예수님께서도 당신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여인들(마태 15,28; 루카 13,12), 긴 대화를 나누시는 사마리아 여인(4,21), 간음하다 들킨 여인(8,10), 마리아 막달레나를(20,15) 이 호칭으로 부르신다. 그러나 어머니를 이렇게 부르는 것은 특히 히브리 말과 아람 말 등 셈족 말을 하는 지역에서는 매우 특이한 일이다. 이 호칭은 이어지는 물음과 함께 (그리스 말 본문에서는 호칭이 물음 뒤에 나온다.) 예수님과 마리아 사이에 어떤 거리감을 나타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호칭에서 상대를 비하하거나 관계를 부정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 발췌 끝).

 

-----
(*) 게시자 주: 예수님은 하느님이시고 성모님께서는 피조물이시기에 당연히 차이가 있기마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들 중에서 당신의 친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가장 밀접하게 결합된(united) 피조물이 또한 성모님이시기에, 여기서 말하는 "거리감"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 주석만으로는 알 수 없는 문제가 남아있다는 생각이다.
-----

 

2-3.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다음에 있는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2,4에서의 "여인이시여"에 대한 해설도 질문 2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ot_2.htm

 

2-4. 그리고 또한 유감스럽게도, 다음에 있는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19,26에서의 "여인이시여"에 대한 해설도 질문 2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goodfri.htm

 

게시자 주: 이어지는 제3항에서는 성경 본문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해석이 담겨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주어진 가르침들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3.

3-1. (질문 2에 대한 답변 시작) 다음의 주소에 있는 2012년 8월 20일자 글 [제목: 새 아담/새 하와 4]을 클릭한 후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26항 제2816항꼭 찾아서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40.htm <----- 필독 권고

 

따라서, 하느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어머니께서, 원 복음창세기 3,15에서 하느님에 의하여 "그 여자(the woman)"로 불리는, "새로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the new 'Mother of all the living')", 즉 "새 하와(new Eve)"(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26항; 제2816항)이심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인류 구원의 역사에 있어 바로 이러한 룩한 역할을 수행하고 계시는 유일한 피조물인 당신의 어머니를 친자로서 공경하시어, "여인이시여(Woman)" 라는 성경 본문 전체에서 단 두 번 사용되는 대단히 특별한 존칭으로, 요한 복음서에 기록된 당신의 첫 기적 바로 직전인요한 복음서 2,4에서 처음으로 그렇게 부르셨던 것입니다.

(이상, 질문 2에 대한 답변 끝)

 

이하는 추가 읽을 꺼리들 입니다

 

게시자 주 3-1:

(1) 우리는 위의 제2-1항, 제2-2항, 그리고 제2-3항에서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용 성경들의 주석/해설들을 들여다 보았으나, 위의 제3-1항과 같은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음을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1859년 판 가톨릭용 주석서,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에서도 언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http://haydock1859.tripod.com/id93.html

http://haydock1859.tripod.com/id112.html

 

(2) The Great Biblical Commentary of Cornelius a Lapide(1567-1637년)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19,27에 대한 해설 중에서 다음의 언급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성모님께서 "새 하와(new Eve)" 라는 언급은 없습니다:

 

출처: http://www.corneliusbiblecommentary.faithweb.com/19john.htm 

(발췌 시작)
She is the Eve of the faithful, the mother of all living, to whom the wise and Saints of every age betake themselves.

그녀는, 각 시대의 현자들과 성도들이 그분께 자기 자신들을 의지하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인, 열심 신자들의 하와(Eve)이십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16세기 중반에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처음으로 발간하였던 교리서인 "로마 교리서(트리엔트 교리서)" 본문에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26항과 제2816항의 가르침이 없음은 필자가 또한 확인하였습니다.

 

(4) 그리고 교황 우르바노 4세의 명에 의하여,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사용할 목적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13세기에 편집된, Catena Aurea(Golden Chains, 황금 고리/사슬들)에도, 다음의 주소들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26항과 제2816항의 가르침과 유사한 가르침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http://dhspriory.org/thomas/CAJohn.htm#2

http://dhspriory.org/thomas/CAJohn.htm#19

 

(5) 다른 한편으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1992년에 초판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26항과 제2816항의 가르침은, 교회 일치를 위한 공의회로서 1960년대 중반에 개최되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여 교회론 안에 그 틀이 마련된, 성경 본문에 충실하게 근거하는, "마리아론(Mariology)"의 재정립 및 방향 설정 이후에, 교회 일치를 위한 초석/발판/근거로서, 그리스도교 초기 교회 시절의 핵심 가르침들의 회복/복원 과정을 거쳐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다음의 자료들을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42.htm <----- 클릭 후에 제5항 필독 권고

http://campus.udayton.edu/mary/resources/documents/docs6-1.html 
[예를 들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LG에서 마리아에 대하여 가르치는 바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음]

http://www.ewtn.com/library/mary/maryinsc.htm <----- 필독 권고

http://scripturecatholic.com/blessed_virgin_mary.html 

 

(6) 사실 이 글은, 다음의 글의 한줄답변/댓글에서 2012년 9월 16일에 이미 말씀드린 다음과 같은 지적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54.htm

(발췌 시작)

세례자 요한이 베타니아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고 나서(요한 복음서 1,29) 이레 뒤에, 요한 복음서 2,1-11에만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첫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석은 사실은 바로 이 성 이레네오(St. Irenaeus, 130-200년)의 "총괄복귀(recapitulation) 개념"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이 개념을 적용한 한 개의 예로서, 나중에 별도의 글로 그 내용을 전달해드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동정 마리아께서 "새 하와"로 언급되는 절들은 모두 바로 이 성 이레네오의 "총괄복귀 개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상, 발췌 끝)

 

(7)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이 대단히 중요한 성 이레네오의 "총괄복귀 개념"에 대한 글들의 모음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이상, 게시자 주 끝)    
 

끝으로, 

 

질문 3: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연중 시기의 주일에 봉독되는 복음 말씀은 루카 복음서에서 발췌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해 연중 제2주일 복음 말씀은 무슨 이유로, 루카 복음서 대신에요한 복음서에서 발췌되었는지요?

 

질문 3에 대한 답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5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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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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