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예수님을 실어 나는 수레들로서, 네 생물들(에제키엘 1,10)이 복음사가들을 상징한다는 최초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은 천주강생언행기략(1635) 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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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90.18.*]

2022-04-27 ㅣ No.2454

 

 

1. 들어가면서

 

1-1. 신약 성경 중의 유일한 예언서로 알려진, 요한 묵시록 5,14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은, 전후 문맥 안에서 살펴볼 때에, 다음에 발췌된 요한 묵시록 4,7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을 말함은 매우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1: https://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2&n=173&p=5 

(발췌 시작)

[요한 복음서 5,14]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화답하고 원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이상, 발췌 끝)

 

출처 2: https://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2&n=173&p=4 

(발췌 시작)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이상, 발췌 끝)

 

1-2. 그리고 이들 "네 생물"들의 구약 성경 근거는,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구약 성경의 예언서들 중의 하나인, 에제키엘서 1,10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https://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1&n=133&p=1 

(발췌 시작)

그들의 얼굴 형상은 사람의 얼굴인데, 넷이 저마다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고 왼쪽은 황소의 얼굴이었으며 독수리의 얼굴도 있었다.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다음은 에제키엘서 1,10에 대한 "NAB" (New American Bible)의 주석인데, 이들 네 생물들네 명의 커룹(즉, 케루빔) 천사들이라고 합니다:

 

출처: https://www.vatican.va/archive/ENG0839/_PR9.HTM 

(발췌 시작)

[5] Four living creatures: identified as cherubim in ⇒ Ezekiel 10:1-2(20-21).

(이상, 발췌 끝)

 

1-3. 그런데, 요한 묵시록 4,7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을이 실제로 어떠한 피조물들을 상징하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 안에서, 요한 묵시록 4,7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이 신약 성경의 네 복음사가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세상에 널리 전달하는 자들로서, 설명하는 글들을 읽을 수 있는데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구체적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예상 밖으로, 오류들이라고 아니 지적할 수 없는 분제점들이 이들 글들 중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3-1. (설명 오류가 포함된 Example 1) 


출처: [성서와 함께, 2015년 7월호(통권 472호),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https://home.catholic.or.kr/pdsm/bbs_view.asp?num=235&id=170000&type=S&Page=7&menu=4797 

(발췌 시작)

리옹의 이레네오 교부에 따르면,(*) 사람은 복음서의 맨 첫머리에서 족보를 통해 예수님의 혈통을 나타내는 마태오 복음서의 상징으로 보았고, 사자는 복음의 숭고한 면을 강조하면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언급하는 마르코 복음서의 상징으로 생각했습니다. 황소는 사제였던 즈카르야의 이야기로 복음서를 시작하는 루카 복음서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황소는 사제가 바치는 제사의 제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성령의 선물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같다고 언급합니다. 독수리가 높은 곳에 떠 있는 것처럼 영적인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3: (1) 바로 위의 제1-3-1항에 발췌된 바에 기술된 바로 그러한 관계 설정들을 제시한 분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라틴 교부들 중의 그 첫 번째인, 리옹의 성 이레네오(130-200년)아닙니다.

 

이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표의, 첫 번째 열(column) 및 첫 번째 행(row)에 있는 St. Irenaeus of Lyons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제시한 구분은 바로 위의 제1-3-1항에 발췌된 바에 제시된 구분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소괄호 안에 있는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Symbols of the Four Evangelists (네 복음사가들의 상징들)

출처: https://catholic-resources.org/Art/Evangelists_Symbols.htm <-----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Early Christian AuthorHuman/AngelLionOxEagle
St. Irenaeus of Lyons (리옹의 성 이레네오)MatthewJohnLukeMark
St. Augustine of Hippo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MarkMatthewLukeJohn
Pseudo-AthanasiusMatthewLukeMarkJohn
St. Jerome (성 예로니모)MatthewMarkLukeJohn
Click on the  authors'  names  above to read the full texts.

(이상, 발췌 끝)

 

그리고 첫 번째 열(column) 및 첫 번째 행(row)에 있는 St. Irenaeus of Lyons <--- 여기를 클릭하면, 성 이레네오가, 실제로 어떠한 설명들의 제시와 함께, 바로 위의 표에서 처럼 네 복음사가들을 구분하였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1-3: (1) 끝)

 

1-3-2. (또다른 종류의 설명 오류가 포함된 Example 2)  

 

출처: [성서와 함께, 2015년 9월호(통권 474호),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님]
https://maria.catholic.or.kr/mi_pr/missa/bbs_print.asp?id=169901&ref=1804&menu=4801 

(발췌 시작)

베자의 아프링기우스(6세기)는 《묵시록 주해》에서 앞선 교부들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종합하였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를 해석자들은 대부분 이것이 마르코 복음사가를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 그의 복음서가 이런 말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마르 1,1-2). 여기서 말라키 대신 이사야의 글이 인용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분명 말라키서에도 이런 증언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님의 구원’을 뜻하고, ‘말라키’는 ‘천사’를 뜻합니다. …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는 루카를 이야기합니다. 황소는 사제직을 나타내며 이사야서에 이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물길이 닿는 곳마다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놓아 기를 수 있으리니 너희는 행복하여라’(이사 32,20). 그래서 루카는 복음서 첫머리에서 사제 즈카르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루카 1,5).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는 마태오를 가리킵니다. 마태오는 복음서 맨 처음에 육에 따른 주님의 족보를 알리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는 요한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주님의 인성이나 사제직 또는 광야에서 설교하는 요한의 이야기로 복음서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늘 높은 곳에 가 닿는 독수리처럼 되고 싶어, 낮은 것을 모두 버려두고 하느님이신 그분에 대해 곧바로 이야기했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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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요한 묵시록네 생물들과 관련하여, 4세기 후반 - 5세기 초에 활동한 성 예로니모(342년경-420년)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상당히 오랜 세월 뒤에 생존한 베자의 아프링기우스(6세기)의 《묵시록 주해》를 여기에서처럼 갑자기 언급하는 것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로서는, 상당히 납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 묵시록"의 주해가 6세기에 들어와 바로 이분에 의하여 비로소 처음으로/최초로 제시되었지 않았을 것임은, 상식의 선에서 생각하더라도, 매우 분명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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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3: (2) 바로 위의 제1-3-2항에 발췌된 바에 기술된 바로 그러한 관계 설정들을 제시한 분은, 위의 게시자 주 3-1: 제(1)항에 제시된 표에 의하여, 베자의 아프링기우스(6세기)그 첫 번째가 아님은 매우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3)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위의 제1-3-1항에 안내된 글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하여 위의 제1-3-2항에 안내된 글이 곧바로 마련되어, 두 달 뒤에, 동일한 책 "성서와 함께"에 게시되었다는 생각이며, 그러나, 위의 제1-3-2항에 안내된 글에는, 위의 게시자 주 3-1: 제(1)항에 제시된 표에 의하여또다른 종류의, 즉,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는,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1-3: (2), (3) 끝)

 

1-4. 질문 1: 바로 위의 제1-3항에서 함께 고찰한 오류들이 발생한 근본 이유는 우엇일까요?

 

질문 1에 대한 간단한 답변: 언어 장벽/문화 장벽에 기인하는 개념 전달 장애 때문일 것입니다.

 

본글에서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 장애를 극복하고자, 어떻게 실증적으로(positively) 접근하는지를 또한 함깨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언어 장벽/문화 장벽에 기인하는 개념 전달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본글의 이어지는 항들에서 특히 다음의 연구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2. 유관 사료 분석 I

 

2-1. 위의 게시자 주 3-1: 제(1)항에 제시된 표의  네 번째 항(row)에 나열된대로, 네 복음사가들을 요한 묵시록 4,7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에 대응시키는 것이 위의 제1-3-1항제1-3-2항에 안내된 글들에서 말해지고 있는데, 그러나 이러한 대응 관계를 처음으로/최초로 제시한 분이 성 예로니모인지 혹은 아닌지는, 오로지 이 표를 제공하는 자료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데, 이번 항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가능한 한,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위의 제1-3-1항제1-3-2항에 안내된 글들에서 말해지고 있는 바와 동일한 대응 관계를  성 예로니모가 최초로/처음으로 제시한 것인지 혹은 아닌지에 대하여, 더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어찌되었든지 간에, 성 예로니모와 그 이후의 시기부터, 위의 게시자 주 3-1: 제(1)항에 제시된 표의  네 번째 항(row)에 나열된대로, 네 복음사가들을 요한 묵시록 4,7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에 대응시키는 것이,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에 근거한 삼위일체 신앙고백을 하는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수용되어왔음은, 한 개의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서 파악됩니다. 

 

2-2. 다음은, 3세기의 교회의 저술가인 빅토리노(Victorinus)요한 묵시록 제4장, 제7-10절에 대한 해설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주의 사항 한 개: 바로 아래의 제2-3항을 또한 반드시 읽도록 하라]:

 

출처: 영어 "가톨릭 백과사전": https://www.newadvent.org/fathers/0712.htm 

(빌췌 시작)

From the Fourth Chapter

7-10.

[...]

And in that the living creatures are different in appearance, this is the reason: the living creature like to a lion designates Mark, in whom is heard the voice of the lion roaring in the desert.

 

그리고 바로 그 생물들이 모습에 있어 다른 점에 있어, 다음은 그 이유입니다: 한 마리의 사자 쪽으로 비슷한 그 생물은 [복음사가] 마르코를 나타내는데, 그의 복음서에서 광야에서 포효하는 사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And in the figure of a man, Matthew strives to declare to us the genealogy of Mary, from whom Christ took flesh. Therefore, in enumerating from Abraham to David, and thence to Joseph, he spoke of Him as if of a man: therefore his announcement sets forth the image of a man.

 

그리고 한 명의 사람의 형상(figure) 안에서, [복음사가] 마태오는 우리들에게 마리아의 족보를 선포하고자 노력하는데, 그녀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육을 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에게, 그러고 나서 요셉에게, 하나하나 열거함에 있어, 그는, 마치 한 명의 사람에 대한 것처럼, 그분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공표는 한 명의 사람의 상(image)을 진술합니다.

 

Luke, in narrating the priesthood of Zacharias as he offers a sacrifice for the people, and the angel that appears to him with respect of the priesthood, and the victim in the same description bore the likeness of a calf.

 

[복음사가] 루카는, 즈카르야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한 마리의 희생 제물을 봉헌함에 따른 즈카르야의 사제 직분을 그리고 이 사제 직분과 관련하여 그에게 나타난 천사를, 그리고 이 동일한 서술에 있는 희생물을, 이야기함에 있어, 한 마리의 황소(a calf)의 비슷함을 제공하였습니다(bore).

 

John the evangelist, like to an eagle hastening on uplifted wings to greater heights, argues about the Word of God.

 

복음사가 요한은, 한 마리의 독수리와 비슷하게 더 높은 곳 쪽으로 나래들을 들어올림에 있어 서두르면서,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에 관하여 논합니다(argues).

 

Mark, therefore, as an evangelist thus beginning,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as it is written in Isaiah the prophet;” The voice of one crying in the wilderness, Isaiah 40:3 — has the effigy of a lion.

 

마르코는, 그러므로, 힌 명의 복음사가로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쓰여진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목소리, 이사야 40,3 - 는 한 마리의 사자의 조상(彫像, effigy)을 가집니다.

 

And Matthew,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Matthew 1:1 this is the form of a man.

 

그리고 [복음사가] 마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며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의 책;"  마태오 복음서 1,1 바로 이것이 한 명의 사람의 형태입니다.

 

But Luke said, “There was a priest, by name Zachariah, of the course of Abia, and his wife was of the daughters of Aaron:” Luke 1:5 this is the likeness of a calf.

 

그러나 [복음사가] 루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는데, "아비야 조에 속하는, 즈카르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명의 사제가 있었으며, 그의 아내는 아론의 딸들에 속하였다;" 루카 복음서 1,5 바로 이것이 한 마리의 황소의 비슷함입니다.

 

But John, when he begins,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sets forth the likeness of a flying eagle.

 

그러나 [복음사사] 요한은, 그가 시작할 때에,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으며, 이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하느님이셨다"한 마리의 비행하는 독수리의 비슷함을 시작합니다. 

 

Moreover, not only do the evangelists express their four similitudes in their respective openings of the Gospels, but also the Word itself of God the Father Omnipotent, which is His Son our Lord Jesus Christ, bears the same likeness in the time of His advent. When He preaches to us, He is, as it were, a lion and a lion's cub. And when for man's salvation He was made man to overcome death, and to set all men free, and that He offered Himself a victim to the Father on our behalf, He was called a calf. And that He overcame death and ascended into the heavens, extending His wings and protecting His people, He was named a flying eagle. Therefore these announcements, although they are four, yet are one, because it proceeded from one mouth. Even as the river in paradise, although it is one, was divided into four heads. Moreover, that for the announcement of the New Testament those living creatures had eyes within and without, shows the spiritual providence which both looks into the secrets of the heart, and beholds the things which are coming after that are within and without.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의 우리말 번역 끝)  

 

2-3. 그런데, 바로 위의 요한 북시록 주해가, 성 예로니모 등에 의하여 변질되지 않은, 성 빅토리노의 원 작품인지 혹은 아닌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 시작 부분에서, 바로 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성 빅토리노의 요한 묵시록 주해서 원문을 번역대본으로 삼아,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였다고, 번역자 서문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1: http://bombaxo.com/victorinus-in-apocalypsin/  

출처 2: https://earlychurchrevival.files.wordpress.com/2013/11/st-victorinus-of-poetovio-translated-by-kevin-edgecomb.pdf  

번역자 Kevin P, Edgecomb 에 대하여: http://bombaxo.com/about/

(발췌 시작)

[번역자 서문]

[...]

 

Jerome is responsible for an extensive revision of Victorinus' commentary, dated to 398, which he particularly undertook at the request of a friend to adjust Victorinus' commentary in those verses and passages displaying interpretations which were taken to be chiliastic/millennialistic, a theological opinion which had since been rejected by the Church at large (notice the statement in the Nicean-Constantinopolitan Creed of 381: "of Whose Kingdom there shall be no end"—a creedal rejection of chiliasm). Consequently, essentially two versions of Victorinus' commentary have come down to us: his original and the Hieronymian edition. I have undertaken to translate Victorinus' original and only Jerome's letter to Anatolius (which serves as a prologue to Jerome's version) and Jerome's ending of the work (which replaces Victorinus' commentary on chapters 20 and 21 of the Apocalypse). A relatively poor translation of Jerome's version is included in the Nicene-Post Nicene Fathers collection…..

 

[...]

 

Victorinus Poetovionensis: Commentarius In Apocalypsin

 

[...]

 

3 The four animals are the four Gospels. He says The first is like a lion, the second is like a bull, the third is like a man, the fourth is like a flying eagle; having six wings around them, eyes both inside and outside, and, he says, never ceasing to say Αγιος, αγιος, αγιος, Holy, holy, holy, Lord God Almighty.

 

Twenty-four elders sitting, having twenty-four judgment-seats: are the books of the Prophets and the Law, relating the witness of the Judge. For the twenty-four fathers are the twelve Apostles and the twelve Patriarchs. Therefore, the animals which are different faces, have them for this reason. 


4 The animal like a lion is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which, while all the other Evangelists announced that Christ was made man, it was for him to announce that He was God before He descended and took on flesh, The Word was God,b and because he proclaims like a roaring lion, his preaching bears the face of a lion. Like a man. Matthew made an effort to announce to us the family of Mary, through which Christ received flesh. Therefore, when he recounts from Abraham up to David, and from David up to Joseph, as though spoken of a man, thus his preaching receives the image of a man. Luke also, when he recounts from the priest Zacharias offering a sacrifice for the people and the angel appears to him, because of the priesthood and the sacrifice, this writing bore the image of the bull. Mark, the interpreter of Peter, wrote a record of those things which he generally taught, but not in order, and begins with the word of prophecy announced by Isaiah.


Therefore, they begin thus, saying: John: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b this is the face of a lion. And Matthew: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son of God, son of David, son of Abraham;c this is the face of a man. And Luke thus: There was a priest of the name Zacharias, of the course of Abia, and his wife was of the daughters of Aaron;d this is the image of a bull. Mark begins thus: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as it is written in Isaiah;e it begins with the Spirit flying, therefore, it also has the image of a flying eagle.

 

[...]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3: (1) 위의 제2-2항에 발췌된 바와 전혀 다르게, 바로 위에 발췌된 본문에 의하면, 위의 게시자 주 3-1: 제(1)항에 제시된 표의 첫 번째 행(row)에 나열된대로, 즉,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와 동일하게, 페타우의 주교 성 빅토리노가 네 복음사가들을 요한 묵시록 4,7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에 대응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다른 한편으로, 다음에 발췌된 표를 또한 참고하십시오:

 

출처: The Apocalypse in the Middle Ages, E. Ann Matter, p. 42, Coenell University Press, 1992; [구글 검색 결과] "Latin interpretation of the Apocalypse" "Victorinus" "Jerome" "Apringius"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초기_중세에_요한_묵시록에_대한_라틴_해석_표.jpg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2-3 끝)

 

2-4. 이번 항에서는, 3세기의 교회의 저술가인 빅토리노(Victorinus)에 대한 어떠한 기록들이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 전해내려오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4-0.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3세기의 교회의 저술가인 빅토리노(Victorinus)가 교부들에 포함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21.htm

 

2-4-1. 다음은, 3세기의 교회의 저술가인 빅토리노(Victorinus)에 대하여 단 한 줄을 언급하고 있는, 영어 "가톨릭 대사전""Millennium and Millenarianism"(천년왕국 및 천년왕국설)에 대한 설명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영어 "가톨릭 백과사전": https://www.newadvent.org/cathen/10307a.htm 

(발췌 시작)

Victorinus of Pettau also was a millenarian though in the extant copy of his commentary on the Apocalypse no allusions to it can be detected. St. Jerome, himself a decided opponent of the millennial ideas, brands Sulpicius Severus as adhering to them, but in the writings of this author in their present form nothing can be found to support this charge.

 

페타우의 빅토리노(Victorinus of Pettau)(*1)도 또한, 비록 묵시록에 대한 그의 주석의 현존하는 복사본에서 천년왕국설 쪽으로 어떠한 암시들이 감지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천년왕국설 동조자(a millenarian)였습니다. 그 자신이 이 천년 개념(millennial ideas)들에 대한 한 명의 단호한 반대자였던 성 예로니모(St. Jerome)Sulpicius Severus를 그들 쪽으로 고수하는 자로서 단죄하나, 그러나 바로 이 저자의 저술들에서 이들 저술들의 현재의 형태 안에서 바로 이러한 혐의(charge)를 지지하는 어떠한 것도 발견될 수 없습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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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이 성 빅토리노(St. Victorinus)304년경에 순교한, 270년경에 활약하였던, 페타우 도시의 주교였음 등을 알 수 있다:
https://www.newadvent.org/cathen/15414a.htm 

 

(*2) 번역자 주: 이러한 설명이 제시된 이유는, 요한 묵시록에 대한 성 빅토리노의 주해 본문을 성 예로니모가 수정/변경하였고 그리고 이렇게 수정/변경된 성 빅토리노의 요한 묵시록에 대한 주해서가, 여전히 그의 주해서로서 지금까지 전해내려왔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예를 들어, 위의 제2-2항에 발췌된 바와 제2-3항에 발췌된 바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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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4-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굿뉴스 서버 제공의 성 빅토리노성인전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성인께서 동시대의 어떠한 분들과 교분을 가졌는지 알 수 있으나, 그러나 대단히 아쉽게도, 이 성인께서 요한 묵시록에 주석을 달았다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다행스럽게도, 여기서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성 예로니모를 말하며, 특히 바로 이 성 예로니모성 빅토리노의 책을 많이 인용하였다고 기술하고 있음에 크게 주목합니다:

 

출처: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ctxtSaintId=1140&Orggubun=101&curpage=1&PSIZE=20 

(발췌 시작)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따르면, 성 빅토리누스(또는 빅토리노)는 아마도 그리스 출신으로 수사학자였다. 그는 비록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예루살렘의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3월 18일) 주교가 설립한 도서관을 자주 방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곳에서 교부 성 유스티누스(Justinus, 6월 1일)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의 작품들을 읽었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를 알게 되었고, 성 히폴리투스 (Hippolytus, 8월 13일)오리게네스(Origenes)의 작품에 정통한 사람이 되었다. 또한 라틴어권의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작품을 읽은 것도 이 도서관이었다.

 

   그 후 그는 로마 제국의 속주인 판노니아(Pannonia) 지방 페타우(오늘날 슬로베니아의 프투이, Ptuj)의 주교로 착좌했는데, 그곳에서 신구약성경 몇 권에 대한 주석서를 썼다. 성 히에로니무스도 그 책들을 많이 인용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이단자를 배격했지만, 그 자신이 천년왕국설(Millenarianism)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세기경에 발견된 “우수아르(Usuard)와 아도(Ado)의 순교록”은 그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고, 11월 2일에 축일을 지낸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날은 그의 유해가 로마로 옮겨진 날로 여겨진다. 반면 성 히에로니무스는 어느 박해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283-309년 사이의 박해 중에 순교했다고 한다.

(이상, 발췌 끝)

 

2-4-3. 그리고 다음은, 굿뉴스 서버 제공의 초판본 "가톨릭 대사전"에 수록된 "성신칠은"에 대한 설명 중에서 유관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s://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1772 

(발췌 시작)

   초대 교부들은 칠은을 말할 때 성령의 일반적인 은혜나 바울로의 은사(카리스마)와 구별하지 않았다. 그리스 교부들은 성경의 은혜를 아사야서에 나열된 일정한 숫자로 국한하지 않았으나 라틴 교부들은 '7'이라는 숫자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였다. 피토의 성 빅토리노(St. Victorinus of Petau)칠은요한 묵시록(1:4)의 일곱 천사와, 성 힐라리오(St. Hilarius)는 빵과 물고기의 기적(마태 15:32)의 빵 일곱 개와 각각 관련시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칠은을 진복팔단(眞福八端, 마태 5:3-12)과 대비하고 이사야 예언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보았다. 성 그레고리오 1세는 특히 아우구스티노에 가까운 해석을 하였는데 칠은은 악에 대항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한 도움이 되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하며, 이러한 해설은 후대에 은총론(恩寵論)에 영향을 주었다.

(이상, 발췌 끝)

 

2-4-4. 그리고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어본 성 빅토리노성인전을 읽을 수 있는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요한 묵시록네 생물들에 대한 이분의 언급도, 매우 간단하게라도, 포함되어 있는 등, 위의 제2-3-2항에 안내된 우리말 초판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설명보다 훨씬 더 자세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s://www.catholic.org/saints/saint.php?saint_id=1980 

(발췌 시작)

Commentary on the Apocalypse

 

Victorinus wrote a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that was later republished in a redacted form by Jerome in the 5th century AD. An original unredacted manuscript was found in 1918, however. The commentary was composed not long after the Valerian Persecution, about 260. According to Claudio Moreschini, "The interpretation is primarily allegorical, with a marked interest in arithmology."[9] Johannes Quasten writes that "It seems that he did not give a running commentary on the entire text but contented himself with a paraphrase of selected passages."[10]

 

The book is interesting to modern scholars as an example of how people in antiquity interpreted the book of Revelation. Victorinus sees the four animals singing praise to God as the Gospels, and the 24 elders seated on thrones in Revelation 4 are the 12 patriarchs of the 12 tribes of Israel and the 12 apostles. He also agrees with views that the Whore of Babylon "drunk with the blood of martyrs and saints" represents the City of Rome and its persecutions of Christians, and that The Beast described in chapter 13 represents Emperor Nero. As Nero was already dead during Victorinus's time, he believed that the later passages referred to Nero Redivivus, a monstrous revived Nero who would attack from the East with the aid of the Jews.[11]

(이상, 발췌 끝)

 

2-5.

2-5-1. 다른 한편으로, 다음에 발췌된 표를 들여다보도록 하십시오. 특히 <--- 표시를 한 부분을 반드시 들여다보도록 하십시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etramorph 

(발췌 시작)

 Man       Lion    Calf  Eagle      
Irenaeus (130–202)MatthewJohnLukeMark
Hippolytus of Rome (170–235)MarkMatthew  LukeJohn
Victorinus of Pettau (d. 304)MatthewJohnLukeMark[6]
Epiphanius (310–403)Matthew  MarkLuke  John <---
Chromatius of Aquileia (d. 407)MatthewJohnLukeMark
Jerome (347–420)MatthewMarkLukeJohn
Pseudo-Athanasius (c. 350)MatthewLukeMarkJohn
Ambrose (340–397)MatthewMarkLukeJohn
Augustine (354–430)MarkMatthewLukeJohn
Primasius of Hadrumetum (d. 560)MarkMatthewLukeJohn
St Gregory the Great (540–604)MatthewMarkLukeJohn
Book of Kells (c. 800)MatthewMarkLukeJohn
Adam of St Victor (d. 1146)MatthewMarkLukeJohn
Thomas Aquinas (1225–1274)(*)MatthewMarkLuke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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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바로 이러한 연상 관계를 제시한 근거 문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들 네 생물들이 요한 묵시록에서 거명되는 네 생물들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에 또한 주목하라:

 

출처: https://isidore.co/aquinas/english/Principium.htm 

(발췌 시작)

INAUGURAL LECTURES
Commendation and division of Sacred Scripture

 

[...]

 

The Division of Sacred Scripture

 

[...]

 

Christ is the origin of grace. John 1:16-17: ‘And of his fullness we have all received, grace for grace. For the Law was given through Moses: grace and truth came through Jesus Christ.’ In Christ a twofold nature is to be considered, a divine, and the Gospel of John is chiefly concerned with this, hence he begins,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And a human, and the other Gospels treat chiefly of this, and they are distinguished according to the threefold dignity that belongs to the man Christ. With respect to his royal honour, Matthew speaks. Hence in the beginning of his Gospel he shows that Christ descended from kings and was adored by the Magi kings. With respect to his prophetic honour, Mark speaks, hence he begins with the preaching of the Gospel. With respect to his priestly dignity, Luke speaks, and he begins with the temple and the priesthood and ends his Gospel in the temple, and frequently returns to the temple, as the Gloss says about Luke 2.46: ‘And they found him sitting in the temple in the midst of the teachers.’

 

In another way, Matthew might be said to speak of Christ chiefly with respect to the mystery of the Incarnation, and thus he is depicted in the figure of a man. Luke, with respect to the mystery of the Passion, and therefore he is depicted as a bull, which is an animal to be immolated. Mark, with respect to the victory of the Resurrection, and thus he is depicted as a lion. But John, who soars to the heights of his divinity, is depicted as an eagle.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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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4-2: 위의 표의 행(rows)들에 제시된 정보들이 참인지의 여부는 별도로 확인하여야 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2-5-2. 다음은, 바로 위의 제2-5-1항에서 <--- 표시를 한 부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하고자, 살라미스의 주교 성 에피파니오(St. Epiphanius of Salamis, 310/320-403년)의 저술로부터 발췌한 바인데, 성 예로니모보다 더 이른 시기에, 그러나 성 빅토리노보다는 더 늦은 시기에, 생존한 분으로서, 위의 게시자 주 3-1: 제(1)항에 제시된 표의  네 번째 항(row)에 나열된대로, 제시한 분이십니다:

 

출처 1: https://www.tertullian.org/fathers/epiphanius_weights_03_text.htm 

출처 2: https://ia902205.us.archive.org/5/items/DeanSprengling1935EpiphaniusTreatiseOnWeightsAndMeasures/Dean%20%26%20Sprengling%201935_Epiphanius%27%20Treatise%20on%20Weights%20and%20Measures.pdf

(발췌 시작)

(THE TREATISE) OF ST. EPIPHANIUS, BISHOP OF THE CITY OF CONSTANTIA IN CYPRUS, ON MEASURES AND WEIGHTS AND NUMBERS AND OTHER THINGS THAT ARE IN THE DIVINE SCRIPTURES

 

[...]

 

35. [...] For there are four rivers out of Eden, four quarters of the world, four seasons of the year, four watches in the night, four successive times for prayers in a day and (corresponding) periods, four xestai in the stamnos 342 measure for the manna, four spiritual creatures which were composed of four faces,343 which typify the coming of the Messiah. One had the face of a man, because the Messiah was born a man in Bethlehem, as Matthew teaches.344 One had the face of a lion, as Mark proclaims him coining up from the Jordan,345 a lion king, as also somewhere it is written: ''The Lord has come up as a lion from the Jordan."346 One had the face of an ox, as Luke proclaims----not he alone, but also the other Evangelists----him who, at the appointed time of the ninth hour,347 like an ox in behalf of the world {65a} was offered up on the cross. One had the face of an eagle, as John proclaims the Word who came from heaven and was made flesh 348 and flew to heaven like an eagle after the resurrection with the God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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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349 But MT of Exod. 16:33 says an omer of manna was the quantity. 

343. 350 Ezek. 1:5 ff.

344. 351  Matt. 2:1.   

345. 352 Mark 1:10. 

346. 353 Cf. Jer. 49:19.  

347. 354 Luke 23:44. 

348. 355 John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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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5: (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살라미스의 주교 성 에피파니오(St. Epiphanius of Salamis, 310/320-403년)가 이들 네 생물들이 요한 묵시록에서 거명되는 네 생물들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에 또한 주목하라.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위에 그 일부분이 발췌된 책이 392년에 저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Epiphanius_of_Salamis 

(발췌 시작)

On Weights and Measures (περὶ μέτρων καὶ στάθμων). It was composed in Constantinople for a Persian priest, in 392,[14] and survives in Syriac, Armenian, and Georgian translations (this last is found in Shatberd ms 1141 along with Physiologus and De Gemmis).[15]

(이상, 발췌 끝)

 

(3) 그라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예로니모네 생물들을 언급한 책 "Preface to the Commentary on Matthew"398년에 저술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성 예로니모가 이들 네 생물들이 요한 묵시록에서 거명되는 네 생물들전혀 언급하지 않았음에 또한 주목하라:

 

출처 1: https://catholic-resources.org/Art/Evangelists_Symbols.htm#Jerome 

출처 2: http://www2.physics.umd.edu/~smarsh/hr/Cross_Symbols.html 

(발췌 시작)

The Preface addressed to Eusebius of Cremona, was written A.D. 398. Eusebius was at this time starting for Rome, and he was charged to give a copy of this Commentary to Principia, a friend of Marcella, for whom he had been unable through sickness to write on the Song of Songs as he had wished. Jerome begins by distinguishing the canonical from the apocryphal Gospels, quoting the words of St. Luke, that many had taken in hand to write the life of Christ. He gives his view of the origin of the Gospels as follows:

(이상, 발췌 끝)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살라미스의 주교 성 에피파니오(St. Epiphanius of Salamis, 310/320-403년)에 대한 성인전을 읽을 수 있다: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ctxtSaintId=1913&Orggubun=101&curpage=1&PSIZE=20 

 

2-6. 그러므로, 지금까지 본글의 제1항제2항에서 실증적으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성 예로니모와 그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요한 묵시록"네 생물들"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상(image)은 한 명의 사람, 마르코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상(image)은 한 마리의 사자, 루카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상(image)은 한 마리의 황소, 그리고 요한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상(image)은 한 마리의 독수리임이 지속적으로 수용되어 왔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2) 위의 (이 글의 결론 1)에 제시된 네 개의 연상들을 처음으로/최초로 도입한 자는, (i) 위의 게시자 주 1-3: (1)에 발췌된 바, (ii) 위의 제2-2항에 발췌된 바, (iii) 위의 제2-3항에 발췌된 바, (iv) 게시자 주 2-3: (2)에 발췌된 바, 그리고 특히, (v) 위의 제2-5항에 발췌된 바 그리고 게시자 주 2-5: (1) 및 (2)에 의하여성 예로니모(해당 문헌의 저술년도: 398년)결코 아니고, 당시에 성 예로니모와 매우 가까이 지냈다고 알려진살라미스의 주교 성 에피파니오(해당 문헌의 저술년도: 392년)이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 유관 사료 분석 II

 

3-1. 들어가면서

 

애초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본글을 착성할 때에, 위의 (이 글의 결론 1)에 제시된 네 개의 연상들을 처음으로/최초로 도입한 교회의 저술가가 누구인지를, 실증적인(positive) 입증/고증의 과정 및 제시를 거쳐, 구체적으로 식별하기 위하여, 예상하였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본글의 제1항 제2항의 작성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필자가 이틀 동안의 인터넷 기반 빅데이터의 분석 끝에 마무리하게 된, 바로 이 작업은,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의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인, "천주강생언행기략"의 서문인 "만일략경설"에, 위의 (이 글의 결론 1)에 제시된 네 개의 연상들과 동일한 내용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위의 제2-6항(이 글의 결론 2) 쪽을 향하여(toward) 정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어떤 필요성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일천한, 필자에게 매우 강력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제2-6항에 제시된 (이 글의 결론 2)가, 성서 신학 및 성서해석학 분야 등의 분야들 있어, 얼마나 유의미한 내용인지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바로 아래의 제3-2항에 발췌된, 가톨릭 보편 교회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서도 독자들에게 오류의 사고를 유발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을 제공하고 있음에 비추어 보더라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2.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짝수해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요한 묵시록 4,1-11)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로부터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3_wed.htm 

(발췌 시작)

The author of the Book of Revelation avails of images used by the prophets to describe the glory of Yahweh. The four living creatures are very like those in the prophet Ezekiel's vision of the chariot of the Lord drawn by four angels representing intelligence, nobility, strength and agility (cf. Ezek 1:10; 10:12; Is 6:2).

 

계시의 책[즉,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야훼의 영광을 묘사하기 위하여,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사용된 상(images)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avails of). 이 네 생물들은, 지성(intelligence), 고귀(nobility), 굳셈(strength) 그리고 민첩/재빠름(agility)을 나타내는 네 천사들에 의하여 이끌어졌던, 주님의 병거/수레(chaiot)에 대한 예언자 에제키엘의 환시에 등장하는 바로 그 상들과 매우 비슷합니다 (다음을 참조하라: 에제키엘 1:10; 10:12; 이사야 6:2).

Christian tradition going back as far as St Irenaeus has interpreted these four creatures as standing for the four evangelists because they "carry" Jesus Christ to men. The one with the face of a man is St Matthew, who starts his book with the human genealogy of Christ; the lion stands for St Mark: his Gospel begins with the 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 (which is where the lion's roar can be heard); the ox is a reference to the sacrifices in the temple of Jerusalem, which is where St Luke begins his account of Christ's life, and the eagle represents St John, who soars to the heights to contemplate the divinity of the Word. 

 

성 이레네오에게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은 이들 네 생물들을을 네 복음사가들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해석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 쪽으로 "운반하기" 때문입니다.(*1) 한 명의 사람의 얼굴을 가진 그 하나는, 자신의 책을 예수님의 인간적 족보와 함께 시작하는, 성 마태오이고; 이 사자는, 자신의 복음이 사자의 포효가 들릴 수 있는 장소인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성 마르코를 나타내며; 이 황소는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 있는 희생 제물들 쪽으로 한 개의 언급인데, 이 장소는 성 루카가 예수님의 삶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바로 그 장소이며; 그리고 이 독수리는, 거룩한 말씀의 신성(divinity)을 관상하기 위하여 높은 곳 쪽으로 치솟는 자인, 성 요한을 나타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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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자 주: 그러나,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의 고유한 해석은 곧바로 뒤따르는 길다란 문장에 제시된 바가 아니었음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 지적은 위의 게시자 주 1-3: (1)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 번역자 주: (1)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본글에서 지금까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바로 이러한 해석을 제시한 교회의 저술가들에, 라틴 교부인, 성 예로니모(해당 분헌의 저술 년도: 398년)가 포함됨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이에 관하여서는 위의 게시자 주 1-3: (2) 및 위의 제2항 전문을 읽도록 하라.

 

(2) 그리고 더 나아가, 바로 이러한 해석을 최초로/처음으로 제시한 교회의 저술가는, 당시에 성 예로니모와 매우 가까이 지냈다고 알려진, 그리스 교부인, 살라미스의 주교 성 에피파니오(해당 문헌의 저술년도: 392년)이었임에 대하여서는 위의 제2-5항제2-6항을 반드시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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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3.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성경의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인, "천주강생언행기략"의 서문인 "만일략경설" 전문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권1_0_만일략경설&조목_4-19 (<--- 여기를 클릭하여, 만일략경설 전문을 읽도록 하십시오) [만일략 = 복음(Gospel), 마두 = 마태오 (Matthew), 마이가 = 마르코 (Mark), 로가 = 루카 (Luke), 약망 = 요한 (John), 액제아(阨濟亞) = 그리스, 라마 = 로마, 성인 열라니모 = 성 예로니모 (St. Jerome, 347-420년), 성 달마소 교종 = 성 다마소 교황 (St. Damaso, Pope, 305-384년, 재위기간: 366-384년), 성인 오사정 = 성 아우구스티노 (St. Augustine, 354-430년), 슬도 = ???, 의살백이 = 엘리사벳, 액일다 = 이집트, 니각득목 = 니코데모, 서가이 = 시카르(즉,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 가리륵아 = 갈릴래아, 갈발옹 = 카파르나움, 납영 = 나인, 일낙살이 = 겐네사렛, 저락 = 티로, 백살의달 = 벳사이다, 대박이 = 성경 본문에 주어지지 않은 주님 거룩한 변모가 일어난 산의 이름, 살마리아 = 사마리아, 백대니아 = 베타니아, 엽례각 = 예리코, 비랄다= 빌라도, 흑라득 = 헤로데] [주: 첫 번째 각주인 "중국인들이 만일략 이라고 말하는/일컫는" 에 대한 각주에서, "즉,  번역한 말(譯語)은 호보(好報, 좋은 소식) 복음(福音)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음. 다음에 있는 글을 또한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3_만일략.htm.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데,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이 용어의 의미/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주: 교황님을 말하는 "교종"이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사도 마태오와 사도 요한에 대하여] "종도" (즉, 요즈음 표현으로 "사도"), [마르코와 루카에 대하여] "성도"라는 번역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 마태오 복음서"여덕아"국 문자, 즉, 마태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저술되었음과, 나머지 세 복음서들이 "액제아"국 문자, 즉, "그리스어"로 저술되었음을 말하고 있음.] [주: 마태오 복음서가 애초에 (즉, 기원후 50년 경에)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저술되었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성서학자이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가르침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3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33.htm. 또한 성 예로니모가 다마소 교황님의 명령을 받아 성경을 태서제국(즉, 태서의 여러 나라들, 즉, 로마 제국의 여러 나라들)이 송독(즉, 글을 소리내어 읽음)하는 것을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로마 문자(즉, 라틴어)로 번역하였다는 언급도 있음.]  

(이상, 발췌 끝)

 

출처 2: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536227#p24 

(발췌 시작)

萬日略經說

 

造物主聖教,有古經,有新經。古經天主未降生啟示先聖,令傳溥世,即以將降生事旨豫詳其中。新經天主降生後,宗徒與時聖人紀錄者。中萬日略譯言好報福音經,即四聖紀吾主耶穌降生,在世三十三年,救世贖人,以至升天,行事垂訓之實,誠開天路之寶信經也。

 

조물주(造物主)의 거룩한 가르침(聖教)은 고경(古經)에 있고 신경(新經)에 있는데, 고경(古經)은 이 가르침에 따라(廼) 천주께서 강생(降生)하지 않으시면서(未) 앞선 성인들에게 계시(啟示)하시여 넖은 세상에 전할 바를 명하신 즉,  이에 따라(以) 장차 강생하실 일의 뜻(의지, will)이 그 가운데에 있음을 예상케 하고, 신경(新經)은 이 가르침에 따라(廼) 천주께서 강생(降生)하신 후에, 종도(宗徒)와 더불어 동시대의 성인(聖人)들이 기록한 바로 그것(者)인데, 중국어로 일컬어 만일략(萬日略, Vangelo)[번역하여 말하면 호보(好報), 복음(福音)]경(經)인 즉, 네 성인들이 오주(吾主) 야소(耶穌)의 강생(降生), 세상에 삼십삼년간 계심, 세상과 인간들을 구속하심(救世贖人), 승천에 이르심으로써, 수훈(垂訓)을 행사하신 열매(實), 정말로(誠) 천로(天路, 하늘에 이르는 길)를 여신 보배(寶)를 기록한 신경(信經)이니라.

 

此經出天主,錄四聖,及後諸教宗,與聖教公會准定,明示普天下,尊信為 天主真典者也。

 

바로 이 경(經)은 천주(天主)에게서(, from) 나오고 네 성인들에 의하여(, by) 기록되었는데(錄), 이후(後)의 모든 교종(教宗, Popes)들 및 거룩한 가르침(聖教)의 보편 교회(公會, universal Church)가 온 천하가 천주의 진전(真典)으로 삼아 존중하고 믿어야 함을 준정(准定)하여 명시(明示)한 바로 그것(者)에 이르게 되었나니라(及, reach).

 

或問:「命出 天主,奚必待人准定。」

 

간혹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데: "명(命)이 천주로부터 나왔다는데, 왜(奚, why) 반드시(必) 사람의 준정(准定)을 득(待)하여야 하는지요?"

 

曰:「 天主降誥人,猶人主出令民;古聖紀錄其命,猶臣工書𠡠;教宗准定行,猶𠡠命需符璽也。但其所以行,豈筆札符璽之力哉[?] 亦主上之權,而筆札符璽,不過一為証據,勿致訛傳謬信云耳。

 

답하여 가로대: "천주께서 사람들에게 고(誥, 말씀/훈계)를 내리심은(降), 마치 사람들의 주인(人主, 즉, 임금)이 백성에게 령(令, official order)을 발함(出)과 같고(猶), 옛 성인들이 그분의 명(命, orders)들을 기록함(錄, record)은, 마치 대신들과 관리(臣工, ministers and officials)들이 왕명(𠡠, imperial decrees)들을 글로 씀(書, write)과 같으며, 교종(教宗)들이 이 가르침에 따라(廼) 행하여야 할 바들을 준정(准定)하는 것은, 마치 왕명((𠡠, imperial decree)이라는 명(命, order)이 황제의 인장(符璽, emperor's seal)을 필요로 함(需)과 같은 것이나(猶), 다만(但) 이와 같이 행하는 바가, 어떻게(豈, how) 손으로 쓴 서신(筆札 handwritten letter)의 황제의 인장(符璽)의 힘일 수가 있겠는가? 또한 주상(主上)의 권위으로 말미암아 손으로 쓴 서신(筆札 handwritten letter)의 황제의 인장(符璽)인 것은, 한 개의 증거(証據)에 불과(不過)하니, 와전(訛傳)의 그릇된 믿음(謬信)이 말하는 것을 야기하지(致, cause) 말아야 할지니라.

 

然四聖所紀,更令古今一切人尊信者,言言質實,略無粉飾。其所本無,固毫不誇詡以炫俗。即其中有超絕事理,非人情所遽信者,亦盡明書,不敢委脫以阿。又或有不尊聖教,與夫門徒過差,似令人聞而搖其信者,亦據事直書,不敢隱諱,以避耳目。其所以然者,蓋種種所紀,其中妙義,雖非一時俗眼所能盡明,然細繹其旨,皆砭世之金針,訓人之大道也。」

 

그러나 네 성인들이 기록한 바는, 오히려(更) 옛과 지금의 전체 사람들로 하여금 존중하고 믿도록 만드는 행위(令, make) 바로 그것(者)인데, 모든 말(言言)들은 질실(質實)하고 전체적으로(略) 분식(粉飾, camouflage, covering up)이 없어서, 그 본(本, origin)인 바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게(固) 털끝만큼도(毫) 과후(誇詡)함으로써 속(俗,custom)을 어지럽게 함(炫)이 없음인 즉, 그 한가운데에 사리(事理)를 초절(超絕)함이 있어, 인정(人情)이 능히 급하게 믿는 바가 아닌 바로 그것(者)이며, 또한 다만(盡) 글을 밝힘을 다할뿐, 감히(敢) 벗어남을 내버려 두어 무리(衆)에 영합하지 아니함이고, 또한 혹시 거룩한 가르침을 존중하지 않아서 대저(夫) 문도(門徒, disciples)들과 크게 차이가 남(過差)에 같이하더라도(與), 사람들로 하여금 들어서 자신들의 믿음을 흔들도록(搖) 만드는 행위(令, make)와 비슷한(似) 바로 그것(者)이며, 또한 일에 근거하여(據) 곧게 글을 씀(直書)은 감히(敢) 은휘(隱諱)하여 그리하여 남들의 귀와 눈(耳目)을 회피하고자 함이 아닌 것이니, 그 이유는 그들의 까닭/원인(cause)인 바(其所以然) 바로 그분(者)[즉, 천주]께서, 대개(蓋) 각종 각양(種種)의 기록된 바의 한가운데에 있는 미묘한 의미(妙義)들을, 아무리(雖) 잠시라도(一時) 속안(俗眼)이 밝힘을 능히 다하지 못하더라도, 그러나 그 뜻을 자세하게 풀어내심, 모두가 세상을 찌르는(砭, piece)는 쇠침(金針)이 되고, 사람들을 훈계하는 대도(大道)가 되기 때문이니라. 

 

或曰:「萬日略既為天主旨,一聖紀之足矣,何必四聖[?]」曰:「一聖雖足傳,然世情病在多猜,必聖共紀,其信方更堅也。」

 

혹은 가로대: "만일략(萬日略)이 이미 천주의 뜻/의지(旨, will)이라면, 한 명의 성인(聖)이 그것을 기록하면 충분할진데(足, satisfy), 어찌하여 반드시 네 성인들인지요?" 답하여 가로대, "한 명의 성인이 비록 충분하게 전할수 있었지만, 그러나 세상의 정(情)들과 병(病)들에 다양한 독(多猜)들이 있어, 반드시(必) 무리의 성인(聖)들이 공통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었으니, 그들의 믿음이 개선된 견고함(更堅)에 의존하니라(方, rely on)."

 

四聖維何[?], 曰瑪竇,曰瑪爾謌,曰路加,曰若望。瑪竇與若望者,宗徒也;瑪爾謌與路加者,當日聖徒也。其紀錄也,瑪竇則取如德亞本國文,三聖則取列國通用之厄濟亞國文。今所行者,則羅瑪文字,乃後來聖人熱羅尼莫奉聖達瑪肅教宗之旨所譯,以便泰西諸國誦讀者也。

 

네 성인들은 어떻게 보존하였는지요(維)? [그들은] 가로대 마두(瑪竇, 마태오), 가로대 마이가(瑪爾謌, 마르코), 가로대 로가(路加, 루카), 가로대 약망(若望)인데, 마두 및 약망이란 자들은 종도(宗徒, apostles)들이었고, 마이가 및 루카란 자들은 당시에 성도(聖徒, diciples)들이었으며, 마두는 여덕아(如德亞) 본국(本國)의 글자(文)들을 취함을 모범으로 삼았고(則), 세 성인들은 여러 나라들이 통용하는 엑제아(厄濟亞, 그리스) 나라의 글자(國文)들을 취함을 모범으로 삼았으며(則), 지금 세대(今所行)인 자들은, 라마(羅瑪, 로마) 문자들을 모범으로 삼는데(則), [이것은] 정말로(乃, indeed) 그 이후에(後來, afterwards, later) 성인인 예로니모(熱羅尼莫)가 성 다마소(達瑪肅) 교종(教宗)의 뜻을 받들어 번역하였기 때문이니, 이로써(以) 편하게(便) 태서(泰西)의 모든 나라(諸國)들이 송톡(誦讀)하게 되었나니라. 

 

古經中[번역자 주: 에제키엘 1,10]豫指四聖以四像。一人像,乃指瑪竇,多紀論吾主降生人性之事;一獅像,乃指瑪爾謌,矢口即紀論當時聖若翰,在郊野高聲曉,共認吾主耶穌降生,如獅子吼然。一牛像,乃指路加,矢口即紀論奉祭天主之禮,如古用牲者。一鶚像,西言曰,亞已辣[aquila, 독수리]能直視太陽而目不眩。乃指若望矢口即紀論天主之性,挈其玄奧,如鶚高戾天,而仰日光,不眩其目也

 

고경(古經, the Old Testament) 중에서[번역자 주: 에제키엘 1,10], 일찍이 [이들] 네 성인(四聖)들을 네 상(四像, four images)들로써 예지(豫指)하였으며, (i) 한 명의 사람(人)의 상/모습(像)은, 이에 따르면(乃) 마두(瑪竇, 마태오)를 가리키는데, 오주(吾主, 즉, 예수님)의 강생(降生) 및 인성(人性)의 일[예를 들어, 예수님의 족보 등]에 관하여 말함(論, talk about)을 기록한 것(紀, record)이 많기(多) 때문이고, (ii) 한 마리의 사자(獅) 상(像)은, 이에 따르면(乃) 마이가(瑪爾謌, 마르코)를 가리키는데, 불쑥 입을 열어 말하는 즉 [矢口即, 자신의 복음서에서의 첫 말인 즉], 당시에 성 약한(若翰, 요한)이 교야(郊野)에서 큰 소리로 새벽에(曉) 무리에게 "우리들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강생을 함께 인식하라"에 관하여 말함(論, talk about)을 기록한 것(紀, record)이기 때문인데, 이것은 마치 사자(獅子)가 포효하는 것 같으며, (iii) 한 마리의 황소 상/모습(像)은, 이에 따르면(乃) 로가(路加, 루카)를 가리키는데, 불쑥 입을 열어 말하는 즉 [矢口即, 자신의 복음서에서의 첫 말인 즉], 천주를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예의(禮)에 관하여 말함(論, talk about)을 기록한 것(紀, record)이기 때문인데, 이것은 마치 옛날에 희생 제물을 봉헌하는(用牲) 자(者) 같고, (iv) 한 마리의 물수리(鶚) 상/모습(像)은, 서양 언어[즉, 라틴어] 가로대, 아퀼라(aquila, 독수리)인데 능히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나 그 눈들이 핑핑 돌지() 않음. 이에 따르면(乃) 약망(若望, 요한)을 가리키는데, 불쑥 입을 열어 말하는 즉 [矢口即, 자신의 복음서에서의 첫 말인 즉], 천주성(天主之性)에 관하여 말함(論, talk about) 및 그 현오(玄奧)를 들어 올림(挈)을 기록한 것(紀, record)이기 때문인데, 이것은 마치 물수리(鶚)가 하늘에서 높이 도달하여 햇빛(日光)을 우러러 바라보나(仰) 그러나 그 눈들이 핑핑 돌지(眩) 않음 같으니라. 


聖人奧斯定曰:「紀錄正教好音,有四聖者,如昔福地中有四大河,潤澤萬物也。」

 

又古賢瑟都略云:「萬日略之經,如太陽溥照宇宙。紀錄四聖,則如四季,皆聖訓之陽和、醞釀,發育人心也。」

 

弟四聖意旨,各有專屬。在瑪竇,則多以古經及古聖人預言,明耶穌天主降生名號,譯言救世主。實為所久望降生救世之主也。若瑪爾謌,則多以耶穌諸靈跡大能,超越人神之力者,証其實為至尊萬有之主。路加,多紀吾主耶穌聖訓,與赦人罪之事,以明其降世贖人,醫療人心之疾。至若望,則闡發天主本性,以明吾主雖降世為人,實則從無始而生罷德肋,真為天主子也。

 

要之吾主耶穌,真是人,任人可學;真是天地之大主,任古來至聖,不可擬其萬一也。顧吾主在世,第用身教口授,未嘗著。若四聖之意,則舉親見聞者急記之,庶免遺謬,無遺謬,則信者無疑,不信者無辭。且一時言傳,久之或忘或愆,書則永存矣,且行之久遠而無斁矣。

 

雖然主之義,至深無窮,其降生在世,言行奧指,何可殫述。聖若望,既紀錄之,複跋其末曰,耶穌言行之詳若必欲一一紀述,恐六合雖廣,不能容受。猗與休哉[!]

 

今將四聖所編, 會撮要略,粗達言義,言之無文,理可長思,令人心會身體,以資神益,雖不至隕越經旨,然未敢云譯經也。 

(이상, 발췌 및 일부 단랄들의 우리말 번역 끝)

 

 

"천주강생언행기략"의 서문인 "만일략경설"의 유관 부분에서:

矢口即(시구 즉) = 불쑥 입을 열어 말하는 즉, [자신의 복음서에서의 첫 말인 즉,]

亞已辣 = aquila (라틴어의 음역이며, eagle, 독수리), 

 

"천주강생성경직해", 권1의 시작 부분에서 "성경", 즉, "신약 성경"에 대한 설명에서, 이들 네 생물들 중에서, "독수리"를 거명하는 대신에, 한문 문화권에서 길조를 상징하는 상상의 상서로운 새인, 봉(鳳)으로 불리는 수컷 새, 즉, 봉조(鳳鳥)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한문 문화권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전교/복음화에 있어 톡착화를 위하여,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이러한 교첵가 발생하였다는 생각임.

 

 

 

다음의 굵게 파란 색칠을 글자들을 클릭하면, 요한 묵시록 4,7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들이, (i)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뿐만이 아니라, 또한 (ii) 디지털화되여 인터넷 상에 제공되고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들에서, 이들이 요한 북시록에서 거명되고 있는 "네 생물들"임을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자신의 특정 저술의 출처 혹은 근거로서 전혀 인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Apocalypse 4" "summa theologiae" site:newadvent.org

"Rev 4" "aquinas" site:isidore.co 

 

그러니까, 신학(Theology)이라는 가장 고급의 형이상학적 과학/학문(the most advanced metaphysical Science)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요한 묵시록 4,7에서 말해지고 있는 "네 생물"들 각각이 신약 성경의 네 복음사가들을 상징한다는 해석/이해 자체에 있어, 비록 성 아우구스티노가 나름대로 그러한 특정 해석 한 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엄밀하게 고찰할 때에, (i) 그러한 해석/이해의 과정에, 과도한 추정(inordinate presumption)을 하는 행위가 개입될 여지가 다분히 있음을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미 잘 알고 있었으여, 더 나아가, (ii) 어떠한 경우에도, 신학(Theology)이라는 가장 고급의 형이상학적 과학/학문(the most advanced metaphysical Science)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진리들이라고 생각하였던, "천동설"[주: 17세기 초에 이르러 천체에 대한 관잘 능력을 대폭으로 증대하는 정밀 관찰 및 측정 도구인 "망원경"의 성능 개선 및 실용적인 사용 이후에 비로소 처음으로 이 학설이 대단히 심각한 오류임이 입증됨] 및 "자연 발생설"[주: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미생물들의 세계에 대한 관찰능력을 대폭으로 증대하는 정밀 관찰 및 측정 도구인 "현미경"의 최초 고안, 성능 개선 및 실용적인 사용 이후에 비로소 처음으로 이 학설이 대단히 심각한 오류임이 임증됨] 이들 둘 다의 범주들 안에서 등장하는 소위 말하는 특정 시대 및 특정 지역의 "신화" 혹은 이와 등가인 바, 혹은 특정 시대 및 특정 지역의 "전설" 혹은 이와 등가인 바를 뒷받침하는, 비과학적/ 비학문적 분야일 수가 결코 아님을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38항에서는, 요한 묵시록에서 거명되고 있는 "네 생물"(the four living beings)들이 모든 피조물(all creation)들을 나타낸다고 단 한 번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요한 묵시록에서 거명되고 있는 "네 생물들"에 대한 언급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전체에 걸쳐 제1138항에서 단 한 번뿐입니다.

 

작성 중입니다 

 

 

성 클레멛트 1세 교황 성인전

https://www.newadvent.org/cathen/04012c.htm 

 

성 아우구스티노

https://www.newadvent.org/fathers/1602106.htm 

 

"Pseudo-Athanasius" "Synopsis scripturae sacrae"

http://hypotyposeis.org/weblog/2003/11/symbols-of-the-four-evangelists-pseudo-athanasiu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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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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