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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 하느님 여기 있지![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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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칠 [mpark] 쪽지 캡슐

2003-01-05 ㅣ No.3246

주님 공현 대축일                                                       2003. 1. 5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언젠가 어린 아기들의 그림책을 보았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동물 하나가 앞 발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꿀꿀이 돼지 없다!"

 

그 다음 쪽에는 동물이 앞 발을 치우면서 자기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리곤 말합니다.

"까꿍! 꿀꿀이 돼지 있다!"

이름하여 까꿍 그림책입니다.

 

까꿍 놀이는 엄마와 아기 사이의 훌륭한 놀이입니다.

엄마는 슬쩍 몸을 숨깁니다.

아기는 엄마가 보이지 않자 당황합니다.

아기는 울음을 터뜨리려 합니다.

그 때 엄마는 당신의 모습을 서둘러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까꿍! 우리 아기, 엄마 여기 있지!"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서방 교회는 12월 25일에 주님 탄생 축일을 지내지만

동방 교회는 오늘 주님 공현 축일에 성탄절을 지냅니다.

공현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공적으로 드러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공식적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꼭꼭 감추시고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오늘도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 볼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를 계시 종교라고 합니다.

계시라는 말이 바로 ’드러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셨기에 그리스도교는 그 역사를 시작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교는 계시 종교, 곧 까꿍 종교이고,

오늘 주님 공현 축일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까꿍! 드러내신" 축일,

곧 "하느님의 까꿍 축일"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오스딩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먼저 드러내 보여 주셨기에

우리들이 당신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 주셨기에

우리가 당신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드러나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성탄 감사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이는 하느님을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하셨습니다!"

 

성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일찌기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까꿍!" 하고 당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면,

인류는 엄마를 찾는 어린 아기처럼 오늘도 눈물 흘리며 몸부림쳐야 했을 것입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까꿍! 하는 것은 아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하느님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오늘 복음에서 동방 박사들이 본 별은 밤하늘에 떠오는 빛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는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성 요한은 말했습니다.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후배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요즈음 너무 은둔 생활 하는거 아니야?"

 

드러나기를 꺼려하는 제 성격 때문에 저는 가능한 한 대외활동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진정 드러내 보일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께서 숨겨 놓으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친절, 따뜻한 미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공동체를 위해 무엇인가 일하고 싶은 마음 등...

 

올 한 해 모두가 웃으면서 이웃에게 "까꿍!"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까꿍! 내 사랑 여기 있다! 까꿍! 내 친절 여기 있지!"

 

우리의 하느님은 까꿍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까꿍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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