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진 자료실

[성당] 인천교구 김포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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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03-26 ㅣ No.1210

 

[믿음의 고향을 찾아서] 인천교구 김포 성당

땀방울 스며있는 옛 석조 성당 그대로 보존

 

 

(사진설명)

1. 김포본당은 99년 지금의 성전(왼쪽)을 세우면서 신자들의 땀방울이 스며있는 옛 석조 성당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

2. 지난 99년 새로 단장한 성당 내부.

3. 1930년대 걸포리공소 교우들.

 

 

성당 외형은 물론 신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오늘날엔 본당마다 지닌 고유한 역사는 외형에 가려 한 발짝 밀려나 있는 게 사실. 그만큼 신앙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값진 정신이 어린 '믿음의 고향'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달려 마주하게 되는 인천교구 김포성당(주임 박복남 신부)은 신앙 선조들의 숨결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는 '믿음의 고향'과 딱 어울리는 곳이다. 인천교구에서는 주교좌 답동과  소사 이어 세번째로 1948년에 설립된 세번째 본당이기도 하지만 5년 전에 지은 새 성전과 1956년에 완공한 옛 석조성당을 함께 지니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만평이 넘는 넓은 부지에 지어진 성당을 향해 완만한 언덕을 오르다보면 철콜 콘크리트조의 웅장한 새 성전과 오른쪽 언덕 위 옛 성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옛 성당으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오를 때는 한적한 시골 공소에 와 있는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지하 1층 지상 3층 철근 콘크리트 구조인 새 성전은 5년밖에 되지 않은 탓인지 '새 것' 같다는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난다. 탁 트인 성전 내부와 완만한 굴곡으로 천장은 세련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 단순한 구조이면서도 형형색색의 색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당 뒷켠에 앉아 양쪽 벽 창문으로 내려비치는 햇살 속에 제대 뒷벽에 걸린 십자가와 그 아래 감실을 바라보노라면 양쪽 벽 창문으로 내려비치는 햇살이 마치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처럼 와 닿는다.

 

김포본당 역사는 1930년대 걸포리 공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포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걸포리공소는 1946년 11월 본당으로 승격, 초대 주임으로 김병호(베네딕도, 1946~1950) 신부가 부임했다. 그 후 본당 소재지가 걸포리에서 현재 위치인 김포면 북변동으로 옮겨지면서 '김포본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가 1948년이다.

 

본당 개명 후에도 걸포리본당의 12칸 초가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신자들은 3대 주임 신원식(루가, 1955~1960년) 신부 부임 후 새롭게 성당 터를 닦기 시작, 신축 석조 성당 건설에 힘을 모았다. 지금에야 굳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아도 포크레인 등 기계가 알아서 척척 건물을 지어내지만 곡갱이나 가래 등 농기구가 전부였던 당시에는 신자들이 직접 손으로 성당 공사를 해야만 했다.

 

신 신부와 남성 신자들은 계양산 중턱에 올라 직접 큰 돌을 나르고, 여성 신자들은 곡갱이로 땅을 일구거나 근처 개울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날랐다.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인 데다 신자 대부분이 농민이어서 농업 활동을 끝낸 저녁 때가 돼야 모두 모여 일을 시작한 탓에 일을 하다 새벽을 넘길 때가 잦았다. 그러나 신자들은 한창 바쁜 농번기에도 자기 생계보다 성당을 짓는 일이 항상 먼저였다.

 

"경사가 가파른 산에 올라가 직접 돌을 나르다 보니 한번은 손수레가 뒤집혀서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신자들 모두의 땀이 배 있는 만큼 요즘 지어지는 성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소중합니다." 당시 석조 성당 건설에 참여했던 본당 사목부회장 김상렬(베드로, 68)씨의 회고다.

 

1년여간 신자들이 손으로 직접 지은 99평 석조 성당은 1956년 12월 노기남 대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이옛 성당은 지금은 주일학교 중·고등부 교리실로 사용되면서 신자들에게 옛 향수를 선물하고 있다.

 

김포본당의 옛 성당과 새 성당은 신자 수 100여명에서 출발해 이제는 7600여명에 이르는 공동체로 성장한 본당의 산 역사를 대변해 주는 두 나무다.

 

1만여평에 달하는 성당 부지는 피정의 집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넓은 야외 십자가의 길과 야외 미사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는데, 특히 조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봄·가을이면 도심 속 공원처럼 꽃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당으로 탈바꿈, 지역 주민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성당을 지으면서 옛 석조 성당에 있던 종을 그대로 새 성전 종탑에 옮겨와 옛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김포본당만이 지닌 특별한 매력. 예수부활 대축일 전야미사 때와 새로운 한해를 맞는 12월31일 자정에는 신자들이 직접 종을 울린다.

 

김포본당 신자들은 특히 지역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근처 복지관은 물론이고 지역 홀몸 어르신 가정이나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 비신자 가정을 방문,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김포본당이 지역 주민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다.

 

박복남 신부는 "앞으로 기존 신자는 물론 쉬는신자 회두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본당 공동체 활성화에 더욱 노력해 김포본당이 김포 지역의 신앙 고향으로 계속 자리잡아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제763호(2004년 3월 7일), 백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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