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당분간 게시판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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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0-09-09 ㅣ No.426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랫만이군요.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동기 신부들과 함께 한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시간 기억에 남는 것은 나흘동안 돌아다녔던 장소가 아니라 사제로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것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대화입니다.

 

같은 사제로서, 특별히 같이 서품을 받은 동기로서 편안한 가운데에서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어도 한마디 한마디 삶이 담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지요.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은총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었는데, 본당 청년 세 분이 공항으로 마중나왔습니다. 조금 당황했지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습니다. 표정도 어색했구요. 이자리에서 정말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동기 신부들의 치기어린 눈빛을 뒤로 하고 청년들과 함께 본당으로 향했습니다. 차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솔직히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을 마무리하고 싶었었는데 전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내일 이야기를 하지'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은 며칠만에 저를 보니까 너무나 반갑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차안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게시판에 관한 것도 있지요. 게시판을 열어보았습니다. 한 친구가 전화를 해서 오늘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고 내일 게시판을 열어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중간에 그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지금 조금은 피곤하고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내일 새벽미사때 휴가 다녀온 후에 맑고 건강한 모습으로 신자분들과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게시판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지만 다 쏟아 낼 수는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믿음의 벗들을 사랑하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교회 안에서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의 한 사람으로서,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쉽게 쏟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사제로서의 양심을 온전히 담아내야 하기에 참으로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신중하다는 것과 가식적이라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나누어야 할 부분이 있는가 하면 비공개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공개'를 밀실 속에서 단 몇몇이 쏙닥거리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아래 감추어진 것은 모두 다 드러날 것이기에, 비공개라는 것, 비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적어도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때와 장소, 내용과 듣는 이에 따라서 공개됨으로써 오히려 혼돈을 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혼돈을 피할 수 있는 만큼은 피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을 합니다.

 

당분간 본당 게시판을 떠나려고 합니다.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대화의 문은 열어놓겠습니다. 특별히 '장미의 이름', '서호성 님'께 말입니다. 굳이 두 분을 지칭하는 것은 두 분께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다른 형제 자매님들은 일상 생활안에서 쉽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데 반해서, 제가 두 분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두 분과 특별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연락을 주시고 찾아주십시오. 사제관에서도 좋고, 밖에서도 좋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두 분께서 올리신 글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을 참고로 적겠습니다.

 

서호성 님의 글, [게시번호 4212 ] 모든 사람은.....

익명성에 대해서 고해성사와 비교를 하셨는데, 고해성사의 비밀과 게시판 상의 익명성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호성님은 아직 신자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고해성사(저는 개인적으로 고해성사의 은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체험했습니다.)에 대해서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장미의 이름 님의 글

[게시번호 4190]  필명유정

다른 종교 사이트에 신앙상담을 하는데 있어서 필명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님께서 올리시는 글들은 신앙상담이 아니라, 체험이나 생각에서 나오는 님의 주장입니다. 그러기에 필명 사용에 대한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이유로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찾아오십시오. 어떤 이야기든지 함께 만나 이야기할 용의가 있습니다.

 

[게시번호 4223] 장미의 이름의 마음을(Re:4205)

님의 글에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단지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단 몇 줄로 서술하는 것은 절대 부족인 내용들입니다. 그렇기에 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오해의 소지가 무척 다분합니다. 한번 볼까요. 하느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 무류성, 우상숭배, 성서(聖書)와 성전(聖傳; 참고로 개신교에서는 성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서 해석, 경신행위로서의 미사와 제물, 순교 등등. 이 중 하나의 주제 안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모든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게시번호 4225] 내탓이라고만 하더이다(Re:4205)

'내 탓, 네 탓', 표리부동인 사제의 모습,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서 제3자 될 수 없습니다.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모두의 숙제입니다. 과연 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게시번호 4250] 서언 1

이제 본격적으로 '필명'으로 올리는 님의 글이 시작되는군요. 이 글에도 많은 주제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인 믿음, 교회 일치 운동, 교회법, 개신교신자(우리 가톨릭에서 개신교 신자들을 결코 '비신자'라고 규정하지 않습니다. '갈라진 형제'라고 받아들이지요.) 등등. 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부분들이 너무나고 강한 어조로 주장되고 있기에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교회법전을 한번이라도 읽어보셨나요? 왜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렸는지, 무엇이 다른지 알고 계시나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답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게시번호 4253] 안식일에 대하여

게시물의 제목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면, 얼핏 '안식일'에 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성서와 성전(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개신교는 성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에 대한 입장, 성서의 해석(성서를 어떻게 읽고 이해하고 삶의 양식을 받아 먹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들이 그것입니다. 님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바라 볼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도 더 깊이 있게 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필명으로 글을 올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밝혀 드리고 싶습니다. 그 내용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적어도 서로에게 투명하게 생활해야 할 신앙인의 입장에서 필명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혼돈과 오해(특히 그것이 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달려 있는 내용이라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글을 익명으로 계속올리는 것은 용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다시한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제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교회를 위하는 것인지, 무엇이 참으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길인지, 무엇이 믿는 이들을 참 신앙으로 이끌며 하나되게 하는 길인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게시판 식구들에게도 당부의 말씀을 간절히 드립니다.

이곳은 우리 모두의 휴식처입니다. 휴식처라는 것이 단지 우스개 소리 한 두 마디 나누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좀 더 진솔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우리 본당 게시판에서 의미없는 말장난이나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게시번호 4258] "4233에 관하여" 공개 사과의 글을 올리신 라이문도 형제님의 용기에 감사를 보냅니다. 쉽지 않은 글을 올려주심에 고마움을 전하여,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게시판 식구들의 마음을 움직여 진정 화해와 일치의 도구, 건전한 토론의 자리로 이 게시판이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분간 게시판을 떠나렵니다. 매일 매일 들어와 벗들의 글을 읽고, 저의 마음을 올려왔던 제 입장에서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 휴가기간 동안에도 우리 식구들이 어떤 글들을 올렸나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오랫만에 들어온 사랑하는 게시판의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나도 씁쓸합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맴돕니다.

 

그래서 당분간 게시판을 떠나고자 합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선의의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래서 이 게시판이 또 다른 복음 선포의 장으로 서로에게 생명과 삶을 나누어 주는 장으로 거듭 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분간 게시판을 떠나려 합니다.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매일 올려왔던 복음 묵상은 굿뉴스 메인 화면에서 들어갈 수 있는 '오늘의 말씀'(여기를 클릭하신 다음 그 안에 있는 '오늘의 묵상'을 클릭하시면 게시판이 뜹니다.)에 올리겠습니다. 조금 번거럽더라도 관심있으신 분은 그곳에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소구 올리는 것은 당분간, 게시판에 다시 들어오는 날까지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믿음의 벗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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