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RE:4268]

인쇄

장미의이름 [zu4rang] 쪽지 캡슐

2000-09-10 ㅣ No.4286

저도 개신교에 대한 교회의 공식 입장이 '갈라져 나온 형제'임은 압니다. 그래서, 교회끼리의 대화도

저도 개신교에 대한 교회의 공식 입장이 ’갈라져 나온 형제’임은 압니다. 그래서, 교회끼리의 대화도 하려

한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교회의 법전(저는 일단 율법과 동등하게 이해하겠습니다)이

 아니라 그들 영혼에 담긴 생각입니다. 서로 간의 마음에는 서로를 비신자라 여기는 장벽이 있습니다. 그것이

평상시는 나타나지 않다가 한 번 불거지면 반드시 드러납니다.

교회 법전에서 그들을 정말 형제로 본다면 한 번 묻고 싶군요. 그들이 비신자가 아니면 관 면혼배는 왜 하죠?

그들은 고백성사, 영성체 할 수 있는 가요? 혼배 미사의 영성체 때 ’신자 들만 나와주시고 비신자분들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달라’는 부탁하지 않던가요? 저는 ’개신 교인의 지위’를 물은 것입니다. 마치 외국인 불법 체류

노동자들의 지위에 대해 교회가 정부 에 대신 나서듯이! 물론 그들은 불법으로 들어오지만. 그리고, 그들이 비

신자가 아니면 제가 여행지에 가서 주일에 개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 주일 성수의 의무를 채우는가요? 주의

기도 33번 안 드려도 되나요? 어찌 보니까 너무 트집을 잡는 것 같군요. 다만 자극이 되어 주길 바래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표면상, 법 상으로는 분명 한 형제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교회들의 위선을 너무 쉽게 뭉뚱그리었습니다.

사실 더 급한 것은 저의 같은 천주교인들과의 형제적 사랑이군요. 너무 비판만 일삼더니 제가 그것을 간과했나

봅니다. 아무튼 교회의 법전이 그저 우리의 위선을 가리는 방패막이 역할 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제가 저희 천주교를 비판하면 나쁘게 보면서 천주교인이 그리스도의 또 다른 몸인 개신 교회의 흠이

있으면 심지어는 여러 사람을 가르치는 장소에서 버젓이 비판해도 말리는 사람 없더군요. 제가 어쩌면 오해

했는지 모르지만.

경신 행위로서의 미사의 예물은 참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은 모르겠지만 죽은 영혼을

위한다는 의미가 있다면 저는 받아들여지지가 않네요. 그런 것은 중세 종교 개혁 이후로 없어진 줄 알았거든요.

사실 중세 때의 면죄부의 잔형이라면 돈으로 사람의 영혼 을 살리겠다는 것으로 보이네요.

그렇다면 부자가 가난한 이들보다 더 많이 연옥에서 구원받는 진풍경 벌어지는 것 아닌가? 가난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면죄부 같은 것 살 돈(입에 풀칠도 못하니)도 없으니 말입니다. 물론 중세 때의 이야기이지만요.

과부의 단 두 닢의 헌금을 더 귀히 여기신 예수님의 마음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먼저 죽은 가족이 적은 헌금

으로도 구원받는 건가? 부디 저의 이런 생각 개의치 마세요. 언젠가 중세 때를 상정해서 한번 생각 한 것이니

까요.

안식일에 관한 글은 정말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올린겁니다. 어떻게 글을 쓰면서 길게 되니 나중에 자극시킬

표현으로 길어졌지만. 그 성서적 고찰은 나중에 혹 안식교인과 같이 토요 일 주일을 주장하며 여러분들을 공격하는

사람에게 대응할 때 필요할까 해서 올렸고 좀 주 제넘었다면 용서하시고 저도 말씀의 증거자로서의 의무라 생각해

함께 나눌까 올렸습니다.

다른 교파의 게시판에서의 익명은 신앙 상담만 있진 않더라구요. 신앙적 고찰을 올리는 분도 계십니다. 그중 한 분이 ’예수내구주’님이었어요. 그밖에 더 있는데 기억이 나는 게 ’학생’ 이라고만 하신 분 등.

하지만 저도 여러분의 굿 뉴스에서의 규약을 알기에 이제 곧 저의 실명으로 나타나겠습니 다. 저도 그것이 바람직

하다고 여깁니다. 아직 마무리 글 타이핑되지 않았거든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7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