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성당 게시판

박은종 신부님의 죽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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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 [bejoyful] 쪽지 캡슐

2000-02-13 ㅣ No.1202

그는 9년간의 사목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순수하고 자신의 위상을 들어내지 않는 우직한 모습이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삶의 투신을 사제직의 덕목으로 여기고 생활하여 온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우직하고 내성적인 성정이 주어진 현실 여건과 마찰 하면서 많고 깊은 상처를 안게 된 것 같다. 사제 생활 초년기에 남미의 선교사로 지원하여 1년간 남미에서 언어 연수중 교회 장상으로 부터 받은 상처는 너무나도 컸고 귀국하여서도 받은 상처가 그의 정서감에 혼란을 준 것 같다. 몇 년간 보좌신부로서 사목을 하면서 만났던 신자들은 그의 성품의 하자를 뛰어넘어서 정말 성실한 사목자라고 칭송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순진한 이상은 첫 본당신부로서 소임을 시작하면서 치유하기 힘든 상처로서 만나게 된다. 수도자들과의 마찰, 사목위원들과의 의견 대립, 그리고 교구청 장상과의 문제.... 이런 상처들을 안고 그는 본의 아닌 휴양의 시간이 이곳 태백산 계곡에 있게 된 것이다.

 

동반하면서 고인이 내 놓는 화두가 회상된다.

"신부님 인간으로 형성된 모든 조직체계는 기득권 보호가 우선인 것 같아요, 교회도 마찬 가지죠, 문제제기를 만들지 않고 주어진 환경하에 현명하게 처제하면서, 장상에게 잘 보이고 사제직을 기본적으로 지키면 되는데 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요, 제도교회의 위선이 복음의 진실로 선포되는 인상을 보기가 힘들어요. 희생, 투신, 정의, 참 나눔이 교회 본연의 모습인데요..

나의 성격으로 상처 준 모든 이에게 죄송해요, 내가 이곳 산골에 와서 오히려 평화와 안정을 찾는 듯 해요, 나는 현대에 안 맞는 성직자인 것 같아요, 내 생활비도 내가 직접 노동을 해서 벌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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