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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신부님 구약성서 강의:창세기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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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귀 [lilyVeronica] 쪽지 캡슐

2005-01-28 ㅣ No.11

 

바벨탑 이야기;영적 교만

 

창세기 11장


 

바벨탑을 만든 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날리자’고 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시건방져 보였다

우리 이름을 날리자는 것에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천(영적 세계), 지(자연), 인(나)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 인(나)만 생각하는 것이 우리 이름을 날리자는 것이다

 

우리 이름을 날리자는 것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

바벨탑을 쌓아 하느님과 닿게 하자는 것이다

바벨탑을 세우면서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하느님과 맞서자는 것이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의지(voluntas), 이성(객관적 판단), 감정이 있는데

우리 이름을 날리자는 것은

사람이 갖고 있는 자기 의지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성이란 기분 좋을 때나 이성이다


감정은 어떤가

늘 행복한가, 늘 편안한가

하느님 안에서 잔잔한 마음을 늘 갖고 있는가

 

불편한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의지나 이성이나 감정은 통제가 안된다

내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다


사람은 성장과정에서 내적인 힘을 받게 된다

(지지, 격려, 칭찬, 인정, 그리고 feed-back등을 통해)


이 성장과정에서 내적인 힘을 키우지 못하고

받은 상처가 클수록 의지와 이성과 감정을 통제를 못한다

통제를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이것들을 잡으려고 더 노력을 한다

 

 

Catholic vs Communism (카톨릭과 공산주의의 비교)


Catholic은 의지, 이성, 감정 위에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Catholic이다


Communism은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의 모델을 공산주의로 끌어들였다

(레닌이나 스탈린이 신학생이었다는 얘기가 있듯이)

공산주의의 원래 목표는 수도원이다

수도원의 수사들도 하느님만 빼면 공산주의라 할 수 있다

나 말고 나를 통제하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의 문제이다


공산주의는 늘 정의를 부르짖으며

갖은 자 대 뺏긴 자로 본다

노동으로 얻은 생산물에 대해서 고루 분배해야 한다는 지향 점에서

내 눈에 보이는 부정적인 요소를 계속 잘라나간다

뺏긴 자 편에서 증오를 일으켜 혁명을 이룬다


뺏긴 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방법론에서 Catholic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나의 투사->비난->분노로 치달아

자기 자신을 자기 문제를, 자기도 부를 추구하는 마음을 못 본다

이런 구조가 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 문제를 은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공산주의 안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나와 부자사이의 문제를 사람들도 부자를 나쁘게 보게 된다

자기를 은폐(악)하고 계속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 한다


유물론 뒤에는 다른 것이 있다

공산주위<-바리사이<-바벨탑

선과 악의 ’영신 전쟁터’라고 한다(신약.구약)


내가 내 자신을 보려면 투사의 대상이 없으면 된다

자기 안의 분노를 못 보고 -악의 유혹-

미운 사람만 계속 찾게되기 때문에 자기 문제를 못 보게 된다

 

자기가 왜 그 사람을 미워하는지를 안 본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

-바벨탑의 이야기


 

*천 지 인이 하나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간이 가장 성숙한 단계에서 갖는 생각이라고 한다


그리이스 로마시대(지)- 자연철학이 발달되었다

(탈레스) 자연계의 존재 원리에 대해 강조


중세시대(천)- 신을 강조


근대(인)- 데카르트 ’Logito ergo sum’(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람이 갖고 있는 이성과 의지에 대해 강조


현대- 환경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다시 ’지’로 돌아감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신에 대한 생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관심이 주기적으로 순환과정을 거치며 계속 변한다

이것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사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름의 중요성

이름은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에 매달린다

사람도 자기 브랜드가 있다

 

자기 가치를 알아주는 것이다


성장론에서도 이름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들이 내 이름을 알아주어야 한다

중간단계에 추구하는 정신적 행복으로 중요하다


생리적 행복-> 정신적 행복(인정)-> 영적 행복

정신적 행복을 너무 중시하게 되면

영적인 행복 단계에 올라갈 수 없다


의사가 환자가 병이 낫게 된 것이 내 실력이라 생각하면 짜증이 많고

다른 이와 같이 치료하는 거야,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하면

편안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다


상담자를 만난다는 것도 내 힘이 아니다

듣고 깨닫는 내담자 자신이 변해가는 역동적 과정에서

하느님의 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상담자가 자기 이름을 걸고 내담자를 고쳐주려고 하면 배우지를 못한다

내담자들이 하는 얘기에서 상담자가 배운다


 

-바벨탑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자기애적 성격장애(Narcissism)-

 

하느님 이름 vs 자기 이름


7죄종중 하나(분노, 질투, 인색, 교만, 해태, 자기애, 자기비하)

다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자기애가 지나칠 때 안 좋다

자기비하가 지나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 겸손이다

(내 안의 건강한 부분과 병든 부분을 같이 보는 것이 겸손이다)


겸손하지 않다는 것은 자기 비하가 지나치면 교만이다

나는 쓸모가 하나도 없다 (하느님을 욕먹게 하는 것이다)

나는 문제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자기애가 지나쳐도 교만이다


적당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적당히 자기 자신의 문제를 보는 것을 겸손하다고 한다

겸손은 타인의 평가에 의한 것이다


겸손하게 살겠다고 하기보다는

건강하게 행복하게 즐겁게 살겠다고 하는 것이

하느님이 주신 복락은 다 누리고 살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좋다

 


바벨탑을 만든 사람들의 문제가 자기애적 성격장애라고 한다

*자기애적 성격장애(Narcissism)를 가진 사람의 특징

 

공감능력이 없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를 못하니까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다

(마리 앙뜨와네트;밖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빵을 달라고 했더니 고기를 사먹으라고 했다-공감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멜다;서민들의 집이 보기에 안 좋다고 재개발을 했다, 추종자들에게는 금화를 뿌렸다)

 

(Catholic은 인정이 많다/공감능력이 있기 때문)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선택된 사람만 만나고 보통 사람들은 나를 이해 못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대접을 바란다->바리사이(Pharisee:선별된 자라는 뜻)


남을 추켜 주고 자기를 동격화 함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한없이 무시하고 나은 사람은 한없이 존경한다 하며 동격화 하려함

자기 자신을 이상화 시킨다


이런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자기 안의 어두운 부분을 안 보고

그것을 밖에다가 투사시킨다(열등감)

주로 쓰는 말이, 이상, 최고, 엘리트, 최상급, 등등의 등급의 말을 많이 쓴다


자기 자신이 늘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가 이상형에 대한 비난 농담을 하면 못 참고 터진다


행동심리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자기 아랫사람을 무시할 때

눈을 안 쳐다보고 땅을 보고 얘기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얘기를 듣지를 않는다

자기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칭찬해주면 부끄러워한다,
자기를 더 많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제스쳐를 보낸다
(이것을 겸손의 포장이라고 한다)


노화현상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늘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꼭 우리 안에 자기를 집어넣는다


두려움이 있다(버림받을 것 같은,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 한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바벨탑을 만들자고 했듯이


 

병적인 대인관계

 

1)상대방을 이상화시킨다(자기도 같이 올라간다)

2)금방 지루해한다

3)그 다음에 평가 절하한다

4)버리고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다시 번복되고 친구가 없다

결국 외롭게 살다가 죽는다


 

성령 vs 악령

 

성령

성령께서 사람을 이끄신다

신자를 광야에 내보내는 것

하느님의 뜻이 곧 깨달음이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이란 누구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선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역사 하신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일을 통해서 깨달음을 주신다

좋은 인연이건 악연이건 관계없이

하느님의 뜻과 내 존재의 의미를 깨달아야한다

이런 상황에 들어가는 사람은 성숙하다고 하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한다, 병적이라고 말한다


 

기도로써 성령을 초대해야한다

그래야 그 힘이 내 안에서 임재 하신다

기도란 ’하느님을 부름’이다


 

성숙함이란 ’통합’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일을 통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편안하게 가는 과정이 성숙해가는 것이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영적 행복이란 ’십자가(문제)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

자기 안의 문제를 보고 죽을 때까지 다듬어 가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얻는 행복이 있다


 

악령

 

무지의 상태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게으름이다

생리적 행복 위로는 올라가지 않으려 한다

기도의 주제가 생리적 욕구에 머문다,

악령의 유혹이 제 자리에 머물게 한다


 

기도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기도 생활-


생리적->정신적->영적

빵의 의미를 알라는 것은 그 다음 단계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 알아 들으라,

초대받은 자는 많으나 부르심에 응하는 자는 적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악령의 유혹이란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배고픔과 갈증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원칙적으로 채워져야 다음 단계로 간다

자기 때가 있다(점프를 해서는 안된다)

사람마다 자기 때가 있다

다음 단계에 대한 갈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래 단계에서 위 단계로의 변화는 번복한다

아래 단계도 다 떠 매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산다고 한다

사람은 한 발은 십자가에 한 발은 하늘에 걸치고 사는 존재이다

죽어서 하늘 나라 영적 세계로--->


나선형으로 올라가며

왔다갔다 하다가 때가 되면 업그레이드 되고

행복하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내적인 힘에 따라 원의 반경이 다르다

힘이 강하면 짧고 점프도 강하게 높이 뛴다(나선형)

이것이 계속 된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데레사 수녀는 7단계라 함/프란치스코 성인(한 번 점프하고 끝남)


올라가 그 상태에 머무는 사람은 없다

영성론에서도 up and down을 얘기함

영성론의 변화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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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경계혼란 & 내사

 

창세기 11장 10절~12절

 

셈의 계보


히브리 족보(이스라엘 사람)-조상을 아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하다

앗시리아가 사마리안을 점령하고 유대계와 사마리아 사람들이 원수지간이 되었다

마태복음-예수님의 족보가 먼저 나온다


 

-경계-

 

*접촉경계혼란

 

1. 건강한 사람은 자기 경계가 있는 사람이다

 

불가에서는 이런 경계를 없애버리는 것을 도의 깨우침이라 하기도 한다


 

-나와 너의 경계를 아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자기 영역과 타인의 영역을 구분 못할 때 그 사람은 병이 들었다 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사는 목적은 성장을 위해 산다

내적 성장과 외적 성장이 있다

사람은 성장을 느낄 때,

내 가치가 올라갈 때,

그 때가 가장 기쁠 때이고 행복하다


이렇게 성장을 하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져 갈수록 이것을 성장이라 한다

내적 기쁨이 커지고 분노가 준다


나와 네가 계속  만남으로써 얻어내는 결실이다->환경 교류가 됨


이렇게 좋은 것을 배울 때는 경계가 열려야 하고

상대방이 안 좋을 경우에는 닫는다

이 기능이 잘 될 때 건강하다고 한다


닫힘과 열림이 유동적이어야 한다

늘 닫혀있거나 늘 열려있으면 병적이라 한다
 

 

복음서에 씨뿌린 사람의 비유를 보면


길바닥에 떨어진 씨는 내가 문을 닫고 사는 것이다(병적인 상태)

상처를 많이 받거나 내게 스스로 상처가 깊으면(열등감) 문을 닫고 산다

기회도 안 온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란 열려야 할지 닫아야할지 혼돈에 빠진 것이다

접촉경계혼란이다


유혹 때문에 경계가 불분명하고 경계에 대한 각성이 흐릿해서는 안 된다


2. 접촉경계의 혼란이란

 

모든 정신병의 시작이다

나와 너 사이에 경계가 불분명할 때 일어난다고 한다


나와 환경(너, 삶의 조건)사이에 중간층이 있다

이 중간층을 잘 보려면 이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맑아야 된다

중간지대(마야, Maja)가 맑고 깨끗하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존중해 준다


중간층이란 안개와 같다고 한다

상대방의 실체를 정확히 못 보게 한다

일상에서 수많은 마야에 내 눈을 뺏긴다


안개 같다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 망상, 불안한 예측이다

이것을 심리적 지옥이라 한다

이런 심리적 지옥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지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사는 것이 지옥이다


사람의 눈 만큼 사물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것도 없다

사람의 눈은 내가 관심있는 것에게만 집중된다

선택적으로 안 좋은 것만 볼수도 있다
 

접촉경계에 혼란이 일어나면 환경을 제대로 보질 못한다

내가 누구인지,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사람 마음 안에는 힘이 있다-

 

이 힘은 한계량이 있다(매일에도, 평생도 쓸 수 있는 힘의 한계량이 있다)


자기 인생(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 욕구가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가)을 알아야 힘을 집중해서 쓸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내 자신을 위한 것일 때에

힘을 쓰면 에너지가 가장 많이 커지고

그 에너지를 그 때에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


사는 목표가 있으면 내 에너지를 힘을 쓸 데 쓴다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지혜로운 삶은 쓸 데 없는데 힘을 쓰지 않는다

 

자기 인생을 살 힘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 인생을 걱정하는 것을 교만이라 한다


카를로 카레또가 라 로쉐후꼬(사막의 성인)의 글을 읽고,

수도자로 살려고 사막에 들어갔다가 로마로 돌아와 보니

그대로 잘 살고 있어서 자기가 교만에 빠졌었다는 것을 알았다한다


’폭풍 앞에서 작은 불은 꺼지지만

큰불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것처럼,

장애물과 재앙에 부딪쳐 약한 신앙은 소멸되지만 강한 신앙은 더욱 굳어진다’


모든 것에 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대상에게만 일어나거나 마야를 불러일으키는 경우

접촉경계의 혼란은 특정한 대상에게만 일어난다

 

상대는 받다보니까 편하니까 애처로운 표현을 한다

상대를 spoil(해를 가하다)시킨다

홀로서기를 못하게 하고 의존하게 만든다


상대를 담담하게 보려면 내 안의 내적인 틀이 건강해야한다


 

데라의 후손,


-내사(introjection)-
 

부모와 나와의 관계에서 부모님으로부터의 가르침이 있다

이 말과 행동이 의식적인 것이 있고 또는 무의식적인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주는 것이 더 많다

 

아무 말도 안해도 부모들의 행동으로부터 아이들이 받는 것이 있다

상대방이 나를 비난한다는 것을 가슴으로 안다

부모님이 말과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준 것이다


Should

 

1. 치아공격성(agressive)

잘게잘게 곱씹어 소화함
 

장점은 상대방의 가르침을 잘게 잘게 썰어 내 것으로 만든다

말씀/가르침도 곱씹어 봐야한다

엄마에게 또박또박 대답하는 아이들이 건강하다


하지만 순둥이들이 문제이다

아닌 것은 흘려들어야 한다

머리로만 사는 사람들은 남의 말만 인용한다


나는 ’... 이렇게 생각해’라고 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우리 누가 그러는데,,,' 하는 사람은 인생살이가 의미가 없다

치아공격성은 어릴 때부터 살려주어야 한다


치아공격성을 살려야 자기 인생을 산다

내가 듣는 말씀도 생각하며 곱씹어 봐야 한다

치아공격성이 없으면 모범생 complex이다

자기밖에 모르거나 왕따를 당한다(마마보이라고도 한다)


아이가 하나면 아이와 부모사이가 건강하기가 어렵다

부모가 오버해서 투사하게 된다

책임질 일에 대해서는 안하려 한다

 

힘이 강한 자에게는 굴종하고 힘 없는 자에게는 군림하려고 한다

건강한 아이들은 굴종하지 않고 피한다


 

칼 막스가 힘이 좋은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자기가 읽는 글에 전부 멘트를 다 달았다고 한다(건강한 치아공격성)

자기 것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2. 치아공격성이 없을 때(내사가 심하면) 부작용이 일어난다

 

 1) 자기고문 게임(게쉬탈트/펄스 Perls)

    나는 불효자식이다

    이것은 부모가 심어준 생각이나 감정(내사)이다

    너는 왜 그 모양이냐고 원시적으로 야단을 치는 부모도 있고,

    if를 거는 부모가 있다

 

    엄마가 병이 나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올라옴과 동시에 자기비난을 하기 때문에

    불효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내사가 심한 사람들이 성실하다

    남들의 말을 잘 듣고 착하게 산다

    남들이 칭찬을 한다


    부작용은 자기 고문게임을 하고 미해결과제가 많다

    늘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한다

    엄격한 부모나 영악한 부모로부터 노예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이 없다

    자기 어린 시절의 감정을 다 죽여버린 것이다

    같이 사는 사람이 질식할 것 같다

    그 사람들의 마음 안이 감옥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엄마와 나 관계에서 아이에게 if를 거는 엄마

    엄마가 병이 난 것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의식 안에서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2) 미해결 된 과제로 남는다(한이 많다)

  

   자기 방=감옥(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함)

 

 

3. 치료 해결방법

 

좋은 부모역할을 상담자가 한다

네가 사는 의미를 알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나쁜 부모만을 취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


1)상담자가 reparenting해서 나쁜 부모를 만난 내담자를 바꿔줘야 한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봐주어야 한다


2)나쁜 부모와의 심리적으로 결별을 시켜야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어릴 때의 기분이 조금씩 올라오면 그 기분을 살려주어야 한다


 

*빈 의자 기법(게쉬탈트)

 

부모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라고 시작해서

부모에 대한 감정을 살려낸다


자기고문 게임으로 들어가지 않게

부모가 시킨 어떤 것이 하기 싫었다고

’No’를 말을 하게 시켜서  결별작업을 시킨다

내 안에서 나쁜 부모가 나가게 하는 작업이다


처음에는 거부하지만(상담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다시 돌아와

누가 자기를 위해주는지를 나중에 알게 된다


상대방이 내 안에서 내 인생을 통제(접촉경계의 혼란)하게 하면 안 된다

 

접촉경계 혼란이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내 안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들었다고 생각하거나 신이 나에게 말을 들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열현상(환청, 환시)이 될 수도 있다

엄격하고 아이들을 풀어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쪽으로 간다


3) 좋은 내사

 

나쁜 내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상담자가 좋은 내사를 주어야한다

안에 있는 software를 바꿔야한다

상담자가 마음이 급해 강요하면 부모의 내사와 똑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부모에게 'no'를 할 수 있게 하거나,

안에 있는 내사를 바꿔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기간의 작업이 필요하다


바뀐 것처럼 흉내를 내기도 한다

사람 머리안에 입력된 내사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한다


주일미사의 신부님 강론이 내사를 바꾼다

초기에는 성경 중 예수님 말씀 중에서도 나를 위로해주는 것만 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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