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왜 하필 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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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5-04-17 ㅣ No.3394

보르네오에 근무할 때 염소를 키우는 원주민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에는 흑염소가 주종인데 그곳에는 주로 불그스럼한 털빛을 가진 염소였다.

길을 가다가 보면 염소가 서로 뿔을 맞대고 싸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사슴이 패권경쟁을 하듯이 왕초 가리기 힘겨루기라 했다.

회교국가인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쪽에 가면 소고기보다 양고기를 즐겨 먹는다. 그러나 적도가 지나가는 보르네오에는 양이 잘 자라지 못하여 대신 염소를 기르며 염소고기를 양고기 대신으로 먹는다. 고기맛은 쫄깃쫄깃하고 구수하여서 좋으나 문제는 그 독특한 냄새인데, 진하고 매운 카레를 쓰거나 향기가 진한 향채를 섞어서 요리하면 그 냄새가 중화 돼서 까탈스런 내입에도 먹을만 했다.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더러 양(羊)이라고 하시며 예수님 스스로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을까? 소도 있고, 말도 있고, 개도 있고...그 여러 동물 중에서 왜, 하필이면 우리 인간을 양이라고 하셨을까?

 

명색이 글을 쓴다는 사람이, 명색이 신자라고, 영세한지 20년이 넘었다고 주접을 떨면서도 예수님께서 많고많은 동물 중에 우리를 왜 하필이면 양이라고 비유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여태껒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나야말로 참말로 양 중에도 한심스런 양이 아닌가.

하기사 보르네오에서 본 염소와 대관령에서 본 양을 보고서도 혼동을 한 적도 있으니 더 이상 말해서 뭣하랴만은....

염소는 뿔이 있고 성질이 사납지만 양은 온순하다. 그래서 일까? 물론 일리가 있다. 여러 동물 중에서 가장 순한 동물이 양이란 것은 맞다. 또 양은 고기도 젖도, 그리고 털이며 가죽까지 인간에게 준다.

하지만 인간은 양처럼 온순하기만 한가? 때로는 난폭하고, 비정하고, 간사하고, 교만하고..... 결국 그래서만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뭘까? 하는데

 

오늘 미사에서 신부님께서 그 정답을 알켜주셨다.

"본당으로 나오고부터는 외국에 나간 적이 없지만 전에 교구에 있을 때 한번은 외국에 나갔을 때인데 차를 타고 길을 가는데 갑자기 차들이 꼼짝을 않고 길에 서 있기에 처음에는 사고가 난 줄 알았었지.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양떼들이 차도를 건너 가는 바람에 길이 막혔던 거였어요. 양들이 떼를 지어 가는 걸 자세히 보니까 저마다 고개를 처박고 앞에 가는 녀석의 응댕이에 붙여서 머리를 박고 그냥그냥 가는 거여, 옆도

한번 안 보고 뒤도 전혀 안 돌아봐, 자동차가 뿡뿡거리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을 안쓰고 오직 앞 녀석 뒤만 쫄쫄 따라 그냥 가는 거여. 아주 맹목적으로 앞의 녀석 가는대로만  따라가는 거여. 그걸 보고서 난 깨달았지. 예수님이 왜 우리 인간을 양이라고 하셨는지..."

그렇다.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그냥 묵묵히 앞도 뒤도 안보고, 오직 목자가 인도하는 길만 따라 가는 양떼......

어쩌면 그 모습이 진정 내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선한 목자가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순한 양이 내 모습이어야지 않을까.

그 선한 목자가 나를 불구덩이 속으로 이끌고 가시겠는가

그 선한 목자가 나를 가시덤불 속으로 이끌고 가시겠는가

오직 내가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물과 내가 배불리 먹고 쉴 수 있는 풍성한 목초가 있는 곳으로 나의 선한 목자께서 나를 이끌고 가심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순한 양이 바로 신자인 내 모습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선한 목자께서 내 음성을 아신다 하는데 내 어찌 목자의 음성을 먼저 알아듣지 못했단 말인가. 목자께서 부르는 소리를 따라, 목자께서 인도하는 길만 따라 가는 나는 한마리 양이어야 한다. 순한 양이어야 한다.

 

그렇다. 나 이제야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아쉬울 것 없노라"하는 노래의 참뜻을 알고 부를 수 있으니 나 이제부터 양이 되리라, 순한 양이 되리라. 주님,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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