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11년 3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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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1-04-27 ㅣ No.139

Allocutio - March, 2011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레지오 마리애 영성에서의 그리스도 신비체
 
하느님의 종 프랭크 더프 시복 청원 기도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저희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프랭크 더프에게 그리스도의 몸인 당신 교회의 신비와 이 신비 안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는 일을 깊이 바라보는 힘을 불어넣어 주셨나이다.” 이 기도에서 표현한 프랭크 더프에 대한 평가가 사실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그는 일생을 바쳐 교회를 사랑하였고, 성모님 안에서 또 성모님을 위하여 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와 그가 창설한 레지오 마리애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교회는 인성을 취하신 주님과도 같습니다. 당신의 몸인 교회 안에서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시며, 그와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교회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뵙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그의 생에 있어 가장 깊은 통찰력 중의 하나이며 레지오의 교리적이고 실천적인 삶에 있어 중심이 되는 진리입니다. 이 통찰력과 뗄 수 없게 연관된 것이 그리스도 신비체에서의 성모님의 지위에 대한 그의 확신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실체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다음 달에는 성모님과 이 신비에서의 성모님의 역할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구약과 신약에 있어, 또는 예언의 시대와 구현의 시대를 통틀어 교회는 여러 다른 표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랭크 더프와 레지오가 가장 의미를 두는 표상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형상입니다. 그의 글이나 말에서 공의회(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많은 토론의 주제로 유행한 제도적인 교회(Institutional Church)라거나 성령의 은사인 교회(Charismatic Church)와 같은 개념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공의회 이전 시대의 교회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던 대로 교회를 가시적인 집단(Visible Society)으로 인정했으나 그보다는 더 넓은 개념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교회를 단순히 무오류성을 선사받은 가시적인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교회는 가시적입니다. 교회는 지배자와 규율과 가입 조건이 필요한 가시적인 집단이며 정말 엄청난 특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아니, 교회는 거의 무한할 정도로 그 이상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이상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당신을 따르는 우리 안에서, 또 우리를 통하여 다양한 모든 방면으로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며 현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의 중심에 있는 엄청난 진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그 분의 몸인 교회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의 종말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체 성사와 그 외의 성사 안에서도 현존하심으로써 깊숙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체 안에, 특히 교회 안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삽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그 가지로, 또는 바오로 성인이 사랑했던 것과 같게 프랭크 더프가 특히 사랑한 형상인 하나의 신비체, 즉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우리는 그 지체인 것처럼, 우리는 한 생명체로 삽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과 당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우리의 의지에 맡기시고, 우리는 당신 몸의 삶에 우리 나름대로의 기여를 하기 위해 초대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여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이 계속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신성한 대비를 하시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는 여러 심오한 중요성과 적용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단 하나, 즉 레지오의 영성과 생활에서 중요한 사도직 활동과 신비체와의 관계만을 생각해 봅시다. 이를 우리 창설자의 말을 빌려 설명하겠습니다. “자, 저는 사도직이 이 신비체 교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 개념이 빠진다면 과연 사도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우리 자신만의 연약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가 주님과 그 분이 하시려는 일에 대해 뭔가 말하려고 애쓰게 될 것입니다. 결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사도직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나아가시는 것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머리는 그 지체들에게 의지합니다. 그 지체들이 자신들을 그 분께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 분의 목표는 실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분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고 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 분과 함께라면 우리는 글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과 비견될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분의 삶을,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지상에서의 일생과 같이 그분의 전 생애를 신비체 안에서 영위하신다면, 그 때는 우리가 그 신비체 안에서 표출되는 그분의 모든 뛰어난 특성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분의 사도직 활동은 그 특성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이 모든 면에서 엄청나게 다양하기는 하나, 결국은 그분의 지체인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성취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사도직 활동일 따름입니다.
 
친애하는 레지오 단원 여러분, 우리는 어떤 형태이든 비관에 빠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이겨내거나 그 비관을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끊임없는 희망이나 기쁨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왜일까요?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우리 안에 또 우리와 함께 항상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악의 세력과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나약함이 우리를 작은 파편으로 부스러뜨리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단지 피상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또 우리와 함께 계시며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주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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