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3박4일의 이별연습 둘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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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 [asiaman] 쪽지 캡슐

2000-07-28 ㅣ No.1344

3박4일, 그 길었던 이별연습

 

둘째날(7.12 수)

 

 

아침 6시반

아내가 출근하면서 묻는다. 오늘 몇 시 까지 병원가야 돼? 10시쯤 까지 오라고 그랬어. 아침에 애들이 학교가면서 묻는다. 아빠 왜 출근 안해? 따로 볼 일이 있어서...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9시반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세시쯤 병실이 날 테니 그 때까지 도착하란다. 10시부터 망연자실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멍청하게 밖을 내다 보며.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째깍거리는 벽시계.. 시간은 왜 이리 빨리 흐르는지..

 

 

오후2시,

이제 병원으로 출발할 시간이다. 다시 이 집으로 돌아 올 때 그 때도 현재와 같은 가정, 현재와 같은 나의 상태로 돌아 올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 행복했던 과거의 마지막 순간일까? 모든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안방, 거실, 애들 방을 구석구석 둘러본다.

 

 

소품 하나하나, 가구 하나하나의 현재 모습을 기억해 놓고 싶다. 거실위의 1년전에 찍은 가족사진, 손길로 한 번 더듬어 본다. 그래 이때가 정말 좋았어, 행복한 한 때였지...

 

 

이젠 갈 시간이다. 차를 몰고 아파트를 나선다. 문득 군대 가던 날이 떠오른다. 맞아, 그 날도 이런 기분이었어. 엄청난 충격과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두고 바깥세상은 어제와 전혀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신호대기선에서 옆 차를 물끄러미 본다. 이른 휴가를 떠나는 가족인가 보다. 온 식구가 선그라스, 모자로 한껏 휴가기분을 내고 있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그런데 너무 부럽고 너무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권태로워 하고 불만스러워 하던 저 일상으로 다시 돌아 갈수만 있다면... 저런 순간이 이 생에서 나에게도 다시 올까? 다시 한 번 가슴아래가 허물어 지는 듯한

 

비애가 솟아오른다. 차라리 빨리 병원으로 가자. 거기서 아픈 사람들 속으로 숨으면 당장의 비애라도 좀 완화될지 몰라.

 

 

오후 3시,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갔다. 호흡기내과 1853호, 2인실. 병실로 올라가니 갓 외출에서 돌아 온 듯한 50대 초반 남자가 막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있다.

 

 

언제부터 입원하셨습니까? 오늘이 5일짼 데 귀하가 세번째 손님이네요. 왜 들어왔수? CT촬영에서 뭐가 나왔다고 해서 확인차... 저런 저런, 젊어 보이시는데 괜찮겠죠, 처음 병원들어 오면 아주 불안하지만 2~3일 지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아주 부지런하면서 고참답게 여유가 있다.

 

 

간호원이 오더니 링겔부터 꽂아준다. 오후 늦게 정밀CT촬영이 있으니 금식하시고... 수술은 언제쯤? 글쎄요, 모레쯤 할 것 같은데요, 오늘과 내일은 일반적인 검사를 해야 할 테니..

 

오후 5시,

담당전문의가 회진을 돌았다. 말을 상당히 아끼는 사람이다. 아내가 따라 나가면서 뭔가를 꼬치꼬치 묻는다. 한참 후에 심각한 표정으로 병실로 돌아온다. 막연하던 불안감이 아마 실제적인 공포로 변했으리라.

 

 

억지로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설마 별 일 있겠어. 서로가 눈 마주 치기를 피한다. 왜 눈만 마주치면 눈물이 솟아 오르는지..

 

 

오후 여덟시

회사 직원과 처가쪽 친척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녀갔다.

 

밤10시,

본관 2층으로 가서 정밀 CT촬영을 하였다. 특수물감을 혈관에 주입하면서 그것이 몸 속에 퍼지는 형상을 같이 촬영하면 훨씬 정교한 사진을 얻을 수 있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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