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흥보신부님의 자료실

11. 구원에 이르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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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0-09-22 ㅣ No.36

 

 

평화교리11(2000/09/17)

 

왜 이런 일이, 고통은 왜?

 

 

 

  11. 구원에 이르는 고통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하기만 하면 모두 복을 받고 구원된다(상선 벌악)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계명을 잘 지키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고생하며 살고, 악한 사람이 오히려 선한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현실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기에 선하게 살면 상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원인과 결과의 원칙(인과 응보의 법칙)도 무너져 버렸다. 왜 그런가?

 

  인간은 '어떤 종류이든 악을 경험할 때'마다 고통을 겪는다. 구약 성서에서는 고통과 악이 서로 일치되어 있다. 그래서 구약 성서는 고통받고 있는 모든 것을 '악'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한편 그리스도교는 인간이 존재적으로 선하다고 규정한다

 

  고통을 겪는 인간은 "왜?"라는 '물음'을 던진다. 사람들은 흔히 바로 세상에서부터 인간에게로 고통이 오고 있는 데도, 인간은 이 물음을 세상을 향해 묻지 않고, 세상의 창조자이며 주인이신 하느님께 묻는다. 그러나 선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허락하실 뿐이라는 사실을 욥기를 통해 알 수 있다(욥 1, 12; 2, 6 참조). 그러므로 한편 고통받는 욥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고한다.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므로 인간 세상의 악을 제거하러 오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신 구원자이시다.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이사 53, 4ㄷㄹ. 6ㄷㄹ)

 

  그러므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연다고 할 수 있으며,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고통스러운 수난을 겪으셨지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 24-사도 바오로의 고통관)

 

  인간 고통의 세계는 인간다운 사랑의 세계를 끊임없이 부르고 있다. 고통받는 인간을 발견할 때마다 모든 개인 각자가 고통 속에서 사랑을 증거하도록 '직접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느끼고, 그 고통 앞에 '멈춰 서서' 그 부르심에 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채우는 삶이다.

 

  천주교의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내려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만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하느님의 복을 빌어주고 더 나아가 이웃의 잘못과 죄로 인한 폐해를 대신 겪고 그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고 함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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