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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렴 [joekim] 쪽지 캡슐

2003-01-02 ㅣ No.2259

먼 곳에서 저에게 바톤을 넘겨 주신 최 프란치스코 형제님의 외로움을 위로드릴 겸 즉각 글을 올립니다.

  

언제나 잔소리만 늘어놓던 요셉이 우리 신부님과 교우여러분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혹시 넉넉하시면 이웃에게도 좀 나누어 주십시오."

 

잔소리 말고 좋은 글을 써 보려고 하지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문득 하늘나라에 가신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제가 거의 확신을 가지고 두 분이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입니다.

저의 어머님은 하느님을 굳게 믿어 언제나 성서 읽기와 찬송을 그치지 않으셨고 가난한 이웃을 당신의 형제자매나 자식들 처럼 돌보시던 분이셨으며 저희 10남매를 정성으로 키워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님은 평생을 교육자로서 부나 명예를 탐하시지 않고 당신의 정성을 다 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한 때 가난한 시골 국민학교 교장이신 아버지를 부끄러워 한 일도 있습니다. 물론 아버님께서도 은퇴 후에 좋은 신자가 되셔서 돌아가실 때는 목사님을 청하셔서 생을 마감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쓰고자 했던 이야기는 부모님 자랑이 아니었는데 잘못한 건가요?

 

아버지 어머니에 관해서 특별히 기억나는 한 가지씩만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생사가 걸린 위독한 어머니를 등에 업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뛰어 다닐 때 제 등을 통해

커다랗게 느껴졌던 어머니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렇게나마 어머니를 업을 기회가 있었던 것을 항상 기쁨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경통때문에 자주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민학교 고학년 때부터 다리를 주물러 드렸지요. 처음에는 제 몸무게가 가벼워서 발로 밟는 경우가 많았지만 후에는 손으로 주물렀는데 지금도 제 손 끝에는 아버지의 피부의 감촉이 살아있습니다. 엄지손가락으로 다른 네 손가락을 만져 보면 언제나 그 감촉을 통해 아버지를 느끼곤 합니다.

사실은 저도 자식들에게 그렇게 기억되기를 기대하며 얼마 전부터 안마를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저도 관절염으로 가끔 통증을 느끼기 때문에 억지 훈련은 아니며 자연스런 훈련임을 밝혀 둡니다.

제가 죽고 난 후 제 무덤에 와서 저를 기억하기 보다는 힘들이거나 번거로움에 시달리지 않고도 항상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기쁜 추억의 이야기 임을 아울러 말씀드립니다.

 

저는 잔소리는 잘 하는데 좋은 글은 정말 못 씁니다.

 

다음 글은 교우 여러분의 기대를 만족 시켜 드릴 장진수 스테파노 형제에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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