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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리바의 물 - 모세의 믿음의 결여 912_faith [성경공부_믿음] <가사순3주일1독서> <홀연중18목1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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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ㅣ No.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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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아래 민수기 20장 2절~13절에 의하면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아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12절)”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늘 하느님 말씀에 순종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모세가 “믿지 않고”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질문 2:

시편 95,8에서,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마라. 므리바에서처럼 광야에서, 마싸의 그날처럼" 이라는 언급이 있는데,

 

므리바마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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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찬미 예수님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7월 17일]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새 번역 성경"의 구약 본문 중에서 "므리바" 라는 지역명이 등장하는 절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info/므리바_in_성경.htm


그리고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새 번역 성경"의 구약 본문 중에서 "마싸" 라는 지역명이 등장하는 절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info/마싸_in_성경.htm 

 

질문 2에 대한 답변: 아래의 본문의 제4-1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이상, 2015년 7월 17일자 내용 추가 끝]
 
1. 들어가면서
[질문 1에 대한 답변 시작]
주님께서는 민수기 제20장 제8절에서 "저 바위더러 물을 내라고 명령하여라"고 모세에게 이르셨으나, 모세는 이 말씀대로 말로서 명령하지 않고, 제11절에서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친 것을 두고서,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제12절에서 해설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셨듯이 바위에게 말을 하는 대신에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이나 쳤던 이유 때문에, 비록 모세가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모세가 나중에 알게 되지만 ..."
 
즉, 모세가 전달하는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바위로부터 물이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 바로 주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순간인데, 이런 주님의 지시를 믿고 따르지 않고, 이것 대신에, 모세가 자신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이나 쳐서 물을 나오게 하였기에, 지팡이 혹은 지팡이 주인의 거룩함 때문에 물이 터져 나온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기에, 주님의 거룩함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씀을 주님께서 하시는 듯 합니다.
 
모세가 말로서 바위에게 명령하지 않고, 제10절에서, "이 반항자들아,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 하고 모세가 바위를 지팡이로 두 번이나 쳤으니, 사람들은 지팡이 혹은 모세의 거룩함 때문에 물이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문제점: 그런데 이렇게 이해를 하면, 같은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그러나 모세가 주님의 지시에 따라 바위를 친 것을 뜻하고 있는, 다음의 탈출기 17,6 기록과 충돌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탈출기 17,6)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3.
그리고 이 문제점에 대하여 민수기 20,12에 대한 다음의 NAB(New  American 
Bible) 주석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출처: http://www.usccb.org/bible/numbers/20
(발췌 시작)
The sin of Moses and Aaron consisted in doubting God's mercy toward the ever-rebellious people.

모세와 아론의 죄는 항상 반항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의심한 데에 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4.
이 문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나바르 성경 주석서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4-1.
다음은 가해 사순 제3주일 제1독서(탈출기 17,3-7)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입니다:
 
Commentary:

17:1-7.
The severity of desert life (notably hunger and thirst) leads God to help the Israelites in various ways, all of them full of theological implications. The miracle of the manna, which was preceded by that of the water which Moses made drinkable (15:22-25), is followed by a new work of wonder to do with water: Moses causes water to flow from a rock. This happened at Rephidim, probably what is now Wadi Refayid, some 13 km (8 miles) from Djebel Mfisa.

17,1-7. 광야에서의 생활의 혹독함(특히 비고픔과 목마름)은 하느님께서 다양한 방식들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도와줌에 이르게 하는데, 그들 모두는 신학적 의미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모세가 마실 수 있도록 만들었던 물에 대한 기적(탈출기 15,22-25)에 의하여 앞서게 되었던, 만나의 기적(the miracle of manna)은 다음과 같은 물과 관련한 경이로움의 새로운 위업에 의하여 뒤따르게 됩니다: 모세는 물이 바위로부터 흘러나오록 초래합니다. 이러한 사건은, 아마도, Djebel Mfisa 로부터 약 13킬로미터(8마일) 떨어진, 지금의 와디 레파이드(Wadi Refayid)라는 장소일, 르피딤(Rephidim)에서 발생하였습니다.

The sons of Israel's faith in God and in Moses has been strengthening little by little; but they often doubt whether God is there at all (v. 7). They begin to murmur and to seek proofs of his presence: have they been brought out of Egypt to die, or to attain salvation? The water which Moses causes to come out of the rock is a further sign to bolster their faith. This episode names two places - Meribah, which in popular etymology means "contention", "dispute", "lawsuit", and Massah, which is "proof', "test", "temptation". Many biblical passages recall this sin ( cf. Deut 6: 16; 9:22-24; 33:8; Ps 95:8-9), even adding that Moses himself lacked faith and struck the rock twice (cf. Num 20:1-13; Deut: 32:51; Ps 106:32). Lack of trust in the goodness and power of God means tempting God and it is a grave sin against faith--even more so in the case of Moses, who had experienced God's special love and who ought to have given good example. When man meets some contradiction or some difficulty he cannot immediately solve, his faith may waver but he should never doubt, because "if deliberately cultivated, doubt can lead to spiritual blindness"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2088).

하느님과 모세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믿음은 조금씩 굳세어져 오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가끔 하느님께서 도대체 우리 가운데에 계실까하는 의심을 합니다(제7절). 그들은 다음과 같이 불평하고 그리고 당신의 현존에 대한 증거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이집트로부터, 죽기 위하여, 혹은 구원을 획득하기 위하여, 데려나와졌던 것인가? 모세가 바위로부터 나오도록 초래하는 물은 그들의 믿음을 북돋우는 한 개의 한층 더한 표징(sign)입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다음의 두 장소들에 이름을 붙입니다: 민간에 널리 퍼진(popular) 어원에 있어 "다툼(contention)", "논쟁(dispute)", "소송(lawsuit)"을 뜻하는 므리바(Meribah), 그리고 "증거(proof)", "시험(test)", "유혹(temptation)"을 뜻하는 마싸(Massah). 다수의 성경 구절들은, 심지어 모세 자신도 믿음이 결핍되어 그리하여 바위를 두 번씩이나 쳤다고 덧붙여 말하면서 (민수 20,1-13; 신명 32,51; 시편 106,32), 이러한 죄(sin)를 상기합니다 (신명 6,16; 9,22-24; 33,8; 시편 95,8-9를 참조하라). 하느님의 선함 및 힘에 대한 믿음의 결여는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을 뜻하며 그리고 이것은 믿음에 반하는 중죄이며, 이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이미 경험하였던 그리하여 좋은 모범(good example)을 제공하여야만 하였던, 모세의 경우에 있어 더욱 더 그러합니다. 사람이 자신이 즉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반대(contradiction) 혹은 어려움을 만날 때에, 그의 믿음은 흔들릴(waver)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그는 결코 의심하여서는 아니되는데, 이는 "만약에 고의적으로 경작된다면, 의심은 영적 눈먼 상태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제2088항].

There is a rabbinical tradition which says that the rock stayed with the Israelites throughout their sojourn in the desert; St Paul refers to this legend when he says "the Rock was Christ" (1 Cor 10:4). On the basis of biblical references to the wondrous nature of waters (cf. Ps 78:15-16; 105:4; Wis 11:4-14) the Fathers saidt his episode prefigures the wonderful effects of Baptism: "See the mystery: 'Moses' is the Prophet; the rod is the word of God; the priest touches the rock with the word of God, and water flows, and the people of God drink" (St Ambrose, "De Sacramentis", 8, 5, 1, 3).

이 바위가 광야에서 그들의 여행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의 자손들과 함께 머물렀다고  말하는 라삐 전통(a rabbinical tradition)이 한 개 있으며, 그리고 성 바오로(St. Paul)는,  그가 "그 바위가 그리스도이셨습니다" (1코린토 10,4) 라고 말할 때에, 바로 이 구전(口傳), legend)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물들의 경이로운 본성(nature)에 대한 성경의 언급에 근거하여 (시편 78,15-16; 105,4; 지혜 11,4-14를 참조하라) 교부들은 이 에피소드가 세례의 경이로운 효능들을 예표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신비를 보라: '모세'는 그 예언자(the Prophet)이며, 그리고 막대기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그리고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바위를 치며, 그리하여 물이 흘러나오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마신다"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St Ambrose, 340-397년), "De Sacramentis", 8, 5,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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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여기를 클릭하면, 다해 사순 제3주일 제2독서(1코린토 10,1-6.10-12)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영문 및 우리말 번역문)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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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또한 다음은 홀수해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제1독서(민수기 20,1-13)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입니다.
 
Commentary:

20:1-19. When the spies sent to explore the land of Canaan returned to base, people of Israel were in the desert of Paran, in Kadesh (13:26). The desert of Zin, which is referred to here, and which is different from that of a very similar name (Sin) mentioned in Exodus 16:1 and 17:1, was the north-west part of the wilderness of Paran, to which the cloud had led the Israelites from Sinai (cf. 10:12). Kadesh was not really a town but an area containing leafy oases. It was a key point of reference for the people of Israel's route towards Canaan. From Kadesh they will leave for the plains of Moab (cf. 22:1). Kadesh marks the end of the desert trek (cf. chaps. 33-38); from now on the land is inhabited and the Israelites will have contact with those who live there.

As they make their way, the people encounter both external and internal difficulties, but that does not stop their advance to the promised Land, because God is their guide and he is helping them. In this sense the people of Israel prefigures the Church, for "as Israel according to the flesh which wandered in the desert was already called the Church of God (cf. Num 20:4; etc.), so too, the new Israel which advances in this present era in search of a future and permanent city (cf. Heb 13:14), is called also the Church of Christ (cf. Mt 16:18). It is Christ indeed who had purchased it with his own blood (cf. Acts 20:28); he has filled it with his Spirit; he has provided means adapted to its visible and social union" (Vatican II, "Lumen Gentium", 9).

20:2-13.
Unlike Exodus 17:1-17, here it is Aaron who accompanies Moses, so that both of them share in the sin of mistrusting God (cf. v. 12). The text does not say what their sin was exactly: presumably it was because they struck the rock twice due to lack of faith, instead of once (cf. vv. 11-12) or in the fact that they struck the rock whereas God had told them to speak to the rock (cf. v. 8)--although in Exodus 17:6 Moses was in fact told to hit it. In v. 24 we are told it was a sin of rebellion, and in Psalm 106:32-33 it says that Moses "spoke words that were rash". In Deuteronomy 1:37 and elsewhere, the punishment inflicted on Moses is, however, attributed to the people's disobedience. At any event, the event is recounted here, just before the narrating of the death of Aaron (as it will also be mentioned in Deuteronomy 32:51 before the account of Moses' death). Here the episode is connected with two place-names--Kadesh, which means in fact "holiness" and which would remind people of the holiness of God (cf. v. 13), and Meribah, which means "rebellion" and would evoke Moses' sin. The two names appear linked (Meri-bath-kadesh) in Deuteronomy 32:51 and Exodus 47:19.

20,2-13. 탈출기 17,1-17과는 달리, 여기서 모세와 동행한 자는 아론(Aaron)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그들 둘 다는 하느님을 불신하는 죄에 함께 합니다 (제12절을 참조하라). 이 본문은 그들의 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도(presumably) 그것은 그들이 믿음의 결여 때문에, 한 번 대신에, 두 번씩이나 바위를 쳤기 때문(제11-12절을 참조하라) 혹은, 비록 탈출기 17,6에서 모세는 그것을 치라고(hit) 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바위에게 말하라고(speak) 말씀하셨던 (제8절을 참조하라) 반면에 그들이 바위를 쳤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24절에서 우리는 그것이 도전의 죄(a sin of rebellion)였다고 말해지고 있으며, 그리고 시편 106,32-33에서 모세가 "경솔한 말들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37 및 다른 곳에서, 모세에게 가해졌던 벌은, 그러나, 이 백성의 불순종에 돌려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은 여기서, (모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신명기 32,51에서 또한 언급될 것이듯이) 아론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바로 직전에 자세하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은 두 장소의 이름들과 관련이 되어집니다: 사실은 "거룩함(holiness)"을 뜻하는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거룩함에 대하여 상기시키는(제13절을 참조하라) 카데스(Kadesh), 그리고, "도전(rebellion)"을 뜻하는 그리하여 모세의 죄를 불러낼(would evoke) , 므리바(Meribah). 이 두 개의 이름들은 민수기 27,14; 신명기 32,51; 에제키엘서 47,19; 48,28 등에서 [므리밧 카데스(Meri-bath-kadesh)라고] 결합된(linked) 것 같습니다. 

This rock prefigured Christ, according to 1 Corinthians 10:4-5. The Fathers gave an allegorical interpretation: the rock is Jesus, and the water the grace which flows from the open side of our Lord; the double strike stands for the two beams of the cross. Moses stands for the Jews, because just as Moses doubted and struck the rock, the Jewish people crucified Christ, not believing that he was the Son of God (cf. St Augustine, "Contra Faustum", 16, 15; "Questiones In Heptateuchurn", 35).
 
1코린토 10,4-5에 따르면, 바로 이 바위는 그리스도를 예표하였습니다. 교부들은 다음과 같은 우의적/풍유적(allegorical) 해석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바위는 예수님이며, 그리고 이 물은 우리의 주님의 열려진 측면으로부터 흘어나오는 은총이고. 그리고 두 번의 타격(the double strike)은 십자가의 두 개의 목재들을 나타낸다. 모세는 유다인들을 나타내는데, 이는 모세가 의심을 하여 바위를 두 번 쳤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유다 사람들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셨음을 믿지 못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 형에 처하였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Contra Faustum", 16, 15; "Questiones In Heptateuchurn", 35을 참조하라].
 
4-3. (결론)
위의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은 다음과 같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느님과 모세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믿음은 조금씩 굳세어져 오고 있으나, 그러나 그들은 가끔 하느님께서 도대체 계실까 하는 의심을 한다(탈출기 17,7).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에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훌륭한 모범(good example)을 보였어야만 할 모세가,
 
성경 본분에서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으나, 바위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쳐서 물을 나오게 한 것(민수기 20,11) 혹은 주님께서 말로써 바위에게 명령을 하라고 하였으나 모세가 바위를 친 것이(민수기 20,8-11), 하느님에 대한 모세의 믿음의 부족(lack)이며 또한 하느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드러내지 않은 것이므로, 
 
바로 이 때문에,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속된 땅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약속된 땅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 허락되었으며, 모세는 주님의 지시대로 느보 산에 올라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모압 평야에서 삼십일 동안 모세를 생각하며 애곡하였다. 그런 뒤에 모세를 애도하는 애곡 기간이 끝났다(신명기 32,49-52; 34,1-8).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12월 13일]

여기를 클릭하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2008년 2월 24일, 가해 사순 제3주일 강론 말씀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참고:  매일미사 독서들에 대한 강론 혹은 묵상 원고를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버에 의하여 그 집필이 시작되어, 교황청립 스페인 나바르 대학교 신학과 교수진에 의하여 2000년 대희년에 초판 발행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성경해석을 매우 충실하게 따르는 나바르 주석 성경으로부터 발췌된 매일미사용 영어본 독서(RSV 발췌)들 및 이들에 대한 영어본 나바르 주석들을, 총 6권으로 한 질을 이룰 저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 출판사, 엮은이: 소순태)의 각 과의 마지막 인터넷 각주인

http://ch.catholic.or.kr/pundang/4/update/....htm

에서, 사용하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편집하여 제공해 드릴 예정이오니 [주: 이제 이미 제공 중에 있습니다(2011년 12월 12일)], 유용하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 12월 초에 시작되는 나해(Cycle B)용 첫 권인, "나해-I"은 11월 중순 경에 출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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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우리말 번역을 포함하여) 약 10시간. 
우리말 번역문 추가일자: 2011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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