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비무장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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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1999-05-02 ㅣ No.58

 흔히들, 명동 성당을 부를 때, 민주화의 성지라고 부른다.

오늘 나는 바로 이 "민주화의 성지"라는 말에 잠깐 나름의 생각을 말하고 싶다. 싶다.

 

 첫째, 명동 성당측의 입장이다.

명동 성당은 성당이 무슨 치외 법권 지역이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성당 측에서

명동 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라고 말한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만 성당으로 찾아오는

그 많은 사람들이 질서를 지켜주고, 성당의 기본적인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협조해달라는

입장이다. 또 종교의 특성상 찾아오는 사람을 쫓아낼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사실

성당 측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다.

 

 둘째, 명동을 찾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이 사람들은 저마다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는 것 같다. 명동 성당에서의 농성과 집회는 안전하다는 것과, 언론과 대중에

쉽게 알려 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명동 성당 측에서도 웬만한 사안으로는 크게

농성자 측을 자극하지 않는다. 오히려 농성자 측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일

것이다. 또한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명동 성당"은 학생들의 교육장소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고 한다.

 

 셋째, 공권력의 입장이다.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짜피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있고, 체제를 부정하거나, 또 억울한 사람들 소외 받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집회와 농성을 하면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그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어짜피 어딘가에 그런 사람들의 요구와 그런 사람들의 주장을 이야기 할 공간이 필요하고, 명동 성당은 공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나쁜 장소는

아닐 것이다. 종교가 가지는 엄숙함과 특히 가톨릭이 가지는 성스러움이 농성자들의 행동을

자제 시켜 줄 것이고, 또한 명동 성당 측과 언제든지 입장을 나눌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사람을 잡아가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공권력 측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적당한 긴장을 주고, 또 적당한 시기에 퇴로를 열어 주면서 사태를 주시하면 된다.

 

 넷째, 일반 시민들의 입장이다. 일반시민들에게 있어서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이든 아니든 사실 그렇게 큰 관심사는 아니다. 가끔씩 텔레비젼이나 언론에 보도되는 명동성당과

거기에 쳐진 천막들 그리고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저 스쳐지나가 듯 듣고 볼 뿐이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 망월동의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 묘역은 그렇게 불리울 수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사람들, 또 민주화를 위해서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고이 쉬고 있는 곳. 그곳은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울만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고인들을 추모하고, 또 자신들의 부끄러운 삶을 돌아보곤 한다.

 

 4.19 위령탑은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울만 하다. 이승만 독재 정부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민주 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온몸으로 저항한 사람들, 그렇게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세운 그 위령탑은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울만 하다.

 

 문득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비무장 지대"를 생각해본다. 그곳은 세상 어느 곳 보다 강한 물리적인 힘이 공존하는 곳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런 위험한 곳이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비무장 지대참으로 평화로운 곳이고 사람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비무장 지대는 그래서 나중에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니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훼손되지 않는 그 자연에 많은 생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고 그 생물들에게 그곳은 더없이 편안하고 더 없이 아늑한 삶의 공간이 되고 있다. 물론 그곳이 언제 처절한 싸움터가 될지는 모르지만....

 

 명동 성당 그곳은  어쩌면 서울에 있는 또다른 "비무장 지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명동 성당은 악의 세력에 의해 날개가 꺽인 사람들,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져서 더이상 의지 할 곳이 없는 사람들, 어릴 때 뛰놀던 그 개울가, 시골의 그 들과 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고향의 품을 생각 하고 싶을 때 찾아와서 쉴수 있는 그런 곳이 였으면 좋겠다.

 

 바로 이곳에서 삶의 "에너지"를 재 충전하고 또다시 희망과 의욕을 가지고 거친 세상의 파도를 용감히 헤쳐날 수 있는 그런 희망의 장소였으면 좋겠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명동성당은  "비무장 지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화의 성지" 일수도 있겠으나 그것만을 강조하면 다른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몇가지 상념을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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