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나의 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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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 이야기
나에게도 아릿다운 색시가 있었지요 어느날 갑자기 그 아릿다운 사진에 검은 리본이 매달렸어요 모두들 그 사진을 보고 아깝다고 들 하더군요 하긴 한창나이 58세이니까요 그리고 미인이라고 들 하더군요
어제가 49제 라나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라던 두 손녀딸 중 하나는 초등학교도 않다니는데 이제는 (아무) 대신 저의 할머니 이름 "골롬바"를 넣고 연도를 곧잘 드리더군요
저는 무덤에 업디어 울고 또 울었습니다 복 바치는 서러움, 대상 없는 분노 "당신 어찌하자고 먼저 가버렸소? 나 혼자 어떻하라고, 당신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나, 당신은 알잖아!"
정말로 아릿다운 처였지요 그 꿈 많던 26세의 처녀가 이 못난 나를 남편으로 맞았지요 참으로 고생 많이 하면서도 참으로 못난 남편 하나만 믿고 불평한마디 없이 열심히 열심히 살았답니다.
명랑하게 살며 두 자식 열심히 키웠지요 이제는 두 아들 제 밥벌이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별안간 저 혼자 훌쩍 영원한 길로 떠나버렸어요. 나는 어찌해야 되나요?
사람들은 이제 잊도록 노력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내 목숨이 다 하여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내의 빈 자리는 너무나 크고 공허합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나를 살려 주겠지!" 하고 이 못난 남편 믿었을 내 색시, 이 죄인 어찌하면 좋을까요
저도 압니다,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꿈에서라도 용서를 빌려고 사진을 안고 잠을 청합니다만 꿈에서도 안보입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무당에게라도 가 볼까요? 내 색시가 그리도 귀여워하던 남이도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걷지도 못하던 유미가 뛰는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귀여워 했을 까요
내 색시는 남이 부엌살림 만지는 것 싫어했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숟가락 젓가락의 위치하나 바꾸지 못하게 합니다.
내 색시는 깔끔히 장롱을 정리하지요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내 처의 양말조각 하나 못 버리게 하지요.
오늘도 나는 내 색시의 손때가 묵은 성가집을 들고 새벽 성당의 어두컴컴한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정말로 내색시가 보고 싶어요, 정말로 안타까워요, 죽으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죽음이 기다려 집니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골롬바, 이, 정,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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