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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성지순례[10]베들레헴 목동들의 들 성당미사,예수님 탄생 대성당,서쪽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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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7-11-04 ㅣ No.2030


제 10일(첫번째)
10월21일(일)
1. 베들레헴, 목동들의 들 성당(미사), 2. 예수님 탄생 대성당, 3.밀크크로터(우유동굴), 4.성예로니모 동상과 성녀 가타리나 성당, 5.서쪽 벽(통곡의 벽)
 
베들레헴
영어  Bethlehem  그리스어  bethleem 
   이스라엘의 지명(地名)으로 유대의 베들레헴과 스블론의 베들레헴 두 곳이 있다. 그러나 보통 베들레헴이라 할 때 전자를 가리킨다. 예루살렘 남쪽 8km 지점에 위치하며 예루살렘과 네게브를 연결하는 간선도로 상에 있다. 다윗의 고향(1사무 17:12-15, 20:6-28)으로 유명하다. 또 그가 사무엘로부터 도유된 곳도 베들레헴(1사무 16:1-13)이다. 베들레헴의 지도급 인물들이 바빌론에 유배당한 이후 메시아적인 통치자의 고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베들레헴은 예수가 탄생한 곳으로 유명하다(마태 2:1-16, 루가 2:4-15, 요한 7:42).
(가톨릭대사전에서)
 
룻기  Liber Ruth
  노오미(Naomi)라는 여인이 기근 때문에 자기 남편 엘리멜렉과 자기 두 아들 마흘론과 킬리온과 함께 베들레헴에서 모압 지방으로 이주한다. 두 아들은 거기서 각각 오르파와 룻과 결혼한다. 그러나 둘 다 죽고 만다. 노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고 오르파는 모압에 머무른다(1장). 룻은 벼이삭 남은 것을 줍다가 유태인 보아즈의 눈에 띄게 되고, 그와 그의 하느님에게서 안전함을 얻게 된다(2장). 룻은 시어머니 노오미의 의견에 따라 혼인 이야기를 꺼내나 보아즈는 룻에게 가까운 친척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 친척은 룻과 결혼하기를 거절한다. 그 뒤 보아즈는 룻과 결혼하고 엘리멜렉의 땅을 맡게 된다. 룻은 오벳을 낳게 되는데 이 사람이 다윗의 할아버지다(3-4장).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는데 이 이야기는 누구든 자기 의무에 충실하고 하느님의 보호에 의지하면 하느님이 상급을 주시며 바로 이런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이끄신다는 것과 따라서 모든 것이 잘 끝나게 해 주신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 룻기 이소설의 의미요 또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룻기1장
기근이 들어 모압으로 이주하다 
 1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마흘론과 킬욘이었는데, 이들은 유다 베들레헴 출신으로 에프랏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모압 지방에 가서 살게 되었다.  3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4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5  그러다가 마흘론과 킬욘, 이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 
 
나오미가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다 
 6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7  그래서 나오미가 살던 곳을 떠나자 두 며느리도 따라나섰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떠났다.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자, 각자 제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남편들과 나에게 해 준 것처럼 주님께서 너희에게 자애를 베푸시기를 빈다. 
14  그들은 소리 높여 더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며 입 맞추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15  나오미가 말하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말하였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17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18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하였음을 보고, 나오미는 그를 설득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19  그래서 두 사람은 길을 걸어 베들레헴에 다다랐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다다랐을 때에 온 마을이 그들 때문에 떠들썩해지며, “저 사람 나오미 아니야?” 하고 아낙네들이 소리 질렀다.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셔요.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너무나 쓰라리게 하신 까닭이랍니다.   21  나 아쉬움 없이 떠나갔는데 주님께서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답니다. 그런데 어찌 그대들은 나를 나오미라 부르나요? 주님께서 나를 거칠게 다루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불행을 안겨 주셨답니다.”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룻기 4장
룻과 보아즈가 혼인하다
11  그러자 성문에 있던 온 백성과 원로들이 말하였다. “우리가 증인이오. 주님께서 그대 집에 들어가는 그 여인을, 둘이서 함께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하오. 그리고 그대가 에프라타에서 번성하고 베들레헴에서 이름을 떨치기를 비오.   12  또한 그대의 집안이 주님께서 이 젊은 여인을 통하여 그대에게 주실 후손으로 말미암아, 타마르가 유다에게 낳아 준 페레츠 집안처럼 되기를 기원하오.”   13  이렇게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점지해 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14  그러자 아낙네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대를 이을 구원자가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   15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에게는 아들 일곱보다 더 나은 며느리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이 아기가 그대의 생기를 북돋우고 그대의 노후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   16  나오미는 아기를 받아 품에 안았다. 나오미가 그 아기의 양육자가 된 것이다.   17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   18  이것이 페레츠의 족보이다.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고,   19  헤츠론은 람을 낳았으며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다.   20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고 나흐손은 살마를 낳았으며,   21  살몬은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오벳을 낳았다.   22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 
 
 
루가복음 2장
예수님의 탄생 (마태 1,18-25)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목자들이 예수님을 뵙다 
 15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16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하례와 작명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요한7,42
성서에도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이 살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말했다.
 
 
베들레헴으로 떠나기 전 아침 일찍 숙소(노보텔)에서 내려다 본 예루살렘 거리
 
빵집이라는 뜻의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쪽에 있으며, 가톨릭 교우들이 사는 동네도 있다고 한다(베사후르). 
예수님께서 자라신 곳 나자렛은 이스라엘 북쪽이다.
베들레헴은 3,000년전의 다윗의 탄생한 곳이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이다.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2,000년전에 태어나신 베들레헴이다.
오늘날에도 베들레헴 근처에는 양을 치는 유목민들이 있다고 하며 겨울철에 약간의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중의 하나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와 유대인 지역과는 분리 장벽을 쌓아 놓고 있었다.
이곳의 자동차 번호판은 파란색은 팔레스타인 사람 것이고,
흰색은 유대인의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장벽의 체크포인트, 문을 통과하여 베들레헴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침에는 이 체크포인트가 유대인지역으로 일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많이 붐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서니 가게 문이 거의 닫혀있었다.
장벽이 생긴 이후로 경제가 더 나빠졌다고 한다.
 
장벽,
땅과 땅을 갈라 놓은 장벽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
나는 너와 다른 사람이라는 교만한 마음들...
예수님께서는 이 장벽을 없애려고 오셨는데...
 
 
 
우리는 '목동들의 들' 기념 성당(Church art Shepherd's field)으로 갔다.
 
목동들의 들판은 '벳사후르' ...룻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며(룻기 4장)
창세기35장16-20절에 언급되고 있다.
(창세35,19)
라헬은 이렇게 죽어,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혔다.
 
라헬의 무덤은 이곳 체크포인트  근처에 있다고 한다.
 
 
기념 성당 마당에 AD. 4-5세기의 수도원 유적이 있었다. 
 
 
'목동들의 들' 기념 성당 옆에 있는 동굴 입구
 
우리는 동굴에서 예수 성탄 기념미사를 봉헌하였다. 
입당성가로 글로리아 높으신 이의 탄생을 부르니 오늘이 정말 성탄절인 것 같았다.
 
◎ 알렐루야.
 너희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나니,
우리 구세주이신 주 그리스도께서 오늘 태어나셨도다!
◎ 알렐루야.
 
루가복음 2장
예수님의 탄생 (마태 1,18-25) 
 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다 
 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이세라피노 신부님은 강론을 통하여,
"이번 순례 여정의 마지막 즈음에 베들레헴일까?
가장 평화를 말해야 할 곳에 장벽이 있다.팔레스타인과 유다인을 가르는 장벽, 평화!
거룩한 성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들을 보면서 자신의 죄스러움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거룩한 땅에서 목욕을 하는 느낌, 내면과 영혼의 씻김의 여정인 성지순례,
내 삶의 초점을 거룩함에 두어야 한다. 내안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셔야 한다.
거룩함이 깃들수 있으려면 내안에 광야, 산골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함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내안에 하느님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분리를 상징하는 장벽들, 그리고 거룩함을 간직한 곳..
어울리지 않는 두 곳이 공존하는 곳, 베들레헴...
우리 인생이 바로 거룩함과 장벽이 공존하는 것이다.
딱딱한 장벽보다는 내 안의 부드러움, 새싹이 나올수 있는 부드러움을 간직해야한다.
우리 일상의 터전에서 별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별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데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목동들의 들' 동굴 안의 제대 모습
 

 
'목동들의 들' 동굴 안에 계시는 아기 예수님 .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
 
"수도 시온아, 기뻐하여라.
수도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구세주, 거룩한 임금님께서 오시도다."
 

 
'목동들의 들' 동굴 안에 꾸며 놓은 마굿간과 말구유
 
성 프란치스코가 그렉치오의 구유를
어떻게 꾸미게 되었는지를 첼라노는 전해 주고 있는데(제 1생애 84-87항 참조),

그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선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기가 겪은 그 불편함을 보고 싶고, 또한 아기가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었는지,
그리고 소와 당나귀를 옆에 두고
어떤 모양으로 짚북데기 위에 누워 있었는지를 나의 눈으로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는 1223년 말,
레아띠 골짜기의 작은 마을 그렉치오의 움막집에서 기도에 전념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는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순례 때 느낀 아기 예수의 탄생과 주님 생애의 신비를 생각하고는
성탄 날 밤에 다시 태어나실 아기 예수께 대한 극진한 정이 솟구쳐서,
후에 재속회원이 된 요한 빌리따 형제의 도움을 받아
성당 옆 동굴에 건초와 집으로 말구유를 꾸미고, 구유 옆에는 소와 당나귀를 매어 놓았다.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의 가난한 탄생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하여
1223년 12월 25일날 성탄구유를 꾸며놓은 미사를 거행함으로써,
성탄을 원래의 모습으로 기념하였다.
새 베들레헴이 꾸며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거룩한 모습을 보려고 달려왔고,
동굴은 그들이 가져온 밀초와 횃불로 대낮같이 환히 밝았다.

프란치스코는 조그만 아기 예수 석상을 안고 와서
소와 양 사이에 있는 말구유 위에 정중히 모셨다.
그리고는 참석자들에게 아주 열정적이고 신심 깊게 설교했다.
그때 이 성탄 구유를 꾸민 요한 빌리따 형제는 예식 중에 놀라운 환시를 보았다.
그는 거룩한 하느님의 사람인 프란치스코가 다가가서 마치 잠에서 깨우듯,
생명 없이 누워있는 석상의 아기 예수님을 소생시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 교회에서 성탄구유를 꾸미는 풍습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동들의 들' 기념 성당 (Church art Shepherd's field) 정면의 모습
 

 
'목동들의 들' 기념 성당 안의 천장 둘레에는
LUCA  II, 14.  GLORIA IN ALTIS SIMIS DEO ETIN TERRA PAX HOMINIBVS BONAE VOLVN TATIS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가복음 2장 14절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성당 벽에는 루가복음 2장11-14,15-16,17-20절의 성서 내용이 그림으로 그려져있었다.
 

 
루가2,11-14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가2,15-16
 15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16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루가2,17-20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목동들의 들' 기념 성당문과 성수대
 
우리들은 '예수 탄생 대성당'으로 갔다.  
 

 
Bethlehem,  Nativity basilica 예수 성탄 대성당 
 
 AD 135년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제2차 유대인 반란을 진압한 후 그리스도교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예수님 탄생 동굴위에 아도니스 신전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제국내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부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이신
성녀 헬레나가 AD324년 베들레헴에 순례와서 예수탄생 동굴을 참배하고,
아들에게 청하여 아도니스 신전을 철거하고바로 그 동굴 위에다 예수 성탄 성당을 짓게하여,
339년 5월31일에 성당을 축성하였기에 첫번째 성탄 성당은콘스탄티누스 성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성당은 AD510년 대지진 때나 혹은 529년 비잔틴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던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크게 손상을 입게 되지만 성당 바닥을 장식한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모자이크 일부가 보존되어있다.
 
이후 531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복원되는데 그 이후지붕과 바닥, 내부장식 정도만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거의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내려 오고 있다.
 
그런데 614년 페르시아 군대가 침공했을때 모든 성당은 허물어버렸으나
동방박사들이 경배하러 온 모습을 그린 성화에서 자신들의 조상을 발견하고는 허물지 않고
오히려 참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또한 638년 이스라엘을 점령한 회교 군주 오마르 역시 파괴하지 않고 기도를 드리고 갔다고 하는데
코란에 보면 동정녀가 하느님의 종이며 예언자인 예수를 종려나무 아래서 낳았다고 하는데(수레19,16-33),
이 종려나무는 바로 베들레헴에 있다는 회교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Entrance to the Nativity basilica 
 
십자군 당시 교회를 보수할 때 약탈자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위해
입구를 낮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고 낮은자세로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 곳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 성탄 성당은 이스라엘에 있는 수많은 성당 중에 비잔틴시대의 것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성당이며,
이 예수 탄생성당은 동방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사원보다 오래 되었다.
 
 여기서는 연중 매일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무덤 대성당'과 여기 '탄생 성당'에서는 스따뚜스 꿔(Status Quo)규정이 적용된다.
 
스따뚜스 꿔(Status Quo)규정과 관련해서
이 규정의 당사자들인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간의 관계가 크게 개선 되어가고 있다.
(*스따뚜스 꿔(Status Quo)규정이란
주님의 거룩한 무덤성지와 주님의 탄생 성지에서의
법적인 권리와 전례 거행에 관련된 제반사항에 관한 규정이다). 


 
성당안에는 붉은 색 돌기둥이 오른쪽에 두줄 왼쪽에 두줄로 늘어서 있는데
한줄에 10개씩 모두 40개의 돌기둥이 있다.  돌기둥에는 여러 성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Colonnade of the Basilica of the Nativity
 

예수 탄생 성당 제대 십자가와 성상대
 
예수탄생 성당 제단 오른쪽  밑에 있는 층계를 내려가면
아기예수 탄생 동굴이 나온다.
 

 
예수 탄생 동굴로 내려가는 층계 앞에 있는 기둥 -  저 가장 높은 곳에 거룩한 만딜리온이 그려져 있었다.
 
아!
여기서 뵙게 되다니...!!!
 
이콘들 중의 이콘이신 예수님
“나를 보았으며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하고 말씀하셨으니
당신의 얼굴이 우리로 하여금 항상 당신의 거룩한 육화와
우리의 변화된 인성을 기억하게 하소서.
하느님 영광의 완전한 이콘이신 예수님
당신은 우리에게 해방되고 인간화되고 완성되고 신격화된
인간의 미래를 계시하십니다.
영원의 거울이신 예수님
인간이 당신으로부터 영원으로부터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당신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후렴 : 거룩한 빛, 성부의 광채 예수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Michel Hubaut, 「그리스도, 우리의 행복」, 신수영 대건안드레아 ofm 역
"10. 기도: 사랑받으신 분과 일치될 때까지 사랑하는 것" 중에서)

 
Monastère Dionysiou, Mont Athos (XVI° siècle)
 
Mandylion(만딜리온)
'손으로 만들지 않은'(아케이로포이에토스) 또는 '천 위의 주님의 이콘'(만딜리온)은
모든 그리스도 이콘들 가운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기본적인 그림이다.
이 유형의 그림은 단지 그리스도의 얼굴만 묘사하고 목, 어깨 등은 그리지 않는다.
그리고 긴 머리가 얼굴 양측면으로 타래 모양으로 늘어져 있고
턱수염은 삼각형 모양으로 가지런히 늘어져 있으며
때로는 끝부분이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기도 하다.
얼굴의 균형잡힌 용모는 도식적으로 묘사된다.
입의 아름다운 선은 육감적인 면을 조금도 볼 수 없으며 코는 매우 곧고 길며.
양 눈썹은 활처럼 굽어져 있어 야자나무를 상기시킨다.
 
*아케이로포이에토스
서방교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아케이로포이에토스 이콘이 전해지고있다.
즉 십자가의 길에서 성녀 베로니카가 자신의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앆아드렸을 때
주님의 얼굴이 그 수건에 기적적으로 새겨졌다는 것이 그것이다.
(편저 장긍선신부,이콘.신비의 미에서)
 
 
예수 탄생 동굴로 내려가는 층계 앞에 있는 많은 이콘들... 이곳 예수 탄생 성당도 이콘의 보고인 것 같다.
층계는 매우 경사가 급했다.
 
 
예수 탄생 동굴로 내려가는 층계 앞에 있는 많은 이콘들...
 
 
예수 탄생 동굴로 내려가는 층계 앞에 있는 '리사에 의한 장식이 있는 성모자' 이콘...
 
 
그런데 예수탄생 동굴은 현재 그리스 정교회 소유 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 동정녀께서 본체를 구원하는 분을 낳으시니
땅은 범접할 수 없는 분에게
동굴을 드렸으며,
천사들은 목자들과 함께 영광을 드리며,
박사들은 별 따라 길 떠났도다.
태초부터의 하느님이 우리들 위해
한 아이로 태어나셨음이니라.
- 성탄축일 조가 콘티키온 중에서 
 
 
"여기서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 "
 
예수 탄생 동굴 바닥에는 예수님 탄생 장소 표시로 은으로 만든 14개(14처)꼭지의 별이 있다.
이 별은 1717년 가톨릭교회(프란치스코회)에서 만든 별이다.
 
예수그리스도님!
당신 육화의 겸손과 가난을 기억하오며 찬양하나이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첼라노는 사부님의 주님의 성탄에 대한 신심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축일 중의 축일이요,
그날에 하느님이 주먹만한 아기가 되어 인간의 젖꼭지에 매달리셨다고 말하며,
프란치스코는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어느 축일보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중에 보냈다.
아기 예수를 그린 그림을 만나면 그는 그리운 마음에 거기 손과 발에 입을 맞추었고,
아기 예수에 대한 측은함에 가슴이 뭉클해서 마치 아기들에게 하듯이 예쁜 말들을 더듬거렸다.
아기 예수의 이름은 프란치스코의 입에 꿀맛이었다.
마침 성탄일이 금요일이 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금육을 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에, 그는 모리꼬 형제에게 이렇게 답변하였다:
’형제여, 우리를 위하여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신 이 날을 단식일이라고 하면 그것은 죄입니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날은 담벼락까지도 고기를 먹여야 합니다.
그런데 먹일 수 없으니, 그 겉에다가 고기를 문지르기라도 해야 합니다.”
(제 2생애 199항). 
 
 
예수 탄생 동굴 바닥에는 예수님 탄생 장소 표시로 은으로 만든 14개(14처)꼭지의 별이 있다.
 
 
Another angle of the Grotto
  
아기예수 탄생 동굴 부근의 모습,  많은 이콘과 성화가 벽화와 액자로 되어있었다.
 
 
탄생 동굴에서 조금 옆에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린 곳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성화로 그려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시 탄생 성당 중앙 제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양쪽 높은 벽에는 십자군시대의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그중에서 성지주일,주님 예루살렘 입성을 그린 것인데....그런데 자케오처럼 나무에 올라간 사람이 있다.
 

 
십자군 시대의 모자이크 벽화와 성자들의 모습을 그린 기둥들
 
 
예수 탄생 대성당 바닥에는 콘스탄티누스황제 시대의 모자이크가 있었다. 

우리들은 옆에 있는 우유동굴 기념 성당(MILK GROTTO)으로 갔다.

우유동굴 기념 성당(MILK GROTTO) 입구

우유동굴 기념 성당(MILK GROTTO)


 
이 동굴은 성모님께서 아기예수께 젖을 먹이신 곳을 기념하는데,
성모님께서 젖을 먹이실때 젖이 한방울 떨어졌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의 내용을 말해주는 듯 그곳에는 하얀 우유색 바위가 있다. 
 
간혹 아이를 못 낳은 여인들이
이 바위를 갈아 먹으면 아이를 낳게 된다고 하여 돌가루를 가져간다고도 한다.
 
 
우유동굴 기념 성당 -  에집트로 피난 가시는 아기예수님과 성모님,성요셉 성상
 
마태복음 2장
이집트로 피신하시다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헤로데가 아기들을 학살하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그리고 이곳 탄생성당에는 무죄한 어린이들의 무덤이 있는데
그것은 헤로데가 두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인 어린 아기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12월28일 (게시판1542번)
The Holy Innocents, Santi Innocenti Martiri
 
교회는 오래전부터 예수님 탄생 무렵에 발생하였던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을 지내 왔습니다.
오늘 축일에 대한 첫 번째 증언을 5세기 베드로 크리솔로고와 카르타고 전례력,
그리고 예로니모 순교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68년부터 이 축일을 성대하게 지냈으며 콘스탄티노플에서는 12월 29일에 지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무죄한 어린이들이 박해받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살해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죄한 어린이들의 죽음을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며,
더 이상 그렇게 처참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홈에서)
 
 
Grotto of Innocent -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동굴(사진:The Franciscans of the Holy Land홈에서)

오, 위대한 은총의 선물이여!
아기들이 누구의 공로로 그와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까?
그들은 아직 말을 못하면서도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그들은 사지를 움직여 투쟁할 힘이 없는 아기에 불과하지만
벌써 승리의 월계관을 얻었습니다.
-성 쿠옷불트데우스 주교의 강론에서(Sermo 2 de Symbolo: PL 40,655)

예수 탄생 대성당을 나오니 성녀 가타리나 성당과 성 예로니모 성상이 보였다.


 
성녀 가타리나 성당 정면의 모습과 성 예로니모의 성상
 
성녀 가타리나 성당에서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예수 탄생동굴과 비슷한 동굴들이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성 예로니모의 서재이었다고 전해진다.
 
아쉽지만 우리는 성녀 가타리나 성당안에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The Holy Trinity, St Jerome and Two Saints - ANDREA DEL CASTAGNO.
c. 1453.Fresco.SS. Annunziata, Florence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축일:9월30일 (게시판1394번)
San Girolamo (o Gerolamo) Sacerdote e dottore della Chiesa
(Stridone (confine tra Dalmazia e Pannonia), ca. 347 - Betlemme, 420 )
Born:347 at Strido, Dalmatia
Died:419; relics at the Basilica of Saint Mary Major in Rome
Girolamo = di nome sacro, dal greco(of sacred name, from the Greek)
성예로니모는 이곳에 남녀 수도원을 창립,지도하였는데 로마의 성녀 바울라(347-404)와
성녀 바울라의 딸 성녀 에우스토키움 동정녀(368-420)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모녀는 386년부터 예로니모 성인과 함께 베들레헴에 정착하여 예로니모 성인을 도와드렸는데
모녀가 사망하자 예로니모 성인께서 자신의 서재 근처 동굴에 그들을 묻어 주었다고 한다.
두 모녀의 동굴은 어느 동굴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성녀 바울라 축일: 1월26일,게시판1587번.
성녀 에우스토키움 동정 축일:9월28일
 
 
성 예로니모 기념 경당에서...이 사진은 2006년 성지순례단에서 찍은 사진이다.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축일:9월30일,+419)
유다인들은 예로니모 성인이 베들레헴에서 30년동안 라티어로 번역한 불가타 성서를
믿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나 꿈란에서 발견된 성서와 일치하여 그들의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꿈란에서 모든 성서가 조금씩 발견됐으나. “에스더서”만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중 약 25%는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주석, 신학서, 쿰란 규율집으로
대부분 양피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놓은 것들이다.
 
 
Tomb of St. Jerome  성예로니모의 무덤  (사진: The Franciscans of the Holy Land홈에서)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그의 가장 큰 성공은 390년에서 420년까지 이룩된 구약 번역이다. 
이것은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 신약성서의 번역도 이 동안에 완성된 것이다.
이 사본은 소위 불가타본으로 불리고, 1546년 트렌트 공의회에 의하여 가톨릭의 공식 라틴어본으로 선언되었다.
 
*불가타(Vulgata.대중라틴말성서
405년부터 임종할 때까지 그는 수많은 성서 주석서를 남겼고, 그의 번역 사업에 대한 귀중한 자료들을 남겼다.
415년에는 펠라지아노스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이듬해인 416년에
무장한 펠라지아노스 수도자들이 베들레헴 수도원을 불태우고 그를 해치려 하였으나,무사히 빠져나왔다.
이같이 하느님께 위탁받은 사명을 완수한 예로니모는 420년 9월 30일, 베들레헴의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교회 박사로 공경을 받는다. 지금 그의 유해는 로마에 있는 성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성모설지전)에는 아기예수님께서 누우셨다는 말구유가 보관되어있었다.게시판1906번.
*성모설지전 봉헌축일:8월5일,게시판1303번

그는 무엇보다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과 그리스어로 된 신약을 라틴어로 번역한 성서 학자였다.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정신적 영감의 큰 근원이 된 주석들을 쓰기도 했다.
그는 신비주의자였으며, 기도,참회,연구에 자신을 맡기고자 칼키스 사막에서 5년을 보냈다.
마침내 그는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믿어지는 동굴이 있는 베들레헴에 정착해서 살았다.

돌로 가슴을 치는 예로니모의 초상화를 보면서 한 교황이 말하기를
"당신이 그 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 하신 일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교회가 결코 당신을 성인으로 추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어를 익히고 히브리어를 공부하며,그가 은수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 망설이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너는 치체로 추종자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네 보화가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꾸중하셨다고 한다.
 
394년부터 그는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와 서신 연락을 하면서
당시 교회의 큰 골칫거리였던 펠라지우스 이단을 몰아내는 데 공동 보조를 맞추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예로니모의 라틴어 번역 사업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를 칭송하였다.
교회는 9월 30일에 그의 축일을 지내고, 그를 ’신학교의 주보’ 또는 ’수덕생활의 주보’로 모신다.
그는 아마 라틴 교부들 가운데 가장 박학한 분이었고,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 라틴어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그의 가장 큰 성공은 390년에서 420년까지 이룩된 구약 성서 번역이다.
이것은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 구약성서의 경우에
처음에는 그리스어로 된 70인역에서 번역하였다가 후에 히브리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였다
신약성서의 번역도 이 동안에 완성된 것이다.
예로니모가 번역한 라틴어 성서에 불가타(Vulgata.대중라틴말성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예로니모 당시가 아니라 훨씬 뒤인 13세기부터였다.
예로니모의 라틴어 성서본이 원문에 매우 충실하고 정확한 번역일 뿐만 아니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있었으므로
로마 교회가 트렌트 공의회에 의하여 가톨릭의 공식 라틴어본으로 선언되었다.
 
예로니모에 관한 유명한 전설이 있다.
그것은 어느 날 한마리의 사자가 절룩거리며 그에게 가까이 와서 앞발을 내밀어 자세히 보니,
거기에 커다란 가시가 박혀져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이를 빼주니까 사자는 자못 기쁜듯이 갈기로 덮여진 머리를 성인의 몸에 비비고
그 후는 성인의 곁을 떠난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예로니모가 사자와 같은 용기로써 교회를 위해 투쟁하고, 자신을 극기하고,
자기의 결점, 악습과 같은 가시를 제거하는데 끊임없이 노력한 사실을 상징한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명의 교회박사(4대 공교부):
성아우구스티노(축일:8월28일,게시판1336번), 성암브로시오(축일:12월7일,게시판1509번),
성대그레고리오1세교황(축일:9월3일,게시판1346번), 성예로니모(축일:9월30일,게시판1394번)
 
 
 
예로니모성인은 말씀과 성체를 동일시 한다;
내의견으로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서가 그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말씀한신 것은 확실히(성체의)신비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와 그분의 가르침의 말씀은 그분의 참된 몸이며 그분의 참된 피이다:In Isaiam Prologus, CCL 63,1.)
- 주석 35번참조

말씀의 영성체는 성체의 영성체처럼 동일하게 주님을 모시는 것이다.
말씀에 드리는 경배는 성체에 드리는 것과 같은며 이는 그리스도 예수께 드리는 그 경배이다.
말씀의 신비와 성체의 신비는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신비로 귀결된다.
이 신비들은 부활하신 분의 두 모습의 공현이라는 의미에서 같은 중요성을 지닌다.

복음서에서 빵의 기적에 앞서 말씀을 많게 하셨음에 대한 지적도 동일한 노선이다.
마르코는 빵의 기적에 앞서(마르6,34-44)예수께서 말씀을 많게 하셨음을 지적한다; 그
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가지로 가르쳐 주셨다(마르6,34).
빵의 배를 불리기에 앞서 말씀으로 백성들의 배고픔을 채워주셨다.
그분의 빵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
빵과 말씀, 하늘에서 온 두 가지의 선물은 아버지께 대한 사랑의 순종 안에 합쳐진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요한4,34)
주님께서 엠마우스 제자들에게 발현하신 장면에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거행이 어떠했는지를 보려는 성서 주석가들도 있다.
실제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말씀의 전례를 나타내고 있다(모세,예언자들,시편).
식사를 하기 전에 그리고 빵을 쪼개기 전에(참조 루가24,30) 말씀의 전례로서
스승께서는 제자들을 당신 영광의 신비에로 이끌면서 강론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참조 루가24,32)
('프란치스칸영성학교' 전례 강의록 뒤에서 7쪽에서 ) 
 
삶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피조물을 먹는 행위로 이루어져 있어요.
훌륭한 음식을 차려놓고 그 앞에 앉아 있으면 그런 생각이 별로 안들기는 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음식이라도 그 재료는 조금 전까지도 살아 있던 것들입니다.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서 살아지는 것입니다.
이 상징적이고 역설적인 이미지들이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신비입니다.
(신화의 힘,조셉캠벨.빌모이어스 대담/이윤기 옮김, 이끌리오출판사,96쪽에서)
 

 
예수 탄생 대성당을 떠나며...
성당 지붕 십자가 위에는 별,...그런데 십자가 아래에 있는 글자 두개는 무슨뜻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베들레헴을 떠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런데 다윗왕이 여부스족을 물리치고 세운 예루살렘은 오른쪽 언덕이라고 한다.
후에  BC621 북이스라엘이 망한후 유민들이 오면서  서쪽으로 확장되어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통곡의 벽, 서쪽 벽으로 갔다.
 
서쪽 벽,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 기도드리고 있는 유대인들...
왼쪽엔 남자, 오른쪽에 여자,  남자와 여자가 따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에 모자를 써야만 들어갈수 있으며
기도드리는 모습이 굉장히 경건해 보였다. 
 

 
서쪽 벽, 예루살렘 통곡의 벽
자신들의 기도를 적은 종이를 서쪽벽 틈에 꽂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시대의 땅은 10M 지하에 있다고 한다.
현재 땅위로 보이는 큰돌은 11층으로 쌓여 있는데,
땅 아래에도 이와 같은 큰돌이 11층으로 쌓여 있다고 한다. 
 


서쪽 벽 근처의 모습들...
건물 지붕위에 6개의 굴뚝이 있는것은 유다인들이 600만명 학살 당한 것을 상징하며
그 밑에 쓰여 있는 글씨는 '기억하여라'하는 뜻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1967년도 6일전쟁 때 이스라엘이 차지하였는데
그전에는 요르단 지역이었으며 아랍인들이 4백세대 가량 살았으며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후 이곳을 자신들의 기도의 장소로 만들었다고한다.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유다인들이 성전의 파괴를 마음 아파하면서
큰소리로 기도하러 이곳으로 찾아온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요한복음 2장20절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46년이나 걸려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코복음 13절 2절을 보면 예수께서 활동하실 당시에는 성전이 완성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사가들은 64년경에 헤로데 아그리빠2세에 의해 성전이 완성 된것으로 본다.
그러나 화려했던 성전도 유다전쟁시(66-70년)에 폐허가 되어버렸다.
 
기원후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이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하고 이벽을 남겨놓은 이유는
후세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시킬 수 있었던 로마군인들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시 위한것이었다고 한다.

폐허가 된 성전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쥬피터신전을 세웠고(135년)
그뒤 콘스탄티누스 대제(306-337년 재위)에 의해 쥬피터신전은 허물어뜨려졌다.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다시 예루살렘시내를 자유로이 다닐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324년).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했던 율리아누스 아포스타타 황제는 363년 유다인들이 예루살렘 시내에 들어와
살도록 해쓰며 폐허가된 성전터를 정리하기 시작했으나 대지진으로 수포로 돌아다 버렸다.
638년에는 아랍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이스람교에서는 성전터에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마호멧이 승천했다고 믿고 있다.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교 3대성지중 하나가 된다.

1099년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회교 대사원을 개조하여 '주의 성전(Templum Domini)이라 불렀는데
그 후 1187년에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함락하여 주의 성전을 다시 회교사원으로 개조해 버렸다.
이때부터 그리스도인은 근 7백년동안(1855년경까지) 이 성전에 가까지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최근에 요르단의 마바다에서 예루살렘 모자이크 지도가 발견되어 솔로몬시대,유스티니아누스 황제시대의
예루살렘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순례단은 로마시대의 길(까르도)를 지나
시온게이트, 시온산의 성모영면성당,최후의 만찬 다락방,
다윗의 가묘, 베타니아 기념성당, 나자로 무덤, 다시 예루살렘 성묘대성당에서 조배 드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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