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5월 1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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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환 [franco2] 쪽지 캡슐

1999-05-02 ㅣ No.56

09:00 - 계단공사 업자측의 어려움 대로 돌은 치우지 못했다.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성당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이곳 저곳 깔아 놓은 돌들이 파헤처져 흉한 상처

      투성이다. 언제 한번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데... 우기가 닥치면 상처 속으로 파고

      들어 다 들뜨기 때문이다.

10:00 - 학생들과 이곳에 지정된 노조원들이 속속 모여 들기 시작한다. 결혼식 하객들도 속속

      모여든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직원들이 총 동원되어 질서유지에 나선다. 오늘이

      노동절인데 직원들도 노동자들인데, 어쩌나........

12:00 - 결혼식 주례를 위해 성당을 나선다. 2,000여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간신히 빠져

      나오면서 짧게 기도해 본다. 하느님! 집 좀 잘 지켜주십시오. 제발 아무 사고도 없게

      해 주세요. 하느님만 믿습니다.

14:00 - 혼배미사 주례를 마치고 성당으로 들어선다. 성당에 집결했던 인파들이 속속 빠져

      나간다. 서울역을 향해 가는 모양이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성당에 들어섰다. 성당은

      잠시 평온했다. 천막 농성중인 사람들만이 남고 결혼식 하객들이 활짝 웃는다.

      한편에서는 시위가, 다른 한편에서는 한 가정이 탄생한다. 묘한 기분이다.

      그제는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늘은 남대문 공동체의 회장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후배가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며 기뻐한다. 그러나 어느 한 곳도 가질

      못했다. 아이가 출산하고, 연세드신 분들은 또 돌아가시고, 다시 한 가정이 꾸려지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세상은 여전히 돌고 있다. 거참!

17:30 - 서울역 시위대가 집결지인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대형 스피커들이 산더미를

      이룬다. 아래 회관 주차장은 이미 꽉 들어찼고, 어덕 위도 꽉 들어 찼다. 이 정도면

      5,000여명 쯤 된다. 성당 마당으로도 들어차기 시작한다.

        서울 경찰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남대문 신세계에서 막혀 있고, 시위대의

      후미가 서울역에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정리집회를 빨리 마무리 하지 않으면 충돌이

      불가피 해진다는 것이다. 이미 교통도 마비 되었고..빨리 무슨 수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 정리 집회를 마무리 하고 선두가 빠져 주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결혼식 하객들이 아직 빠지지 않고 있다. 신랑 신부만이라도 빨리 빠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무장에게 빨리 하객들이 빠지도록 전하라고 하고는 시위대열 속으로

      갔다. 진행자를 찾기 위해서...

        이미 7,000여명이 넘어섰다. 시계를 보니 18:40분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하겠는데, 진행자를 찾기가 힘들다. 다행히 연락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려야 시위 대열이 들어설 수 없으니 빨리 진행했으면 한다고 외쳤다.

19:00 - 마무리 집회가 시작됐다. 짧고 굵게, 20분만에 정리 집회는 마쳐졌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부터 차례로 빠졌다. 쓰레기를 주우라는 방송이 계속된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고 바람마저 심하게 불고 있다. 신문지며 쓰레기들이 날린다. 직원들과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지하철 노조원들도 가세하고 한총련도 가세 했다. 삽시간에 맑끔히

      정리가 되었다. 아무런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0:00 - 사무실로 올라와 computer를 켰다. 중부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생들 3,000여명이 또 다시 집결했다는 것이다. 아! 중부서 직원들도 시위대로부터

      물러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또 급히 나갔다. 회관 앞 주차장과 언덕은

      이미 학생들로 가득 메워지고 깃발이 나부낀다. PD계열 좌파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집행부의 한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어떤 성격의 시위냐고 물었다. 좀전에

      합류하기로 했는데 이제야 도착했고, 이제 정리 집회를 마치고 빠진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또 다른 전화다. 성당 안에 화염병이 마대 두 포대가량 있다는 것이다. 급히 달려

      올라갔다. 휴발유 냄새가 진동한다. 사제관으로 옮기라고 말하는 순간, 한 학생이

      성모동산 근처에서 베낭 3개를 들고 배회한다. 붙들고 화염병이면 내 놓으라고 했다.

      경찰로 오인한 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완강히 거부한다. 정신을 차리라고 호통을 쳤다.

      직원들과 사목협의회 사람들이 둘러 섰다. 이미 포기한 학생은 순순히 베낭을 내려

      놓고는 화염병이라고 말한다. 직원들과 사목협의회 사람들에게 물러나 있으라고 한 후

      진정시켰다. 괜찮으니 안심하라고, 그리고 베낭은 두고 가고 다음에 나를 찾아오면

      주겠다고 했다. 연신 가슴을 쓰러 내리는 학생을 보니 가엽다. 굉장히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화염병이 터지지 않아서... 화염병을 쓰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더니 게면쩍게 웃는다. 또 다른 학생들이 화염병을 가지고 있으면 여기다

      두고 가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성당 안내실 옆에 다수의 학생들이 보인다. 그곳에서는 직원 한명이 마대자루를

      들고 화염병을 담는다. 두 포대의 화염병이다. 정리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다 검문에

      걸릴까봐 모두 버리는 모양이다. 화염병을 소지 했다는 것보다, 쓰지 않아 준것만이

      고마웠다. 회수된 양은 마대자루 4포대와 베낭 3개였다.

21:50 - 서서히 학생들이 빠져 나간다. 한총련 천막농성 학생들이 청소를 시작한다.

      아까 치웠는데 또 이렇게 많다니!! 성당 초입은 모아놓은 쓰레기가 산더미다.

      스피커의 작은 동산이 사라지니 쓰레기의 작은 동산이 생겨났다.

22:00 - 천막 농성 한총련이 가로등을 타고 올라가 깃발을 걸려한다. 이봐요 학생들, 거지다

      깃발을 걸면 어떻하나! 천막에다 세우지 그러나! 그리고 저 게시판을 나무에 묶어두면

      나무가 아프지 않을까? 치워주게.....

        언젠가 신학생 때, 개학을 하자마자니까 3월 중순경으로 기억된다. 운동을 하려고

      축구공을 들고는 아주 약간 파릇한 축구장에서 공을 차려는 순간 학장 신부님께서

      불러세우신다. 그리고는 점잔케, "잔듸도 살 권리가 있지 않은가?" 아뿔싸!

22:20 - 천주교 노동 사목위원회에서 전화다. 오늘 노동절이라 초촐한 행사가 있었는데

      과일과 떡, 김밥이 좀 남았다는 것이다. 두고 갈테니 잘 처리해 달라는 것이다.

      들고온 음식물들을 지하철 노조원들에게 모두 주었다. 오늘이 노동자들의 생일이나

      다름없는데, 생일날 이렇게...........

        성모동산 구석에서 목청을 돋우며 격론을 벌인다. 지하철 노조원들이 한잔 하는

      모양이다. 지하철 노조 부위원장에게 적당히 하라고 말해달라고 했다. 함께 가면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겁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이제 우리와 싸워야 겠군요.

      서로 웃었다.

        그리고는 부위원장이 그들에게 말하는 사이 그 자리를 비켜 주었다.

      괜히 불편할까봐.

00:57 - 이제야 평온하다.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암튼 나도 자야겠다. 오늘이 주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피곤합니다. 불상사가 없이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잘 집에 도착해야 할텐데.. 걱정이군요.

      모두 잘 보살펴 주세요.

      저 먼저 의리없게 잘렵니다. 한번만.....밤새 수고하세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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