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동성당 게시판

교사들의 묵상-3

인쇄

도현우 [dohshim] 쪽지 캡슐

2000-09-29 ㅣ No.1734

3번째 모임 때 했던 묵상은 나눔으로 했기에 묵상문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어제 4번째 모임 때 했던 묵상문을 올립니다. 요한 1서 4장 7-21절 입니다.

 

"두려움을 품는 사랑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랑입니다".

 

- 나는 모든 일에 두려움을 느낀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일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난 그렇다. ’학생들이 내 얘기를 안 들어주면 어떡할까?’, ’친구들이 날 외면하면 어쩔까?’, ’부모님은 정말 나를 사랑할까’ 등등... 사소한 일에서부터 난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위의 말처럼대로라면 나는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교사로서 모든 학생들을 포용할 수 있는, 집에서는 착실한 자식이길 나는 바란다. 하지만 좀처럼 잘 되질 않는다. 나의 노력이 많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 살아가면서 형제에게 도움을 받기도 사기를 당하기도 사랑하기도 증오하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를 사랑하기도 힘든 세상에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 당신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 이것이 내가 당신을 안다는 것일 겁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나에게 모든 것을 베푸시려 하신다. 하지만 난 그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 힘들고 지쳐있는 나에게 일깨움보다는 죄를 주시는 거라 생각하며 행복하고 여유로울 때는 주님께서 주시는 또 하나의 일깨움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거라 자아도취에 빠져있다. 과연 이런 내가 주님께서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만큼의 사랑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주는 이의 맘을 이해해야 받는 이로 하여금 주는 이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 영화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 같다. 우리도 사랑을 한다. 진실한 사랑도 할 것이고 거짓된 사랑도 하겠지... 요즘 세대는 진실한 사랑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까... 신세대들의 연애방식은 전과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물론 사회가 인식을 반영하고 사회는 변하니까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첫째, 요즘 신세대들은 이성간의 교제 및 만남이 전과 같지 않게 자유스러워졌다는 점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은 이제 옛시대의 유물인 뿐이다. 둘째, 만나는 수단이 다양해졌다. 전에는 개인적인 만남, 이런 경우는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은 경우가 많다. 미팅, 소개팅 등도 전부터 존재했지만 요즘과 같은 사회분위기는 아니였던 것이고, 이제는 컴퓨터 채팅 등에서도 얼마든지 이성을 접할 수 있다. 단순히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만으로 이성과의 만남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 사랑...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데...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 어찌 아이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이 교사회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기란 힘든 것을 우리는 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님을 사랑이시다... 마음에 사랑이 와 닿아야 한다. 사랑+사람 : 한끝차이.

우리도 LOVE 이어라.

 

"사랑... 용서... 하느님".

 

- 어느 문장에서나 나오는 말들이다. 사랑합시다. 용서하십시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어린 유년시절부터 들어온 말들이지만 살아가면서 실천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말들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힘든 선택이지만, 용서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더 가식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가? 누가 누구에게 용서를 청해야 하나? 그것의 기준도, 이유도 알 수 없다. 후회없이 살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것이 아닌지... 사랑? 이성적 사랑도 하기 힘이 드는데... 진정 사랑이신 아니 그렇게 불려져야할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인지.. 사랑, 용서, 하느님은 죽을 순간까지 숙제인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어려운 말이며, 아직도 힘든 일이다.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버거운 날이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누구도 하느님을 직접 만나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언젠가 만나 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 우리가 자주 듣는 보편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렇게 모든 사람들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 같아요. 삶이 괴롭고 이렇게 각박한 사회에서 미소를 간직하면서 조금한 맘이라도 서로 사랑하면서 이해하며 살았으면 해요.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 ’세상에 태어나 과연 내가 몇 명이나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 만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이 말이 더 가슴에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이 말은 어쩜 교사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난 우리 교사회가 사랑의 단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노력해야 하겠지..."사랑합니다. 여러분!"



45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