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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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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1-12-23 ㅣ No.762

대림 제4주일(가해. 2001. 12. 23)

                                                 제1독서 : 이사 7, 10 ∼ 14

                                                 제2독서 : 로마 1, 1 ∼ 7

                                                 복   음 : 마태 1, 18 ∼ 2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시 한편을 읽어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시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누군가가 우리를 부른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짝사랑하는 이가 나를 부른다면 나의 마음은 두근두근 거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함께 하고자 하는 이가 부른다면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누군가가 부른다면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보기도 싫고 말소리도 듣기 싫고 괴롭히는 이가 부른다면 아마 귀를 막고 도망가고 싶을 것입니다.  같은 부름인데도 어떤 것은 기쁘고 어떤 것은 부담스럽고 합니다.

 

  오늘 하느님은 유다의 왕 아하즈를 부르시고, 요셉을 부르십니다.  두 사람은 부르심에 대한 답을 합니다.  그러나 느낌이 다릅니다.  아하즈 왕은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래서 그의 답은 극히 위선적입니다.  아하즈 왕은 국가가 어려움에 당면했을 때 인간적인 능력으로 어려움을 벗어나려 합니다.  그래서 그는 군사력과 자기의 외교적 수완이나 세상의 지혜만을 믿고 정치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나라가 어려울 때 자기 아들을 우상의 제물로 바치기도 했으며, 성전의 집기들을 앗시리아에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이사야 예언자가 그런 식으로 나라를 구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매달려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하즈는 자못 열심한 척 위장하면서 어떻게 하느님께 기적을 청하여 하느님을 시험할 수 있는가 하며 거절합니다.  이에 이사야 예언자는 "보라,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하나의 징조를 예고합니다.  유다 왕국은 결국 아하즈 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민에 대한 답으로 기쁘게 받아드립니다.  자신과 약혼한 여인이 임신을 하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임신이 자신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어느 사람이 좋아하겠습니까?  요셉도 그 사실을 알게된 이상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사실을 드러낸다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과 그녀에 대한 배신감, 이 모든 것이 요셉의 고민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뜻을 알게된 후 그는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아하즈 왕과 요셉의 응답을 볼 때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응답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 옆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거나, 못들은 척하거나, 마음에 없는 위선적인 답을 한다면 옆에서 당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고 계시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에 옆에 있어도 손을 잡고 있어도 모르는 듯하여 광야에서 혼자 인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아나신 분이며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의 탄생을 바로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임마누엘이라고 말합니다.  임마누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말합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결코 혼자 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같이 있어도 혼자인 듯한 느낌을 우리는 종종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요, 부르심에 무응답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께 응답함으로써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드러내도록 해야하겠습니다.  위선적인 삶이 아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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