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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연중 34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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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0-12-01 ㅣ No.5590

 

2000, 12, 1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루가 21, 29-33 (무화과나무의 비유)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아라.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묵상>

 

온 한반도가 다시 한 번 울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 그동안 메말랐던 우리의 눈물샘을 또다시 터뜨렸습니다. 맘껏 울고 싶습니다. 이 눈물이 흘러 그동안 쌓였던 온갖 분열의 쓰레기를 말끔히 쓸어버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순수의 눈물, 정화의 눈물, 가슴 벅찬 화해의 눈물을 흘릴 수 없었습니다. 어제 오후 5시 여의도. 국가보안법 철폐 기원 범종교인 기도회. 어둠이 짙게 드리운 행사장에 30분이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행사장을 둘러 본 순간 '차라리 오지 말 것을'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이 암담한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회 참가자 보다 몇 배에 달하는 전경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철의 장막 사이에 한치의 틈도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 분노가 아니 말할 수 없는 쓰라림이 밀려 왔습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극적인 만남을 이루려는 시간, 남과 북을 처절하리만큼 갈라놓았던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는, 이미 남북정상회담과 이어진 일련의 남북대화로 인해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는 목소리는 여의도 한쪽 구석에 갇혀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었습니다.

 

기도회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면서 하늘을 보았습니다. 캄캄했습니다. 밝게 빛나는 별 하나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도 캄캄했습니다. 기도회장에 이미 들어가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이들을 둘러막고 있던 경찰들의 마음도, 경찰에 막혀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배회하던 사람들의 마음도 온통 캄캄했을 겁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자위를 해 보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신문을 통해, 텔레비전 특별 방송을 통해 이산가족 만남의 장면을 다시 봅니다. 결코 막을 수 없는 민족의 화해와 조국 통일의 큰 물결을 봅니다. 앞으로도 기도회를 봉쇄할수는 있겠지만, 이 민족의 큰 발걸음은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하느님께서 가녀린 민중들의 몸과 마음을 통해 이루시려는 화해의 역사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맞습니다. 자유와 해방, 화해와 평화의 복음은 분명 가장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힘껏 퍼져나갈 것입니다. 분열과 억압, 전쟁으로 얼룩진 인간의 역사는 무너지고 하느님 나라가 설 것입니다. 그 날을 희망하며 자그마한 힘을 주님께 보태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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