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明洞聖堂) 농성 관련 게시판

가시나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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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avis96] 쪽지 캡슐

1999-04-30 ㅣ No.54

잔인한 4월 끝났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을 뺏고......'

이런 노래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새'라는 노래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으로 따지면 4월은 가장 기쁜 한 달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은  참혹한 죽음 뚫고 부활을 하셨고, 아무리 환경이 파괴됐다고는 하지만 어김없이 계절은 돌고, 많은 생명이 하늘을 향해 초록빛 탄성을 내지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고 아름다운 4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었던 한 달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높은 계단을 헉헉거리고 뛰어 올랐지만, 이내 지하철은 떠나고 저도 모르게 격한 말투가 입가를 스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은 도착하고 오늘도 편하게 이곳으로 왔습니다. 저는 제 돈 500원으로 움직여 지는 것이 지하철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 지하철은 이토록 환한 햇살을 제대로 쬐지 못하면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고로 이루어지는 편리함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그것만은 사실 아니겠습니까?

 

이 게시판이 개설된 이후에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지하철 파업이 마무리 되었고요. 사람들 저마다의 목소리로 이번 사태를 이야기했습니다. 정작 명동에서 근무하는 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지만요.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파업을 지지하든 아니든, 명동천막을 곱게 보든 안보든, 그 언어에 하느님이 담겨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농성자 당사자들의 심정이 담겨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나만,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나' , '혹은 불편을 감수할 수 없는 나' 만 담겨 있다면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주절거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 겁이 났습니다. 하나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사람들 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 놓고는 있지만, 대부분 이것저것 다 빠지고 오로지 '자기' 만이 담겨있는 가시나무새 였습니다. 정확한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깊은 묵상 끝에 나온 성서구절이나 신앙의 언어가 아니라 자기만 알고 있는 하느님으로 말합니다.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업을 지켜보면서 또 명동천막을 지켜보면서 생각하기로 저를 유보했지요. 그러다 파업은 끝났고 여전히 비겁한 저를 발견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양비론의 줄타기를 아슬아슬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 4월이 가기 전에 한마디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사태에 맞닥뜨리면 저는 최소한 '나'만 내세우는 감정적인 발언은 하지 않으렵니다. 그 약속을 하기 위해 오늘이 저물기 전에 글을 남기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도 명동은 어수선합니다. 이제 저 엠프소리에 익숙하고 천막에도 익숙합니다. 명동에서 산지 꽤 지났건만, 아직도 그  모습들이 단순한 풍경으로 다가 옵니다. 하지만 이제 저의 아픔으로 다가 오도록 기꺼이 기도하겠습니다.

 

저는 서울대교구가톨릭대학생 연합회에서 일하는 정은정 아그네스입니다. 이 글 통해서 정성환 신부님, 그리고 그 밖의 명동성당 신부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었습니다.

건강 꼭 지키시고, 기도중에 기억하겠습니다. 힘내세요.

 

아, 물론 농성자들도 힘냈으면 좋겠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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