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성당 게시판

잿빛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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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행 [zitta] 쪽지 캡슐

1998-11-21 ㅣ No.12

잿빛 아침

잿빛 아침

이제 새벽미사를 가는 길은 제법 쌀쌀하다.

느끼는 것이지만 겨울새벽 자동차들의 매연 냄새를 맡으면 더욱 춥다..

썰렁한 새벽에 일터를 향하고 있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곤 한다.

어제 새벽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총총걸음으로 성당을 가느라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차도에서 갑자기 퍽하는 소리와 함께 신문배달 하는 오토바이와 영업용택시가 충돌하여 오토바이와 사람이 나동그라지더니 쓰러졌던 배달원이 벌떡 일어나 차로를 가로질러 인도로 달려와서 벌렁 드러누워 신음소리를 낸다. 영업용택시 기사는 느린 동작으로 차문을 열고 내리면서 배달원의 동정을 살피더니 가운데 쓰러져 있는 오토바이와 흐트러진 신문을 인도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나는 미사시간이 임박 하였으므로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다 돕고 가자 하는 생각으로 현장에 접근하면서 상황을 파악하여야 했다. 택시기사는 사람을 살피지 않고 장애물부터 치울까? 교통소통을 위해서? 아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저런 상황이야 말로 오랜 경험에서 나온 방법이리라. 배달원의 상태를 직감적으로 판단하고 생각 여유를 갖는 것이다. 역시 우선은 신문뭉치를 치우다가 아무래도 사람이 우선이다 싶어 누워있는 배달원에게 다가가서 "괜찮아요?"하고 묻는다. 배달원이 일어나 앉는다. 예상대로 부상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 신문지를 먼저 치우러 행동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험한 세상이다 보니 눈치만 늘어서 사람 귀한지를 모른다.

 

미사가 끝났다.

아까 사고 자리를 보니 신문뭉치만 인도가장자리에 쌓인 정리가 되었다.

조금 걷다 보니 건너편 인도에서 씨끌작 하다. 젊은이 하나가 중년남자에게 멱살을 잡힌 체로 내가 있는 곳으로 건너온다. 자세히 살펴보니 허술한 차림의 젊은이는 10대인데 눈에 초점이 흐리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술취한 체로 등교길인 어느 학생을 피가 나도록 구타했다는 것이다. 중년남자는 지나가는 행인인데 분개해서 이런 놈은 경찰에 넘겨야 한다고 멱살을 잡고 파출소로 가는 길이라면서 누가 같이 가달라고 한다.

나는 중년남자와 함께 젊은이의 허리춤을 틀어 잡고 파출소로 향하면서 생각에 젖는다. 녀석을 이렇게 끌고 가는 것이 시민정신에는 합당할지는 몰라도 신앙인으로써 해도 되는 일인가! 젊은이가 이렇게 타락한데에는 사연이 있을 터인데 차라리 한쪽으로 데리 가서 타이르고 전후 사연을 들어보며 선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 중에 파출소에 이미 다다라 인계를 한다.

그리고 파출소경찰은 이미 녀석을 알아본다. 상습범인 것이다. 젊은이는 파출소 소파에 앉아서도 횡설수설 하다가 경찰의 구둣발 세례를 받는다. 같이 동행 했던 아주머니는 조금 까지만 해도 젊은이를 증오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아이 말로 하세요" 하고 만류한다.

순간 나는 내가 무슨 재주로 저런 녀석을 회개 시킬 생각이 들었을까 하는 자괴지심에 웃음을 짓고 만다

 

도시의 아침은 이렇게 밝았다.

예수님은 이런 꼴을 보고 혀를 끌끌 차고만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토마스야 용기를 가져라

나는 죽으면서까지 너희를 위하지 않았느냐!

 

예수님 죄송합니다.

 

남산 밑에서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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