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신자들의 고달픈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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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세택 [stwee] 쪽지 캡슐

2001-12-04 ㅣ No.1741

어제 반도체회사들인 한국의 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사의 합병 가능성이 발표되자 하이닉스의 주가가 급등하였다. 시장에서는 굉장한 호재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하이닉스의 근로자들도 호재로 받아들일까? 만일에 양사가 합병을 하게 되면 당연히 과잉 설비를 줄이고 구조조정 차원에서 양사의 수많은 근로자가 해고될 것이다. 명예퇴직금을 받아들고 졸지에 세상에 나온 근로자들은 갈 곳이 없어 헤맬 것이다. 근로자들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임원급들 그리고 한국의 사장, 회장도 옷을 벗어야 할 지 모른다. 벌써 하이닉스의 근로자와 임원들은 다가오는 정리해고의 위협에 몸을 사릴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않든 간에 각국의 진입장벽이 사라지고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는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한마디로 무한경쟁을 강요한다. 전에는 같은 지역의 다른회사와 근로자들과만 경쟁을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전세계를 상대로 경쟁을 해야 한다. 한국에 있는 공장의 노조가 계속 임금인상을 주장하고 힘들게 하면 아예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노동자들은 중국, 월남등의 노동자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들이 예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전에는 안정된 직장이라는 말이 있었다. 임금이 높고 큰 기업에 일단 들어가면 별다른 실수가 없는한 정년 퇴직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안정된 생활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경쟁이 치열해진 지금 안정된 직장이란 없다. 예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연봉제가 모든 회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매년 실적을 따져서 임금 총액을 정한다. 근무 햇수가 같아도 실적에 따라서 임금이 달라진다. 별다른 잘못이 없어도 실적이 없으면 언제든지 정리해고를 당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직장 동료는 모두 경쟁자들이다. 동료들과의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적을 쌓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더 출세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낙오하지 않기 위해서, 노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를 쓴다.

 

일반 직장보다는 그래도 공무원은 덜 절박할 것이라고?

요즘 내년에 경기부양을 위해서 법인세를 내리자는 주장에 맞서 공무원들은 감세보다는 세금으로 재정지출을 늘리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눈을 들어 세계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일에 한국의 법인세가 30%라고 하고 미국은 20%라고 하자. 삼성전자가 일년에 약 1조원의 이익을 낸다고 하면 만일에 삼성에서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다면 일년에 약 천억원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삼성전자의 경영진은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고 싶을 것이다. 아니 경영진에서 옮기고 싶어하지 않더라도 대주주인 외국인들이 옮기라고 압력을 가할 것이다. 만일에 삼성전자에서 본사를 미국으로 옮긴다면 삼성전자의 주가는 폭등할 것이다. 만약에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인 삼성전자, SK텔레컴, 포항제철등이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이고 실제로 대기업들 중에는 검토하고 있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이 말은 정부도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다른나라 정부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경쟁력을 강화해야하고 그러려면 공무원 수도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라는 얘기이다. 현정부에서는 그럭저럭 넘어갈지 모르지만 다음 정부에서는 공무원들의 대량해고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안그러면 나라가 망할테니까.

 

얼마전에 제일은행장이 임기가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짤렸다. 무한 경쟁사회에서는 최고경영자도 언제 짤릴지 모른다. 이런일이 눈 앞에 보일 때 직장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장래를 안심할 수 없다.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하루 8시간 근무는 옛말이 되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자신의 능력향상을 위하여 학원으로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러 나선다. 그 좋은 인터넷과 휴대전화 때문에 퇴근해서도 계속 업무에 시달린다. 여자들은 가정에서 살림이나 하던 시절이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생활유지가 안되고 또 언제 남편이 실직자가 될지 모르니 젊어서 미리미리 돈을 벌어놔야 되니까 여자들도 모두 나서서 돈을 번다. 젊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이도 늦게 낳거나 아예 안낳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하루 24시간 경쟁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성당에서 봉사활동하라고 권유할 수 있을까?

 

프로야구 선수들은 격심한 경쟁에 시달린다. 한순간 방심하면 당장 연봉이 깍이고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에 시즌이 끝나도 열심히 연습을 한다. 그런 선수들에게 성당에서 봉사활동하라고 하면 뭐라고 그럴까? 내가 연습 못해서 팀에서 방출되면 성당에서 먹여살릴거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그럴 때 하느님 사업 열심히 하면 하느님이 먹여살릴거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런데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 돈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프로야구선수들과 처지가 같다고 보면 된다.

 

지금 우리 본당에도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교회는 무엇을 해 주었는가?

 

지금 교회는 극심한 경쟁 속에서 시달리며 어렵게 사는 신자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가? 아니 알려고 노력이나 하고 있는가 말이다. 중세 교회처럼 현실의 고통은 잠깐이고 죽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평화롭게 살 것이라고 마취 시킬 것인가?

 

앞으로 한국교회가 유럽교회처럼 텅 빈 교회가 되지 않으려면 신자들의 삶에 좀 더 눈을 돌리고 이해하고 신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했던 말이 그대로 되돌아 올 것이다.

교회는 새로운 회칠한 무덤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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