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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1. 끝나지 않은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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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동성당 [chang4] 쪽지 캡슐

2012-06-09 ㅣ No.5229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1. 끝나지 않은 공의회

 
삶에서 완결해야 할 '쇄신과 적응'

▲ 1962년 가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인 주교들.


 교회사에서 21번째 세계 공의회로 기록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이전 공의회들과는 사뭇 다른 공의회였습니다. 이 다름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공의회 소집 동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전 공의회들은 공의회를 소집해야 할 상당하고 긴급한 사유가 나름대로 있었습니다. 이단 문제, 교회 분열, 세속 권력의 간섭 배제, 교회 생활의 폐해 근절과 규율 확립 같은 것들이 공의회 소집의 주요 동기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 소집의 특별한 동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더욱이 만 77살 고령에 교황이 된 요한 23세에 대해서는 다들 '과도기' 교황 정도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23세가 1959년 1월 25일 공의회를 소집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반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둘째, 공의회 결실인 문헌들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이전 공의회들은 교리적 측면에서 정통과 이단의 경계를 확실히 했습니다. 그래서 공의회 결과물인 교령이나 법령은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이단인지를 분명히 하면서 이단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단죄했습니다. 또 교회 규율과 관련해서도 이런 면에서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법적 규율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에 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은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4개 헌장을 비롯해서 9개 교령과 3개 선언으로 이뤄진 16개 공의회 문헌들은 일반적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법적 성격을 띠는 조문들에서조차 이전 문헌들에서 볼 수 있는 제재나 단죄, 처벌 같은 내용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리상 오류를 단죄하고 교회 생활의 폐해를 척결하기보다 시대의 도전과 요구에 대해 하느님 말씀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신학적 종교적 답변을 제공하려 했음을 공의회 문헌들은 보여줍니다.

 이런 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새로운 공의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새로움은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가 공의회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한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라는 이탈리아 말에서 잘 나타납니다. 흔히 '현대화'로 번역되는 아조르나멘토는 다른 식으로는 '쇄신과 적응'이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아조르나멘토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하여 사회나 시대 상황에 적합하게 맞춰나간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23세는 아조르나멘토를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방 안에 가득 채우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라'는 표현으로 멋지게 풀이했습니다.

 여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움이 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의 비범함이 있습니다. 요한 23세의 눈에 교회는 정적이었고 고착화돼 있었습니다. 바깥 세상은 변하는데 교회는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제 새로운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시대의 징표들을 식별하여(마태 16,3 참조) 쇄신을 이뤄야 할 때, 아조르나멘토의 때가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었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선포하는 신앙 진리를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진리 자체는 불변하지만 그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시대와 상황에 적합하게 적용돼야 함을 이해했습니다.

 공의회는 교회를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이전까지 교황을 최고 정점으로 그 아래 주교들과 또 그 아래에 신부들과 부제들이 포진하고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적 교회관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공의회는 이런 위계적 교회관보다 교회를 신비체로 보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하느님 자녀로서 똑같
은 품위를 누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친교의 공동체로 이해했습니다.

 공의회는 나아가 세상을 새롭게 이해했습니다. 이제 세상은 이전처럼 교회가 담을 쌓고 멀리해야 할 부정적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나름대로 질서를 갖고 있지만 그 질서는 복음 정신으로 개선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교회는 비록 현세에서 나그네살이를 하지만 현세 질서를 하느님 뜻에 맞도록 개선하는 일은 또한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 현세질서를 개선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평신도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평신도는 나름대로 교회 성장을 위해 봉사하고 협력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속에 살면서 누룩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공의회는 이렇게 평신도에 대한 이해도 새롭게 했습니다.

 공의회 정신인 아조르나멘토, 곧 쇄신과 적응은 이렇게 교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면서 교회 생활 전반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례에의 능동적 참여를 들 수 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 전례가 라틴어로만 거행됐습니다. 사제는 신자들을 등지고 홀로 미사를 거행했고, 신자들은 말하자면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니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참석'하면서 자기가 드리고 싶은 기도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미사 중에 묵주기도를 바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공의회는 전례 쇄신을 통해 자국어로 사제가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공동체 미사 전례를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드리는 미사 전례입니다.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게 된 성경 공부가 강조된 것, 평신도들이 교구 사목평의회나 본당 사목평의회를 통해 교회 활동에 참여하고, 미사 독서나 성체분배 같은 성직자들에게만 허용했던 직무들이 평신도들에게까지 확대된 것도 공의회 결실입니다.

 그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타그리스도교와 타 종교에 대해서도 이해를 달리했습니다. 단죄하고 배척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대화하고 협력하는 전향적 자세로 돌아섰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아조르나멘토를 기치로 내세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다 준 결실들입니다. 여기에는 근간이 되는 신학적 원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강생의 원리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를 구원하시려 몸소 사람이 되신 것처럼, 교회도 세상에 구원을 선포하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50년 전인 1962년 10월 11일에 개막해 3년 후인 1965년 12월 8일에 폐막했습니다. 그러나 공의회의 결실인 16개 문헌들에서 드러나는 아조르나멘토 곧 쇄신과 적응의 정신은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서 아직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의회의 가르침들에 비추어 계속해서 구현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끝나지 않은 공의회입니다.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30년 이상 신학을 가르친 한 예수회 신학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21세기를 위한 21번째 공의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공의회 정신을 사는가'하는 자성의 물음을 계속 제기하면서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제2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탐구 여정을 시작합니다. 올해는 마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의 해이기도 합니다.

출처 :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00218&path=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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