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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와 질투의 차이점 - 개신교 성서 사전 Holman Bible Dictionary 1035_시기vs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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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vs질투 -13 [218.55.90.*]

2014-02-05 ㅣ No.1516

 

+ 찬미 예수님!

 

이번 글에서는, 시기(猜忌)[jealousy, 猜(의심할 시), 忌(꺼릴 기)]질투(嫉妒, envy)의 차이점에 대한 개신교측 참고 자료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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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嫉妒, 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嫉妒, 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1.

1-1.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국내의 개신교측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의 용어사전 [즉, 독일성서공회판 해설성경전서 굿뉴스 스터디 바이블]들에 "질투""시기" 에 대한 용어 정의(definition)가 주어져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클릭하십시오)

참고 자료 2 (클릭하십시오)

 

게시자 주 1-1:

(1) 아래의 제4항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2) 이어지는 항들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envy"를, "시기(猜忌)"로 차용(借用) 번역하지 못하고 대신에, "질투(嫉妒)"로 차용(借用) 번역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명나라 말기에 천주교가 중국으로 처음 전파되어 들어 올 때에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신부님들이 "envy"를 "질투(嫉妒)"로 이미 차용(借用) 번역하였고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과 한국의 천주교에서 이 차용(借用) 번역 용어를 계속 사용 중이기 때문에, 따라서, "jealousy" 를, "질투"로 차용(借用) 번역하지 못하고 대신에, "시기(猜忌)"로 차용(借用) 번역한 것인데,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의 근거들은 다음의 글의 제2-2항 및 제2-3항주어져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5.htm <----- 필독 권고

(이상, 게시자 주 끝)

 

1-2. 가톨릭 교회에는 성경 본문에 대하여, 소위 말하는 "신앙의 유산(the deposit of faith)"에 근거한, 예를 들어, 초기 교회 시절의 성 이레네오(St. Irenaeo, 130/140-202년) 등의 교부들의 가르침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 [예를 들어, envy(嫉妒, 질투)가 포함되는 현재의 칠죄종(the seven capital sins)들을 처음으로 나열하고 또 수용한 분으로 알려진]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님(St. Gregory I, the Great, 540-604년) 등에 의한 핵심 신학적 용어들에 대한 정의(definitions)들,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등에서의 가르침들 등이 지금까지도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교의(dogmas)들, 교리(doctrines)들, 그리고 가르침(teachings)들의 골격을 이루고 있기에,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수용한 이들 신학적 용어들에 대한 전통적 가르침들이 성경 본문의 이해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나,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16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등장한 개신 교회(Protestant Churches)들 측에서 이들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자료들을 성경 본문의 이해에 얼마나 근거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필자는 그리 알지 못합니다.

 

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상당히 최근인 1991년에 초판 발행되었다고 알려진 개신교측 Holman Bible Dictionary(홀만 성서사전) 에 주어진 "envy"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정의(definition)와 이 개신교측 사전에 주어진 설명을 비교/검토하는 것이 이 단어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래에 발췌하였습니다. 특히, 이 용어의 용례로서, 성경의 해당 구절들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점이 유익하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studylight.org/dic/hbd/view.cgi?number=T1878

(발췌 시작)

envy

질투(嫉妒, envy)(*)

 

A painful or resentful awareness of another's advantage joined with the desire to possess the same advantage. The advantage may concern material goods (Genesis 26:14 ) or social status (Genesis 30:1 ). Old Testament wisdom frequently warns against envying the arrogant (Psalm 73:3 ), the violent (Proverbs 3:31 ), or the wicked (Psalm 37:1 ; Proverbs 24:1 ,Proverbs 24:1,24:19 ). In the New Testament envy is a common member of vice lists as that which comes out of the person and defiles (Mark 7:22 ), as a characteristic of humanity in rebellion to God (Romans 1:29 ), as a fruit of the flesh (Galatians 5:21 ), as a characteristic of unregenerate life (Titus 3:3 ) and as a trait of false teachers (1 Timothy 6:4 ). Envy (sometimes translated jealousy by modern translations) was the motive leading to the arrest of Jesus (Matthew 27:18 ; Mark 15:10 ) and to opposition to the gospel in Acts (Acts 5:17 , Acts 13:45 ; Acts 17:5 ). Christians are called to avoid envy (Galatians 5:26 ; 1 Peter 2:1 ).

 

동일한 우위(advantage)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결합된, 다른 이의 우위(advantage)에 대한 고통스러운 혹은 분개하는 알아차림을 말합니다. 이 우위는 물질적 재화(창세 26,14) 혹은 사회적 신분(창세 30,1)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지혜는 거만한 자들/어리석은 자들을(시편 73,3), 포악한 자들을(잠언 3,31), 혹은 사악한 자들/불의를 일삼는 자들을(시편 37,1; 잠언 24,1; 잠언 24,1; 24,19) 질투하는 것에 반대하여(against) 자주 경고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질투(嫉妒, envy)는, 하느님께 반항하는 인간성(人間性, humanity, 사람의 됨됨이)의 한 개의 특징으로서(로마 1,29), 육(flesh)의 한 개의 열매(a fruit)로서(갈라티아 5,21), 거듭 나지 않는(unregenerate) 삶의 한 개의 특징으로서(티토 3,3), 그리고 거짓 교사들의 한 개의 특색(trait)으로서(1티모테오 6,4), 타락한 자들로부터 나오는(마르코 7,22) 바로 그것으로서 악덕의 나열들의 일반적 구성원 한 개입니다. [현대의 번역물서에 의하여 때로는 시기(jealousy)로 번역되는](**) 질투(嫉妒, envy)는 그리스도의 체포로(마태오 27,18; 마르코 15,10),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복음에 대한 반대로(사도행전 5,17; 사도행전 13,45; 사도행전 17,5) 이르는 동기(the motive)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질투(嫉妒, envy)를 피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습니다(갈라티아 5,26; 1베드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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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명나라 말기에 천주교가 중국으로 처음 전파되어 들어 올 때에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신부님들이 "envy"를 "질투(嫉妒)"로 이미 차용(借用) 번역하였고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과 한국의 천주교에서 이 차용(借用) 번역 용어를 계속 사용 중이기 때문에, 따라서, "jealousy" 를, "질투"로 차용(借用) 번역하지 못하고 대신에, "시기(猜忌)"로 차용(借用) 번역한 것인데,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의 근거들은 다음의 글의 제2-2항 및 제2-3항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5.htm <----- 필독 권고


(**) 번역자 주: 이것은 "질투(嫉妒, envy)" 가 "jealousy(시기)"에 포함되기 때문에, 즉, "질투(嫉妒, envy)""jealousy"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즉, 오로지 "시기(jealousy)하는 자들" 중에서 "질투(嫉妒, envy)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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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vy is sometimes a motive for doing good. The Preacher was disillusioned that hard work and skill were the result of envying another (Ecclesiastes 4:4 ). Paul was, however, able to rejoice that the gospel was preached even if the motive were envy (Philippians 1:15 ).

 

질투(envy)는 때로는 선(good)을 행하기 위한 어떤 동기입니다. 전도자(the Preacher)(*)는 노고와 기술이 다른 이를 질투한/시기한[주: 새 번역 성경]/경쟁한[주: NAB] 결과였음의 환영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코헬렛 4,4). 그러나 바오로(Paul)는 심지어 그 동기가 질투(envy)라고 하더라도 복음이 설교되었음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필리피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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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여기서 말하는 the Preacher는, 소위 말하는, 전도서(코렐렛)의 익명의 저자를 말하기에, "전도자"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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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JV rightly understood the difficult text in James 4:5 , recognizing that it is a characteristic of the human spirit that it “lusteth to envy”. Contrary to modern translations, the Greek word used for envy here (phthonos ) is always used in a negative sense, never in the positive sense of God's jealousy (Greek zealos ). God's response to the sinful longings of the human heart is to give more grace (James 4:6 ). See Jealousy.

 

KJV는 야고보서 4,5에 있는 어려운 본문을, "질투의 정도에 이르기까지 갈망함"이 인간의 영(human spirit)의 한 특성임을 알아차림으로써, 올바르게 이해하였습니다.(*) 현대의 번역서들에 반하여(contrary to), 여기서 질투(嫉妒, envy)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 (phthonos)는, 결코 하느님의 시기(God's jealousy) (그리스어 zealous)라는 긍정적인 의미로가 아니고항상 어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인간의 심장의 죄 있는 갈망들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더 많은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야고보 4,6). 시기(Jealousy)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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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4년 2월 17일]

(*) 번역자 주:

(1) 우선적으로, 야고보서 4,5에서의 인용구는 그 의미/해석에 있어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KJV(King James Version) 야고보서 4,5의 영어 번역문이, KJV를 현대 영어 어법에 맞도록 개정한, RSV(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 주어가 다른 완전히 다른 문장으로 교체되었기에, 이러한 설명 자체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다. 다음의 두 문장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라:

 

(1-1) 출처: http://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James+4%3A5&version=KJV
(발췌 시작)

(KJV James 4:5)

5 Do ye think that the scripture saith in vain, The spirit that dwelleth in us lusteth to envy?

5 그대는 성경 본문이, 우리 안에 거주하는 영(the spirit)이 질투(嫉妒)의 정도에 이르기까지(to envy) 갈망한다(lusteth)고, 공허하게 말한다고 생각합니까?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1-2)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7_tue.htm

(발췌 시작)

(RSV James 4:5)

[5] Or do you suppose it is in vain that the Scripture says, "He yearns jealously over the spirit which
He has made to dwell in us"?

혹은 그대는 성경 본문이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 이미 거주하게 하신 영(the spirit)을 시기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불쌍히 여기신다(yearns for)" 고 말할 때에 아무런 의미 없이 말한다고 추측합니까(suppose)?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 특히, 그리스어본 야고보서 4,5을 라틴어로 번역한,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대중 라틴말 성경인, 다음의 Nova Vuagate 야고보서 4,5 에서의 해당 문장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
nova-vulgata_nt_epist-iacobi_lt.html#4

(발췌 시작)

Ad invidiam concupiscit Spiritus, qui inhabitat in nobis.”
(이상, 발췌 끝) 

을 영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는 해설이 바로 위의 (1-2)에 또한 주어져 있다:

 

(발췌 시작)

"The Spirit who dwells in us jealously loves us."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거룩한 영(the Spirit)께서는 시기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다음은 야고보서 4,5에 대한 NAB 주석 전문이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11Y.HTM

(발췌 시작)

Or do you suppose that the scripture speaks without meaning when it says, "The spirit that he has made to dwell in us tends toward jealousy"?

 

혹은 그대는 성경 본문이 "그분께서 우리 안에 이미 거주하게 하신 영(the spirit)이 시기(jealousy)를 향하여 기울어진다(tends toward)" 고 말할 때에 아무런 의미 없이 말한다고 추측합니까(suppose)?


[5] The meaning of this saying is difficult because the author of Jas cites, probably from memory, a passage that is not in any extant manuscript of the Bible. Other translations of the text with a completely different meaning are possible: "The Spirit that he (God) made to dwell in us yearns (for us) jealously," or, "He (God) yearns jealously for the spirit that he has made to dwell in us." If this last translation is correct, the author perhaps had in mind an apocryphal religious text that echoes the idea that God is zealous for his creatures; cf ⇒ Exodus 20:5; ⇒ Deut 4:24; ⇒ Zechariah 8:2.

 

[5] 바로 이 말함의 의미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야고보서의 저자는, 아마도 기억으로부터, 성경의 어떠한 현존하는 사본에도 있지 않은 한 구절을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 본문의 다른 번역문들이 가능합니다: "그분(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게 하셨던, 거룩한 영(the Spirit)께서는 시기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우리를) 불쌍히 여깁니다(yearns)," 혹은, "그분(하느님)께서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게 하셨던 영(the spirit)을 시기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불쌍히 여기십니다(yearns for)." 만약에 바로 이 마지막 번역문이 정확하다면, 이 저자는 아마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들에 대하여 열의있으시다(zealous for)는 개념(idea)을 반향하는(echoes), 어떤 묵시적인 종교적 원문(religious text)을 마음에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탈출기 20,5; 신명기 4,24; 즈카르야서 8,2를 참조하십시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 번역자 주:

(1) 여기서 "하느님의 시기(the jealousy of God)"가, 소위 말하는, "선한 시기(good jealousy)"임을 말하고 있고, 그리고, 이와는 달리, "질투(嫉妒, envy)"는 "악한/나쁜 시기(bad jealousy)"에 포함됨을 말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2) 그리고 일반적으로 "시기(猜忌, jealousy)"에 "[윤리적으로] 선한 시기(good jealousy)"와  "[윤리적으로] 악한/나쁜 시기(evil/bad jealousy)"이렇게 두 가지가 있음은, 예를 들어, 2코린토 11,2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해설로의 안내가 주어진 다음의 글의 제7-4항과 그곳의 게시자 주 7-4를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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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다음은 개신교측 Holman Bible Dictionary (1991)에 주어진 "jealousy"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정의(definition)와 이 개신교측 사전에 주어진 설명을 비교/검토하는 것이 이 단어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래에 발췌하였습니다. 특히, 이 용어의 용례로서, 성경의 해당 구절들을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점이 유익하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studylight.org/dic/hbd/view.cgi?number=T3275

(발췌 시작)

Jealousy

시기(猜忌, Jealousy)(*)

 

Jealousy is used in three senses in Scripture; (1) as intolerance of rivalry or unfaithfulness; (2) as a disposition suspicious of rivalry or unfaithfulness; and (3) as hostility towards a rival or one believed to enjoy an advantage. Sense 3 approximates envy. God is jealous for His people Israel in sense 1, that is, God is intolerant of rival gods (Exodus 20:5 ; Exodus 34:14 ; Deuteronomy 4:24 ; Deuteronomy 5:9 ) One expression of God's jealousy for Israel is God's protection of His people from enemies. Thus God's jealousy includes avenging Israel (Ezekiel 36:6 ; Ezekiel 39:25 ; Nahum 1:2 ; Zechariah 1:14 ; Zechariah 8:2 ). Phineas is described as jealous with God's jealousy (Numbers 25:11 ,Numbers 25:11,25:13 , sometimes translated zealous for God). Elijah is similarly characterized as jealous (or zealous) for God (1Kings 19:10,1 Kings 19:14 ). In the New Testament Paul speaks of his divine jealousy for the Christians at Corinth (2 Corinthians 11:2 ).


시기(猜忌, jealousy)는 성경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어의(senses)들로 사용됩니다: (1)
경쟁(rivalry) 혹은 불충실(unfaithfulness)에 대한 참을 수 없음(intolerance)으로서, (2) 경쟁 혹은 불충실에 대하여 의심하는 어떤 성향으로서, 그리고 (3) 어떤 경쟁자(a rival) 혹은 어떤 우위(an advantage)를 향유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자에 대한 적대감(hostility)으로서. 의미/어의 3질투(嫉妒, envy)에 가깝습니다(approximates). 하느님께서는, 의미/어의 1 안에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하여 시기하십니다(jealous), 즉, 하느님께서는 경쟁자인 잡신(rival gods)들에 대하여 참을 수 없으십니다(intolerant)(탈출 20,5; 탈출 34,14; 신명 4,24; 신명 5,9).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시기(God's jealousy)에 대한 한 개의 표현은 원수들로부터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시기는 이스라엘을 보복하는 것(avenging)을 포함합니다(에제키엘 36,6; 에제키엘 39,25; 나훔 1,2; 즈카르야 1,14; 즈카르야 8,2). 피스나스(Phineas)는 하느님의 시기로써 시기하는 것(jealous with God's jealousy)으로서 서술됩니다[민수 25,11; 민수 25,13, 때로는 하느님에 대한 열의있는(zealous)으로 번역됨]. 엘리야(Elijah)도 유사하게 하느님에 대하여 시기하는(jealous) [혹은 열의있는(zealous)]으로 특징지어집니다(1열왕 19,10, 1열왕 19,14). 신약 성경에서 바오로(Paul)는 코린토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자신의 '하느님의 시기(divine jealousy)'에 대하여 말합니다(2코린토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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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명나라 말기에 천주교가 중국으로 처음 전파되어 들어 올 때에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신부님들이 "envy"를 "질투(嫉妒)"로 이미 차용(借用) 번역하였고 그리고 지금까지 중국과 한국의 천주교에서 이 차용(借用) 번역 용어를 계속 사용 중이기 때문에, 따라서, "jealousy" 를, "질투"로 차용(借用) 번역하지 못하고 대신에 "시기(猜忌)"로 차용(借用) 번역한 것인데,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신뢰할 수 있는 문헌의 근거들은 다음의 글의 제2-2항에 주어져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5.htm <----- 필독 권고

 

(**) 2코린토 11,2에서의 바오로의 시기(jealousy)가 "선한 시기(good jealousy)"임을 말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 2코린토 11,2에서의 바오로가 또한 결코 "질투(嫉妒)하는(envious) 바오로"가 아니고 "시기(猜忌)하는(jealous) 바오로" 임에 대한 더 자세한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1.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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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s 5:11-30 concerns the process by which a husband suspicious of his wife's unfaithfulness might test her. Most often human jealousy involves hostility towards a rival. Joseph's brothers were jealous ( Genesis 37:11 ) and thus sold their brother into slavery (Acts 7:9 ). In Acts 17:5 a jealous group among the Jews incited the crowd against Paul. Jealousy, like envy, is common in vice lists ( Romans 13:13 ; 2 Corinthians 12:20 ; Galatians 5:20-21 ). Jealousy is regarded as worse than wrath or anger (Proverbs 27:4 ). James regarded bitter jealousy (or envy)(*) as characteristic of earthy, demonic wisdom (James 3:14 ) and as the source of all disorder and wickedness (James 3:16 ).(**) See Envy

 

민수기 5,11-30은, 그것에 의하여 불충실한 자신의 아내에 대하여 의심하는 어떤 남편이 그녀를 시험할 수도 있는, 절차에 관계합니다. 흔히 인간의 시기(human jealousy)는 어떤 경쟁자를 향하는 적대감(hostility)을 수반합니다. 요셉(Joseph)의 형제들은 시기하였으며(jealous)(창세 37,11) 그리하여 그 결과 자신들의 형제를 노예로 팔았습니다(사도행전 7,9). 사도행전 17,5에서 유다인들 중의 한 개의 시기하는(jealous) 집단이 바오로(Paul)에 반하여 군중을 자극하였습니다. 시기(猜忌, jealousy)는, 질투(嫉妒, envy)처럼, 악덕(vice) 나열들에 있어 일반적(common)입니다(로마 13,13; 2코린토 12,20; 갈라티아 5,20-21). 시기(jealousy)는 진노(wrath) 혹은 분노(anger)보다 더 나쁜 것으로서 간주됩니다(잠언 27,4). 야고보(James)는 모진 시기(bitter jealousy) [혹은 질투(嫉妒, envy)](*)를 세속의, 악마의 지혜의 특징(야고보 3,14)으로서 그리고 질서에 있어서의 혼란(disorder) 및 나약함(weakedness) 모두의 원천(야고보 3,16)으로서 간주하였습니다.(**) 질투(嫉妒, envy)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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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새 번역 성경" 야고보서 3,14와의 정밀한 비교/검토의 결과, 위의 사전의 영어 본문에서 "bitter"의 위치가 잘못 놓여있다고 판단되어, 번역자가 영어 본문 중의 "jealousy (or bitter envy)" 를 "bitter jealousy (or envy)" 로 바로 잡았다. 왜냐하면, 오로지 시기(jealousy)안에 질투(嫉妒, envy)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번역자 주: 원문에서 "잠언 3,14" 와 "잠언 3,16"을, 번역자가 확인한 후에, "야고보 3,14"와 "야고보 3,16"으로 각각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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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3: 위의 제(1)항의 의미 안에서 그 설명이 주어지고 있는, "jealousy" 에 대한 위의 Holman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첫 단락의 설명에서, 괄호 안에서 제시되고 있는 그리스어본 칠십인역(LXX) 구약 성경 과 신약 성경 구절들(즉, 탈출 20,5; ... ; 2코린토 11,2)은, 이들이 동일한 그리스어 어근(root) "zelos" 의 단어[영어로 동일하게 "jealousy"로 번역되며 특히 이들의 발음(pronunciation)이 거의 비슷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위의 제(1)항의 의미 안에서 그 설명이 주어지고 있는, "jealousy" 에 대한 위의 Holman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첫 단락의 설명은, 그리스어본 칠십인역(LXX) 구약 성경을 거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본문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동일한 그리스어 어근(root) "zelos" 를 가진 단어인 "jealous/jealousy"자구적 의미/어의(literal sense)에 근거하여, 주어지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직접 확인한 바는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1.htm <----- 클릭한 후에 제3항을 확인하십시오.

(이상, 게시자 주 끝)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2월 12일] 

4.

4-1. 사실 위의 제2항제3항에서 말씀드린 개신교측의 성서 사전인 Holman Bible Dictionary1991년에 초판 발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에 이 사전에 실린 (i) "의심하고 그리고 꺼림"을 말하는 "jealousy(시기)"의 정의(definition)와, (ii) 이와는 상당히 다른,  "envy(嫉妒, 질투)"의 정의(definition)의 차이점을 국내의 개신교측에서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더라면,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시기(猜忌)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인,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여 미워함" 이라는 전와(轉訛, 어떤 말이 본래의 뜻과 달리 전해져 그릇되게 굳어짐) 우리나라에서의미와는 상당히 다른, 

 

시기(猜忌)[jealousy, 猜(의심할 시), 忌(꺼릴 기)]라는 한자 단어의 원 의미, "의심하고 그리고 꺼림" 때문에,

 

개신교측에서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 탈출기 20,5 등에서 "질투(嫉妒)하는 하느님" 대신에 "시기하는 하느님"으로 번역하였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4-2. 그리고 2014년 2월 10일(월)자로 확인하였습니다만, 지금 말씀드린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시기(猜忌)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 우리나라에서의 심각한 수준의 "전와(轉訛)"의 한 예(example)라는 것은, 또한 국내의 저명한 국어국문학 분야 전공 교수님께서도 지적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2014년 2월 7일(금)국내의 저명한 국어국문학 분야 전공 원로 교수님께, "우리말 성경에 '시기'와 '질투(嫉妒)'라는 차용 번역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는데, "jealousy""envy" 를 우리말로 올바르게 번역하기 위하여, 우리말 단어로서의 '시기' '질투'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알고싶다"고 필자가 문의를 드렸더니, 이 교수님께서는 "통상적으로 비슷한 말로 사용하고 있는데 좀 찾아 보아야겠다"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흘 째 되는 날인 2014년 2월 10일(월)에 다시 말씀을 나누었더니, 이 교수님께서, "그동안 좀 들여다 보았다" 면서, "표준국어대사에 주어진 우리말 단어들에 대한 설명들 중에는 해당 한자 단어들의 자구적 의미와 다른 설명[즉, '전와(轉訛, 어떤 말이 본래의 뜻과 달리 전해져 그릇되게 굳어짐)' 설명]이 주어진 경우들이 더러 있다"는 우려(憂慮)의 말씀과 함께, "'기(猜)'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들의 자구적 의미가 '의심할 시(猜)', '꺼릴 기(忌)'" 라는 필자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시면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시기(猜忌)' 에 대한 설명이 또한 그 경우[즉, '전와(轉訛)'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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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읽고서 어떤 분께서 주신 견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성경은 과학의 언어로만 쓰여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 이 견해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답변 시작)

(1) 그런데,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앞부분에서, 가톨릭 그리스도교의 신학이 과학/학문(Science)임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2)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경 본문의 영성적 의미는, 성경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에 반드시 근거하여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바로 이 가르침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9-119항" 에 발췌 인용되어 그대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이 과학(Science, 학문)임을 여태 모르게 계신 분들께서는 지금 말씀드린 바를 반드시 숙지하시기 바라며,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읽어보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9.htm

(이상, 답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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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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