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울성당 게시판

날 울려버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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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진 [nohmj] 쪽지 캡슐

1999-12-16 ㅣ No.621

 

성서엔 참으로 멋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구약엔 태산처럼 흔들림 없는 대예언자 이사야, 참으로 인간적인,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정이 가는 예레미야, 진짜 남자 여호수아,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여인 에스더가 있고,

 

신약엔 키 작은 작개오와 믿음 강한 백인대장, 또 굉장히 섹시했을 것 같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막달라 마리아도 있다. (당근 예수님은 열외로 친다.)

 

근데, 나를 매번 울려버리는 남자가 있다. 바로 베드로 사도. 그는 번번히 나의 무딘 감성을 흔들어 깨워 놓고 또 그렇게 총총히 사라진다.

 

예수께서 붙잡히시던 날 밤, 너무도 걱정이 된 나머지 그는 성으로 들어간다. 날이 추워 사람들 틈에 끼어 곁불을 쬐던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여종에게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다. "모르오!" "모르오!" "모르오!"

 

닭이 두 번 울고, 예수의 말씀을 떠올린 그는 밖으로 뛰어나가 슬..피..운..다..  슬...피...

 

이 부분에서 나도 펑펑 울어버린다. 스승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확신했던 그였기에 자신의 작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 더욱 슬펐을 것이다. 뱉은 말을 다시 쓸어 담고 싶은 그 심정....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 앞에서 다시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을 당신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래도 계속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자 그는 예수께서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슬퍼졌다.

 

아마도 그 순간 베드로 사도는 예수를 부인하던 그날 밤의 일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가 슬퍼지면, 나도 슬퍼진다. 그의 슬픔은 전염성이 너무 강하다.

 

단순했고 무식했고, 그래서 더욱 순수했던 사람.

 

그가 예수님을 사랑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한 여자를 사랑했다면 난 아마 질투에 눈이 뒤집혔을 것이다. 그는 정말 그렇게 단순무식하고 순수하게 사랑했을 것 같다.

 

(하긴, 그랬다면 성서에 그가 등장하지도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나도 그를 몰랐을 테지만...)

 

그는 결국 예수님만 따라다니며 평생을 고생고생 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떠났으니, 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째 다 이 모양인지.. 지지리 복도 없지...

 

 

오늘은 기도가 무척 필요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면 간만에 나를 위해 긴 기도를 올려야겠다.

 

우직하고 순박하게, 뜨거운 열정 하나로 평생을 살았던 베드로 사도. 그가 무척 보고싶다.

 

 

 

 

 

미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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