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평의회[Con] 2006년 10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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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 쪽지 캡슐

2006-09-07 ㅣ No.41

 

Allocutio by Rev. Fr. Bede McGregor O. P.

Spiritual Director to Concilium



레지오와 새 복음선교


모든 레지오 단원들은 레지오의 존재 이유가 복음선교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레지오 단원에게 완전히 복음적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레지오 단원은 복음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해주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한편 레지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성인(聖人)이 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기본적이며 분명한 목표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이 사도적 삶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레지오는 성인을 만들기 위하여 존재하는 학교이며 사도를 배출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학교입니다.


그러나 근래에 몇 분 교황의 사례를 따라서 레지오는 ‘새 복음선교’라는 말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러 해 동안 레지오가 계획 집행한 대규모 회의들 가운데 많은 회의에서 그 명칭의 일부로 ‘새 복음선교’를 채택하였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확실히 무엇입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말씀에 의하면 ‘새 복음선교’는 그 내용에 있어서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주제가 ‘하나’(同一한)의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복음이 우리 자신들로부터, 그리고 우리들이 처한 어떤 상황에서 생겨났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고 단순히 인간의 발명품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어떤 구원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에 대한 우리들의 열정과 방법, 표현에서는 새로울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 복음을 새로운 힘과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적합한 모양과 말로서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 복음선교’는 ‘기초적인 복음선교’ 즉 이전에 복음에 관해서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또 이미 신자가 된 사람들의 신심을 심화시키는 과정인 사목적 복음화와도 구별됩니다. ‘새 복음선교’는 ‘再복음화’와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재복음화’는 한때 신자였지만 여러 해가 지나면서 신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다시 말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새 복음선교’는 보다 큰 특별한 열정, 새로운 방법들, 새로운 말과 행동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새로운 결심, 새로운 열의, 새로운 열정, 새 출발의 자세로 복음화를 펼쳐나갑시다. 이러한 복음화는 분명히 현대 사회에서 많이 필요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새 복음선교’ 는 시작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복음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선포한다. 그러므로 인류의 단 한 분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관계가 무엇인지 신자들이 다시 깨닫도록 할 필요가 있다. 효과적인 복음선교는 오직 우리 신자들이 예수님과의 개별적이며 직접적인 관계가 형성 유지되는 가운데 펼쳐질 수 있다.”

물론 이 말씀은 단순한 복음적 영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그리하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내가 없이 너희는 절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이 말씀은 틀림없는 원칙입니다. 또 마리아와 함께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이 예수님과 더욱 깊고 더욱 직접적인 개인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됩니다. 레지오는 처음 시작부터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열정적이며 보다 새로운 복음선교 사업을 펼치고자 한다면 이 원칙을 재차 확고히 하며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복음선교의 새로운 방법들을 이야기해 봅시다. 그런데 지금 폭발하듯이 엄청나게 솓아지고 있는 신기술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진부하다고 수 있습니다. 이제 카메라 기능이 첨가된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서로 통신할 수 있으며 텔레비전과 비디오테이프는 벌써 구식이 되고 있습니다. 여하튼 우리들은 초 단위로 전 세계와 통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기술이 복음선교의 가능성들과 방법들에 대하여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 레지오는 흥분을 자아내는 이러한 기술의 신분야에 관하여 이미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방법이 나타나자마자 옛 방법들이 쓸모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 예수님과 성모님의 방법을 기초로 하는 방법은 결코 구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이 방법이야말로 훨씬 더 긴박하게 필요한 방법입니다. 그 예로서 레지오가 이용한 최초의 방법을 이야기해 봅시다. 이것은 사람들과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대면 접촉입니다. 이 방법이야 말로 세속적이고, 고독하며, 개인주의적이고, 기계종속적인 현대사회에서 훨씬 더 요구되는 방법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자기계시를 예로 들겠습니다. 구약을 보면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예언자는 다시 하느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합니다.: “너는 나의 두 손바닥에 새겨져 있고 결코 나는 너를 잊을 수 없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독특한 DNA와 지문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 한분 한분에게 특별한 개성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그분께서 언제나 지켜주십니다. 또 하느님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그 사랑이 예수님으로 육화되어 우리들 가운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여 부르는 ‘좋은 목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양떼를 인도하시되 하나하나 직접 인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



하느님은 또 다른 아주 아름다운 방법을 만드시고 이를 이용하여 우리들에게 그분의 몸소 베푸시는 사랑과 현존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어머니를 우리들에게 보내시어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성모님의 사랑을 느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모님의 품속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그 어머니에게 특별하고 귀중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신비 체에 대한 성모님 모성의 본질입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이 기초적 복음선교의 방법을 배우려면 먼저 이것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성모님을 모시는 것이 레지오의 ‘새 복음선교’뿐만 아니라 ‘진정한 복음선교’에도 그 근본이 됩니다. 우리들은 성모님의 태도로, 성모님의 가슴으로, 성모님의 방법으로 이웃 안에서 우리 주님께 봉사합니다.


나는 개인적 접촉의 방법을 강력히 권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방법과 기법들이 아무리 가치 있고, 긴박하고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모색하는 중에 우리가 레지오의 없어서는 아니 될 이 방법을 모르고 놓쳐버린다면 슬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레지오 정신은 바로 성모님의 정신입니다. 성모님의 우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언제나 몸소 보여주시고 직접적인 것이며, 이 성모님의 사랑을 우리가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그분에게는 예외 없이 귀중합니다. 성모님은 어느 한 사람도 버리시지 않습니다. 역시 레지오도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 모두가 그분에게 한없이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레지오가 펼쳐야할 ‘새 복음선교’는 첫째로 레지오 본래의 성령의 은사(恩賜)(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능력)를 다시 구하고, 레지오 본래의 정신을 또다시 새로이 해야 함을 뜻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보다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 보다 확장된 활동을 하며, 보다 큰 기쁨 속에서 봉사하고, 레지오 교본이 요구하는 그 영성적 삶을 보다 새로이 하며 보다 심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마리아와 성령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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