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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경배 (마태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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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8-01-07 ㅣ No.75

 


 

[주님 공현 대축일] 경배  (마태 2,1-12)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게,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고 한다. (이사 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바오로 사도는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신비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에페 3,2.3ㄴ.5-6)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경배한다. (마태 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 공현 대축일 제1독서 (이사60,1-6)


제3이사야서로도 불리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부분(56~66장)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상황을 겨냥한다.


특히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하느님의 도성인 시온 또는 예루살렘은 참다운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이며(이사60,4~7), 주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확장된다(이사60,3~14)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사야서 40장 1~2절의 '위로'가 이 장에서 성취되고 있다. 이사야서 49장 6절에서 약속된 '빛'이 이 장에서 비추어지기 시작한다.


에즈라기 7장과 느헤미야기 2장이 그 배경을 알려준다. 바빌론의 유대인 사회 페르시아 행정부의 영향력있는 유대인 관료들을 통해 황제의 관심을 얻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과거에 키루스 다리우스1세 제의적 의식들과 신전 도시들에 대해 성공적으로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정책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는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노력을 뒤에서 지원하기로 동의했다.


하느님께서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후원하시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하느님과 하느님의 성을 인정한 결과로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또 복권되고 있었기 때문에, 기쁨과 빛과 아름다움이 이 장에 넘친다.


이 장의 핵심은 과거의 어두운 절망과 극도의 빈곤과 버려진 폐허의 혼돈을 활동의 중심지, 상인들과 기술자들, 노동자들의 바쁜 시장, 빛과 아름다움과 기쁨의 장소로 바꾸기 위한 정치, 경제, 종교적 결정들 말하는 것이다.

이 결정들은 바빌론으로부터의 유대인들의 귀환, 외국 자본의 유입, 그리고 예루살렘의 문예부흥에 기여하는 여러 국가들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포함된다.


에즈라기 7장 1~28절을 이 장과 나란히 둘 때, 여러 조각들이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특히 예루살렘의 성전이 다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 에즈라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는 예루살렘의 하느님께서 자신을 좋아하기를 바랬다. 이런 목적으로 그는 왕가의 자금을 넉넉히 지원했다.


그는 강 건너펀의 다른 백성들과 관리들에게도 돈과 목재와 노동력을 기증하라고 명령하고, 만일 그들이 거부하면 제국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자신의 명령들이 실행되는가를 알기 위해 에즈라에게 군대의 호위를 제공했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두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다.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이사60,3~6절)


하느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남부 유다가 멸망하고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다 하더라도,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통해 남부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 빛을 비추어주며 영광을 돌려주고, 민족들이 우러러 보게 만들어 준다.


죄악과 어둠과 혼돈이 만연한다 해도, 이 세상과 교회 안에서 악이 승리하지 못한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시간표대로 진행될 것이고, 하느님께서 하느님다우신 방법으로 당신 뜻과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예루살렘 위에 비추어지는 빛과 주님의 영광에 대한 이사야서 60장 1~6절의 말씀이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선포되는 이유 무엇일까? 온 세상과 이방인을 대표하는 동방 박사에게 이 세상의 구원자요, 빛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의 모습이 공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공현;公顯; Epiphany).


여기에다가 예수님 세례 사건 때에 성삼위가 계시된 사실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이 공적으로 선포됨과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공생활이 시작된 사건과,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첫번째 기적을 베풀어 신성(천주성)을 드러낸 카나의 사건, 이 세가지를 함께 기념하는 것이 공현의 의미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특별히 동방의 점성술가들이 구세주의 탄생 장소로 인도하는 성령을 상징하는 별의 인도로,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신성을 상징하는<유향>과 인류를 구원할 죽음을 상징하는 <몰약>을 베틀레헴 마굿간 구유의 예수님께 드린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성령의 별빛을 받아 신앙을 갖게 된 우리 자신들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무엇을 봉헌해야 주님이신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할 수 있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 (마태 2,1-12)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ㄴ~2)

 

마태오 복음 2장 1절(ㄴ)에서 '그러자'로 번역된 '이두'(idou; behold)'보라'의 뜻이다. 이 단어는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베틀레헴에서 탄생한 그 무렵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른 것은 전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며, 그래서 주목할 만한 이라는 것을 '이두'(idou)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박사들'로 번역된 '마고이'(magoi; magi; wise man; astrologers)원형 '마고스'(magos)바빌론에서 기원된 단어로 보이며, 바빌론과 메대, 페르시아에서 현자, 교사, 점성가, 예언자, 해몽가, 마술가, 사제, 의사 등을 총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마고스'(magos)는 특히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가의 특징이 강하며, 어떤 영어 번역 성경은 '마고이'(magoi)'점성가들' (astrologers)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동방에서'로 번역된 '아나톨론'(anatolon; the east)의 원형 '아나톨레 (anatole)는 해, 구름, 별 등이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아나톨론' (anatolon) 원형 '아나텔로'(anatell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문자적으로 '(해와 달, 별 등의) 떠오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지점을 가리키는 '동쪽'(the east)이라는 의미가 나왔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동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 가운데 문화와 천문학이 발달한 페르시아나 바빌론, 아라비아나 메대 등이 그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천문학이 발달했을 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며, 메시야의 출현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언을 접할 수 있었던 바빌론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가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포로되어 흩어진 이후로, 유대아의 전통 및 예언들이 그 지역의 점성가들 같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박사들도 점성학적 지식과 더불어 유대 전통(민수24,17)대한 연구를 통해 유대 땅에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것을 알고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태어나신 분이'로 번역된 '호 테크테이스'(ho techtheis; he that is born; the one who has been born)는 관사와 분사가 함께 쓰인 형태이며, 명사적 의미를 타나내는 독립 분사 구문이다.

 

'테크테이스'(techtheis)'출산하다', '낳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티크토'(tikto)부정 과거 수동태 분사 단수 남성 주격이다. 여기서 부정 과거형이 사용된 것은 아기 예수가 이미 태어났음을 나타낸다.

즉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물어볼 때를 기준으로 해서 미래에 태어날 것이 아닌, 얼마 전에 이미 태어났다는 사실부정 과거의 표현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한편 '임금으로'에 해당되는 '바실류스'(basileus; king)마태오 복음 1장 6절'다윗 임금'을 언급할 때도 쓰인 단어인데, 일반적으로 정치적 '왕'을 뜻한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이번에 태어난 임금이 보통 임금들과는 다른, 어떤 뛰어난 존재일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특별히 경배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유대인들의 임금'단순히 유대 민족을 다스리는 임금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마태오 복음 1장 1절, 9장 27절 등에 표현된 '다윗의 자손'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 지칭하는 단어라면, '유대인들의 임금'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야를 나타내는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로 동방 박사들은 유대아를 다스리는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신 인류의 메시야가 오신 것을 알고, 경배하기 위하여 먼 길을 온 것이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이 문장을 직역하면, '우리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았기 때문에'이다.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단어 '가르'(gar; for)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 쓰여, 본문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이유임을 나타낸다.

 

한편, 동방 박사들이 본 별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다.

첫째, 태양계 내에 있는 토성과 목성이 만난 현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망원경을 발명하여 태양계의 공전 사실을 최초로 규명해 낸 17C 천문학자 '케플러'(Kepler)는 B.C.7년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둘째, B.C.12년 혹은 11년에 베틀레헴 상공에 나타난 핼리 혜성(Halley's comet)이라는 주장이다.

세째, 특정 기간 일시적으로 폭발하여 예외적으로 밝은 빛을 발하는 초신성(nova)이라는 주장이다.

네째, 지금까지 기술한 자연적인 별의 현상이 아닌 초자연적인 현상,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일시적으로 생겨난 별의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견해 중에서 어느 것이 사실에 가까운지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동방 박사들이 특별한 별을 보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유대 땅에 태어난 임금을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이 태어나실 즈음에, 자연적인 현상 혹은 초자연적인 천체의 현상이 일어나게 하셔서, 동방 박사들로 하여금 메시야 탄생을 알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동방에서'에 해당하는 '엔 테 아나톨레'(en te anatole; in the east)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았다는 뜻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별을 본 것은 그들의 고향인 동쪽에서라는 사실 가리키며, 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거나, 이동하여 서쪽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암시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위치나 움직임, 그리고 메시야 탄생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연관시켜 유대 땅으로 올 수 있었다.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동방에서부터 유대 땅까지 온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혀 주는 문장이다. 그것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것이다.

'경배하러'에 해당하는 '프로스퀴네사이'(proskynesai; to worship)의 원형 '프로스퀴네오'(proskyneo)부정 과거 능동태 부정사이다. 

여기서 능동태가 사용된 것은 동방 박사 자신들 스스로의 의지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프로스퀴네오'(proskyneo)이집트에서 사람이 신에게 존경의 표시로 '손에 입맞추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희랍어에서는 사람이 신에게 혹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깊은 공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다'는 의미로 사용된 동사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경의를 표하거나 혹은 탄원을 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아무개에게 절하거나 신에게 예배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특히 요한 복음 4장 20~24절12장 20절에서는 하느님께 '예배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단순히 공경의 마음을 표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신적 경배와 예배를 드리러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방 박사들의 방문>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마태 2,1-3).”


‘동방’이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페르시아일 수도 있고, 아라비아일 수도 있습니다.

‘박사들’은 점성술사들(천문학자들)일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는 말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메시아’를 뜻합니다.

따라서 동방 박사들이 유다인들의 임금이 태어나신 곳이 어디냐고 물은 것은,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한 일과 같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자기들이 ‘그분의 별’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별’이 메시아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어 있긴 합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8-79).”

“나 예수가 나의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에 관한 이 일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다.

나는 다윗의 뿌리이며 그의 자손이고 빛나는 샛별이다(묵시 22,16).”

어떻든 ‘그분의 별’을 보았다는 동방 박사들의 말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현상’을 보았다는 말인데,

당시 하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동방 박사들의 말을 듣고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는 것은,

그 ‘별’을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본 사람이 있었더라도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별’을 동방 박사들만 제대로 알아본 것에 대해서는

하느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만 계시를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기다리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마태 24,37-39).”

이 말씀은 예수님의 탄생 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메시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는데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별’은 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곧장 데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모습을 감추었을까?

그 이유는 그 일의 결과를 보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 강생을 권력자가 공적으로 확인하는 것, 그것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마태 2,4-8)”


동방 박사들은 메시아 강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지만,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모습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헤로데는 그 아기가 자기의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서

아기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마태 2,13-18).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메시아 강생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거나,

동방 박사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루살렘 주민들도 놀라기는 했지만,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먹고살기에 바빠서 그랬거나 믿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마태 2,9-12).”


예루살렘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별이 다시 나타나서

박사들을 아기가 있는 집까지 인도한 일과

그들이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일이

모순되는 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곧장 예수님께로 박사들을 인도했다면,

즉 헤로데를 만나지 않게 했다면,

헤로데는 메시아 강생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베들레헴의 아기들이 죽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일이었다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기쁜 소식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박해자들에게도......

사람들이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간에

그것은 선포하는 사람들 쪽의 일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 쪽의 일입니다.

거부당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선포하기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겉으로만 보면,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께 귀한 보물들을 예물로 드리고

빈손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얻은 큰 기쁨과 희망은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대단히 귀한 보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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