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부활 제4주간 수요일 '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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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4-12 ㅣ No.5734

부활 제4주간 수요일 '24/04/24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왕위 찬탈 사건을 주요 소재로 삼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러저러한 방법과 노력을 다 기울이는 모습이 어떤 때는 스릴이 넘치고 멋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윤리와 인격은 사라지고 맙니다. 권력과 재물을 둘러싼 탐욕 그 자체가 윤리나 정도를 넘어서고 제외시키는가 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못하도록 막지 않으시고, 마치 허락하시는 것 마냥 침묵하실까?

심지어는 나쁜 일을 저지르는 죄인을 선택하신 것처럼 보일까?

그리고 왜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실까?

 

하느님은 사람의 자유를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옳지 않은 일을 했을 때, 주 하느님께서는 그것 때문에 몹시 아파하시면서도 그 일 자체로 벌을 내리지는 않으십니다. 그 대신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이 차지했다고 여기는 권력이나 재물 때문에, 그 권력이나 재물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갇혀 버립니다. 그리고 그 권력이나 재물의 굴레에 갇혀 답답하고 고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형 에사우의 재산과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버지를 속이고 가로챘던 야곱의 처지를 기억합니다. 실제로 야곱은 에사우를 속여먹은 죗값으로 도망을 쳐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무려 십사여년 동안 종처럼 살다가 거기서도 결국 범죄자처럼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쫓겨납니다.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형 에사우가 무서워 제대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비굴하고 비참하게 돌아오게 됩니다.

 

주 하느님은 야곱도 에사우도 편애하시거나 특별히 따로 무슨 힘을 실어주지 않으십니다. 단지 야곱이 도망자로 살아가면서 힘겨운 나날에 매달리고 울부짖을 때 그 가련한 처지를 가여이 보시고 그 생애를 보호 해주실 뿐입니다. 또한, 얼핏 보기에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여길 수 있는 에사우에게도, 조금 반항기 섞인 비뚤어진 생을 살고자 했던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그를 막지 않으시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이 경우에 주 하느님께서는 야곱이나 에사우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정하고 결행하여, 그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맞아들이고 살도록 허락하실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자기 죗값을 갚으면서 살아가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 가슴 속에 깊이 다가옵니다.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요한 12,48)

 

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일러주시고 이끄시는 길로 지체 없이, 주저하거나 흔들림 없이 나아가기로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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