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의로움과 정의正義의 차이점, 모든 성인 대축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11월1일모든성인대축일>1444_piety good_works 799_justice 1689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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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 ㅣ No.2121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11월 1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ommon/SFMs/allsaint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94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11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모든 성인 대축일(매년 11월 1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35/11월1일모든성인대축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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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35/11월1일모든성인대축일.mp4 <----- (클릭하십시오) '할로윈'은 태생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전야 축제일 수가 없다: 37:38-39:40

 

[안내: 우선적으로, 바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7:38-39:40 [즉, 37분38초-39분40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모든_성인_대축일_vs_할로윈_2121"][본 화면을 갖게 하는 전달용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모든_성인_대축일_vs_할로윈_2121.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 다음은 현재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인 졸저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에 그 내용 보강된 매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입문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입문


           모든 성인 축일은 초기의 몇 세기들에 있어, 이름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자신의 축일을 가지지 못하였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다목적용 용기(catchall)’로서 시작되었다.

 

이 축일은 교황 보니파시오 4세(Bonifice IV; 재위기간: 608-615년)에 의하여 ‘모든 거룩한 순교자들의 축일(Feast of All Holy Martyrs)’로 610년 5월 13일자로 로마 지역에 소개되었다. 이날은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의 황제 포카스(Phocas, 재위기간: 602-610년)에 의하여 로마에 위치한 원형 건물로서 고대 다신교 신전인 판테온(Pantheon)이 교회에 증여(贈與)가 된 날이었다.(*1) 처음에는 5월 13일에 기념되었으나, 이 기념일은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를 위하여 835년교황 그레고리오 4세(Gregory IV; 재위기간: 827-844년)에 의하여 11월 1일로 이동되었다. 그때쯤에 즈음하여 이 축일은 모든 성인들을 다 포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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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유관 그리스도교 교회의 간략한 역사] 기원후 610년은, 왜냐햐면 (i) 그리스도교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313년) 반포 이후에 로마 제국의 국교로 받아들여졌으며, (ii)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듯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512.htm, <----- 또한 필독 권고

 

제1차 니케아 공의화(325년) 이후 칼케돈 공의회(481년)를 거치면서 삼위일체 교의(the dogma of Trinity)가 정식화 된지 약 130년 정도 경과된 시점이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다신교 신전들이 이미 용도 폐기되었을 시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따라서,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의 시기에, 로마시 성벽 안에 있는 ‘로마 제국 안에 있는 모든 다신교 신전들의 어머니 다신교 신전’에 해당하는 판테온(Pantheon) 신전610년에 한 개의 선물로서 그리스도교 교회에,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의 황제에 의하여, 증여(贈與)된 것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교 교회의 역사 안에서 고찰할 때에, 로마 제국 내의 다신교 신전들의 소멸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한 개의 역사적 사건인 것이지 결코, 어떠한 경우에도, 로마 제국 내의 다신교 문화가 그리스도교로 흡수되었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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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념일을 새로운 날짜로 옮긴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모든 거룩한 순교자들의 축일(Feast of All Holy Martyrs)’인 바로 축일을 경축하기 위하여 굉장히 많은 순례자(pilgrims)들이, 예를 들어, 일찍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임기간: 306-337년)의 명에 의하여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그리고 성 바오로의 무덤 위에, 건립된 그리스도교 교회들[즉, 성 베드롤 대성당과 성 바오로 대성당] 등에 순례하고자,(*2) 로마로 왔기에 더 많은 음식 제공이 가능한 추수 이후의 시기인 가을로 이 축일이 옮겨진 것 같다. 이 새로운 날짜는 교회 전체로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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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시자 주: 예를 들어, 다해 연중 제31주일의 복음 말씀(루카 19,1-10)이 또한 미사 중에 봉독되는, 본 해설서의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11월 9일)’ 입문을 필히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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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이 축일의 전날 밤인 ‘모든 성인들의 밤’ 혹은 이 말의 축약어인 ‘할로윈’(All Hallows Even, Halloween)이라는 표현은, 10월 31일에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민간(民間)에서(popularly) 유지되고 있는(observed) 다신교인 켈트족의 드루이드교 관습 한 개그 이름 ‘할로윈’을 제공하였다(gave its name to a pagan Celtic Druid custo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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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시자 주: (i) 그러나 바로 이 이름, 즉, ‘할로윈’(All Hallows Even, Halloween)을,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이라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경축일의 바로 그 명칭으로부터 임의적으로/작위적으로 차용 및 변형시켜 사용하기 시작한 자들이 결코 그리스도교 신자들일 수가 없었을 것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ii) 켈트족의 바로 이 문화는 지금까지도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반도인 브르타뉴(Brittany), 영국의 남서부 지방인 웨일즈(Wales), 아일랜드(Ireland), 그리고 스코틀랜드 북부 및 북서부의 고지지방(the Scottish Highlands)들에 주로 남아 있다. 다음은 Merriam Webster's On Line Dictionary에 있는 Celtic 명사에 대한 설명이다:
  

Celtic: a group of Indo-European languages usually subdivided into Brythonic and Goidelic and now largely confined to Brittany, Wales, Ireland, and the Scottish High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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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상, 2022년 11월 1일자 내용 추가 끝]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새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시기"(jealousy)"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복음 7: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복습 8: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9: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복습 1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복습 1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11월1일모든성인대축일> 모든 성인 대축일(매년 11월 1일)  

 

마태오 복음서 5,1-12ㄱ; 1요한 3,1-3; 요한 묵시록 7,2-4.9-14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377-392쪽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산중성훈(山中聖訓)/산중수훈(山中垂訓)/산상수훈(山上垂訓)(마태오 복음서 제5-7장)의 첫 부분에 있는 진복팔단(真福八端, Beatitudes, 참행복들) 전문.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1월 2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2000년 대희년 거룩한 땅 성지순례 중 3월 24일(금) 강론 말씀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vatican.va/content/john-paul-ii/en/travels/2000/documents/hf_jp-ii_hom_20000324_korazim-israel.html <----- 필독 권고

 

내용이 너무 좋아 추가로 안내해 드리니,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서양 언어가 수월한 분들의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이상, 2020년 11월 2일자 내용 추가 끝]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요한 3,2)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대추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요한 묵시록 7,9)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B.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천국)가 어디에만 오로지 현존하는지 학습할 수 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 바깥에는 하늘 나라의 흔적만이 오로지 있을 뿐임을 결코 잊지 말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 필독 권고

 

C.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개신교회 측에서도 점차로 동의하고 있는, 요한 묵시록을 포함하여 신약 성경의 경전들의 저술들이 기원후 70년 이전에 완료되었음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1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5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60.htm

 

D. 한문 문화권 내에서 1814년경에 이르기까지, 영어로 ‘idol’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에 대응하는 한자 번역 용어는, ‘우상’(偶像, 허수아비 상)이 아니고, ‘신상’(神像)이었다. 자구적 의미에 있어, ‘신상’(神像, idol)은 ‘우상’(偶像, 허수아비 상)이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기억하도록 하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본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29주일 제1독서 입문 해설의 각주와 이 각주에 안내된 글들을 필독하도록 하라.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llsaint.htm

 

F.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llsaint.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The saints are a reflection of the Son of God, who live on earth according to the beatitudes practiced by Jesus Christ even before he taught them: poverty, gentleness, pureness of heart, love for peace, persecution, martyrdom... It is impossible to determine the number of saints (144,000 is a symbolic number to indicate a huge immensity), and they are from all races and nations (First Reading). As they are a reflection of the Son on earth, the fullness of filial happiness in the vision of God is awaiting them in Heaven (Second Reading).

 

성인(the saints)들은 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 성자)의 어떤 반향(a reflection)인데, 이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실천된, 심지어 당신께서 그들에게 다음의 것들을 가르치시기 전에, 참행복(beatitudes)들에 따라 땅 위에서 살아갑니다(live): 가난(poverty), 온유(gentleness), 심장의 순수함(pureness of heart), 화목/평화(peace)에 대한 사랑, 박해(persecution), 순교(martyrdom) ... . 성인들의 숫자를 정하는(determine) 것으 불가능하며 (144,000명은 어떤 거대한 광대(a huge immensity)를 가리키는 하나의 상직적 숫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로부터 입니다(제1독서). 땅 위에 계신 이 하느님의 아드님(the Son)의 어떤 반향(a reflection)으로서, 하느님에 대힌 직관(vision of God) 안에 있는 자녀로서의 행복의 충만함이 하늘(Heaven, 천당)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제2독서).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Jesus, master of the beatitudes. In the sermon on the mount, Jesus expressed what he had lived and what he would live until his death. He proclaims blessed those that are poor, and he will have nowhere to rest his head (Lk 9:58). "Blessed are the gentle," and he defined himself as gentle and humble in heart (Mt 11:29). "Blessed are those that cry," and he cried before Jerusalem, which kills the prophets and does not welcome those that are sent to her (Lk 19:41).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and sin never dwelled in his heart, to the point that he asked, "Can any of you convict me of sin?" (Jn 8:46). "Blessed are the peacemakers," and Jesus is the prince of peace who enters Jerusalem like a peaceful prince riding on a donkey (Mt 21:1-5) and says to Peter, "Put your sword back, for all who draw the sword will die by the sword" (Mt 26:52).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uprightness," and he has no other nourishment than the will of the Father (Jn 4:34), and his thirst is none other than the redemption of the world (Jn 19:28).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in the cause of justice," and he was treated like a criminal and was subjected to torture on the cross (cf Lk 23:1-25).

 

이 참행복들의 스승이신 예수님. 산상설훈(the sermon on the mount, 마태오 복음서 제5-7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미 살아오셨던 바 그리고 당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께서 살아가실 바를 표현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가난한 자들은 복을 받는다(blessed)라고, 그리고 당신께서는 당신의 머리를 쉴 곳을 어디에서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루카 복음서 9,58). "온유한 자들은 복을 받는다(blessed)"라고 선포하셨으며, 그리고 당신께서는 당신 자신을 심장 안에서(in heart) 온유하고(gentle) 그리고 겸손한(humble) 분으로서 정의하셨습니다(defined) (마태오 복음서 11,29). "울부짖는 자들은 복을 받는다(blessed)"라고 선포하셨으며, 그리고 당신께서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그리고 자신 쪽으로 파견된 자들을 환영하지 않는, 예루살렘 앞에서 울부짖으셨습니다(루카 복음서 19,41). "심장 안에서(in heart) 수순한 자들은 복을 받는다(blessed)"라고 선포하셨으며, 그리고 죄(sin)는, 당신께서 "너희들 중의 어느 누구도 나를 죄 때문에(of) 고발할 수 있느냐?"(요한 복음서 8,46)라고 질문하시는 요점(point)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심장 안에(in his heart) 결코 거주하지 못하였습니다. "화목/평화를 만드는 자들은 복을 받는다(blessed)"라고 선포하셨으며,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한 마리 나귀의 등에 타시고서 한 분의 평화로운 군주처럼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마태오 복음서 21,1-5), 바로 그 화목/평화의 군주(prince)이시고, 그리고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왜냐하면 칼을 뽑은 자들 모두는 그 칼 때문에(by) 장차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마태오 복음서 26,52)라고 말씀하십니다. "올바름/의로움(righteousness)을 추구하다(for) 배고프고 목마른 자들은 복을 받는다(blessed)"라고 선포하셨으며, 그리고 아버지[즉, 성부]의 뜻/의지(the will of the Father) 이외의 어떠한 것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요한 복음서 4,34). "정의를 수호하다/지지하다/장려하다(in the cause of justice) 박해받는 자들은 복을 받는다(blessed)"라고 선포하셨으며, 그리고 당신의 목마름은 이 세상의 구속/속량(redemption) 이외의 어떠한 것도 아닙니다(요한 복음서 19,28).

The saints, disciples of Jesus Christ. Like Christ and with him, the saints are the champions of the beatitudes. Among them, there are some that distinguish themselves from the rest in living particular beatitudes. Thus the champion of the beatitude of poverty is found in Saint Francis of Assisi; that of the weeping which will be consoled in Saint Monica, Saint Augustine's mother; that of gentleness in Saint Francis of Sales, who was naturally prone to anger and violence; that of the pure in heart, in Saint Louis Gonzaga; that of the peacemaker, in Saint Bernardino of Siena, who was able to reconcile the Guelphs and Ghibellines; the champion of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uprightness in Saint Thomas More, who preferred to die as a criminal out of fidelity and justice towards God; the champions of the persecuted, in all the martyrs who shed their blood before denying their Faith. After Christ, in the living of such beatitudes, come such saints and thousands and thousands more, who have lived some of the beatitudes with the fullness of their spirit. Thus they have been considered worthy of being children of God. On earth they saw some of the divine splendor, and after death they entered the eternal vision of the mystery of God.

 

성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그리스도처럼 그리고 그분과 함께, 성인들은 이 참행복[the beatitudes, 진복팔단(真福八端)]들의 옹호자(champions)들입니다. 그들 중에서, 특별한 참행복들을 실행활로 실천함(living)에 있어 나머지 분들로부터 자신들의 차이점을 나타내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thus), 가난(poverty)이라는 참행복의 옹호자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of Assisi, 1181-1226년)에게서 발견되고, 장차 위로를 받게 될 슬퍼함(weeping)이라는 참행복의 옹호자는,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의 어머니인, 성녀 모니카(St. Monica, 332-387년)에게서 발견되며, 온유(gentelness)라는 참행복의 옹호자는, 본성적으로 분노(anger)와 폭력(violence) 쪽으로 경향이 있었던, 성 프란체스코 드 살/프란치스코 살레시오(St. Francis of Sales, 1567-1622년)에게서 발견되고, 심장 안에서 순수(pure)라는 참행복의 옹호자는 성 알로이시오/루이스 곤자가(St. Aloysius/Louis Gonzaga, 1568-1591년)에게서 발견되며, 화목/평화를 만드는 자라는 참행복의 옹호자는, 교황파(the Guelphs)와 황제파(the Ghibellines)를 화해시킬 수 있었던,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St. Bernardino of Siena, 1380-1444년)에게서 발견되고, 올바름/의로움(righteousness)을 추구하다(for) 배고프고 목마른 자들 중의 옹호자는, 하느님 쪽으로 향하는 충성(fidelity)과 정의(justice) 때문에 한 명의 범죄자로서 죽는 것을 선호하였던,  성 토마스 모아(St. Thomas More, 1478-1535년)에게서 발견되며, 박해를 받는 자들 중의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신앙(Faith)을 부인함(denying) 앞에서 자신들의 피를 뿌렸던 순교자들 모두에게서 발견됩니다. 그리스도 이후에, 그러한 참행복들의 생활함 안에서, 그러한 성인들과 그리고, 자신들의 영(spirit)의 충만함과 함께 이 참행복들의 일부를 실생활로 실천해온, 수천의 그리고 수천의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the children of God)들일 만하게 가치롭다고 간주되어져 왔습니다. 땅 위에서 그들은 이 신성적 광채(the divine splendor)의 일부를 보았으며, 그리고 죽음 이후에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the mystery of God)에 대한 영원한 직관(eternal vision)에 들어갔습니다.   

 

The number of saints is impossible to determine. The number 144 is a multiple of 12, which in turn is four times three, that is, the sum of what is immeasurable, which reaches the extremes of the four cardinal points. These saints are from all races, countries and cultures, they are of all ages, gender, state and trade. The latest popes, especially John Paul II, have emphasized this universality by beatifying and canonizing numerous men and women of faith across the five continents. It is an immeasurable number, because in truth, all those who live and die in a state of grace and friendship with God are saints.  

 

성인(saints)들의 숫자는 정하는(determine) 것이 불가능하다. 144라는 숫자는 12의 배수인데, 이것은 이번에는 4 곱하기 3, 즉, 4개의 기본 방위 기점(the four cardinal points)들의 극한들인, 계측할 수 없는 바의 합(sum)입니다. 이들 성인(saints)들은 모든 인종(races)들, 나라(countries)들 그리고 문화(cultures)들로부터이며, 그들은 모든 나이(ages)들, 성(gender), 지위(state) 그리고 직업(trade)으로부터 입니다. 가장 최근의 교황님들은, 특별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다섯 대륙들을 가로 질러서 수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을 시복함(beatifying) 및 시성함(canoizing)으로써 바로 이 보편성(universality)을 이미 강조해 오셨습니다. 성인들의 숫자는 어떤 계측할 수 없는 숫자인데, 왜냐하면, 참으로(in truth), 은총(grace) 및 하느님과의 우의의 관계(friendship)의 어떤 지위(a state)에서 살다가 죽는 자들 모두는 성인(saints)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165. 어떠한 면에서 교회는 거룩합니까? 

CCC 823-829, 867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교회의 창시자(author)이신 한, 교회는 거룩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그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sanctify) 또 교회를 성화의 원천(source of sanctification)으로 삼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랑(애덕, charity)으로써 교회에 생명을 주십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구원을 위한 수단(means)들이 충만함을 발견합니다. 거룩함(holiness)은 교회의 지체/구성원(members)들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소명(vocation, 부르심)이며 그리고 교회의 모든 활동들의 목적입니다. 교회는 교회의 지체들 가운데에 동정 마리아와 수많은 성인들을 포함시키는데(counts), 이들은 교회의 귀감(models)들이고 또 전구자(intercessors)들입니다. 교회의 거룩함은 이곳 지상에서 자신들을, 여전히 회심/윤리적 변화(conversion)과 정화(purification)를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라고 알아차리는(recognizes) 교회의 자녀(her children)들을 위한 성화의 샘(fountain of sanctification)입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llsaint_c823.htm

 

CCCC 209. ‘하늘(heaven, 천당)’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CCC 1023-1026, 1053 

 

하늘(heaven, 천당)은 최상의 그리고 최종적(definitive) 행복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죽은 자들과 그리고 더 이상의 정화(purification)가 필요하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과 성모님, 천사들 및 성인(saints)들 주변에 모이게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천상 교회를 형성하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1코린토 13,12) 하느님을 뵙니다. 그들은 사랑(love)이라는 하나 됨(communion, common union, 통공) 안에서 지극히 복되신 성 삼위(Trinity)와 함께 살게 되며 우리를 위하여 전구합니다(엮은이 번역).

 

          “참된 그리고 존속하는(subsistent) 생명은,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그리고
          성령 안에서, 아무런 예외 없이 만물들 위에 당신의 천상 선물들을 끊임없이 
          쏟아내심, 바로 이것을 본질적인 혹은 주된 부분으로서 가지고 있습니다(consists
          in). 당신의 자비 덕택으로,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인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양도할 수 없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Saint Cyril of
          Jerusale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llsaint_c1023.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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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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