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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인 성교요지가 1813년과 그 이후에 처음 등장하는 개신교회측 중국어본 성경들에만 근거하여 작문될 수 없는 실증적 증거들 1990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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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5 ㅣ No.2402

작성 중입니다

 

1. 들어가면서

 

1-1. 우선적으로, 중국 본토에 최초로/처음으로 개신교회 측에서 파견한 서양인 선교사가 중국 본토에 도착한 첫 시점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알기로, 1807년인 것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국외에도 널리 잘 알려져 있는, 진리인 역사적 사실 한 개입니다.

 

바로 이 역사적 사실을 여태까지 모르고 있는 분으로서 한시(漢詩)인 "성교요지"의 내용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해온, 확신하는, 혹은 향후에도 확신하고자 하는, 분은, 그러한 자신의 확신 자체가 매우 심각한 오류임을 인정함과 함께, 그러한 자신의 확신을 판단의 근거, 기준(standard)/잣대(norm)로 사용하여 내린 결론들을 또한 진리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쓰는 일체의 행위를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중팔구, 그 책임이 오로지 그러한 방식으로 고유한 연구(?)를 수행해온 연구자들 자신들에게 그 책임이 있는, 거짓말까지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1-2. 바로 위의 제1-1항에 드린 권고/권면의 말씀이 도대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분들은, 비록 그동안 자신이 연구자라고 믿어온/확신해온 분이라고 하더라도,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이해가 제대로 될 때까지, 열 번, 스무 번, 필요하다면 백 번까지라도, 정독에 정독을 할 것을 또한 정중하게 권고드립니다. 참고로, 바로 아래에 안내된 논문의 저자는 감리신학대학교 구약학 전공 이환진 교수이며, 2015년에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의 논문이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2000_중국어성서번역사_이환진.pdf  

 

1-3. 그런데, 바로 위의 제1-2항에 안내된 논문이 의미하는 바에는 어떠한 내용이 포함될까요?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일부는 그 저작권이 이들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있지 않으므로, 이들 용어들이 이들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에 고유한 용어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따라서, 진리를 탐구하고 규명하는 연구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좋은 선생을 만나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연구자이라고 한다면, 위의 제1-2항에 안내된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가 신뢰할 수 있는지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첫 단계 작업으로서, (i) 장 바쎼 신부님의 신약 성경들의 사본, 그리고 (ii)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로버트 모리슨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의 사본들뿐만이 아니라, 또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다수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을 필요시에 언제든지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확보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1-4. 그런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일천한 필자에게 대단히 유감이었던 것은, 위의 제1-2항에 안내된 논문이 2000년에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 이르기까지, 개신교회 측에서 바로 위의 제1-3항에서 말씀드린 추가적으로 필수적인 작업을 진행한 흔적을,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던 점입니다.

 

그러니까...

 

위의 제1-3항에서 말씀드린 바로 그러한 작업 자체를, 굳이 아까운 시간 및 경비까지 들여가면서, 수행 할 필요성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까요??? 혹은,

 

그러한 방향으로 연구하였다가는 당장에 밥줄이 끊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는지요??? 아니면,

 

연구 능력/역량 자체가 부족하여, 도저히 엄두도 못내었던 것인지요??? 혹은,

 

원천 인격저작권들 자체를 아무도 모르게 하겠다는 매우 불순한 음모의 한 결과를 의도적으로/작위적으로 산출하려고 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인지요???

 

어떠한 경우에도, 원천 인격저작권자들로부터의 사전 허락 없이 무단 도용하여 샤용 중인 특정 번역 용어들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에 원천 인격저작권들 자체가 무단 도용자 집단에게 자동적으로 이관될 것이라는 도무자 납득할 수 없는, 이성의 추론 행위에 있어 정말로, 참으로, 희한한, 정말로, 참으로, 해괴한 판단 오류는 자초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런데 이미,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모두가 개신교회 측의 고유한 번역 용어들이라는, 참으로 대단히 잘못된, 판단 오류를 범하는, 자칭 연구자들이 꽤 많아진 것 같습니다.

 

1-5. 바로 위의 제1-2항, 제1-3항, 그리고 제1-4항에서 말씀드린 바를 읽고서, "무슨 해괴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 "희한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인신 공격을 하는 자는, 그러한 인신 공격을 하기 전에,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모두가 개신교회 측의 고유한 번역 용어들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을 하여야 함을 모르는 자임을, 따라서, 자신이 연구자가 아님을 스스로 시인한 자라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특히, 개신교회 신자이라고 더 많이 자부하는 분들일수록, 바로 위의 밑줄을 그은 부분을 더욱더 확인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자신들의 자부심을 계속 지키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 본문에는 오로지 유한개의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과 정성을 조금만 쏟아부으면, 누구라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할 수 있는, 특히 많이 부족한 죄인인 일천한 필자까지도 최근 8년 동안 실증적으로 입증/고증이 되는 유의미한 연구 결과들을 지속적으로 산출해 온 것으로 미루어 볼 때에, 따라서 별로 어렵지 않은 일임이 상당히 분명한데,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아 왔는지요??? 무슨 말 못할, 밝히지 못할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반례(counter-examples)들 몇 개를 들어볼까요?

 

아래에 제시된 반례들이 적용되는 경우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claim)에서 입니다: 즉, 어떤 한문 분헌(A)이, 예를 들어, 시계열상에서 1853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 처음으로/최초로 저술되었음/작문되었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1853년과 그 이후에 출판된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B)을 논증의 근거, 기준/잣대로 삼아, 예를 들어, 해당 한문 문헌(A)에서 사용되고 있는 특정 용어(들) 한 개(여러 개)가, 논증의 근거, 기준/잣대로 삼고 있는 이들 중국어본 성경들(B)의 본문들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따라서, 해당 한문 문헌(A)가 저둘된/작문된 시점이 중국어본 성경들(B)가 출판된 1853년보다 이후의 시점이라는 결론(C)을 내렸을 경우에,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 내린 결론(C)오류(error)임을 입증하는 반례(D)를 만나게 되는 경우들 입니다.

 

Example 1: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敎會"(교회)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敎會"(교회)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敎會"(교회)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2: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長老"(장로)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長老"(장로)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長老"(장로)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3: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執事"(집사)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執事"(집사)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執事"(집사)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4: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聖徒"(성도)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聖徒"(성도)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聖徒"(성도)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5: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吾主"(오주)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吾主"(오주)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吾主"(오주)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6: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耶穌"(예수)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耶穌"(예수)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耶穌"(예수)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7: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基督"(기독)이,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基督"(기독)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基督"(기독)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8: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中保"(중보)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中保"(중보)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中保"(중보)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9: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祈禱"(기도)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祈禱"(기도)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祈禱"(기도)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Example 10: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번역 용어들 중의 한 개인 "懇求"(간구)가,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 예수회 혹은 다른 수도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의 고유한 중국어 번역 용어임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작성하여,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그 근거 자료 및 작성자의 실명과 함께, 반드시 공개적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바로 위에서 지적한 실증적(positive) 입증/고증의 분명한 제시 없이, 만약에 어떤 자가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 중에 "懇求"(간구)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된 것을 알고서, "왜냐하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懇求"(간구)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해당 특정 한문 문헌[예를 들어, "성교요지"]이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감히 그리고 스스럼 없이 내리는 행위는, 논리의 비약이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어불성설일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결론이 어불성설임은 실증적으로 입증/고증됩니다.

  

1-6. 그러니까, 혹시라도 바로 위의 제1-5항에서 제시한 성경 용어들이, 1583년부터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에서 도입되어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따라서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 측 중국어본 성경들에 고유한 번역 용어들이 아님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된다면, 따라서 한문 문화권 개신교회 측에서 그동안 이들 용어들을 무단 도용하여 지금까지 사용해 왔음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된다면, 특히 개신교회 측 신자라고 자부하는 분들께서는, 정말로 자존심/자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즉시 그리고 우선적으로, 본인의 생각, 말, 글, 그리고 본인이 사용하는 성경 본문에서 이들 번역 용어들의 사용을 중단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 다음으로, 정말로 자존심/자부심이 있는 개신교회 신자들이라면, 그동안 왜 이러한 진리인 역사적 사실들을 자신들이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구체적으로 밝혀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동안 이러한 의문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확인조차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정말로, 참으로, 희한한 문제, 정말로, 참으로, 해괴한 문제가 도대체 언제부터, 어디서, 그리고 누구에 의하여 발생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하여서도,  왜냐하면 이 문제는 개신교회 측 신자들이 생각할 때에, 정말로, 참으로, 희한한 문제, 정말로, 참으로, 해괴한 문제라고 아니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만약에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 제공의 초기 교회사의 어떤 기록, 어떤 문헌에서도 여태까지 그러한 내용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면, 정말로 자존심/자부심이 많이 상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게시자 주 1: 위의 제1항에서 말씀드린 바는, 특정 한문 문헌(A) 및 이 문헌의 유관 사료들일 수도 있는 문헌/자료들에 대한 정밀하고 또 실증적인(positive) 본문 분석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처음으로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만을 오로지 그 근거로 제시하면서, 특정 한문 문헌(A)의 작문/저술 년대에 대하여 시비(是非)를 가리고자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함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는  반례(counter-examples)들 멏 개를 제시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지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진리에 에 관한 문제는, 투표에 의하여 다수결의 찬성 혹은 반대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위의 제1항에에 제시된 열 개의 반례(counter-examples)들처럼, 반례(counter-examples)들의 역할에 대하여

 

2-1. 바로 위의 제1항의 열 개의 반례(counter-examples)들에서 제시된 한자 번역 용어들 모두는, 비록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처음으로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의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기는 하나,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들 열 개의 반례에서 제시된 번역 용어들이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처음으로/최초로 중국어본 성경 용어들로서 사용되기 시작한 번역 용어들이라고 결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열 개의 번역 용어들 모두가, 사실은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1807년 이전의 시기에, 이미 처음으로/최초로 도입되어 성경 용어로서 사용되어 왔음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 열 개의 반례들을 찾아낸 후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누구든지 읽을 수 있도록, 본 "가톨릭 신앙생활 Q&A 게시판"에 게시글들로서  인터넷 공간에 공지한 시점들도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그러므로, 성경 내용이 포함된 특정 한문 문헌이 1807년 이후에 저술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 특정 문헌에서 사용되고 있는 특정 번역 용어가 1807년 이후에 처음으로/최초로 사용되었다는 판단의 근거, 기준/잣대로서,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만에 오로지 의존하는 것은, 진리/참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음이, 위의 제1항에 제시된 열 개의 반례(counter-examples)들처럼, 특정 반례 한 개(a counter-example)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될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설사 그러한 오류의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 추가적으로, 아무리 그럴듯하게 수사학적으로 강조하거나 미사여구로 꾸며대고 하더라도, 해당 특정 번역 용어가 1807년 이전에 결코 사용되지 않았음을 증명하지 못할 수도 있음에, 따라서, 성경 내용이 포함된 특정 한문 문헌이 1807년 이후에 저술되었음을 증명하지 못할 수도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2-2. 예를 들어, "성교요지" 3,16 본문 중에 사용되고 있는 산의 이름인 "西乃"(서내)가, 왜냐하면 이 번역 용어가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성교요지"는, 1807년 이전에 결코 작문될 수가 없고, 1807년 이후에 작문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함부로 내릴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위의 제1항에 제시된 열 개의 반례(counter-examples)들처럼,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이 되는 한 개의 반례(a counter-example)가, 다음과 같이, 존재하기(exists) 때문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찾아내어, 2016년 9월 11일에 인터넷 공간에 공개한, 반례 한 개(a counter-example)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22.htm <----- 필독 권고 

 

2-3. 또다른 예를 들어, "성교요지" 2,1 본문 중에 사용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인 "亞伯"(아벨)이, 왜냐하면 이 번역 용어가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성교요지"1807년 이전에 결코 작문될 수가 없다는 결론을 함부로 내릴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위의 제1항에 제시된 열 개의 반례(counter-examples)들처럼,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이 되는 한 개의 반례(a counter-example)가, 다음과 같이, 존재하기(exists) 때문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찾아내어, 2016년 1월 9일에 인터넷 공간에 공개한, 반례 두 개(two counter-examples)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69.htm <----- 필독 권고 

 

2-4. 예를 들어, "성교요지" 3,14 본문 중에 사용되고 있는 4자성구 "巴米道路"(파미도로)에서, 설사 낱글자 "巴"(파)와 낱글자 "米"(미)가, 1807년 이후의 시기에, 각각, 바빌론(Babylon)의 음역 용어 중에 사용되었고 그리고 메디아(Media)의 음역 용어 중에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바로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성교요지"1807년 이전에 결코 작문될 수가 없다는 결론을 함부로 내릴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위의 제1항에 제시된 열 개의 반례(counter-examples)들처럼,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이 되는 한 개의 반례(a counter-example)가, 다음과 같이, 존재하기(exists)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꽤 오래 전에 찾아낸, 그러나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한 개의 반례(a counter-example)입니다: 즉, (i) 동방 박사가 별을 보고 출발한 지역의 지도상의 지명이 낱글자 "巴"(파)를 포함하고 있고, 그리고 (ii) 성 요셉과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도망을 간 이집트 지역의 나일강 동쪽의 지도상의 지명이 낱글자 "米"(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iii) "西乃山"도 지도상에 표기된, 지도(maps)들이 포함된, 1623년에 중국 본토에서 출판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이 한 권 있는데, 바로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의 "직방외기"입니다.

 

2-5. 예를 들어, "성교요지" 3,13 본문 중에 사용되고 있는 4자성구 "冷迦城邑"(냉가성읍)에서, 설사 낱글자 """加"과 동일한 음값을 가지는 음역 낱글자임을 밝히는 "迦"가 1807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된 중국어본 성경들에서, 각각, 특정 지역의 지명 중에 사용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바로 이러한 내용으로부터 "성교요지"1807년 이전에 결코 작문될 수가 없다는 결론을 함부로 내릴 수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위의 제1항에 제시된 열 개의 반례(counter-examples)들처럼,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이 되는 한 개의 반례(a counter-example)로 삼을 수 있는 예들이, 다음과 같이, 존재하기(exists) 때문입니다.

 

다음에 기술된 바가, 여러 개의 반례(multiple counter-examples)들을 제공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1) "예루살렘(Jerusalem)"의 음역(transliteration)에서 "冷(랭)" 글자가 사용된 문헌들은, 예를 들어, 연대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의 1636년에 초간된 한문본 저서인 "성경직해" 권1_24_오주성탄전제2주일_108-116;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 1636년 경에 초간된 한문본 저서인 "천주성교4말론", 권1, 제46쪽 오른편 면(曰路撒);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의, "천주강생언행기략"의 축소본/요약본인, "야소연행기략"에서 "예루살렘""柔撒[유살]"이라고 표기되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논문의 제239쪽을 보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2011_천주강생언행기략_급_기청대개편본적류변_journal_bible_04_1310032433.pdf; 그런데, 바로 이 "유살"이라는 표기를 [내용 수정일자: 2022-11-03] 1700년에 저술된 장 바쎄 신부의 번역서인 한문본 [이상, 2022-11-03일자 내용 수정 끝] "만물시원" 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예를 들어 "제22장 여달복국"에 접속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00_장_바쎄_만물시원/만물시원.htm 그리고 장 바쎄 신부(1662-1707년)1704년 경에 저술된 "화합복음서", 사도행전 제2장에서 "예루살렘"이 또한 "유살"으로 표기되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첫 페이지를 보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2-1707_장_바쎄/사도행전_2.htm 

 

다른 한편으로,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의 1636년에 초간된 한분본 저서인 "성경직해" 권9_38_3왕래조야소첨례_149-154 에서는 "베들레헴(Bethlehem)"이 "백"으로 음역되었다. 


따라서, 더 포괄적으로, 이들 용례들로부터, 예수님과 관련된 성/읍들의 음역(transliteration) 시에 "" 글자가 이들 선교사 신부님들에 의하여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음.

 

(2)
(2-1)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迦" 글자는 중국에서 불교 경전들이 중국어로 번역될 때에 오로지 원 단어의 음값음역(transliteration)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음 창안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로버트 모리슨 목회자(1782-1834년)에 의하여 출판된 "중영/영중 자전", Chapter 3, 제504쪽에 주어진, "迦" 글자에 대한 설명을 참고하라: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또한 "한컴사전" 제공의 중국어 사전에 제시된 다음의 설명을 읽도록 하라:

 

(발췌 시작)

[jiā]

 

(构词成分, 用于译音, 也用于专名) a character used in proper names and in rendering some foreign names, as in 释迦牟尼 (Sakyamuni)

 

석가모니에서처럼, 고유명사들에서 및 어떠한 외국 이름들을 [중국어로] 번역함에 있어 사용되는 한 개의 낱글자이다.

(이상, 발췌 및 영어 문장의 우리말 번역 끝)

 

(2-2)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迦" 글자는 그 음값이 "加" 글자의 음값과 동일한 낱글자인데, "성교요지"의 작문자는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래의 제(2-3)항에 제시된 "천주강생언행기략"의 유관 부분을 학습한 후에, (i) "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 "加" 글자가 사용된 지역 명칭들을 읽고서, 자신의 "성교요지"의 유관 부분의 작문 중에, 지역 명칭의 음역 약자임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加" 글자 대신에 "迦" 글자를 사용하였을 수도 있고, 혹은 (ii) 자신의 "성교요지"를 작문할 당시에, 주변의 불교 신자들을 향한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iton)의 목적으로, "加" 글자 대신에 "迦" 글자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였을 수도 있음.

 

(2-3) 그리고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635년 초판 저술인  "천주강생언행기략"에서 "加" 글자가 사용된 지역 명칭들에는 다음과 같은 지명들이 있다: 서이 = 시카르(즉,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 리륵아 = 갈릴래아; 납닉아 = 가나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권1_0_만일략경설&조목_4-19 [만일략 = 복음(Gospel), 마두 = 마태오 (Matthew), 마이가 = 마르코 (Mark), 로가 = 루카 (Luke), 약망 = 요한 (John), 액제아(阨濟亞) = 그리스, 라마 = 로마, 성인 열라니모 = 성 예로니모 (St. Jerome, 347-420년), 성 달마소 교종 = 성 다마소 교황 (St. Damaso, Pope, 305-384년, 재위기간: 366-384년), 성인 오사정 = 성 아우구스티노 (St. Augustine, 354-430년), 슬도 = ???, 의살백이 = 엘리사벳, 액일다 = 이집트, 니각득목 = 니코데모, 서이 = 시카르(즉,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 리륵아 = 갈릴래아, 갈발옹 = 카파르나움, 납영 = 나인, 일낙살이 = 겐네사렛, 저락 = 티로, 백살의달 = 벳사이다, 대박이 = 성경 본문에 주어지지 않은 주님 거룩한 변모가 일어난 산의 이름, 살마리아 = 사마리아, 백대니아 = 베타니아, 엽례각 = 예리코, 비랄다= 빌라도, 흑라득 = 헤로데] [주: 첫 번째 각주인 "중국인들이 만일략 이라고 말하는/일컫는" 에 대한 각주에서, "즉,  번역한 말(譯語)은 호보(好報, 좋은 소식) 복음(福音)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음. 다음에 있는 글을 또한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3_만일략.htm.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데,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이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이 용어의 의미/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주: 교황님을 말하는 "교종"이라는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종도" (즉, 요으음 말로 "사도"), "성도"라는 번역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 마태오 복음서"여덕아"국 문자, 즉, 마태오의 모국어인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저술되었음과, 나머지 세 복음서들이 "액제아"국 문자, 즉, "그리스어"로 저술되었음을 말하고 있음.] [주: 마태오 복음서가 애초에 (즉, 기원후 50년 경에)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로 저술되었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성서학자이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가르침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3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33.htm. 또한 성 예로니모가 다마소 교황님의 명령을 받아 성경을 태서제국(즉, 태서의 여러 나라들, 즉, 로마 제국의 여러 나라들)이 송독(즉, 글을 소리내어 읽음)하는 것을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로마 문자(즉, 라틴어)로 번역하였다는 언급도 있음.]

 

권2_8_서가[이]기수화인_39-40 [요한 복음서 4,3-42(가해 사순 제3주일 복음 말씀)] [리륵아 = 갈릴래아, 성 = 시카르성(즉,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 [여덕아 = 유데아] [주: 여기를 클릭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듯이, 강생하신 성자(the Son of God)의 이름으로서, 미카엘 루지에리 신부님(1543-1607년)의 저서인 "천주성교실록"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그리스도"의 음역 용어인, "계리사독" 이라는 용어가 여기서 또한 그대로 사용되고 있음] 

 

권4_4_저락성적_75-76 [마태오 복음서 15,21-28(가해 연중 제20주일 복음 말씀; 매년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저락 = 티로, 서단 = 시돈, 납닉아 = 가나안]

(이상, 발췌 끝)

 

(3) 따라서, (i) 위의 제(1)항에 나열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중의 한 개로부터 예루살렘의 음역 단어로부터 낱글자 "冷"을 선택하고, (ii) 위의 제(2)항에 있는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천주강생언행기략" 본문 중에 기술된, 낱글자 "加" 가 포함된 성읍들 중의 한 개로부터 "加"를 선택하되, 바로 이 낱글자가 음역 단어임을 독자들에게 명확히 밝히기 위하여 "加" 대신에 "迦" 사용하여, (iii) 이들 두 낱글자들을 "城邑"와 결합하여, 최종적으로 "冷迦城邑"이라는 4자성구를 작문하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과정은, 여러 개의 반례(multiple counter-examples)들을 제공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여기서, 특히, 한 개의 반례(a counter-example)를 오로지 한 권의 책에서만 찾아내어야 할 이유/필요가 없음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성교요지"의 작문자가 고급의 한시(漢詩)를 작문하기 위하여, 학습하는 과정에, 여러 권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을 들여다 보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천주강생언행기략""천주강생성경직해"를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2-6.  

 

작성 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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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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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_T_SOH,개신교회_선교사들의_중국_최초진출(1807년)_이전에_도입된_한문문화권_천주교회의_고유한_용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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