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너무 예뻐 보기에도 아까운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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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9-05 ㅣ No.449

오늘 아침도 방금 세수를 마친듯 말끔한 얼굴을 한 파아란 하늘이 나왔다. 그리고 이제 왠지 유치하게 들리는 솜사탕 같은 흰구름도 떠있다. 그 하늘의 너무 진하지 않은 푸른 기운에 넋을 놓고 멍하니 앉아서 잠시 하릴없는 생각에 잠겼다. 집에 있으면 이불도 볕에 널어두고 큰 빨래도 맘 먹고 할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낮에 다시 더워지면 여름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며 물냉면을 만들어 먹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다. 그리고 오늘 같은날 남산이나 63빌딩 위에 올라가면 어디까지 보일까 쓸데없이 궁금해 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난데없이 김민기님의 '봉우리'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의 듣는 사람을 맥 놓게 만드는 읊조림과 푸근하고 다정하게 등을 토닥거려주는 듯한 가사가 다시 넋을 놓게 했다. 가을은 생각이 많아지고 갖다부칠 곳 마땅치 않은 고민이 많아지는 계절인데 아침부터 이런 노래를 듣고 나면 기운이 빠진다. 이어진 앞뒤 안맞는 부산함이 싫어 주파수를 바꾸니 '흑인 올페'의 사운드 트랙이 나온다. (일을 하라는건지 말라는건지 궁금해졌다, 그들의 의도가...) 오늘처럼 맑은 날이 너무 맑아서 슬프다면 이번 가을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지만 이제 비가 와도 맑아도 우울 타령은 안하고 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지겹다... 우울을 하소연 하는 일조차도... 다시 하늘을 보면서 생각을 고쳤다. 이 담에 연인 비슷한 사람이 생기면 오늘 하늘처럼 푸른 셔츠를 사줘야겠다고.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내가 우울해 지는건 노래탓도 하늘탓도 아니고 내 body가 스스로를 말로 착각하며 마구 먹어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난 돼지인데 왜 이 가을을 위장에서부터 느끼고 있는지 미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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