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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와 구원의 신비 ... [신앙생활글][인터넷전교][초심자안내] 1122_ free_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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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31 [218.236.113.*]

2005-03-01 ㅣ No.19

원죄와 구원의 신비..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친히 흙으로 빚으신 우리 몸뚱아리에 성령으로써 영혼(soul)을 불어 넣어 주실 때(창세기 제 2장 7절)에 또한 함께 주신 것이 있는데, 이것은 중세 초기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에 와서야 신학적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 "자유 의지"(Free Will) 라는 말로 표현되는 상당히 어려운 개념입니다. [그리고 "자유 의지"는, (신앙적인 입장을 배제한 상태에서 인간의 마음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때에) 도덕성(Morality) 및 통찰력(Insight)과 함께 우리 마음의 공간을 정성적으로(Qualitatively) 표현하는 기본 좌표축으로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성(Humanity)을 연구하고 이해함에 있어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보편적 개념입니다.](*)


[2022년 7월 7일자 내용 추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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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깊은 명상 중에 "사고의 행동 반경"/"사고의 틀"에 이들 세 개의 기본 좌표축들이 있음을 최초로/처음으로 알아차리게 된 시점은 대학교 1학년 시절인 1975년 이른봄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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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2년 7월 7일자 내용 추가 끝]


이 개념은, 구약 성서 창세기 제 2장과 제 3장의 말씀을 통하여, 원죄(Original Sin) 를 범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하느님께서는 묵시적이기는 하나 매우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즉,


창세기 제 2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Adam)과 하와(Eve)에게 어떠한 행위를 할 경우에 최초의 원죄(Original Sin)가 성립함을 구체적으로 말씀(창세기 제 2장 17절)하셨으나, 창세기 제 3장에서는, 비록 사탄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이 있기는 하였으나(핑게), 이를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고 "선악과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행위"라는 자유 의지의 잘못된 행동적 표출 즉, 불순종이라는 (남의 탓이 아닌) 우리의 잘못(내 탓)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벌(원죄, Original Sin)을 받아 (따먹기만 하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있는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당하였음 (창세기 제 3장 22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저지르는 죄(Sin)의 성립에 관하여 살펴보면,(*1) 모르고 저지른 죄는 죄가 아니나, 이와는 달리, 알고 저지르는 죄는 범하는 즉시 죄가 성립함을 이분법적으로 분류를 하는데, 이 또한, 모르고 저지른 죄에는 자유 의지가 개입되지 아니 하였으므로 나중에 깨닫게 될 때까지는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용이고, 알고도 저지른 죄에 있어서는 자유 의지의 개입이 확실하므로 범하는 즉시 죄가 성립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4월 20일(토) 오전 10:20 - 내일은 부활절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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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죄(sin)"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죄의 정의, 원죄, 성령을 거스르는 죄 등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1년 12월 5일]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41.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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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19년 4월 20일(토)자 내용 추가 끝]


우리 인간들에게 원죄가 있음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 죽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 즉 "자유 의지의 불순종적 표출", 역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혼과 함께 줌에 있어 배제하지 아니하였던 것에 대하여, 피조물인 우리들로서는 바르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 중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웁게도, 천주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산중성훈/산중수훈(마태오 복음 제 5장 1절부터 제 7장 29절까지)에서, 특히 마태오 복음 제 7장 7절부터 12절까지 (혹은 루가 복음 제 11장 9절부터 13절까지)에서, 우리가 주님의 나라인 천국(the kingdom of heaven, 하늘 나라)에 들어가 그리하여 그 결과 우리가 본향인 천당(heaven)에 다시 돌아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오직,(*2) 하느님의 먼저 부르심에 대한, "자유 의지에 의한 자발적인 순종적 표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 당신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한 이후로 우리 인류가 죽음과 삶을 반복하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죄의 굴레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천주께서 보내신 희생양이심을 알고 계셨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심을 당하는 것마저도 또한 순종적으로 받아 들이셨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여러 형태의 "자유 의지에 의한 자발적인 순종적 표출"중에 이보다 더 지고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살신성인)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4월 20일(토) 오전 10:20 - 내일은 부활절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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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시자 주: [번역 오류]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 으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1635년경에 한문 문화권에 처음 도입된, "천국(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 이, [영어로 "heaven(s)" 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1584년경에 한문 문화권에 처음 도입된, "천당"의 옛말이라는 우리말 가톨릭대사전 등에서의 설명은 크게 잘못된 설명이기에, 이에 따라 이 부분을 바로잡고 또 보강하였습니다. 


이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그리스도교 용어 천당은 또다른 그리스도교 용어 천국의 옛말이 결코 아니다; 게시일자: 2015년 10월 23일]에 있으니,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포함하여 되도록 많은 분들이 필독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61.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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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19년 4월 20일(토)자 내용 추가 끝]
 

신약 성서의 4복음서들은, 그 동안 대물림 해 온 원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성자)을 통하여 하신 일들에 대한 구체적 증언들로서, 특히, 원죄 없이 오신 분께서 십자가 형벌 끝에 죽임 당한 후 당신께서 사흘 만에 스스로 부활하신 것마저도 하느님의 의도대로 이루어지심을 보여 주시고,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진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는, 하느님의 먼저 부르심에 대하여, 개개인이 자유 의지를 발할 때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불순종적이 아니라 순종적으로 발할 경우에 있어서만,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댓가로서 우리를 다시금 영원히 살 수 있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시고 또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이는, 비록 원죄를 범하였기에 오래 전에 단죄하였으나,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 (고린도 전서 제 13장) 께서는, 피조물일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오로지 불쌍히 여기시어, 우리를 원죄의 상태로 영원히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부르심에 대하여, 죄 많은 우리에게 스스로 자발적으로 택하게 할 기회를 주심으로써 (즉, "자유 의지에 의한 자발적인 순종적 선택 및 표출"을 통하여) 우리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거룩하고 지고한 천주의 뜻이 아닐 수 없으며, 이보다 더 기쁜 축복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축복에 대하여, 특히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제 5장 1절부터 21절까지 그리고 제 6장 1절부터 23절에 걸쳐 매우 간절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죄와 이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모든 죄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을 받기 위하여서는, 최소한도의 필요조건으로서


(1) 원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2) 원죄가 얼마나 깊게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이미 많이 베어 들어 있는지를 깊이 깨달아야 하고 (세례 이후에도 각자의 자유 의지는 병이 들어 있는 상태임)


(3) 원죄와 이것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모든 죄는 모두 우리 인간들의 자유 의지의 "불순종적 선택 및 표출"에서 성립되었음을 알아야 하고


(4) 자유 의지에 의한 "자발적인 순종적 선택 및 표출"을 위하여, 세례성사를 그 처음으로 하여, 더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행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아야만,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통하여 비로소 가능할 것입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도의 의무로서, 주일에 거행되는 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고해성사 및) 영성체를 모시도록 요구하는 교회의 가르침은, 위에 열거한 것들을 "미사전례 참여"라는 실천적 반복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알게 하려는 것으로 우리는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신론자이고, 나의 영혼이 나의 소유물은 아니나 나를 떠나 방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윤회론자이고, 나의 영혼이 나의 것이 아니고 절대자인 하느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유신론자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이 "자유 의지"라고 불리는 어려운 개념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도 이기고 형제도 이기고 이웃도 이기고 더 나아가 모두를 이기는 사람(즉, 기가 센 사람)일 수록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딱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군고 하니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자신을 이기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도록 합시다. 이를 위하여, 매사에 임할 때에, 주님께서 주신 이 좋은 머리를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비록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나, 사실은 이 말씀보다 더 두려운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사소한 생각과 말과 행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자신의 영혼을 허락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으므로, 그 날이 왔을 때에, 주님께서 주신 내 영혼을, 내 것이 아닌 내 영혼을, 자존심이 아닌 내 영혼을, 잘 관리하고 키우지 못한 벌을 받을 수 있음에 대하여 누가 과연 장담하며 피할 수 있겠습니까? (마태오 25,14-30 참조) 이것이, 진실로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이미 알고 계시며 또 앞으로도 영원히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39).


-2003년 봄 부활절에 임하면서... [주: 본당 자유게시판에 위의 글을 올린 해를 말함]


(최초 작성일: 2001-01-31 오전 6:09:28)

원출처: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512375&PSIZE=20&searchkey=N&searchtext=%EC%9B%90%EC%A3%84&menu=orgbbs_conserv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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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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