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성당 게시판

순교? 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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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영 [goodforyou] 쪽지 캡슐

1999-09-06 ㅣ No.245

 

 

      이제 찬바람이 솔솔 불어옵니다.

      한낮의 기온이 30℃를 웃돈다하더라도 이제는 가을인 것 같습니다.

      9월이 오면 괜히 생각만 많아집니다. ’사색의 계절’이기 때문인가요?

      한가위를 기다리며 괜히 가슴 설레이고,

      과일가게에서 자리를 넓혀 가는 풋풋한 사과의 싱그러움도 좋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상투적인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점에 가고 싶은 날도 많아졌습니다.

       

      교회력으로 9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순교자 성월을 맞으면 다른 성월들과는 달리 부담이 생깁니다.

      순교자의 정신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지하철을 타서 이리저리 자리를 살피다가도 ’순교자’를 생각하며(?)

      한번쯤 기쁘게 참아 봅니다.

      내게 박해가 닥치면 과연 나는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 하는

      제법 진지한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선조들에게 왔던

      그런 박해의 순간은 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안심을 하곤 합니다.

      언젠가 군에서 휴가를 나온 후배가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처음 군대에 가서 식판을 받아 놓고 아주 경건하게 성호를 긋고는 지긋이 눈을 감고 식사 전 기도를 바쳤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소세지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부터 제것은 남겨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하였답니다.

      하지만, 다음 식사시간도, 그 다음 식사시간에도 자신의 몫은 남아 있지 않더랍니다.

      점점 기도가 빨라졌지만, 그래도 안되더랍니다.

      참아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안되겠기에 그 다음부터는 눈을 뜨고 기도를 드렸답니다.

      자신의 소세지를 지키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눈을 크게 뜨고 소세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기도를 바칠 후배녀석의 얼굴을 생각하니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배는 제법 진지했습니다.

      자신은 그 때에 순교를 할 것인가 배교를 할 것인가 갈등을 해야했다는 겁니다.

      식사 전 기도를 바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순교’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와닿기

      시작하더군요.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더라도 순교의 순간들을 언제나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하루에 순교와 배교를 수십 번 씩 번갈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9월이 오면 저는 그 후배의 소세지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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