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남터성당 게시판

사제관의 비밀4(우째이런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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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thghk] 쪽지 캡슐

1999-10-04 ㅣ No.258

 

 

 

가을 입니다.

 

파아란 하늘이 보기 좋았던 오늘.

 

시원한 바람과 함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

 

다칠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많은 등장 인물이 등장하며,

 

등장인물들은 아주 찔림을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가올 테러를 각오하며 비장하게 공개하는 바입니다.

 

때는 쪼끔 되었죠.

 

현 사제관에 상주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주로 칼질을 하고,

 

한 사람은 주로 간을 합니다.

 

말하자면 요리사와 요리보조가 있다는 거지요...

 

사제관의 식성은 주로 보조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보조는 떡볶이를 무척이나 좋아 한답니다.

 

누가 누군지는 벌써 알고 계시겠지요?

 

떡볶이를 해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때였습니다.

 

이미 한 번 떡볶이를 먹어본 터라

 

미리미리 떡과 오뎅(’어묵’이 표준이지만 정감을 살려서..)

 

을 무지하게 마니 준비해 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항상 보조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요리사께서는

 

볶이를 해주겠다며, 재료를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위로와 함께.

 

최고의 떡볶이를 해 주겠다고 말입니다.

 

준비하라는 재료의 양이 조금 많아 의심스러웠지만,

 

보신 분은 알겠지만 보조의 칼솜씨는 워낙 출중해서

 

순식간에 모든 재료를 준비하여 다듬어 놓고는

 

요리사의 솜씨발휘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여차여차해서 떡볶이가 다 되어갈 무렵.

 

요리사께서는 본당 청년분들이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으니,

 

함께 먹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누어 먹는 것이 수도자의 길이라.

 

아까운 마음을 접어두고,

 

이상하게도 미리 사제관 앞에 대기해 있는 청년분들을

 

모시고 식당으로 돌아 왔는데,

 

역사는 거기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갑자기 사무실에서 보조를 찾는 전화가 온 것입니다.

 

잠시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사이

 

요리사께서는 보조의 것을 충분히 남겨 놓을 것이니,

 

천천히 일을 보고 들어오라 하기에,

 

오로지 믿는 마음 하나로 사무실에 가서 일을 처리하고 와 보니,

 

이런 단 10여분 사이에 떡볶이는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리고,

 

그나마 남아 있던 밥도

 

떡볶이 국물에 사정없이 비벼져 사라져 버리고 만 후 였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깨끗이 씻겨 있는 그릇과

 

청년분들의 늘어난 허리 뿐.....

 

게다가 전 그날 저녁

 

밥이 없어 라면을 끓여 먹다가 요리사에게 사정없이 혼났습니다.

 

라면에 계란을 두개 넣었다고 말입니다...

 

우째 이런 일이...

 

PS : 가을은 식욕의 계절입니다.

 

     비록 가을의 사건은 아니었지만, 계절을 뛰어 넘는 제 식욕

 

     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전 신부님께서 청년들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았고,

 

     덤으로 이틀 후 그날 보다 10 배는 더 맛있는 만두까지 들어 있는

 

     떡볶이를 아주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날은 명백히 신부님의 "배신"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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