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성서쓰기를 계속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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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1-04-11 ㅣ No.2838

10여년 전으로 기억된다.  개신교에서 성서필사 운동이 유행처럼 벌어지는 것을 보고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교수가  "성서 필사를 하고 있을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삶의 현장에  나가서 성경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천하라." - 대강 이런 요지의 글을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그 주장이 옳다고 박수를 쳤다. 개신교에서 먼저 유행했던  성서 필사가 가톨릭에서  벌어졌을때도 여전히  그런 시각이었다.

 

내가 성서 필사에 직접 참여한 것은 지난해 사순절. 전 신자가정이 마태오복음 필사를 할때  우리 구역의 참여율을 높이기위해 남편과 함께 노트에 처음 써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사순절을 조금 뜻깊게 보내자는 뜻에서  새 매체인 게시판을  이용한 성서 이어쓰기를 벌인 것이다.

 

 그런데 역시 부끄럽다.  몇번 못 쓰고 벌써 사순절이 다 지났고 내일모레가 부활절이다.  성당에서 하는 성서학교의 읽기 과제도  따라가기 벅차다.  성서학교가 열리기 전날인   목요일에는 밀린 부분을 찾아 읽느라고 정신이 없다. 개신교신자들은 늘 성서를  끼고  살아 성서가 낡고 헤져서 평생에 몇권씩이나 새책으로  바꾼다는데 , 나는 이제껏 성서가 단 한권이라도  낡고 헤지도록 읽은 일이 없고, 믿는바를  실천하지도 못하고,  온몸으로 사는 이웃들을 시대에 뒤졌다고 비웃으며  요령으로만  신앙생활을 해왔으니    말이다.

 

 성서이어쓰기를 한다니까 "무어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있느냐,  통째로 다운받아 올리면 될것 아니냐"고 농담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계산만 하고  머리로만 믿는 이들을 하느님이 거둘것 같지않아 자신이 없어졌다. 한번  새로운 체험을 통해 다시 태어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성서이어 쓰기를 시작하니 여러분이 동참했다.  

 대화에는 일일이 색깔을 넣고 그림과 곁들여  읽기 편하게 해 주어가며 가장 많은 분량과 회수를 기록하며  쓰고 계신 하충식 형제님, 한안수 골롬바 자매님, 아침일찍  출근해야 하는  엔젤사랑의 박온화 최영호 장기성, 새벽에 취침해야 하는 박순봉 형제들이 잠을 줄이고 성서 이어쓰기에  나섰다.

 

창세기부터 쓰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성서학교의 읽기과제와 비슷하게 써지는것 같았다. 그러나 차츰 뒤지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났다 . 이렇게되니  사순절동안만 성서이어쓰기를 하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당게시판이 성서이어쓰기로만 채워져 흥미를 못느끼는 분들도 있겠다는  생각도 슬며시  들었다.

 

"사순절 동안만 성서 이어쓰기를 하고 일단계로 마쳐야겠다"는 뜻을  참여했던 분들께 말씀 드렸더니 섭섭해 하는 반응이었다. 의외였다. 남들은 안해도 혼자 끝까지 쓰겠다고 열의를 보이시는 분도 계셨다.

 

며칠전  아침미사 강론에서 권흥식 바오로 본당신부님은 " 성서  말씀은  우리 생활의 중심"이라고 하시고 성당에서  성서이어쓰기나 성서 공부를 하는데 , 비록 성서를 한줄  쓴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차원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많은 것을 언제 다 읽고 배우나,  언제 다 쓰나하고  초조해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한줄의 말씀에서라도  우리 곁에 계신 하느님을 진정 가깝게 느낄수 있게 묵상하고 인격적으로 친밀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맛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뜻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서인 쿰란동굴의 사해 사본 성서 일부를 본 일이 있다. 2천년전 에쎄네파의 수도사들은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지친 몸으로 변변한 종이도 없어서 어린 양가죽을 벗겨  얇게 종이처럼 만든 양피지에  잉크로 한자 한자 하느님의 말씀을 정리해 나간 것이었다.   양피지와  철필에서 컴퓨터 자판으로 도구는 변했을지라도 하느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이 내게 전해주시는 그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도록 마음을 세우며,  한자 한자 성서를 쳐올리며   말씀을 놓치지 않고 따라 살아  가야겠다.

 

참여율이 적고 성서 읽기의 진도에는 뒤쳐질지라도,  성서 이어쓰기가 처음 시작한 사람의 의도나 욕심과는 다르게 더 크신 분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꾸준히  참여하여 말씀을 묵상하고 성찰하며 이 시대의 복음 전달자가 되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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