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성당 게시판

퍼온글인데.. 왜이리 내맘이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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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kjh0320] 쪽지 캡슐

2000-03-14 ㅣ No.1592

당신 친구들이 당신의 생일 케잌에 촛불을 켜 주었을 때

 

내 친구들은 힘 없이 물고 있던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고,

 

당신이 오늘 약속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있을 때

 

나는 오늘도 없을 우연을 기대하며

 

당신이 좋아했던 옷을 챙겨 입고 있었고,

 

당신이 오늘 본 영화 내용을 친구들과 얘기하며

 

그 영화에서 느낌이 좋았던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 때

 

나는 우리가 왜 만났고 왜 싸웠고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는지를

 

빈 술잔을 채우는 친구에게 얘기하며 채운 잔을 또 비우고 있었고,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호출기에

 

메시지를 남기면 연락드리겠다고 녹음했을 때

 

나는 그 목소리라도 밤새도록 반복해 들으며

 

전할 수 없는 메시지를 달래고 있었고,

 

당신이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놀라

 

어느 처마 밑으로 피해 있을 때

 

나는 내리는 그 비를 다 맞으며

 

당신이 피한 그 처마 밑을 찾으러 뛰어다니고 있었고,

 

당신이 일기장에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나는 보여주지 못할 편지를 끄적이며

 

어김없이 찾아올 내일을 두려워 하고 있었고,

 

당신이 그 해의 첫눈이 반가워 누구를 만날까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이 내 호출기 번호를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호출이 올 때마다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느끼며 첫눈을 맞이하고 있었고,

 

당신이 책상 정리를 하다 미처 버리지 못한 내 편지를 읽으며

 

의미 없는 미소로 아무런 느낌 없이 그 편지를 휴지통에 넣을 때

 

나는 그 옛날 내가 보낸 편지의 어느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머리 속으로라도 다시 고쳐 쓰고 있었고,

 

당신이 생일 며칠 전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무슨 선물이 필요해’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너무나 건네주고 싶었던 선물 앞에서

 

당신과 너무나 어울릴 거라 생각하며

 

준비해논 돈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고 있었고,

 

당신이 새로 나온 음반의 어느 가사가

 

너무 좋더라며 음미하고 있을 때

 

나는 나하고 절대 상관없는 슬픔인지 알면서도

 

무너지는 그 가사에

 

또 한 번 가슴이 내려앉아 함께 무너지고 있었고,

 

.........

 

당신이 한 남자를 얻었을 때

 

나는 영원히 한 여자를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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