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동성당 게시판

옛날에,한 때 함께 했던 삐삐 이야기

인쇄

이채영 [mela1004] 쪽지 캡슐

2000-01-12 ㅣ No.338

옛날 옛날에...(*^^) 한 때 삐삐(pager)가 유행했을 때가 있었잖아요....

옛날 옛날에...(*^^) 한 때 삐삐(pager)가 유행했을 때가 있었잖아요....

그 때, 한 동안 인사말에 녹음해 놓았던 멘트가 생각나네요....

어느 시 구절이었었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게 소중한 것은 당신과 함께 한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닐지라도, 우연히 생각나서 나에게 연락을 한 사람일지라도 그 멘트를 통해, 그 시간이 길던 짧던,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나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요...

그 말을 들으면, 왠지 함께 좋았던 시간이 생각날 것 같아서요....

참, 작지만, 큰 따뜻함을 담을 수 있었던, 그래서 소중함을 전할 수 있었던 존재였던 것 같아요...삐삐는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가끔 삐삐가 있던 때가 너무나 그리운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핸드폰에도 음성 사서함의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전화 연결이 안되어서 용건을 남길 때 쓰는 거잖아요..

삐삐가 있던 시절에는, 좋은 음악두 남겨주고, 안부를 목적으로 삐삐를 치더라두, 짧은 편지처럼 이 얘기 저 얘기,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아두 쑥쓰럽지 않고, 또 그걸 들으면서 빙그레 웃을 일도 많았는데 말이예요....

 

언젠가 한 번은....초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수업을 마치고 학교 건물을 나오는데, 석양 무렵의 하늘이 너무 예쁘더라구요.....

그래서 공중 전화로 막 달려가서, 그 하늘을 함께 봤음 싶은 사람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어요....

 "지금 하늘 색이 너무 이쁘다.... 빨리 하늘을 봐!!! 알았지!!! *^^*"

짧은 말들이었구, 어쩌면 핸드폰이었으면, 직접적으로 하늘을 보라구 말해서 정말 그 하늘을 보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 왠지, 하늘을 보는 내 자신의 무한한 감동의 느낌과 함께 정말 제가 본 하늘을 그 삐삐의 메시지에 가득히 담았던 것 같아 그 때가 많이 그립네요...

메세지를 확인하느라, 시차가 생겨 그 하늘을(참고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하늘 빛은 시티 뱅크 간판 색이랍니다... 어스름한 저녁이나, 동터오기 직전에 볼 수 있는 하늘빛이죠....*^^*)차마 볼 수 없었다하더라도 직접적이지 않은 간접적인 것이 담고 있는 여운이 분명 전달되었을 테니 말이예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 만한 사이즈면, 들구서, ’여보세요’하는거야"라는 구박까지 들으면서도, (참고로 제 삐삐는 모토로라 express였답니다...) 전 남들보다 조금 오래 삐삐를 사용했어요... 너무 구박받는 것이 안스러워서 그 큰 삐삐의 덩치를 아주 귀여운, 그래서 남들이 탐내하는 아기 양말 한 짝에 담아서 가지고 다니기까지 하면서요.....*^^*

 

오늘 밤, 소중한 사람과 작은 소중함들을 함께 하게 해 주어서, 남모르게 혼자 많이 미소짓게 해주었던 아기 양말 속의 내 큰 삐삐.... 그 삐삐가 무지 그립네요....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주인이 세상의 조류에 발맞춰 소정의(?) 돈을 받구, 재활용 차원에서 팔아버리는 바람에 팔려서는 말이예요...

 

 

그 삐삐는 알까요?

핸드폰의 직접 연결이라는 성능에 억울하게 밀려나 버림받긴 했지만,

따뜻함을 무한히 담을 수 있었던 그 인간적인 면 때문에,

옛 주인이 때로 많이 많이 그리워 한다는 걸요...

순간 순간 느끼는 소중함을 따뜻하게 전해준 데 대한 뒤늦은 고마움과 함께요..



3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